輓族人鎭九(만족인진구)
홍병주: 謂(위):炳疇(병주) 字(자):範夏(범하)
號(호):南川(남천)
한학자, 일평생 후학을 가르치고, 시를 씀
點點黃梅雨蕭蕭送子淚未了人間債竟從夢裡竪
(점점황매우소소송자누미료인간채경종몽리수)
五十年多事凔茫餘尺素賢知又少一低首嘆門戶
(오십년다사창망여척소현지우소일저수탄문호)
점점이 누런 매화 비에 젖어 쓸쓸한데,
자식을 보내는 사람들의 눈물 마르지 않네.
꿈엔들 좇아가 보고 싶은 마음
오십년 많은 일들이 넓고 아득하여
조금이라도 앞날을 헤아리기 어렵네
고개 숙여 생각하니 집집마다 탄식소리
들리지 않는 곳이 없네.
輓族人鎭九(만족인진구): 가족의 한 사람인 진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이다.
이 분은 일평생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틈틈이 글을 써신 분이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이 시는 6.25사변을 배경으로 쓴 시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대해 쓴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시집의 제목이 苦海餘錄(고해여록)이다.
괴롭고 힘든 일들이 바다처럼 많다는 뜻이겠다.
시집 서에 보면 이 분은 50세를 세상과 노닐다가 등천 하셨다.
이 시에 오십년은 당신의 나이를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분의 시집을 경자년(1960)에 자손들과 지인들이 뜻을 모아 발간하였다. 6.25사변으로 모든 문집과 작품들이 소실되고, 망실되어.
없어진 것을 기억하고,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는 사방에 산이 높고 험하여
6.25사변 당시 빨치산들이 활동 하였다
그 일대가 험준한 산이므로, 늘 골치 아팠다.
아버님은 군에 가시고, 어머님과 가족들은 걸어서
청도 밀양까지 피난 가셨다.
집에는 할아버지 홀로 집을 지켰었다고 한다.
꼭두새벽 비행기가 날면서 동네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한다.
동네가 불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그 때 집에서 보관하던
두 궤짝이 넘는 족보며, 조상님의 문집이 재가 되었다고 한다.
땅속에 묻어 두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 하셨다.
사변 전에 문경 예천 달래 마을에서 나귀를 타고 놀러 오셔서
조상님 문집을 빌러가곤 했다고 한다.
시간이 있으면 가보라고 한다.
아버님은 족보를 다시 만들어 친척에게 나누어 주셨지만,
어디까지나 아버님 기억도 한계가 있어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벌초할 때 묘가 너무 많아 오래된 것은 하지 않는다.
힘 든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산으로 돌려보낸다.
누구의 묘인지도 모르고, 막연히 벌초만 한다.
아버님 살아 계실 때 묻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