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매미의 죽음
그는 고운 날개를 접고 죽어 있었다. 내 집 현관까지 날아와서 날개를 가늘게 떨고 있던 녀석인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죽어 있었다.
나는 그의 등에 핀을 꽂고 날개를 활짝 펴서 투명한 플라스틱 명함 상자 속에 고정시켜 놓았다. 요즘은 나프탈린 같은 방부제를 쓰지 않아도 표본 보존이 잘 된다. 죽은 자들을 해체시킬 바이러스들도 살기 어려운 세상인가보다.
하늘을 날 때처럼 겉 날개를 활짝 들어 올리니 속 날개가 보였다. 주홍과 흑백 삼등분으로 채색된 속 날개다. 3색 깃발로 만든 속 팬티 같았다. 끼가 있는 옷차림이다.
나는 그 전날 우산의 빗방울을 털며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서다 하마터면 이 녀석을 밟아 버릴 뻔했다.
벌레 한 마리쯤 밟아 죽인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나마도 과실치사인데. 그렇지만 살아 있던 놈이 내 발밑에서 으지직하며 평면체가 되고 내장이 삐어져 나왔으면 뒷맛이 개운치 않았을 것이다.
현관 문턱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던 그를 보고 나는 나방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깃털 같은 더듬이가 안 보였다. 안쪽을 보니 배도 그렇고 아주 작은 빨대를 달고 있는 것이 꼭 매미 같았다.
나는 가늘게 떨고 있는 그의 날개 끝을 잡고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는데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가는 손 발을 앙증맞게 꼼지락거렸다. 찬 비를 맞고 추워서 떨고 있었을까?
매미라면 1500종이 넘는다는데 모두 알에서 태어나 잠시 기어 다니다가 캄캄한 땅속에서 길게는 17년 유폐생활을 하다 나온다. 몬테 크리스트 백작의 땅굴 감옥살이보다 3년이 더 길다. 그리고 성충이 된 매미는 한껏 푸른 하늘을 날며 노래하고 사랑의 정염을 태우다가 한 달도 채 안 되는 삶을 마감한다.
나는 그를 책상 위에 놓고 젖은 날개를 말리며 몸을 녹이도록 배려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죽고 말았다.
나는 이 예쁜 녀석을 나비 표본들 옆에 두면서 신원조사에 들어갔다. 그 결과 그가 최근에 TV를 타고 유명해진 중국산 주홍날개꽃매미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며칠간 외출도 안 하고 TV도 안 보고 있다가 이 꽃매미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외래종 곤충들의 습격, 이들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며칠 전에 모 TV사가 이런 방송을 했단다.
“중공군들의 습격,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라고 했던 1950년 겨울의 방송과 비슷하다.
국립산림원이 꽃매미에 관한 “산림병해충 주의보”를 발령하자 이런 방송이 나갔다.
그런데 주의보라면 경계경보쯤 되는데 방송사가 이를 공습경보 수준으로 부풀려서 선동한 것이다.
방송이 나가자 즉시 실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꽃매미를 보는 즉시 때려 죽이고 밟아 죽이기 시작했다. 어느 지역에선 꽃매미가 좋아하는 가죽나무를 모두 잘라 없애 버렸다. 집을 헐고 굶겨 죽이는 작전이다. 국립의료원은 다른 몇 기관과 연대해서 의료봉사단을 조직했다. 꽃매미에게 피습된 사람들을 긴급 구출하기 위한 야전병원이 생긴 것이다.
온 국민의 들끓는 적개심은 인터넷에도 반영되었다.
‘나는 보는 족족 밟아 죽일 거구먼‘
‘몸에 닿기만 해도 피부병 걸린다는데 이런 징그러운 벌레들을 그냥 두고 볼 것이여!?’
‘ 놈들은 독개구리 같아서 보기만 해도 끔찍혀. 사그리 없애뿔자고.’
‘ 한국 매미들아, 너희도 중국 가서 복수 좀 해 다오’
방송이 “외래종 곤충들의 습격”이라 하며 그 ‘외래종’이 중국종이라고 토를 달았기 때문에 이렇게 한중 전쟁으로까지 확대된 것 같다.
