산불이 옮겨 붙으면서 화염에 휩싸인 강원도 양양군 낙산사 <출처: 연합뉴스>
양양·낙산사 산불은 2005년에 강원동 양양군에서 발생했다. 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되면서
중요한 문화재들이 불에 타, 쓰라린 교훈을 준 산불이다. 산불은 2005년 4월 4일 오후 11
시 50분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발생했다. 5일에는 낙산사가 소실
되었고, 6일 새벽 진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산불이 설악산 입구까지 확산되자 경찰 2천
여 명을 동원하고 물대포를 투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쉽게 진화되지 못했던 이유는
며칠 전 발생했던 비무장지대 산불이 남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하고 있는 중에 발생하는
바람에 총력을 기울일 수 없었던 점이 있었다. 또한 강풍(순간 최대풍속 32m/s)인 양강
지풍이 불었다는 점과 주로 소나무 산림이어서 인화성이 강하다는 점도 작용했다. 당시
동해안 지역으로는 건조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시간대로 본 양양산불
“양양 대형산불..주민 700여명 긴급 대피” 2005년 4월 5일 연합뉴스 제목이다.
강원도 영동지역에 건조주의보와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4일 오후 11시
50분께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사교리 일대 야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발생, 강풍을 타고 계속 번지고 있다는 보도다. 순간 최대 풍속 32m의 강한 바람
을 타고 산불은 급속히 번졌다. 산불이 나자 소방관과 경찰, 양양군 공무원과 군
장병 등 4천 여 명과 소방차, 헬기 등이 동원돼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초속
10~20m, 순간 최대 풍속 32m의 강한 바람이 불고 날이 어두워 헬기를 투입치
못한데다 강한 불길로 현장 접근이 곤란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양양군은 산불이 발생한 다음날인 5일 오전 0시 50분께 사교리 주민을 긴급 대피
시켰다. 5일 오전 0시 55분께 강현면 사교리 31가구 60여명의 주민이 긴급 대피
한데 이어 금풍리 35가구 65명, 적은리 45가구 75명, 물감리 36가구 70명, 답리
23가구 50명 등 모두 223가구 400여명이 마을회관 등 안전지대로 긴급 대피했다
. 이어 2시 50분께는 12개 마을에 주민대피령을 내렸다. 관동대학교 양양캠퍼스
기숙사 학생 700여명도 양양읍내 일출예식장으로 대피시켰다. 소방당국과 일부
주민들은 방화지대를 구축하며 불길이 마을 가옥 등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데
주력하였다. 산불은 양양에서 속초방면 8㎞ 지점, 옛 속초공항-관동대학교 사이
에서 낙산해수욕장과 낙산대교 사이 바닷가 쪽으로 확산되었다. 이어 7번 국도에서
2~3㎞, 낙산사에서 4~5㎞지점인 도립공원 경계지점까지 번졌다. 소방당국은
소방차 등을 배치해 방화선을 구축했다. 군장병 등도 산불 진화에 나섰다. 충용
부대는 비무장지대와 양양지역에 발생한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고 확산됨에 따라
장병 3천500여명과 헬기4대, 소방차 27대를 비롯한 가용한 인력과 장비를 투입
시켜 산불확산 방지 및 조기진화에 총력을 기울었다.
이미지 목록 산불로 타 버린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주민 <출처: 연합뉴스> | 낙산사에서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에 안간힘을 쏟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
대형 산불은 5일 오전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으나 오후 들면서 강한 바람을 타고 다시
재발화하여 확산되었다. 양양 물갑리, 적은리, 화일리, 포월 농공단지 등지에 산불이
재발하면서 확산되자 이 일대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또 물갑리 인근 지역에는 군
부대 탄약고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소방차량이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오전 중에 양양
지역 산불이 어느 정도 진화되자 진화작업 중이던 헬기 4대를 고성 비무장지대 산불
진화를 위해 출동시켰던 소방당국은 긴급히 양양 산불 재발 지역으로 재투입, 진화
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강풍으로 산불이 동해안쪽으로 번지면서 5일 오후 3시, ‘관동
팔경’의 하나인 낙산사와 부속건물을 거의 전소시키고 낙산비치호텔과 에어포트 콘도
텔 등 인근 시설 일부를 태우는 등 큰 피해를 냈다. 불은 이날 낙산사를 포함, 가옥 등
40여개 동과 산림 150여 ha를 태운 것으로 집계됐고 양양 전 지역에 이날 오후 3시
재난경보가, 낙산도립공원일대는 주민대피령이 각각 내려졌다. 낙산해수욕장 인근
낙산 테마랜드 목조건물 등이 불길에 휩싸이며 액화석유(LP) 가스통이 터지는 등 불길
이 거세졌다. 낙산사에는 보물 479호인 동종(낙산사 동종) 등 주요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산불에 거의 다 타버렸다.
