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으로 선정해 본
식서스 All-time Teams
요즘 식서스가 분전을 하며 리그를 많이 놀라게 하고 있어서, 많은 농구팬들의 관심이 필라델피아 팀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해서 이 식서스 구단의 역사와 관련된 글을 올려봅니다.
제가 아는 약간의 지식과 선수들의 활약을 본 기억으로 구성한 식서스의 All-time Tea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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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Team
C: 윌트 체임벌린 (Wilt "the Stilt" Chamberlain)
(1965~1968)
1936년생. 신장 216cm. 필라델피아 태생. 프로데뷰 후 첫 5시즌을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현 골든 스테이트)에서 활약. 많은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죠. 한경기 100점의 신화. 한시즌 평균득점 50점 이상. 7번의 득점왕과 11번의 리바운드 타이틀. 식서스의 팬들은 이런 선수가 식서스 출신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긍지를 가질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상당히 이기적이었던 플레이 스타일에서 벗어나, 아주 약간의 이타적인 자세로 변신하자마자 따낸 어시스트 타이틀 (1968년, NBA 빅맨으로서는 유일무이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식서스에게 안겨준 첫번째 NBA 우승 트로피 (1967년). 인격적으로는 그다지 성숙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개인능력으로만 본다면 마이클 조던도 울고 갈만한 선수였습니다. NBA MVP 4회수상에, 매시즌 올스타게임과 All-NBA팀에 선정되었던 윌트 체임벌린을 식서스 역대최고팀 퍼스트팀 센터에 추대합니다.
PF: 찰스 바클리 ("Sir Charles" Charles Barkley)
(1984~1992)
1963년생. 신장 194cm (정수리 위에 튀어올라 있는 부분을 빼면 실제 신장은 192cm라는 말도 있습니다. NBA 데뷰할때의 몸무게가 무려 145kg이었지만, 공식 드래프티 신체검사때 찍은 서전트 점프가 103cm였다고 합니다. 루키시즌부터 어빙과 모제스 말론이라는 뛰어난 선배들을 만나 제대로 농구를 배울 수 있는 특권까지 누렸던 축복받은 선수였죠. All-NBA 팀과 올스타게임에 각각 11회 선정. 역대 파워포워드 3위권에 올라있는 선수. 리바운드에만 집중했다면 데니스 로드맨보다 더 뛰어난 스탯을 찍었을 천부적인 리바운더. 대부분의 NBA팬들은 바클리가 선즈의 멤버로서 MVP를 따낸 1993년을 전성기로 보시지만, 제가 보기엔 1993년 시즌은 바클리가 좋은 팀을 만나 선수의 완성도 면에서 이룬 최고시즌이었을 뿐, 전성기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바클리의 전성기는 그의 프로 2년차인 1985~86 시즌부터 1989~90 시즌이었습니다. 이때의 바클리는 한마디로 “줄리어스 어빙 + 모제스 말론”이었습니다.
SF: 줄리어스 어빙 (Julius "Dr.J" Erving)
(1976~1987)
1950년생. 신장 198cm. 필라델피아의 자랑이라 할만한 레전드죠. 이렇다하게 내세울만한 빅맨 하나 없이 식서스팀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파이널에 3번이나 올려 놓았던 선수입니다. ABA 올스타 5회. NBA 올스타 11회 선정. 16년동안 올스타게임 스타팅 멤버. ABA MVP 2회. NBA MVP 1회 (1981년). All-ABA 5회. All-NBA 7회 선정. 커리어 평균 – 24.2점, 8.5리바운드, 4.2어시스트, 1.7블락, 2.0스틸인 올어라운더. 줄리어스 어빙의 ABA 데뷰시절의 서전트 점프는 47inch (118cm)였습니다. 1984년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는 3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유투라인 덩크를 깨끗하게 성공시켜 50점 만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누구보다 큰 손, 긴 팔과 다리, 그리고 최고의 바디컨트롤을 이용해 NBA Showtime을 개척한 사나이, 줄리어스 어빙이 식서스 역대최고 퍼스트팀의 3번자리를 맡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제가 준비하고 있는 어빙의 역대기에서....)
