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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파라다이스 테라 (Paradise Terra) 원문보기 글쓴이: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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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 예수아 채널링
채널러 : Pamela Kribbe 2006
번 역 : 정인령 jamiejeong84
질병과 건강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따뜻한 가슴으로 환영하며 모두에게 나의 온전한 사랑을 보냅니다. 여러분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단지 우주적인 것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기도 합니다. 많은 여러분들이 내가 지구에 있을 때 만났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Jeshua이며, 우리들의 내면에 있는 근원으로부터 우리 모두에게 오고 있는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지구에 사람들 사이에서 살았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그 횃불을 들 차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꽃을 피우고 있는 씨앗들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탄생을 의미합니다. 한때 지구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나는 돌아오기로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리스도 에너지의 우주적인 힘은 이제 여러분들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 여정에 여러분들 옆에서 그 과정을 지지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시작할 시기에 Pamela 와 Gerrit 이 나에게 어떤 주제를 얘기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말했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그들과 함께 있고 싶을 뿐입니다…. 단지 여러분들에게 나의 에너지로 여러분들 자신의 위대함을 상기시켜 주고 싶을 뿐입니다. 나의 에너지가 여러분들에게 닿을 때, 그것의 유일한 목적은 여러분들이 자신의 진실의 불꽃, 명료함의 불꽃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에너지의 정수입니다. 나는 초기에 이 불꽃을 운반하는 사람이었고 이제는 여러분이 운반할 때입니다. 내면에서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불꽃을 가지고 그것을 세상에 보여줄 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둠과 빛의 많은 얼굴들이 드러나는 커다란 변화의 시기입니다. 이제 더 넓은 관점으로 어둠과 빛의 모든 현실화를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바라볼 수 있고, 판단 없이 사랑으로 현존하는 이들에게 마련된 시간입니다.
오늘은 질병과 건강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기본적으로 나의 관심은 여러분이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느끼고, 여러분과 내가 동등하고 내가 여러분과 동등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이며, 특정한 빛 에너지를 운반하는 이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삶을 거치면서 이 에너지를 지구와 연결시키고 지구에 정착시키기 위해 함께 일해 왔습니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일이고, 여러분들의 임무입니다. 지금은 위로 올려다보는 존재로써의 나를 보내주어야 할 시간입니다. 나는 따라야 할 마스터가 아니라 여러분의 형제이며 친구입니다. 나는 사랑과 진실의 에너지로 여러분을 둘러싸길 원합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입니다. 이제 자신을 위해 일어서고 자신의 불꽃을 빛나게 해야 할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질병과 건강의 문제는 조만간 모든 사람들의 삶에서 드러날 주제입니다. 먼저 질병이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질병들은 영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여러분들이 가진 여러 육체들 사이에서 구분을 지음으로써 설명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물리적 육체 말고도 당신들은 감정체(emotional body), 멘탈체(mental body), 그리고 영체(spiritual body)라 부를만한 것이 있습니다. 질병은 주로 감정체에서 시작되어, 어떤 장애가 물질적인 수준의 육체에서 자리 잡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흔히 멘탈체에서 나온 믿음들이 감정적 장애가 커지도록 하고, 질병의 현실화에 이르도록 합니다. 이는 아주 깊이 자리 잡은 믿음 혹은 사고의 습관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자신에 대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믿음들입니다.
