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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 원문보기 글쓴이: 장창환
이요한 목사, '나의 신앙길'
이요한 목사님과의 인터뷰는 5월 2일에 있었던 형진님 월드카프회장 취임식 이후에 참부모님 생애전시관 2층에서 약 1시간 20분 동안 이루어졌다. 목사님께서는 전라도 순회를 하시다 5월 1일 제54주년 협회창립기념일 행사에 참석하시기 위해 하루 전 성남시 자택으로 오셨으며, 인터뷰 이후 다시 순회 일정에 들어가신다고 하셨다.
인터뷰를 위해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직접 기획국을 방문해 주셨는데, 너무도 반갑고 다정스럽게 대해주셨다. 긴 시간 동안 너무도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말씀을 많이 해주신 목사님과 함께 동행해 주신 사모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편집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두고자 한다. 말씀하신 원본 그대로 편집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구어체로 주로 말씀해주셔서 여기서는 문어체로 편집하였으며, 인터뷰 원본은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주)
약 력
출생 및 학력
1916년 9월 4일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읍 출생
1933년 만주 숭문중학 졸업
1942년 일본 동경 동아신학교 수료
주요경력
1935년~40년 중국 하북성 한국인 장로회 전도사
1946년~49년 황해도 영일감리교회 전도사
1952년 12월 1일 부산 범냇골에서 입교(전도자: 옥세현 할머니)
1953년 8월 대구 개척전도, 전도사
1957년 6월 부산교회 전도사
1958년 1월 1일 경상지구장
1961년 9월 10일 경북지구장 겸 제4지구 기대장
1965년 2월 1일 협회본부 전국순회사
1965년 11월 8일 전국순회사실장
1968년 1월 1일 협회 가정부장
1968년 4월 1일 서울특별지구장 겸 본부특별지역장
1969년 9월 4일 서울 성북지구장
1970년 2월 16일 중앙수련소장
1974년 3월 1일 협회 전도부장
1974년 5월 1일 전국순회사실장
1974년 7월 6일 참부모님 안수로 목사로 봉직
1977년 5월 10일~1988년 8월 30일 통일신학교장
1978년 4월 1일~1981년 11월 4일 본부특별교역장
1988년 8월 선문대학교 교목
1994년 2월 4일 일본선교사
1996년 6월 국가메시아(스웨덴)
2001년 8월 1일 경기남부 분당연합회장
주요 수상경력
1968년 2월 7년노정 대상
1996년 1월 목회 선교부문 33년 공로상
2004년 5월 창립 50주년기념 섭리노정 부문상
주요 저서
한(恨)의 하나님 (성화사, 1981년)
복귀의 한 (성화사, 1984년)
본성으로 산다 (원리연구회 출판부, 1989) 등
신앙과 생활(일본어판) 등
가족관계
1960년 36가정 축복(대상 : 원심희 元心姬), 슬하에 4남1녀를 두심
이요한 목사, '나의 신앙길'
▷최근 전라도를 순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순회는 어떠셨습니까?
▶주로 중심가정을 중심으로 교역 연합단위로 하기도 하고 몇몇 지역에서는 개체단위로도 했는데, 오전에는 30여명 오후에는 60여명 모여서 집회를 했습니다. 내용은 주로 “천지개벽(天地開闢)이후 선천시대(先天時代)가 지나가고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들의 타락성(墮落性)으로는 이제는 용납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왔다. 본연의 인간으로서의 참사랑의 생활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 타락성이 없는 개인과 가정이 되어야 할 시대이므로 ‘타락성 없이 생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어제(5월1일) 협회에서 거행된 협회창립기념일과 금일(5월2일) 형진님 월드CARP회장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서울에 오셨다가 참석 후 다시 지방순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순회가 힘드시지는 않으셨는지요? 93세이신데,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아침집회와 저녁집회를 하니깐 건강에는 별로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건강관리는 없습니다.