SG: 할 그리어 (Hal Greer)
(1958~1973)
1936년생. 신장 188cm. 식서스의 1966~67 시즌 우승팀의 주전 슈팅가드였던 분입니다. 커리어 통산 평균이 19.2점, 5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코트 전체에서 활약을 했던 레전드죠. 1997년 역대 최고 50인에도 뽑혔습니다. 1967년 우승 시즌에는 평균 22점 이상에, 플레이옾에서는 24점 이상을 찍어주며, 체임벌린과의 안팎 득점 밸런스를 잘 맞추어 줬던 선수입니다. 당시에 3점슛이 있었다면, 이 선수의 커리어 평균득점이 4~5점은 더 올라갔을 겁니다. 커리어 15년 전체를 한 프랜차이즈와 함께 했던 선수이기도 하죠. All-NBA 세컨드팀에 7회 선정되었고, 올스타게임에 10회 선정된 그리어는, 일반적으로 오스카 로벗슨과 제리 웨스트와 함께 60년대 최고 가드 3인방으로 통합니다. 자유투를 던질때, 점프슛으로 일관해 유명했던 그리어는 식서스 프랜차이즈가 배출해낸 역대 최고의 슈팅가드입니다.
PG: 앨런 아이버슨 (Allen "the Answer" Iverson)
(1996~2007)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그래서 설명 안하겠습니다. 정통 포인트 가드는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가 될 수 있는 아이버슨이 퍼스트팀의 포인트 가드입니다.
식스맨: 빌리 커닝햄 (Billy "Kangaroo Kid" Cunningham)
(1965~1972, 1974~75)
1943년생. 신장 196cm. 아마도 1980년대 식서스의 영상을 보신 분들에게는 감독으로서 더 낯이 익은 분이겠습니다. 줄리어스 어빙과 함께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식서스의 중흥을 이끌었던 감독이지요. 하지만 이 커닝햄은 선수로서 더 유명했었습니다. 별명인 ‘캥거루키드’가 말해 주듯이 백인이면서도 잘 뛰고, 흑인들보다도 점프를 잘하는 특이한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커리어 평균이 21.2점, 10.4리바운드, 4.3어시스트였던 커닝햄은 60년대 당시 식서스에서 '식스맨'으로 뛰면서 이러한 스탯을 냈습니다. 66~67 우승팀에서도 체임벌린과 그리어 다음으로 팀의 3번째 주득점원이었고, 리바운드는 팀내 2위였던 선수였죠 (2007년도 우승팀 스퍼스의 지노빌리와 비슷한 스타일의 비슷한 역활이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1972~73 시즌에는 잠시 외도(?)를 해서 ABA에 가서 뛰면서 리그 MVP를 먹고, 다음 시즌에 NBA의 필라델피아로 복귀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2nd Team
C: 모제스 말론 (Moses Malone)
(1982~1986, 1993~94)
1955년생. 신장 208cm. 식서스의 구세주라고도 불리우죠. MVP 3회. 리바운드왕 6회. 역대 최다 리바운드 3위. 역대 최다 공격리바운드 1위. 40분 환산 커리어 공격리바운드 게임당 6개. 한마디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NBA의 MDE였던 선수였습니다. 워낙에 골밑장악력이 좋고, 리바운드가 탁월해서 (200년대 초반의 샤킬 오닐과는 또 다르게) 리그를 지배하고 장악했던 센터입니다. 80년대 초반에는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할 수 있었던 13.2 mil / 6년계약으로 식서스에 영입된 선수죠. 본인의 져지넘버 2는 13.2를 6으로 나눈 숫자를 의미했습니다. 빅맨없이 파이널에 올라갔다가 포틀랜드의 빌 월튼, 셀틱스의 로버트 패리쉬, 레이커스의 압둘자바 등에게 매번 당했던 식서스의 마지막 카드였고, 말론은 거액의 연봉과 자신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을 보이며 식서스에게 두번째 우승을 선사했습니다. 플레이옾에 들어가기 전, 그의 fo-fo-fo 예언은 세 시리즈를 모두 스윕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말이었는데, 밀워키에게 4차전을 내주는 바람에 fo-fi-fo (4-5-4)로 끝나고 말았었죠. 72 대 30. 1983년 파이널 시리즈에서의 말론과 압둘자바의 총 리바운드 합계 대비수치입니다.