이 세상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 말 그대로 당신의 감정 에너지 시스템에 장애를 만듭니다. 이 장애가 발생하는 지점들에서 감정적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지 못하고, 어떤 어두운 에너지가 오라에서 드러납니다. 그 에너지는 몸 안에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진행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이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질병이 자신을 드러내기 전까지, 감정적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일을 돌릴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병의 목적은 자신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노벨상을 받은 의약품들과 히말라야 계곡의 신비한 약초가 질병을 호전시키지 않습니다. 인간이 밝힌 현대의 과학과 의학은 인간의 질병에 대해 2% 수준만 이해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에너지가 잘 흐르지 않을 때는 당신의 감정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자신의 관심을 그 메시지에 돌리고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 장애는 풀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특정한 것을 해야 할 때마다 화를 내고 분노하게 된다면, 그 감정들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해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들은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확인해 주는 것이 아닌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무시하고 내키지 않는 것을 하도록 계속 강요한다면, 말 그대로 그 감정은 지하로 숨어버립니다. 그 감정들은 당신의 의식에서 옮겨가서 육체에서 악성 질병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억압된 감정은 당신이 듣길 원하는 에너지입니다. 자신을 육체를 통해 드러내며, 물리적 불만으로 현실화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물리적 불만 혹은 질병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감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물리적 증상은 다른 방식으로 당신에게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당신이 그 장애를 깨닫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물리적 증상 혹은 고통은 영혼의 언어입니다. 영혼은 자신의 모든 부분들 사이에서 완전한 대화를 갈망합니다. 영혼은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고, 자신의 모든 측면에서 지속적인 신선함이 유지 될 때 행복해 합니다. 장애물은 에너지가 자유롭게 흐르는 것을 막고 이는 영혼을 불행하게 합니다. 그래서 질병은 어디가 치료가 필요한 곳인지 보여주는 알림의 기능이 있습니다. 비록 질병은 모든 종류의 증상이나 고통으로 당신을 성가시게 하는 면에서 부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열쇠는 질병을 메시지 혹은 이정표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에 저항하는 대신 그 질병과 협력하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영혼은 당신과 대화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영혼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은 당신의 직관을 통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느낌의 어조로, 예감, 가슴의 부드러운 속삭임 등을 사용합니다. 만약 그 방법으로도 당신에게 닿을 수 없다면, 감정이 사용됩니다. 감정은 더 큰 소리의 언어입니다. 그 감정들은 당신이 내면을 봐야 한다는 것을, 무엇이 그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감정적으로 강하게 영향 받을 때마다, 왜 그런지와 그것이 당신에게 의미하는 것을 알아내야 합니다. 당신이 고요히 있으면서 주의 깊게 듣는다면 영혼은 당신에게 말해 줄 것입니다. 감정을 무시하거나 거부한다면, 영혼은 당신의 몸을 통해 말을 합니다. 몸은 단지 물질적인 것(음식이나 음료수 같은)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감정, 느낌과 생각에도 고도로 반응하는 지성체입니다. 몸은 교류의 수단으로, 단지 영혼이 거주하기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영혼이 물질세계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인식하는 것을 돕는 지성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영혼의 언어가 몸을 통해, 질병으로써 표현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질병이 드러나는 바로 그 순간에는 그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상 당신은 오랫동안 드러나는 감정들을 지속적으로 부정해왔기 때문에, 그 질병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명백하게 정의하지 못할 것입니다. 질병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과정입니다. 점진적으로 그 대화의 과정을 회복하는 것이 내면의 여정이며, 모험입니다. 이 여정을 시작하려면, 일단 그 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통 병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부정 혹은 저항 중 하나입니다. 그 병 때문에 겁을 먹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실패, 결함, 노화 궁극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육체적 결함 혹은 질병을 직면했을 때의 그 공포는, 당신이 병에 마음을 열고 넓은 관점으로 보는 것을 방해합니다. 병을 또 다른 빛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그것을 변화의 메신저로써, 당신이 잃어버린 소중한 것으로 돌아갈 수 있는 초대장으로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질병의 이정표적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 당신의 몸에서 나타나는 증상과 고통에 대해 “알았어(yes)” 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았다고 말함으로써, 육체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말하는 영혼의 언어를 기꺼이 들을 준비를 하는 것으로, 실제적으로 문제의 반은 해결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문제는 병 그 자체가 아니고 그것을 통해 드러내는 저변의 장애들입니다. 그 병은 당신이 말을 듣도록 하고 저변의 장애들을 보도록 배려합니다. 병에 관심을 가지고 당신의 마음과 영혼으로 수긍함으로써, 그 병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를 인식하기도 전에 장애의 어느 정도는 해결하게 됩니다. 단지 내면의 여정을 받아들인다는 당신의 의지와 당신의 인내, 결정만으로도 교류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병을 껴안고 수긍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병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하며 저항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그 기능 고장이 당신에게 전하고 있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당신은 자주 어떤 의미의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몸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어떤 임무를 내려놓고 차분하게 자신의 욕구에 더 많은 관심을 두면서 자신을 위해 좀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그 질병들이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큰 단서라는 것을 이해할 만큼, 영적인 수준에서 현재의 물리적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지점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이전에는 어둡던 곳에 환한 조명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친절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진정으로 자신의 육체적, 감정적 필요를 잘 보살필 수 있을까요? 질병은 항상 이러한 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야기한 감정들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과정의 한 부분입니다.