▷형진님께서 가정연합 세계회장ㆍ한국회장 취임하시고 금일(5월2일) 월드CARP회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섭리의 대전환기라고 볼 수 있는데, 목사님께서는 이 시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이제 재래식의 교회생활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참사랑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가정이라는 4대 심정권, 가정생활에서 어떻게 우리는 내 진심(眞心)을 투입하면서 살 수 있느냐, 이런 생활이 신앙생활이라기보다는 참사랑을 실천하는 생활, 그러니까 ‘내 마음에 우러나는 생활, 모든 일을 사랑 때문에 사는 생활, 그것이 중심이다’는 생활자세로 사랑을 원인으로 해서 사는 생활, 사랑 때문에 사는 생활, 마음에 의욕이 있고,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사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협회창립 기념행사 격려사에서 국진님께서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서 식구들을 섬기는 봉사적 리더십을 강조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4대 심정권으로 말하면, 가정에서 어머니는 자식에게 사랑의 종이며 아버지는 가정을 위해서 사랑 때문에 있는 아버지이므로,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정의 주체자가 아닙니다. 가정의 주체는 가정이며 사랑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가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가정 때문에 있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사랑 때문에 있는 목회자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아벨이 아니며 식구들이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은 ‘나는 이 교회의 지도자이다’는 의식보다는, 마치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효심(孝心)을 갖게 해주고 자녀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가정이 중심이 됨으로써 가정의 주체자 아닌 대단히 겸손한 것처럼,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처럼 교회의 교인들에게 교회와 목회자에게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켜줘야 할 목회자이므로 대단히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가정에 대해서 겸손하며, 어머니는 가정에 있어서 자녀들의 머슴과 같습니다. 즉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정에 대해 겸손한 분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에서 제일 겸손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버님의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4대 심정권 구형운동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없었던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쓰던 말은 자식은 부모에게 효(孝)하라는 것인데, ‘4대 심정권 구형운동의 사랑’에서는 부모도 자식에게 효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효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형(球形) 속에서는 상하가 없습니다.
따라서 ‘효’라야 4대 심정권이 형성되며 그 ‘효’는 ‘구형운동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다’라로 할 수 있습니다. 아버님의 구형운동의 사랑이라는 말씀은 상하가 없고 좌우가 없는, 완전히 입체적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가 그러한 인격자, 교인들을 가장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에 오고 싶어하는 마음을 우러나게 해주는 구형운동의 사랑을 실현하게 되면 목회자는 존경받으며, 교인들의 그리움의 주체자가 됩니다. 참아버님이 그런 분입니다. 한 번 만나면 또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참아버님은 구형의 사랑을 하시는 분 아니에요? 직선적인 사랑을 하는 아버님이 아닙니다. 그것을 모델로 이제 교회에 옮길 때이며, 지금 참자녀님들이 그 구형운동의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다. 참자녀님들은 ‘지도자다’는 의식보다는 하늘을 사모하는 마음, 교인을 귀중이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루 아침에 될 수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참아버님의 사랑의 인격을 우리들이 닮아야 한다는 말로 말씀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경기남부 교구에서 “부부도 효(孝)하라”라는 말씀을 주셔서 교구 식구들에게 많은 은혜와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 역시 지금 말씀하신 ‘구형운동의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남자는 하나님의 남성성상(男性性相)입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을 섬기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남편 역시 여자는 하나님의 여성성상(女性性相) 곧 어머니의 입장이므로 단순한 여자가 아닌 하나님의 여성성상으로 대해야 합니다.
아버님의 메시지(―‘평화훈경’을 말함. 이하 동일―)에는 점령이라고 해서 ‘부부는 왜 결혼하느냐?’고 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점령’이란 부부끼리 서로 하늘같이 여기면 하나님께서 임재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부부간에 서로 차별해서는 안 되며, 부부간에도 구형운동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화합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효를 돌릴 때 구형운동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는데, 식구들이 구체적으로 실생활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타락성이 있다 보니 가까워지면 반말을 합니다. 부부간에 반말하고, 형제간에 반말하고, 이건 구형운동이 아닙니다. 직선적입니다. 직선의 말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대해야 된다”고 메시지에 나왔습니다.
예컨대 형은 동생을 존귀하게, 동생은 형을 존귀하게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서로 횡적인 인물이 아닌 하늘을 중심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평면적인 ‘내 부부’, ‘내 아들’이 아닙니다.
‘내’라는 게 붙으면 벌써 타락성입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내’가 1%도 없습니다.
아버님은 당신이 1%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절대로 한 심정.
그러니까 식구들이 오면 하나님이 보낸 분, 역사적인 조상의 한(恨)의 대상의 실체로 오신 분, 아버님께서는 이렇게 역사적으로 많은 희생자들의 터전에서 오늘을 이렇게 찾아 나오신 분으로, 말씀을 안 하시지만, 말을 함부로 안하십니다.
