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과 세바의 난 (삼하 20:1~26)
왕의 입궁시부터 유다 지파와 다른 선민들 간에 갈등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세바의 난”이란 시험이 터진 것입니다. ① 1~3절은 “세바의 선동과 후궁 처리”요, ② 4~5절은 “아마사에게 명한 일”이며, ③ 6~13절은 “아비새가 아마사를 죽임”이고, ④ 14~22절은 “세바의 죽음”이며, ⑤ 23~26절은 “다윗의 조직 개편”입니다.
1. 세바의 선동과 후궁 처리(1~3절)
1) 1절에서 “마침 거기에(길갈을 경유할 때, 19:40) 난류(worthness character, 정치깡패같은 사람) 하나가 있었으니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인데 저가 나팔을 불며 말하기를 우리는 다윗과 함께할 분의(分誼)가 없다” 하였으니, 이 원문은 컬렉으로 Share portion, 몫, 할당, 분배, 유산 등의 뜻입니다. 공동번역은 “물려받을 유산이 없다” 하였고, 현대인 성경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말이 나오게 된 동기는 왕을 유다 지파가 독점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19:43). 따라서 “이새의 아들과 함께 할 업이 없다 이스라엘아 각 장막으로 돌아가라(다윗을 섬기지 말라는 뜻)” 한즉, 2절에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좇기를 그치고 올라가(예루살렘 쪽으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좇으므로 유다 사람들만 왕에게 합하여 예루살렘까지 갔다”고 하였습니다. 세바의 난동으로 모든 지파의 단결이 일시 와해된 것입니다.
2) 3절에서 다윗은 예루살렘 본궁에 도착하여 머물러 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명(15:16)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준 후 동침하지 않으므로 저희가 갇힌 상태에서 죽는 날까지 생과부(남편없는 여인)처럼 지냈으니 이는 압살롬에게 희롱을 당한 때문이었습니다(삼하 12:11, 16:22). 이들도 다윗의 범죄와 관련하여 희생당한 피해자라 할 것입니다.
2. 아마사에게 명한 일(4~5절)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마하나임에서 돌아올 때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용납하여 그를 군대장관으로까지 기용할 뜻을 말한 사실이 있었는데(19:13), 본문에서는 아마사에게 직접 사명을 맡겼습니다. 그것은 “3일내로 유다 사람을 소집해 오고 너도 여기 있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뜻은 세바의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병력을 모아와서 공을 세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3일 안에 오지 않은 것입니다. 지체할 형편이 있었겠지요. 왕명도 중하지만 전시와 같은 시국인지라 지체할 수 없는 시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일을 또 아비새에게 맡기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요압과 아비새를 의식한 문제도 있었을 것입니다.
3. 아비새가 아마사를 죽임(6~13절)
1) 6절에서 다윗은 아비새에게 명하기를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신복들을 거느리고 가서 세바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기 전에 해결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7절에서 아비새는 “형 요압의 군사들과 그렛, 블렛 사람들(삼하 8:18, 15:18의 해석을 참고하십시오)과 모든 용사들을 데리고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을 나와 기브온(삼하 2:12, 3:30, 수 10:12~14, 예루살렘에서 서북쪽 11㎞쯤) 큰 바위 곁에 왔을 때, 아마사가 그들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마사는 아비새의 군사들이 11㎞쯤 갈 만큼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2) 그때에 8절에서 “요압은 군복을 입고 칼집에 꽂힌 칼을 허리에 맸으나 저가 행할 때(아마사에게로 접근할 때) 칼이 빠져 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실수였을까요? 아니면 계획적이었을까요? 주석을 보면 “저가 행할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다(나중에 그렇게 된 뜻)”를 “저가 나갔을 때에 칼은 떨어져 나왔더라(미리 칼을 칼집에서 없앤 뜻)” 하므로 상대방을 긴장시키지 않기 위하여 미리 무장해제를 나타낸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9절에서 “아마사에게 접근하여 형은 평안하뇨(이종형제간임) 하면서 오른 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는 체 하면서 (아마사는 요압의 다른 손에 칼이 있음을 주의하지 못하였고) 칼로 그의 배를 찔러 죽인 것”입니다. 요압이 그를 죽인 것은 왕의 관심의 대상인 그를 시기하여 죽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마사가 세바의 난을 평정하고 군대장관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없다는 뜻이지요(19:13). 롬 1:29에서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을 함께 묶어 악의 요소임을 말씀하셨습니다.