PF: 데릭 콜먼 (Derrick "D.C." Coleman)
(1995~1998, 2001~2004)
1967년생. 신장 208cm. 1991년 신인왕. 1994년 올스타. 1994년 세계농구선수권 우승의 주역. 커리어 평균이 16.5점, 9.3리바운드입니다. 선천적인 재능으로만 따지면 팀 던컨과 칼 말론을 월등히 앞서는 선수였습니다. 페이스업, 포스트업, 마음먹은대로 할 수 있었고, 드라이브인이나 리바운드, 특히 패싱력이 뛰어났었죠. 어렸을때부터 포인트가드 놀이를 즐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매직 존슨보다 더 드리블 능력이 뛰어났던 선수였습니다. 매직 존슨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유연한 볼핸들링을 보유하고 있었죠. 첫 두 시즌 경기를 보면 자신이 리바운드해서 드리블 치고 나와 패스를 넣어 주거나, 자신이 직접 슈팅까지 하는 플레이가 많이 나옵니다. 마음을 다잡고 농구에만 열중했으면 커리어 평균이 23~4점, 11~12리바운드, 4어시스트 정도는 나올만한 선수였죠. 이 선수의 단점은 게으름과 실력을 따라주지 못하는 그의 인격이었습니다. 자신의 몸관리를 잘 못하다 보니 15시즌 동안의 시즌당 평균출장수가 52게임밖에 안 됐습니다. 파워 포워드로는 빵점짜리 훈련태도도 문제가 됐었고, 그 외에도 음주운전, 무면허 운전, 마약, 공공장소에서의 변태성 행위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썽을 피웠던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뛰어난 재능때문에 세컨드팀에 올려 보았습니다.
SF: 쳇 워커 (Chet "the Jet" Walker)
(1962~1969)
1940년생. 신장 201cm. NBA 올스타 7회. 커리어 평균 – 18.2점, 7.1리바운드. 1966~67 시즌 우승팀의 스타팅 스몰 포워드였습니다. 빌리 커닝햄이 60년대 대부분을 식스맨으로 뛰었으니, 식서스 구단 역사상 동포지션에서 단연코 어빙 다음의 2인자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사이드 가릴 것 없이 쏴대는 전천후 공격수였습니다. 이런 뛰어난 선수와 체임벌린, 할 그리어, 커닝햄이 전성기를 함께 했는데도 우승을 1회밖에 못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만큼 보스턴 셀틱스의 위력이 대단했다는 반증도 되겠습니다.
SG: 앤드류 토니 (Andrew "Boston Strangler" Toney)
(1980~1988)
1957년생. 신장 190cm. 이 선수가 어떤 선수였는지는 그의 별명이 말해줍니다 - '보스턴 교살자'. 토니는 한마디로 보스턴 셀틱스 킬러였습니다. 루키시즌인 1981년 시즌부터 약 5~6 년간 이 선수는 혼자서도 보스턴 진영을 초토화시키던 선수였습니다. 식서스는 물론 어빙의 팀이었지만, 셀틱스와 붙기만 하면 이 선수가 거의 매게임 Player of the game으로 뽑히곤 했었습니다. 이 선수 하나를 막기위해, 보스턴은 84 시즌을 앞두고 당대 최고의 2번 수비수 데니스 존슨을 거금을 들여 영입해야만 했습니다. 상당히 뛰어난 외곽슛을 갖고 있었는데, 점프를 한 상태에서 팔을 쭉 뻗어 올리며 손목의 스냅만 사용해서 슛을 쏘았기 때문에 블락을 하기가 쉽지 않았죠. 한번 발동이 붙으면 40점도 쉽게 넣어버리는 선수였습니다. 워낙 강심장이라서 플레이옾에서 더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던 정통 슈팅가드였습니다. 커리어 평균 16점. 올스타 2회 (83년, 84년).