그게 어렵죠. ‘현재의 ‘나’는 가치가 없지만 이 종적 역사적인 가치를 가지고 온 분이다‘, 아버님께서 이렇게 보십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식구 하나하나에게 함부로 말씀하지 않으시며,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말씀을 안 하십니다. 그저 그분의 마음에 우러나오는 것을 중심하고 귀중히 여깁니다. 우리는 마음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 마음에 맞지 않는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입교를 하셨으며, 어떻게 아버님을 만나게 되셨습니까?
▶28살 때 일본에서 고학하다가 군수공장도 가고 그랬는데, 일본 교수들은 나에게 “한국이 독립된다. 일본은 동아전쟁에 패전한다. 나라가 독립될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해라”라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다음 “주님이 한국에 오신다”라고 하는 분도 만났습니다. 그 때마다 성경의 예언에 대해서 ‘묵시록의 어떤 섭리를 하실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묵시록은 말세(末世)에 주님 오실 때의 스케줄이라고, 프로그램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주님이 오신다면 묵시록 몇 장일까?’ 늘 그렇게 생각했었으며, 해방되고 그 다음 해부터는 영통한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서 “당신, 주님 오신다는 계시를 받고도 왜 교회 전도사 노릇을 하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어떻게 오시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34살 때 해방이 되었는데, 어떤 한 분이 “지금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알고도 교회를 맡은 분이 있는데 가서 증거 해주라”라고 해서 몇 달 동안 날 찾느라고, 이름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니까, 이집 저집 자꾸 찾아가서 당신이 “오는데 대해서는 전혀 믿질 않고 있으니 몇 날 몇 시, 오후 3시에 북쪽과 남쪽으로 태양을 중심하고 무지개가 나타날 테니까, 그걸 보고 확신하라”라고 그림을 그려주고 갔습니다.
왔다 간지 3일 만에 오후 3시에 동산에 올라가서 보니 태양이 서쪽으로 갔는데, 북쪽과 남쪽에 무지개가 섰습니다. 근대 둥그렇게 (손동작으로 무지개 모양으로 손짓하시면서) 서야하는데 위에게 끊어져서 갈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옥세현 어머니가 서울 올라왔는데, 저도 황해도 연백에서 교회 일 보다 우연히 서울 올라왔다가 만났습니다. 옥세현 할머니가 삼각산 기도원에 평양에서 아버님의 은혜를 받은 분들이 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가 저하고 만났던 거죠.
그 때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옥세현 할머니는 원리는 몰랐지만 영적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해 ‘선생님께서는 참 훌륭한 분이시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옥세현 할머니가 왔다 가신 다음에 몽시로 아버님이 죄수들과 잡힌 열 가운데 섰던 것을 봤습니다. 그땐 누군지 몰랐습니다.
이후에 아버님을 만나고 나서 그 때가 흥남감옥에 계실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산에 피난 내려가서 그 분(아버님)을 찾아야겠는데 피난민이 너무 많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피난민이 300만여 명 되었습니다. 서울, 평양의 목사들이 와있어 거리에서 “당신 평양에서 왔어?”, “평양에서 왔어”, “평양에 이단이라고 소문난 청년이 남한에, 부산에 왔는지 모르십니까?” 그러니까 “당신 왜 그딴 소리하고 다니느냐?”, “그 사람 진짜 범일동에 왔다는데, 지금 그딴 데 갔다 하면 안 된다.
당신 똑똑하게 생긴 사람이. 당신 뭘 하던 사람이냐?”, “일본 신학교 나왔다”, “신학을 하면 신학이나 하지. 그런데 다니면 위험하다”고 주의를 시켜줬습니다. 하지만 직접 범일동 찾아가서 발이 머무는 데로 문을 여니 아버님이 계셨고 그렇게 해서 아버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동기는 성서 때문이었는데, 성서 가운데 제가 많이 문제시 했던 타락론(墮落論)이 풀리고 그 다음에 모세 40일 섭리와 예수님의 40일 섭리, 40수를 중심한 복귀섭리의 내용이 프로그램에 딱 맞았습니다. 성서가 그렇게 풀리면서 그 다음에는 부산에서 많은 목사들 찾아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아버님을 처음 뵈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처음 뵜을 때는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서에 대해서 너무 잘 아셨기 때문에 이분이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따질 필요가 없었고, 성서를 중심하고 모실뿐이다라고 그렇게만 알았죠. 구체적으로 어떤 분인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성경상의 메시아가 아닌 실제 메시아를 뵈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목사들이나 부목사, 성직자, 교회 박영록 박사,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고려신학교 총장 같은 분들 대하다가 아버님을 대하니 정면으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두렵고 어려운 분이었습니다. 마음으로는 가까웠지만 어려웠습니다. 함부로 만만히 이야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섭리의 현장에서 활동하시면 섭리사(攝理史)를 이끌어오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섭리가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버님께서 남한에 오실 때까지 신령한 단체가 있었는데, 그 단체들을 많이 방문했었습니다. 여호와 부인 교주 중심한 시온교의 박동기, 용문산에서 전국 기독교인들을 연합해서 기도하고 수 만 명의 집회를 한 나운몽 장로, 가정 집회를 통해 내가 전도한 박태선 장로 등 이 사람들은 모든 주님 맞이할 책임자들로써 많은 영적 역사가 있었습니다.