진정한 치유의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에 수긍해야 합니다: 고통, 불편, 걱정, 불안 과 분노. 그것들을 직접 들여다보고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 불편한 상황들은 치유를 위해 당신에게 다가 올 것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이 최대한 빨리 빠져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며, 삶에 갑자기 들어온 우연이 아닙니다. 몸의 언어를 무시한다면 질병에 계속 저항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정수를 통해, 병의 의미에 이른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둘러싼 너무 많은 분노와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불편 또한 두려움과 불쾌함의 느낌으로 자신의 질병을 직접 대면해야만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껴안고 열린 의식으로 조용히 물어 보세요.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니?
여러분의 사회에서 자신의 몸과 친밀해 진다는 것은 좀 모호합니다. 사랑과 존경을 받아 마땅한 존재인 당신의 몸과 대화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보여야 하며, 건강의 의미와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하는지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이미지를 권장하는 사회 속에 있습니다. 건강하고 오래 살아가는 삶이 어떻다는 것에 대한, 모든 종류의 규칙과 표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이상적인 그림들은 영혼의 여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영혼의 길은 전적으로 개인적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겪고 있는 병, 질환, 고통에 대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모든 일반적인, 흔한 인위적인 기준들과 규칙을 뒤에 두고, 자신과 친밀한 방식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외부적인 기준들을 내려놓고 내면의 깊은 진실을 찾아야 합니다(고사리는 위장병을 다스리고, 양파가 머리를 맑게 하며 또 어떤 장소가 사람을 건강하게 한다는 말은 한마디도 진실이 아닙니다. 질병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배우기 위해 스스로 초대한 것이고, 그것을 깨달으면 한강물을 마셔도 병은 낫습니다. 약물이란 처음부터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신에게 커다란 모험이 될 수 있는데, 병에 걸렸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아주 빠르게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언을 얻고 안심하기 위해 외부의 권위를 찾게 됩니다. 의사일수도 대안 치료의 전문가일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리 차이는 없습니다. 그 핵심은 두려움으로, 자신의 책임을 포기하고 부분적으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넘기려는 경향입니다. 물론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것에 잘못된 것은 없으며, 보통 아주 합리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항상 내면의 앎을 살펴보고, 그것을 가슴으로 중요시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조언들이 당신과 공명함을 느끼는지 아닌지를 느껴보세요. 오직 당신만이 자신의 삶의 창조주이고 자신의 몸의 마스터입니다. 오직 당신만이 자신의 몸을 위해 무엇이 최고인지를 압니다. 가장 진정한 의미로, 당신은 자신의 몸의 창조주입니다.
병은 부분적으로 의식이 인식하지 못하는 갇힌 감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질병과 증상이 의미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항상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 특정한 질병을 통해 영혼이 당신에게 말하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주 어려워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내면으로 들어가서 질병 자체로 현실화해서 드러난 에너지를, 좀 더 인식하고 당신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몸에 대해 친밀함을 다시 얻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것 또한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지속적인 불평을 다루어야 할 때, 그것들을 다시 한 번 더 검토해보세요. 잠깐 동안 긴장을 풀고 병이 드러난 몸의 그 부분을 중립적인 인식으로 둘러보세요. 대화를 하기 위해 그 고통 혹은 질병에게 살아있는 존재의 형태, 동물, 아이 혹은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도록 요청하세요. 아님 가이드로 나타나도록 요청해도 되며, 어떠한 형태이든 당신의 상상력을 사용하세요! 영혼의 깊은 흔들림을 발견하는데 훌륭한 도구는 상상력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몸이 이미지 혹은 느낌으로 답하는 것을 알아챘을 때, 당신은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되찾은 친밀함에 대해 행복함을 느끼며, 몸은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자신의 교류적 역할을 회복한 것입니다! 이게 돌파구가 됩니다. 당신이 내면에서 자신의 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을 위해 이 일을 할 수 있는 이는 당신뿐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좀 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이 자신감은 그 병이 당신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을 더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내면의 자아로부터 나오는 해답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아줍니다. 그 해답은 외부세계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과의 친밀함은 모든 환경에서 아주 값지지만,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고통에 있을 때 더 그러합니다.