3) 이렇게 아마사를 죽인 후에 요압과 아비새가 세바를 쫓을 때, 11절에서 요압의 소년 중 하나가 아마사(시체) 곁에 서서 (아마사가 모집해 온 유다 사람들에게) “요압을 좋아하고 다윗을 위하는 자는 요압을 따르라” 하였고, 12절에서 “한 소년이 아마사의 시체를 큰 길에서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른 모든 백성들이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그 위에 옷을 덮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의 “백성들이 아마사 시체 앞에 멈추었다”는 뜻은 아마사의 신복들이 그의 죽음에 대하여 반항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 줄 압니다. 그리하여 13절에서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세바를 쫓아갔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아마사의 노력은 요압의 세력에 합류한 셈이고 자신은 불행한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4. 세바의 죽음(14~2절)
1) 14절에서 “요압(잔글자)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행하여 아벨(갈릴리 바다에서 서북쪽 30㎞쯤)과 벧마아가(단의 서쪽 6㎞쯤, 단은 갈릴리 바다 북쪽 45㎞쯤에 위치함)와 베림(알 수 없음)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모든 군사들)도 다 모여 저를 따랐다”고 하였는데, 원문에는 초두에 “요압”이란 용어가 없기 때문에 추격당한 세바의 행적으로 볼 수도 있어서 14절의 번역은 다른 번역서에 비할 때 차이를 이룹니다. 개역은 14절을 “요압이 세바를 추격하는 내용으로 번역하였고 지역을 알 수 없는 베림에 이른즉 그 지역 사람들이 요압을 따랐다” 하였는데, 영문번역이나 공동번역은 “세바가 자기몸을 피하여 가면서 비그리 사람들(베림을 Bichri, 또는 Bikri로 표기하여 지명으로 나타낸 뜻, 그러나 비그리는 세바의 아비인즉 인명도 되고 지명도 될 수 있음)도 그와 함께 뭉쳤다” 하였으니, 여기에서 “베림(Berites)”이 왜 “비그리”가 되었는지가 의문입니다.
2) 15절은 요압이 세바의 은신한 장소가 벧마아가 아벨(14절에서는 이 두 지역이 인접된 성읍으로 표기됨)임을 알고 그곳을 포위하였으나 성은 높고 성 주위에 해자(물호수 또는 물고랑)가 있어서 공격하기 어렵자 “해자언덕과 성벽 상이에 토성(둔덕)을 쌓아 진격하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6~17절에서 이때에 성안의 한 지혜로운 여인이 요압을 상대로 대화를 갖게 되었습니다. 여인이 말한 내용은 18절에서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냈다” 하였으니, 이 뜻은 옛부터 아벨성 안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많아서 무슨 문제든지 잘 해결되게 하여 그런 속담까지 생긴 것인즉 “말로 해결하자”는 뜻이었습니다. 또 그 여인은 19절에서 “나는(그 성읍을 대표한 뜻) 나라의 화평과 충성을 도모하는 자인데 무슨 이유로 어미(지도층)같은 성을 멸하여 하나님의 기업을 삼키려 하는가” 하고 물은즉,
3) 이때에 요압이 대답하기를 20~21절에서 “결코 멸하려는 것이 아님을 3차나 강조한 후 에브라임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왕을 대적하였기 때문에 저만 내어주면 떠나갈 것이라” 한즉 여인이 “세바의 머리를 던질 것이라” 하고, 22절에서 “백성들로 하여금 그 일을 실천케 하여 그대로 시행하므로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을 흩어지게 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로 나갔다”는 내용입니다. 이리하여 세바의 난도 역시 요압과 아비새가 진압을 한 것입니다.
5. 다윗의 조직 개편(23~26절)
1차 정부 조직은 삼하 8:16~18에서 이방족들을 정복한 후에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부에서 일어난 압살롬과 세바의 난을 평정하면서 다시 개편한 것입니다.
1) 23절에서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장관이 되고 여호야다(아론의 집 족장, 대상 12:17)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장관이 되었으며(그렛, 블렛은 삼상 30:14, 삼하 8:18 참고, 다윗이 블레셋 시글락에 있을 때 그 주위의 부족이 귀순한 것으로 추정됨),
2) 24절에서 “아도니람(아도람, 왕상 4:6)은 감역과(役事를 감독하는 자, 감찰직)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었으며(삼하 8:16과 같음),
3) 25~26절에서 “스와(사워사, 대상 18:16)는 서기관이 되고(문서관장을 뜻함),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며(삼하 8:17과 같음), 야일(Jail, 작은 동리일 듯) 사람 이라는 대신(정승같은 것)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국권이 잘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왕을 통하여 다스리시는 나라가 이런 방법과 절차로 통치되는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