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 나가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뭐냐는 질문을 이따금 받곤 한다. 조경칼럼을 쓰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궁금한 모양이다. 모이는 사람들이 100명이라면 백인백색(百人百色)이듯 나무도 종류가 워낙 많은지라 천수천색(千樹千色)이다. 큰키나무가 있는가 하면 작은키나무도 있으며 바늘잎나무가 있지만 넓은 잎나무도 많다.
1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는 늘푸른나무도 있고 가을에 잎을 떨군 뒤 새봄에 잎이 나는 갈잎나무도 있다. 나무들마다 서로 다른 천 가지 매력을 뽐내고 있다는 얘기다.
황금비 내린 모감주나무
성미 급한 다른 꽃들이 한창 맵시 자랑에 여념이 없는 봄날, 모감주나무는 꽃 피우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저 잎사귀만 시나브로 넓히며 꽃대의 기본 틀만 잡으면서 여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유월 하순께야 피기 시작한 꽃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칠월이 되면 꽃대를 타고 나무를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하늘을 향해 곧추선 원추 꽃차례에 촘촘히 피어난 화려한 황금빛 꽃은 짙푸른 녹음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독보적인 존재다. 한동안 피어오르는 꽃은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의 아우라가 느껴지는데, 그런 모감주나무가 나의 원픽이다.
꽃
우리가 관리하는 아파트 단지에도 요즘 모감주나무꽃이 물오른 듯 한창이다. 귀하기만 하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엔 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어 다행이지 싶다. 모감주나무(염주나무, Golden Rain Tree)는 무환자나뭇과에 속하는 나무인데, 영명에서 보듯 서양사람들의 눈엔 ‘황금비 내리는 나무’쯤으로 비쳤나 보다. 아마도 꽃이 절정을 지나 하나둘씩 떨어지는 광경을 본 모양인데 나무 아래 바닥에는 온통 금가루가 수북하다. 한창일 때였다면 두말없이 ‘Golden Flower’라고 불렀을 텐데···.
햇열매
모감주나무 열매
꽃이 지고 난 자리엔 삼각뿔을 거꾸로 매단 것 같기도, 세모꼴의 꽈리 같기도, 청사초롱 같기도 한 독특한 모양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처음엔 초록색이었다가 점차 짙은 황색, 그리고 갈색으로 변하면서 시월이면 익는다. 잘 여문 열매는 습자지 같은 얇은 껍질이 셋으로 갈라지는데 안에는 콩알만 한 까만 씨앗이 세 개씩 들어 있다. 그런 씨앗은 만질수록 반질거리니 염주 만들기엔 안성맞춤이다.
열매와 씨앗
모감주나무는 낙엽 활엽 소교목으로 한여름에 피는 황금빛 꽃과 독특한 모양의 열매, 루비 빛 단풍 덕분에 세계적인 조경수로 인기가 높다. 겨우내 달렸던 열매는 꽃이 피는 여름까지도 그대로 있어 사시사철 색다른 모습이다. 대구와 포항, 거제도, 완도, 안면도 등 바닷가나 개울가에 천연 군락지가 형성돼 있으며 서울에서는 하늘공원을 오르는 길가와 메타세쿼이아길 옆으로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몇 해 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 심은 모감주나무 모습이 자못 궁금하다. 동토(凍土)에서도 화려한 평화의 날갯짓을 잘하고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싶다.
새순
※ 관리 포인트
-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가 좋으며 추위와 공해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 뿌리가 얕고 넓게 퍼져 자라므로 건물과 너무 가깝게 심지 않는 게 좋다.
- 씨앗은 따뜻한 물에 하루 정도 담가 딱딱한 껍질이 부드러워지도록 한 다음 파종한다.
- 낮게 달린 가지 일부를 땅에 묻어 뿌리가 내리면 부모 나무에서 분리하거나 여름에 반경목을 잘라 발근 호르몬에 담근 다음 심으면 번식할 수 있다.
- 비교적 손길이 덜 가는 나무지만 잎 반점이나 흰가루병에 유의한다.
출처 : [조길익의 조경더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