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관조와 시적 나눔》
김순례 시집 -내일비를 예약한다- 감상비평
문병란(시인 전 조선대 교수)
1. 만남의 장
2008년 10월 25일, 대구의 ‘한국시민문학협회’ 초청으로 낙동강문학(통권 제5호) 「한글학회 100주년 기념 특별대담」에 의한 특별초청 강연차 대구에 갔을 때 부회장이었던 그의 시집을 기증받았다. 사람과 시집 동시에 소개받고 만난 것이다. 그리고 2주일 후 대구의 '한국시민문학협회' 성군경 회장 일행이 광주 ‘서은문학연구소’를 예방했을 때 두 번째 만나 반나절을 같이 지내면서 그의 시평을 낭독하고 간담회 형식으로 우리 회원들과 친교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서평 청탁이 있어 승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밀린 원고의 순서가 있어 통독을 미루다가 반의무감을 가지고 전체를 감상하고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을 체크하여 읽고, 읽고 난 느낌이나 시적 특징을 ?! ㉪鑿綢? 중심으로 개괄하였다. 기증과 함께 서평 청탁이 이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냥 서가에 끼어두지 않고 상당한 의무감에 의한 배려였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런 만남이 있어 그 인연에 의한 정신적 교류에 의해 상호 작품교류와 지도는 시민문학의 진로와 역할을 암시하고 있어 특별한 의미와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이 모든 상호 만남과 나눔의 계기를 만들어준 성군경 회장의 배려는 앞으로 대구와 광주, 나아가 각 지역을 연결하는 '한국시민문학협회'의 역할과 기능을 암시하고 있어 서언격의 만남의 장을 따로이 설정, 독자 제현의 관심을 먼저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김인강, 이병한 회원의 시 창작 지도, 성군경 회장의 시집 「영천댐 옆 삼귀리 정류장」서평에 이어 두 번째 갖는 작업임도 밝혀 둔다. 아울러 남동강(대구), 엄경덕(부산), 신작평 20편 창작지도도 아울러 병행하고 있음도 부기한다. 앞으로도 대구의 '한국시민문학협회'와 광주 '서은문학연구소'는 이와 같은 문학적 교류를 긴밀히 하기 위하여 작품교류와 함께 인적교류, 만남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여러 가지 형태의 시적 교류를 모색하고 있으며 본인이 '한국?! 첫菅?학협회'의 명예고문 추대에 응하였고 성군경 회장과도 서은문학연구소 와 긴밀한 유대를 생각하고 있음도 이 만남과 교류에 포함됨을 밝힌다. 이 정도의 교류만도 이미 대단한 진척이며 김순례 시집 서평이 계기가 되어 한국시민문학협회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을 확신해마지 않는다. 서평 분량이 많이 줄었으나 그 의의가 더욱 중요함을 먼저 밝히고 싶어서이다.
2. 삶의 관조와 시적 나눔
전체를 읽고 난 느낌과 특징을 먼저 쓰는 것이 순서상 타당할 것 같다. 시를 쓴다는 것, 그것은 한 시인의 전 생명을 담보로 투자한 생명의식의 발로로서 매우 의미심장한 창작행위에 해당한다. 이 심각성 속에 낙서형식의 단상이나 스케치 소묘도 매우 중요한 삶의 연소이자 생명의 불꽃임은 두 말 할 나위 없다. 고호가 그림을 그릴 때 파지를 낸 것, 그리다 만 어느 날의 소묘, 실패한 해바라기의 구상도 훗날의 대작이나 성공작 못지않게 그 생명의 한 조각이요, 짧은 생애의 핏자국으로 남았음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이것은 김소월의 발표된 「진달래꽃」만 아니라, 미발표나 미완된 어느 습작시도 그 실패나 자살사건과 함께 시인의 생애에 중요한 몫을 차지함을 의미한다.!
① 작자 김순례 본인의 말···그는 시집 서두 ‘시인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비우므로 앎을 채우듯 하나하나 일어나는 마음을 챙기어,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고 또 살아갈 날을 점검하는 것이다.」짧은 그의 인사말에서 찾아낸 알맹이다. 결코 허세나 너스레로 얹은 글은 아닌 것 같다. 대단한 결심과 다부진 각오가 담겨 있다. 비움으로 앎을 채운다는 것, 살아온 날을 뒤돌아보고 살아갈 날을 점검한다는 것, 전 생명을 투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② 해설자의 말···발문 형식의 해설을 쓰신 강영환 시인은 「색칠한 창유리와 희망의 형식」이란 표제로 행한 해설문에서 독일의 시성 괴테의 말을 인용하여 「시는 색칠한 창유리」란 싯구로 말을 꺼내고 있다. 유리에 ?! 瀏좋? 그림은 밖에서 보면 어둡고 잘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 보면 빛으로 가득하고 형상이 뚜렷한 세계가 펼쳐진다는 그 시 내용을 서두로 얹고 있다. 모든 시는 일단 쉽지 않다. 특별히 난해성을 띤 시 말고도 정도를 밟아 정성들여 쓴 참된 시는 전 생명의 응집과 함축에서 이루어진 생명체 그 자체이므로 일단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되고 이것이 시의 숙명이다.