신령한 단체마다 가면 신령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내가 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운몽 장로는 내가 가서 부활론(復活論)을 하니까 “그런 건 내 믿을 수 없다”고 거절했고, 박태선 장로도 내가 부산 가 있는 동안 용두산 가서 불을 받아 전도감이 생긴 뒤부터 “당신을 따를 수 없다”고 반대 했습니다.
그런데 신령한 단체마다 가면 신령한 사람들은 내가 오는 걸 계시로 다 받았습니다. “조반 먹지 말고 오시는 분께 밥상을 드린 후에 밥을 먹으라!”는 등의 명령을 계시로 받은 분들이 있었는데, 내가 가면 “오늘 아침 밥을 굶고 기다렸더니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라고 말해서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 부산에서는 제가 아는 곳을 아버님을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그곳에 가서 말씀을 하시게 되면, 말씀을 듣는 사람에게 “오늘 오신 손님을 대접해라! 말씀을 들어라! 너는 말하지 말라!”는 등의 계시가 영계에서 내렸습니다.
하지만 말씀 뒤에, 주(主) 맞기 위해 잘 사는 분들만 교인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넉넉해 집이 참 좋았음에도 아버님을 모시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범일동의 집을 막 지을 때였는데, 아버님과 저는 인사를 나눈 뒤 다시 범일동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순회에서 특별히 강조하신 점은?
그저 성주식이나 하고 축복해준다고 해서 부러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의 목적은 남편을 맞이하는 것이었으며, 또 남편을 맞이하는 목적은 하나님과 관계를 절대적으로 맺으려고 한 것이 부부입니다.
이 부부를 통해 창조목적이 이루어지고 신앙목적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식구들 가운데는 아직도 세상과 같이 부부 간에 갈등을 하는 부부가 있습니다. 갈등은 교차입니다.
따라서 교차가 교체가 되어 혈통전환, 다시 말해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 접붙이는 섭리가 이루어져 부부가 서로 존경할 때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게 됩니다. 그것이 한(恨)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4대 심정권이 아닌 4대 원수권에서 지옥생활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귀섭리는 아버님께서 4대 심정권을 접붙이러 오셨으며 이것이 신앙의 목적, 다시 말해 4대 심정권이 창조목적인 동시에 우리의 목적지라는 걸 가르쳐 주니깐 애기 어머니들은 깜짝 놀랬습니다.
왜냐하면 예배당에 다니는 것을 신앙으로 오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가정들은 남편을 교회 데리고 온다는 관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을 섬겨 남편이 부인에게 감동받아 오고 싶으면 오는 것이지, 부인들이 남편을 수련회 보냈으면 좋겠다는 등의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집안이 원수가 됩니다.
남자들도 양심이 있기 때문에 부인이 모시게 되면 자기를 모시는 부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번 순회에서도 남편을 전도하려고만 하지 말구 내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남편을 더 사랑해서 남편을 높이고, 남편을 높이면 그 다음에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ㆍ감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는 것이므로 ‘남편을 교회 데리고 가겠다’ 그런 선입관념 가지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권면했습니다.
일본 식구들은 ‘어떻게 하면 남편을 수련을 보낼까’, ‘어떻게 하면 주일에 교회에 데리고 올까’, ‘어떻게 하면 새벽 경배식에 참여시킬까’, 그런 것에만 집중해 있지 내 사랑이 모자란다 그렇게 생각하는 부인들이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런 지도를 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순회하는 골자(骨子)입니다.
▷섭리의 최전선에 오늘도 신앙활동을 하고 계신데, 신앙생활의 지침은 무엇인가요?