불타는 낙산사 범종각. 화재로 보물 제 479호
낙산사 동종이 소실되었다. <출처: 연]뉴스>
경찰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양양지역 산불 진화 작업에 따른 산불진화대 장비 및
인력 이동을 위해 설악산 입구~양양 연창 삼거리까지 20㎞ 구간의 7번 국도의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했다. 이에 따라 징검다리 휴일을 맞아 동해안 지역 행락
지를 찾은 차량이 극심한 정체현상을 초래하는 등 속초 일대에 교통대란이 빚어
졌다. 천년 고찰 낙산사를 삼켰던 강원도 양양의 산불은 밤새 바람을 타고 계속
번져 설악산까지 위협하였다. 5일 밤 천4백 여 명의 야간진화조가 40여대의 소방
차에서 물을 길어 손으로 불을 끄며 밤새 불길과 싸웠지만 강풍을 타고 확산되는
불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길이 설악산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강현면
둔전리 방면까지 접근하였다. 소방당국은 둔전리와 물갑리 마을 경계지점을 최후
의 방어선으로 구축하고 진화 장비를 집중시켰다. 다행히 바람이 약해지면서 산불
이 잡히기 시작했다. 산림청은 바람이 잦아든 6일 새벽부터 소강상태를 보이던
불길이 오전 8시 완전히 잡혔다고 밝혔다.산불 피해가 피해가 늘어나던 4월 5일
오후, 정부는 이해찬 총리 주재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양양 고성 지역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따라 재난사태가 선포되기는
양양낙산사 산불이 처음이었다. 재난사태가 발령된 후 효과적인 산불진압이
이루어지면서 산불은 꺼졌지만 피해는 예상보다 컸다. 이에 정부는 4월 7일
양양군 지역을 다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막바지 산불진화 작업중인 헬기 <출처: 연합뉴스>
양양 낙산사 산불이 남긴 것
양양·낙산사 대형산불이 가져온 교훈은 크다. 민족문화유산이라고 할
낙산사와 보물들이 불에 타버렸다. 피해면적 973ha 에 재산피해도
394억원에 달했다. 그 외에도 여름철 산사태와 해양오염 등 2차 피해
가 컸던 산불이다. 산림 전문가들에 따르면 산불 발생 지역 산림의 경우
토양의 접합력이 약해져 토사유출 방지기능이 130배 가량 떨어지고
수분 저장기능도 절반으로 감소해 산사태 우려가 높아진다고 한다.
실제로 양양 산불 이후 산의 토양결집력이 약해지면서 산사태나 지반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2006년 6월 15일 발생한 산사태로 양양 지방
도로가 막혔었고, 30일 양양 지역에 1시간 동안 41mm 폭우가 쏟아
지면서 양양 현북면 어성전리의 지방도 418호선변 절벽이 무너져 내렸
다. 또한 다음날인 7월 1일 새벽 4시에 어성전리 지방도 산악에서 산사
태가 발생했다. 7월 10일 태풍 에위니아가 몰고온 폭우에 낙산사 해수
관음상 앞 관음전의 축대가 붕괴되면서 산사태가 발생해 1,000여톤의
토사가 100m가량 흘러내렸다. 산사태가 발생한 곳은 2005년 산불로
나무가 불타 지반이 약해진 곳이었다. 양양 대형산불이 큰 피해를
가져온 까닭은 초속 30미터가 넘는 강풍 때문이었다. 헬기 38대,
소방차 184대, 진화인력 1만 여 명이 동원되었음에도 바람이 잘
때까지 진화작업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강한 바람이 불었다.
출처 : (지구과학산책)
▼ 현재의 낙산사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