PG: 모리스 칙스 (Maurice Cheeks)
(1978~1989)
1956년생. 신장 185cm. 현 식서스의 감독이죠. 80년대 모든 포인트가드들이 닮고 싶어했던 '포인트가드계의 교과서'였습니다. 올스타 게임에도 4회 출전했죠. 앞선에서의 수비가 빼어나 All-Defensive Team에 5회나 뽑혔었고, 수비와 스틸에 이은 속공이 훌륭했던 선수였습니다. 안정된 드리블, 화려하지는 않으나 효과적이고 정확한 패싱력으로 뛰어난 경기 운영력을 보여 줬습니다. 커리어 평균은 11.1점에 6.7어시스트, 2.1스틸입니다. 루키시즌부터 식서스의 살림을 도맡아 했던 민완가드였습니다. 이 선수가 없었다면 80년대 초반의 식서스의 원활한 공격도 없었을 겁니다. 따라서 멋진 어빙의 덩크도 많이 못 보았을지 모릅니다. 이 선수가 식서스에 합류해 포인트 가드를 맡으면서부터 어빙의 평균득점이 3~4점 올라갔습니다. 단순한 우연이었을까요?
식스맨: 바비 존스 (Bobby "Secretary of Defense" Jones)
(1978~1986)
1951년생. 신장 206cm. 프로 통산 12시즌동안 11번의 All-Defensive Team에 선정된 기록적인 수비수입니다 (퍼스트팀만 9회). 별명이 "국방부 장관"이죠. 1982~83 우승시즌에 올해의 식스맨상도 탔습니다. '올해의 식스맨' 초대 수상자입니다. 사실 이 선수때문에 식스맨상이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올스타급 선수가 스스로 자원해서 벤치에서 나오면서 식서스의 65승 시즌과 우승을 이루는데 큰 역활을 담당한 것에 따른 보상이었다고나 할까요? 올스타 게임에도 4회 출전했습니다. 운동능력이 워낙 탁월했던 백인이라, 80년대 식서스 경기를 보면 속공시에 칙스의 패스를 받아 런닝덩크를 호쾌하게 성공시키는 장면을 많이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선수는 주로 상대방 주득점원인 파워포워드와 스몰포워드를 전담마크 했는데, 정말로 "깨끗한" 수비로 상대방을 제압해 많은 칭찬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스틸 수치가 높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박빙의 게임에서 마지막 순간의 결정적인 스틸을 해내던 '완소'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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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더그 콜린스 (Doug Collins)도 있는데, 위의 두 팀 어디에도 넣을 자리가 마땅치가 않았습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 식서스의 슈팅가드로 뛴 198cm의 백인선수인데, 올스타 게임에도 자주 뽑혔고, 평균적으로 18~20점은 꾸준히 득점해주던 슬래셔 스타일의 선수였죠. 1980년 플레이옾을 앞두고 무릎부상으로 시즌아웃에 은퇴까지 했는데, 이 선수만 건재했었다면 파이널에서 루키였던 매직 존슨이 그토록 맹활약을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80년대 중후반에 불스의 감독이 되어서 마이클 조던을 지도하기도 했었던 그는 현재 ESPN의 농구해설을 맡고 있습니다.
센터: 윌트 체임벌린 – 모제스 말론
파포: 찰스 바클리 - 데릭 콜먼
스포: 줄리어스 어빙 – 쳇 워커
슈가: 할 그리어 - 앤드류 토니
포가: 앨런 아이버슨 – 모리스 칙스
벤치: 빌리 커닝햄 - 바비 존스
글: Doctor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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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곳에 먼저 올리고, 나중에 히스토리 게시판으로 옮기려 합니다. / 세컨드 팀의 파워포워드에 데릭 콜먼이 올라가 있어서 의아해 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선택입니다. 사실 60년대의 식서스를 이끌던 올스타 파워포워드 '룩 잭슨'이나 90년대 초반에 바클리가 없는 인사이더진을 홀로 이끌었던 '클라렌스 웨더스푼' 또는 70년대에 계속 올스타에 뽑혔던 20-10의 파워포워드, '조지 맥기니스'가 더 나은 커리어를 보냈습니다. 콜먼을 올린 이유는, 제가 이 선수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었기에... 그런데 그 기대를 너무나도 무참하게 저버린 인간이라서 애증의 심정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닥터 J님의 추억을 좇는 컬럼들..언제나 즐겁습니다. 할아버지(-_-;;?) 무릎에 머리를 베고 옛날얘기 듣는 느낌..아련하네요 ㅎㅎ 홀 그리어의 생전 경기를 너무나도 보고싶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흑백필름 한경기를 본것이 전부입니다. 어떤 스타일의 선수였는지 자료를 다시한번 찾아봐야겠네요 ^^ 찰스 바클리의 개인적인 역량은 확실히 필리 시절이 압도적이긴 하더군요. 93시즌이 바클리의 완전체라고 생각을 안하신다면 몇년도가 바클리 최고의 해라고 생각하십니까? 93시즌은 확실히 3점슛도 장착이 되고 점퍼라던가 킥아웃 센스가 정점에 달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운동신경은 많이 감퇴했지만요 ㅎㅎ
저는 바클리의 최고 전성기를 둘로 나눕니다. 첫번째 전성기는 86년 시즌부터 90년 시즌까지입니다. 이 시기의 바클리는 날아 다니는 샤킬 오닐같았습니다. 넘쳐나는 스태미너와 운동능력으로 경기를 장악했지요. 그렇다고 신체능력으로만 농구를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때도 어시스트 능력이나 다른 올라운더로서의 능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러다가 91년 시즌부터 정확한 3점슛을 장착했지요. 이 때부터 95년 시즌까지가 2차 전성기입니다. 93년 선즈에서는 좋은 팀에 좋은 선수들이 바클리를 받쳐줬기에 그의 실력이 출중해 보였던 것이고, 그런 경기력은 이미 2~3년 전에 장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96년 시즌부터 급격히 쇠락했지요.