▶메시지에 나와 있듯 마음 몸에 대한 갈등을 해소하는데 전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발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보고 어떻게 건강을 어떻게 유지하냐고 묻지만, 사실 저는 건강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신경질 안 부리고, 걱정 안하고, 잠 잘자고, 잠을 깨면 깨고, 마음으로 우러나는 생활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신하는 것은 마음에 근심ㆍ걱정 안하면 병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자: 그것을 보여주시고 계시잖습니까. 지금도 너무도 정정하시니까.>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통일교회와 교인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요?]
▶현재 전 세계 인류는 가정 때문에 파탄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 쓴 목적은 가정을 꽃피우고 영형체(靈形體), 생명체(生命體), 생령체(生靈體)를 이루어 육신을 벗구 천국 가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영형체,생명체,생령체를 잘 길러야 합니다.
아버님께서는 어떤 분입니까? 메시지에서 아버님께서는 “나는 하나님을 잘 아는 챔피언이다”, “나는 사탄이를 잘 아는 챔피언이다”, “나는 예수님을 잘 아는 챔피언이다”, “나는 사람의 혈통, 저 사람이 조상 때 어떤 혈통의 후손인가를 잘 아는 챔피언이다”, “역사의 한을 잘 아는 챔피언이다”, “각 종교계에 경전을 잘 아는 챔피언이다”, “가정의 가치를 잘 아는 챔피언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그러한 챔피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恨)을 풀어야 할 ‘나’이며, 우리 가정에 맺힌 갈등을 해결해야할 ‘나’이며, 사람과 사람 관계에 존재하는 벽을 무너뜨려야 할 ‘나’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영안(靈眼)을 떠야 합니다.
메시지에 타락의 피를 지닌 청맹과니(―【편집자 주】①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나 앞을 보지 못하는 눈, 또는 그런 사람, ②사리에 밝지 못하여 눈을 뜨고도 사물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가 아닌,다시 말해 육감(肉感)이 아닌 영감(靈感)으로 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머님들은 남자들보다 영감이 밝습니다.
예지ㆍ예감합니다. 우리 남자들도 진리의 실체로서 육감으로 살지 말고 영감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번에 순회하는데 80넘은 노인이 제가 순회 올 것을 꿈으로 꿨다고 합니다. 또 나주에 순회 갔는데, 사모님께 몽시로 낙지를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낙지를 사다가 회를 만들고 볶음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실 제가 낙지를 좋아합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순회하는데 낙지 고기를 다 먹여주시는 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웃으심) 제가 낙지 좋아하는 것을 영계에서 알고 그 사모에게 보여주었으며, 그 사모는 몽시로 낙지를 보여주니깐 낙지요리를 했습니다. 이거 다 영감 아닙니까? 오시는 분께 무엇을 대접할까 잠 못자고 고민하고 있는데 낙지를 보여줘서 낙지요리를 했다고 합니다.
부인들이 먼저 예지ㆍ예감합니다. 영적 5감(感)을 가지라는 메시지의 말씀처럼 예지ㆍ예감에 민감한 영적 5감을 갖는 것이 근래 제 신앙의 핵심입니다.
저도 나이 먹었지만 영감이 좀 좋았으면 좋겠다, 그게 지금 제 신앙의 포인트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벗기 전에 생령체를 완성하라고 메시지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혼자 집을 방문하게 되면 그 집에 나를 맞이하라는 계시가 내려왔는데, 어떻게 아버님께서 영계를 주관하셨는지…… 저는 영계를 전혀 모르지만 아버님께서 영계를 훤히 아셨습니다. 차마 알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저 혼자 있으면 그런 영적인 역사 없지만 지방에 가거나 하면 식구들이 꿈을 꾼다는 등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러한 역사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이야기를 잘 안 하셨으니까요. 저보고 ‘너 어디 가봐라. 어디 가봐라. 내가 재림주로서 나를 기다리는 그런 단체들 다 못 찾아가니 대신 찾아가보라’ 그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주님을 위해 기다린 단체에 아버님께서 찾아다니시면서 인사를 해야 되셨습니다. 그러면 제가 대신 전달했는데, 딱 한 곳 여호와 부인에게만은 아버님께서 직접 가셨습니다.
그 외에 세례요한과 같은 단체는 제가 몇 곳 갔었습니다. 그런 것을 통해 아버님이 영계에 환하신 분이시고 영계의 주관을 받는 분이 아니라 영계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날까지 신앙생활을 해도 영적인 세계를 몰랐습니다. 전연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때문에 영적인 세계를 알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주관을 하시니깐...
그런데 아버님께서는 환히 아시면서도 별로 이야기를 안 하세요. 하긴 해야 그 땐 못 알아들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