그런데 국립산림원이 꽃매미를 해충이라 했지만 의심이 생겨서 확인해 보니 ‘어떤 매미도 해충은 아니며 그런 학계의 보고는 들은 바가 없다’는 것이 곤충학자들의 대답이다. 그리고 빨대로 수액만 빨아 먹는 매미 때문에 산림이 황폐해진 예도 없고, 꽃매미를 만졌기 때문에 피부병이 생겼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로 내 집에서 죽은 꽃매미를 보면 빨대가 내가 본 어떤 주사 바늘보다도 가늘기 때문에 전 세계 꽃매미가 다 모여도 그걸로 수액을 빨아서 산림을 황폐화 시키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병해충 주의보발령에 대해서 어느 기자가 산림원에 질문하니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주홍날개꽃매미’라는 예쁜 이름은 왜 생겼나? 그리고 혐오감 여부의 미적감각은 해충과 익충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니까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지 죽여야 할 이유가 뭘까?
이런 조사 결과 나는 내 집 현관에서 발견된 꽃매미가 그렇게 떨고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찬비 맞아서 춥기도 했겠지만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공포감 때문에 더 떨고 있었다고. 그리고 참으로 흉악한 나라에 잘 못 왔다고 후회도 막심했을 것이라고.
꽃매미가 해충이 되려면 독이 있거나 물어 뜯을 이빨이 있거나 가해자가 될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냥 예쁘고 어린 꼬마일 뿐이다. 그런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중앙정보부가 남파 간첩 조작했듯이 TV에 소개되면서 도망쳐 다니다가 내 집 앞에서 기력이 다해 쓰러져 있었던 셈이다.
나는 여기서 또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1500여종의 매미중 유일하게 꽃매미만 그렇게 당했어야 할 원인이 또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겨우 찾아 낸 것은 그가 남과 다르다는 것이다. 범죄사실이 아니라 그냥 남과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 이질성이 곧 그를 죽여 마땅한 공공의 적으로 날조해 버린 원인이라는 판단에 도달했다.
첫째, 그는 모든 매미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이름도 주홍날개꽃매미다. 다른 어떤 곤충이나 새나 포유류도 이렇게까지 예쁜 이름을 갖지 모한 것은 그만큼 이 매미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둘째, 그는 너무 높이 날고 멀리 날고 너무 큰 자유를 얻으려 했다.
그는 세상 밖에 나오자 마자 찬란한 태양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 위에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바람과 구름을 타고 손오공처럼 남의 나라 한국으로 날아 왔다. 남들은 감히 함부로 넘지 못하는 국경까지 넘나들며 최대의 자유를 누리려 한 것이다.
셋째, 그는 매미중에서 가장 힘이 없는 놈이며 모든 곤충 중에서 출신성분이 지극히 천하다. 느리고 게으르다고 천대받는 자의 대명사가 굼벵이이며 꽃매미는 바로 굼벵이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힘없는 약자이며 미천한 신분인데도 오히려 가장 예쁘고 화려한 모시 옷을 입고 날개를 달고 꽃매미라고 인기를 얻고, 새들보다도 높이 날고 멀리 날고 가장 큰 자유를 누리려 했다.
이것이 꽃매미가 남과 다른 이질성이다. 그리고 이것 밖에는 그가 다른 많은 매미들중에서 유일하게 억울한 죄명을 쓰고 맞아 죽을 자로 뽑혔을 이유가 없다.
힘 없는 자는 굴종의 미덕을 배워야 한다. 신분이 미천한 자는 그에 적합한 옷을 입고 조용히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곷매미는 오히려 가장 예쁘고 화려한 모시 옷을 입고, 날개를 달고, 아름다움을 뽐내며 꽃매미라는 이름을 얻었고, 감히 새들보다도 높이 날고 멀리 날고 가장 큰 자유를 누리려 시도했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죽어 줘야 할 충분조건이 성립된다. 만하고 잔혹한 권력자들에 대해서 그렇다.그것은 그들에 대한 도전이며 반역의 민중선동이 되기 때문에 마녀사냥처럼 찍힌 것이다.
그런데 그까짓 꼬마 한 마리에게 이런 의미를 부여함은 지나친 과장일까?
그러나 그는 정말 멋지다.
그는 굼벵이로 태어났지만 그렇게 높이 그렇게 멀리 날고 그렇게 큰 자유를 위해 도전하며 자기의 운명을 극복했으니 그는 영웅이다. 그리고 이 세상은 가끔 이렇게 멋진 자가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