저는 1989~90 시즌을 바클리 최고의 시즌으로 봅니다. 이 때 시즌 엠브이피 투표에서도 매직 존슨과 경합을 벌여 아주 근소한 차로 2위를 했었지요.^^ 거의 혼자의 힘으로 팀을 53승까지 이끌었고, 야투 성공률도 60%였습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평균 25점에 16개의 리바운드를 잡았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불스를 넘지는 못했지만요...
항상 Doctor J님의 글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갑니다..^^ Jeffrey님 이야기대로 정말 옛날이야기의 추억 속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입니다.. 전 모리스 칙스를 퍼스트팀에 뽑으셨을 줄 예상했더니.. 아이버슨이 PG의 자리를 가져갔군요.. ^^ㅋ 저도 할 그리어의 플레이 영상을 한번 보고 싶군요...*_* 다음 글과 어빙님(음?)의 역대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_+..
1989~90 시즌에 바클리는 최고에 한표;; 전 더그콜린스를 보니, 선수시절보다, 감독 시절이 기억나는 세대라서, ㅎㅎㅎ 불스시절 결정적인 순간에 별다른 전술없이, 조던에게 몰아주던 감독으로만 생각되네요...
"Give the ball to Michael, and everyone else get the **** out of the way".^^;;)
파이널 MVP님 정말 오랜만에 보는것같습니다! 정모때 이후로 거의 카페에 자주 못오신거같엤는데 잘 지내시나요 ^^;
닥터 J님의 덧글은 경기 종료후 공식 인터뷰장에서 콜린스가 했던 말이군요 ㅎㅎ 인터뷰장이 웃음바다가 됐었고, 조던도 옆에서 멋쩍게 웃었었던...^^;;
2008년 3월 15일에 매거진 칼럼 게시판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데릭 콜먼 보다는 돌프 셰이즈(Dolph Schayes)를 넣었어야 했습니다. 돌프 셰이즈는 필라델피아 식서스의 전신인 시러큐스 내셔널스의 수퍼스타(1948~1964)로서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번갈아 가며 보았고, 무엇보다도 1955년 내셔널스 팀을 우승시킨 주역이었죠. 올스타 선정 12회, All NBA 팀 선정 12회 (퍼스트팀 6회), 역대 최고 50인 선정, 명예의 전당 헌액 등, 화려한 커리어를 보냈던 빅맨이었습니다. 빅맨이면서도 포스트업보다는 페이스업을 통한 점퍼를 잘 구사했던 레전드였습니다. 51년 시즌에는 리바운드왕도 했었지요. 콜먼 대신에 셰이즈를 넣었으면 훨씬 더 균형잡힌 올타임 팀의 면모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오래된 문헌으로만 봤기에 셰이즈의 뛰어난 업적은 놀랍지만 직접 본 플레이는 아는 것이 제로네요. 심지어 NBA.com의 짤막한 하이라이트도 전무하다시피해서 아쉽습니다. 말씀해주신 수상경력을 보면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커리어를 쌓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