시가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대중성이 덜하고 잘 팔리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어려움, 난해성에 있지 않은가 한다. 아무리 쉽게 쓴다고 해도 태생학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보들레르의 시 한 구절은 스탕달의 소설 한 권에 맞먹는다.’라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대시의 특징이 바로 이 난해성에 있음 또한 강조할 수밖에 없다. 이 난해성의 극복 여하가 시창작의 성패를 좌우한다. 극복이란, 그 난해성의 조건을 시인 자신이 이겨내어 독자와의 소통과 감상을 위해 극복되고 해소되어야만 그 생명력을 갖는다는 뜻이다. 그 난해성을 극복하고 그 시인의 시를 이해하고 맛을 알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그의 시적 비밀을 탐색할 수 있는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영환 시! 인의 이러한 해설은 독자에게 긴장감을 일으키면서 올바른 자세를 갖게 한다. 이렇게 하여 성찰하고 감상한 김순례 시인의 시적 매력이나 재미를 몇 가지로 요약하여 인도해 주었다.
① 허망하게 높은 꿈을 꾸는 것보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 행복감을 느끼는 소시민적 삶을 담아낼 줄 안다.
② 김순례 시인이 간직하고 있는 전원 풍경은 애환과 멋과 맛을 통해 현실 안착을 갈구한다. 현실 초월이나 피안의 삶을 추구하기보다 현재적 삶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아간다.···중략···삶의 곳곳에 머무르는 서정을 포착하여 형상화시켜냄으로써 평안한 작품으로 읽혀지게 한다.
③ 김순례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과 ‘감국’ 특정 소재인 ‘산방’은 시인의 귀의처이다. 일상에서 전원으로 그래서 그 삶의 귀의처를 발견하고 있다.
④ 불교적 무와 공사상에 빠지기도 하나 결국 그의 발은 굳건하게 지상에 서 있음을 발견하고 개인적인 해탈보다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어 『내일비를 예약한다』에 그의 현실인식을 강조, 절망 속에서 희망을 준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창작의 주체인 시인 자신과 그의 시적 해설자의 핵심을 요약해 보았다. 이제 그의 시적 접근은 가능해졌으며 그의 시적 세계 내면으로 들어갈 통로를 찾기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그가 전통적인 온건한 정서적 특징인 멋이나 맛, 자연귀의, 불교적 취향 등을 고려하여 삶을 관조적으로 접근하여 현실 안착을 갈구함은 평화와 사랑을 추구하며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며, 이른바 민중들로서 현실적 삶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를 은유로 보더라도 골고루 그 은혜를 젖어들게 하는 공동체 의식의 상징이다. 1부 2부에서 많은 곡절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일상을 환기시키는 사랑과 미움, 만남과 헤어짐, 일차적 정서에 머무르면서! 울고 웃고 투정하는 숱한 곡절을 거쳐 3부에서 「내일비를 예약한다」로 삶의 공동체를 현실 인식하고, 4부에서 「이제는 놓아버리렵니다」,「저녁답의 가을」같은 건강한 삶을 찾는 데서 시적 나눔을 인식하고 난해성을 거뜬히 극복하는 것으로 첫 시집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나눔’ 나는 감히 이것을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삼는다. 시인의 ‘나눔’은 무엇인가. 돈, 지식, 재산 그런 것은 줄 수도 나눌 수도 없다. 그는 시로써 나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안과 용기, 지혜, 의지, 사랑 등을 배분해야 한다. 시인이 담당한 몫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민중의 삶과 언어를 찾아야 하며, 그럼으로써 현대시의 큰 병폐인 난해성을 극복 정도가 아니라 과감하게 물리쳐야 한다. 시인의 오만함과 사치스런 이기심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는 그 교만함을 버릴 때 시인의 ‘나눔’은 이루어질 것이다. 위안과 용기와 사랑을 주어야 할 시가 비뚤어진 난해한 용어로 가득 차 있다면 특정한 괴벽쟁이들의 놀이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그의 시집에서 3분의 일 가량 골랐던 많은 작품 속에서 필자는 「진정한 용서」,「비오는 바다」,「당신을 만난 후」,「누가 묻거든」,「내일비를 예약한다」,「눈 오는 날엔」,「이제는 놓아버리렵니다」,「저녁답의 가을」8편이 마지막까지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남아 있음을 알았다.
「비오는 바다」 시의 장점이나 아름다움, 울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당신을 만난 후」진정한 사랑은 살을 섞는 아픔이며 이불자락의 얼룩을 아는 데 있다. 「눈 오는 날엔」1930년대 김광균의 시 「설야」의 운치를 잇고 있다. 「누가 묻거든」 김순례의 시적 순수성, 민중성, 그 뛰어난 나눔의 정신이나 생산성이 가득 담긴 시는 「누가 묻거든」이라고 대답할까.
① 여름 내내/황홀한 낭만을 그리던/북부 모래사장엔/가을장마 타고 온/해암(海岩)의 눈물자국만 가득하고//지난 겨울/술잔 부딪치던 횟집 앞엔/끼룩끼룩 갈매기울음만 주저앉아/누구의 눈물인지도 모를 빗방울/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처얼썩 처얼썩/ 바다로 외로움을 탄다고···.
② 마음을 누르고 있던/돌멩이 같은 번뇌를 벗고 싶었기에/아프게 한 널 놓을 수 있었고/너를 놓으므로/자유를 얻을 수 있기에//너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나를 버리는 것이다/그것이 나의 용서법이다//진정한 용서는 /널 위함이 아닌/날 위함인 것이다/더 이상 미안해하지 말라
더 이상 인용하지 않지만 ‘난해성’을 극복한 그의 시에서 나눔을 위한 시민문학의 미래에 기대를 건다. 난해성이 현대시의 특징이 되는 양 생각하거나 명작의 조건이나 신춘문예 당선작 으뜸이 난해성이라 생각한다면 「오감도(烏瞰圖)」의 시인 이상의 망령이 가가대소할 것이다. 김순례님 제2시집 더욱더 패기 있게 민중적 삶의 나눔 가득 담기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