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웨어러블
이제 어지간한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웨어러블이란 말을 알고 있거나 최소한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하는 때인데, 정작 이 웨어러블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인 구글 글래스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삼성과 LG에서도 각각 손목시계인지 전화기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제품을 내놨지만 신통치 않은 성적을 올리긴 마찬가지인 듯 하다. 애플의 제품만 선전하고 있는 듯 한데 기존 다른 애플 제품에 비하면 딱히 대단한 성공이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웨어러블, 소문만 무성한 잔치로 끝나나 싶었다.
그런데 최근 구글 글래스에서 테러로 끝나 융합 안전으로 이어지는 위 설명대로의 흐름에 부합하는 ‘웨어러블’의 부흥이 감지되고 있다. 갑자기 경찰력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왜 갑자기 지금? 혹자는 궁금할 수 있다.
먼저는 세계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각종 테러사건이 경찰력 강화의 동기와 이어진다. 테러 사건 후 경찰력 배치를 강화하는 경우가 여러 나라에서 있었다. 게다가 미국 경찰은 일련의 사건들로 최근 엄청난 비난의 대상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라는 흑인 청년을 경찰이 사살한 사건, 프레디 그레이(Freddie Gray) 척추손상 사망 사건, 지난 해 에릭 가드너(Eric Gardner) 목 졸림 사건 등이 있었다. 이 모든 사건들은 전부 근처에 있던 시민들의 모바일 기기를 통해 녹화되고 온 세상에 퍼졌다.
전문가들은 “경찰관들이 증거를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으면 불필요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위 사건들에서도 착용이 가능한 카메라 장비가 있었다면 몇몇은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실제 통계에 근거한 주장이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착용 가능한 카메라를 시범적으로 사용하는 경찰들이 일부 있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 경찰관들의 불필요한 무력 사용이 줄었고 2) 민원도 줄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미국 사법부는 착용 가능한 카메라 파일럿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신설해 2천만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중 1천 7백만 달러는 카메라 장비 구입에, 2백만 달러는 기술 지원 및 교육에, 나머지 1백만 달러는 평가 및 여러 가지 지원 장비 개발에 쏟을 것이라고 한다. 필요와 통계자료와 자금까지 모두 갖추고 있어 전망이 꽤나 밝다.
2. 항공사와 비행기
참 비행기 사고가 많은 상반기를 지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저먼윙즈 사건이 있었다. 부조종사의 자살극으로 결론이 지어진 이 사건을 통해 항공 보안의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또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 더불어 조종실의 잠금장치라는 물리보안 분야의 수정도 잇따랐다.
그러다가 지난 달 파키스탄에서 헬기가 기기 결함으로 추락한 사건이 있었다. 하필이면 각국 대사들이 탄 헬기였고, 마침 또 파키스탄은 테러 세력인 탈레반이 활동하는 무대이기도 해서 테러가 의심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진으로 도시 자체가 3m나 이동하는 바람에 기반이 다 무너져 내린 네팔에서도 헬기 추락사건이 있었고, 젊은 군인이 8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가뜩이나 비행기 쪽에 관심이 쏠려 가는데 한 보안 전문가가 기내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통해 실제 운항 중인 비행기를 살짝 조종하는 데 성공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보안 전문가가 저먼윙즈 부기장처럼 자살이라도 마음먹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이이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FBI로 연행되었고 그 후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는 탑승 거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항공 보안은 정책, 사람, 하드웨어 기술, 소프트웨어 기술을 총망라하는, 보안에서도 아주 복잡하고 복합적인 분야다. 저먼윙즈 사건을 통해 정책과 사람의 측면이 부각됐다면 앞서 언급한 헬기 사건들을 통해 하드웨어 기술 문제가 집중 받았다. 그리고 이제는 정보보안, 즉 소프트웨어 문제까지도 확인되었다.
3. 스마트 빌딩
가정 자동화, 혹은 더 넓게 봐서 스마트 빌딩 산업도 쑥쑥 자라고 있다. 다만 이 분야가 성장할 수 있는 ‘대의명분’은 사건사고 혹은 테러가 아니라 에너지 소비의 효율성이다. 지난 3월, SECON 2015에서 만난 한 유럽 보안 업체의 관계자는 “예를 들어, 사무실 안에 몇 사람이 있는지 알 수 있다면, 그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난방 및 냉방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서 이런 스마트 빌딩 시스템 도입을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보다 조금 더 과거인 2006년, 몬트리얼 대학의 재컬린 비셔(Jacqueline Vischer) 박사라는 인물은 일하는 장소에서 사람이 느끼는 편안함을 3단계로 나눴는데, 이는 순서대로 물리적인 편안함, 기능적인 편안함, 심리적인 편안함이다. 물리적인 편안함이란 안전도, 청결도, 온도 등을 말하고 기능적인 편안함이란 일을 하는 데에 있어 효율적인 동선, 조명 상태, 가구 적합도 등을 말하며 심리적인 편안함이란 프라이버시, 통제권한, 자기 영역 등의 설계 및 관리 등을 말한다고 한다.
스마트 빌딩은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두 번째 요소인 기능적인 편안함에 집중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안과 편리의 관계가 늘 그래왔듯, 보안과 관련된 일들이 맨얼굴을 드러내고는 한다. 온도 조절 시스템을 통해 주차장문 폐쇄 제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하면, 네트워크 카메라로 사람들을 관찰할 수도 있게 되는 해킹 과정은 지금도 계속해서 전문가들에 의해 공개되고 있다. 이는 얼마든지 물리적인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항공 보안 이상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 한 매장에서는 CCTV를 먼저 해킹해 직원들의 행동을 관찰한 후 캐시 머신을 해킹한 사건도 있었다.
스마트 빌딩 리서치 기관인 메무리(memoori)는 ‘건축물 설계 -> 설계를 통한 공간 정의 -> 기타 건축 기술 추가 -> 사람들 입주 -> 공간에 맞추어 사람들 적응’의 기존 과정이 싹 뒤집혀야 한다며 ‘건축물 기능 및 목적의 정의 -> 필요한 공간 결정 -> 필요한 자동화 기술 및 인원 결정 -> 수집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배치(설계) -> 사람들 입주’의 과정을 제안한 바 있다. 여기서 안전 및 보안 문제는 건축물의 목적을 정의하는 과정에서부터 등장해 논의되어야 한다.
4. 하이브리드 전쟁
그러나 아무리 비행기를 안전하게 몰아서 안전하기 짝이 없는 집으로 들어가 안전한 웨어러블로 문화생활을 영위해봐야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안전 방책이 무용지물로 변한다. 공들여 설계한 건물도 미사일 한 방이면 끝이고, 해커가 절대 조정할 수 없는 비행기라도 누군가의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 격추될 수 있다. 그래서 안전, 보안, 이런 문제들은 종국에는 나라와 나라, 국제관계와 역사의 역학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 NATO와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하이브리드 전쟁’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킹이면 해킹, 군사력이면 군사력, 세계 최강 수준의 파워를 겸비한 러시아를 두고 한 말로 이전까지는 현대 소나타 정도에서나 나왔던 ‘하이브리드’라는 말이 전쟁을 지칭하는 맥락 속에서 처음 등장했다. 기껏해야 ‘사이버전’ 정도가 새로운 용어였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옛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국제정세에 종속된 보안의 특성을 봤을 때 NATO와 유럽연합의 이런 표현은 곧 보안 시장의 앞날을 그대로 전망하는 말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것에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이더니, 이젠 전쟁마저 그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