당신이 몸이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자신에게 열심히 치유에 대한 확신이나 심상화를 반복함으로써 병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의 몸과 대화하는 것에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이는 여전히 투쟁과 저항의 형태입니다. 핵심은 당신이 몸의 아픈 부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상황이 변화되고 감정적인 장애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질병을 어떤 식으로든 싸우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친구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치유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병은 당신을 무섭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이 이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치유를 위한 유일한 방법입니다. 병은 당신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어합니다.
Chronic and terminal illness 만성적인 불치병
병의 목적은 당신이 자신에 대해 더 깊이 더 잘 이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고 내면의 치유과정을 따라간다면, 대체적으로 육체적인 회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항상 이 방식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질병은 저변의 감정적인 장애의 뿌리까지 들어가더라도, 사라지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만성적인 질병의 경우입니다. 만성적인 질병의 경우, 반복해서 발병하는 지속적인 육체적 문제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당신이 내면과 접촉을 어느 정도 잃게 되는 취약한 시기에, 그 증상은 때로 더 심한 정도로 발생하곤 합니다. 이는 매우 의기소침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 질병을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성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몹시 힘든 임무를 맡은 이들입니다. 영혼의 수준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질병의 맥락에서 야기되는 두려움을 직면하고, 삶에서 그것을 가장 이상적으로 행하도록 동의를 했습니다. 이 모험을 택한 것은 대단한 용기입니다. 때로 영혼은 가장 집중된 방식으로 특정한 이슈를 만들어내기 위해 만성적인 질병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질병으로 인해 당신은 매번 구체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병에 항상 수반되는 감정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감정을 다루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영혼을 위한 많은 결실을 품고 있습니다.
보통 이러한 삶들은 다른 이들이 항상 알아채지 못하는, 매우 깊이 있는 내면적인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 의학으로 얻을 수 있는 희망이나 지속적인 노력에 대한 결과는 없습니다. 비록 매번 같은 신체적 증상으로 재발하는 것이 명백해 보이지만, 사실상 병은 대체적으로 당신이 내면적인 수준에서 원을 그리며 위로 움직이며 성장하는 것을 도우면서, 나선형으로 움직이며 진행됩니다. 영적인 수준에서, 당신은 실패한 것이 아니며 감정을 다루는데 있어 과거, 심지어 이전 생까지 돌아보더라도 훨씬 더 깊은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유전적이거나 선천적인 신체적 결함에도 적용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은 때로는 카르마를 언급하곤 하지만, 이 개념에 주의하고 싶은데, 여러분이 카르마를 범죄와 처벌과 관련지으려는 경향 때문입니다. 이는 그렇게 작동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영혼은 최대한으로 이해하고 자유로워지려는 진심 어린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깊은 바람입니다. 이러한 열정적인 바람으로, 영혼은 고통, 질병과 육체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 목적을 달성하려 합니다. 명백히 당신의 빚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한 내면의 깊은 의도이고, 때로는 자신의 몸에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 자유로워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되곤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특별히 어떤 것이 건강하고 아름답고 성공적인가에 대해, 비인간적인 이상적 이미지가 추앙되는 사회에서 당신의 존재에 대해 우리가 가장 커다란 존경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이상적인 이미지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그 의미와 기쁨을 경험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어떤 이가 그 질병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가 있습니다. 몸은 점진적으로 병에 굴복하고 있으며, 물리적 차원에서 치유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순간에 영혼은 몸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할까요? 그 병에 저항하는 동안에는, 당신은 자신의 영혼과의 접촉을 할 수 없고,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때라는 내면적 앎을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떠나야 할 때라는 것을 미리 알기도 하지만, 공포와 슬픔 때문에 지속적으로 싸우게 됩니다. 다른 치료를 원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기를 기다리게 됩니다(질병은 영혼의 선물 혹은 알람의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무시했을 때 우리는 죽음을 체험하고 다음 인생을 준비한다.).
이는 매우 이해할만한 일이며, 그러한 태도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은 가혹한 방식으로 자신을 상처 주고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한다면 죽음은 적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은 끝없는 투쟁에서 당신을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죽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따른다면, 죽음이 일어나는 실질적인 과정 이전에 거쳐야 할 여러 단계를 지나가게 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들과 주위환경, 주위의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감각 등 모든 세속적인 일들을 점진적으로 놓아주는 단계들입니다. 이는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삶을 부여잡으려는 전투적인 태도로, 이 과정이 빛을 잃게 만드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흔히 그때쯤이면 육체는 이미 너무 약해져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상태입니다. 죽음은 당신에게 봉사하기 위해 있는 해방자입니다. 죽음은 적이 아닙니다. 죽음은 당신에게 새 삶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이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이 죽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것에 대해 부드럽고 신중하게 말을 걸어보세요. 숨이 다하고 있는 이에게 안심을 줄 것입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일은 그들 옆에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들 옆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 외에 당신이 알아야 하고 해야 할 일은 없습니다.
임종 간호는 사회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언젠가는 여러분 모두는 자신의 가족이나 그룹의 친구들 사이에서 이 일을 마주치게 됩니다. 그냥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막바지에 이른 여정을 느껴보세요. 영혼이 육체를 떠나 다른 영역,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위대하고 강력한 순간을 느껴보세요. 불치병을 결국에는 모든 것을 다 잃도록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으로 여기지 마세요. 이는 전투가 아닙니다. 대부분 더 큰 아픔과 고통에서 당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죽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당신은 확실히 패자가 아닙니다. 단지 당신의 여정을 다른 방식으로 지속해 나갈 뿐입니다.
어쩌면 이 번 삶에서 당신이 평생을 끌고 오거나, 극복해야 하지만 완성하지 못한 이슈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당신뿐만 아니라 뒤에 남겨진 이들에게도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안내하는 더 깊은 지혜가, 새롭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에 평화롭게 떠나기를 요청합니다. 언젠가는 서로 다시 모여서 삶을 축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질병과 관련하여 나의 가장 큰 간청은 자신의 병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병을 사랑과 자각으로 둘러싸고, 그것이 당신을 깊은 이해로 이끌도록 해보세요. 병에 자신을 맡기고 자신과 더 깊은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순응은 병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쓰라린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식으로 친구처럼 협동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나의 사랑으로 껴안고 오늘 나의 존재, 그리스도 에너지를 느껴보길 요청합니다. 아픈 상태에서 또한 건강한 상태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다가가는 사랑을 느껴보세요. 여러분 주위에는 너무나도 많은 사랑이 있으며, 여러분이 판단을 내려놓자마자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대접을 받고 못 받는지에 대해, 옳고 그른 일을 하는 가에 대해, 여전히 해야 하고 성취해야 할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은 판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 내려놓으세요. 사랑은 여러분 모두를 위해 바로 여기 있습니다.
Pamela Kribbe 2006
www.jeshua.net
http://www.jeshua.net/healing/healing9.htm
(불과 2주 전 술을 못마시는 천사가 당산동에 와 자신도 몇 장 보지 않았다는 이 책의 존재를 알려주고 갔습니다. 10년 전 저는 신나이를 한 장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신나이 책을 선물받았는데 왠지 이 책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분야들과 소주제인 '질병과 건강'에 관한 기본 입장이 제가 지난여름에 쓴 에너지 힐러의 이해와 완전히 일치했습니다. 특히 병의 원인에 대한 진단이 같아 놀랐습니다.
현재 우리 지구에서 일하는 에너지 힐러들은 이 책과 달리 온갖 규범들로 치료를 숨막히게 하고 있고, 또 하지 말아야 할 치료가 있고, 치료의 방식도 에너지도 다르며 지리산 계곡의 약초 효능과 환자의 나쁜 에너지에 대해 이원성이 가득한 이야기를 1년 내내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예수님은 제가 괴로워하는 그런 이원성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동안 모두 괴로운 힐러들을 만나 그것이 우리가 가진 관념일 뿐이라는 것을 설명하다 시간을 다 보내야 했습니다. 아쉽게도 현실에서 저와 같은 입장을 가진 힐러를 한 명도 만난 적이 없지만 이제 이렇게 멋진 안내서를 예수가 선물해주었으니 제가 쓴 자료를 내미는 것보다 이 자료를 주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당신께 한없이 감사하는 모습이 보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