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11명 백혈병 환자 발생, 5명 사망 ● 노후된 현장라인, 작업환경 위험 고스란히 노출 가능성 ● 삼성측, “백혈병 일반적인 질병일 뿐 회사와 관련 없다” ● 유해 화학물질 문제, 세계 반도체와 전자업계 공통요소
세계 최강의 반도체 사업의 중심에 우뚝 서있는 삼성반도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며 우리나라의 수출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한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국내 경제부문에 있어 매우 중대한 사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요즘 이곳에서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이 백혈병 판정을 받고 사망하거나 투병중인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2의 ‘한국타이어사망사건’을 방불케 하는 이번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논란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특히 노동계층과 시민단체들은 “온갖 과다한 화학물질에 노출 때문에 노동자들이 죽어나가고 있다”며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가했다.
이에 1월 31일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공단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부랴부랴 나섰다. 2월 한 달 동안 삼성반도체를 포함한 국내 13개 반도체업체를 대상으로 ‘근로자 건강실태 조사’를 벌인다고 밝힌 것. 반도체 사업을 대상으로 대규모 실태조사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한편 삼성측은 일련의 현상이 발생한데 대해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입장이다. 삼성반도체 홍보부의 한 관계자는 “공장내부는 청청지역이다. 절대 백혈병이 발생할 수 없는 조건에 있다”라며 “개인이 건강관리를 잘못해서 생겨난 문제”라고 못 박았다. 그렇다면 과연 삼성측의 말대로 개인의 잘못으로 발생된 질병일까. 아니면 삼성의 열악한 근로환경이 주요한 것일까. 과연 무엇이 문제의 원인이었는지 정확한 속내를 파헤치기 위해 직접 나서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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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은 화학물질에 빈번히 노출된 작업환경”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삼성반도체백혈병진상규명대책위(대책위)는 지난해 11월부터 삼성반도체에 근무한 노동자들이 백혈병 피해를 입었다는 제보를 받은 뒤 이 문제를 본격 파고들었다. 그 결과 지난 1월 27일까지 11명의 노동자들이 직간접으로 피해사실을 밝혔다고 전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1997년 6월을 기준으로 접수된 백혈병 환자는 삼성 기흥공장에서 7명, 천안을 비롯한 타 지역 공장에서 4명이다. 이들 중 5명은 현재 사망했고 나머지는 투병중이거나 완치 후에 현장업무에 복귀해 있다.
이 내용은 삼성반도체 측에서도 일정부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대책위 측에서는 “피해사실을 알려온 제보자의 내용만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일 뿐이지 공식 집계는 아니다”며 공식제보를 받으면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대책위 이종란 법무팀장은 “비공개로 접수된 내용중에는 기흥공장이나 천안공장에서 또 다른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후문을 들었다. 실제로 살펴보니 백혈병이 발병한 환자들이 어느 정도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며 귀띔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매우 심각한 위기상황임에 틀림없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죽을병에 걸린다는 것을 누가 생각이나 할까. 그러나 무조건 이들의 말을 긍정하기에는 이르다. 특히 삼성반도체측에서는 “현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어 의견 차이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관련 노동자와 유족들을 취재한 결과 대체로 화학물질에 노출된 현장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백혈병으로 2년간 투병하다 지난해 3월 사망한 고(故) 황유미(사망당시 23세)씨의 아버지 황상기(53)씨는 “딸이 투병중일 때 동료직원이 문병을 찾아왔었는데 딸이 근무했던 라인은 가장 후진라인으로 통한다고 하더라. 후진라인이란 시설이 가장 노후됐다는 말이다. 결국 딸이 화학물질에 정면으로 노출됐었다는 말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털어놓은 A씨는 “13년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과 화성공장에서 근무했었는데 근무 중 수없이 많은 화학 가스가 누출된다. 그러나 감지기 개발이 시원치 않아서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고 밝힌 뒤 “감지기가 동작되기 전까지 작업자들은 호흡기로 전부 흡입한다. 어느 날에는 불산(HF)이 누출됐는데 그때도 대응이 늦었다. 불산은 매우 위험한 성분이다”라며 작업현장의 위험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대책위의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백혈병에 걸렸다는 제보자들 중 일부는 현장이 노후된 공정과 낡은 배관으로 염산 등의 화학물질이 터지면 직접 수작업으로 닦아냈다는 말까지 했다. 위험 상황이 발생해도 대피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전했다.
이에 실제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과 통화연결을 시도했지만 이들은 “특별이 할 말이 없다”며 뭔가 함구하는 듯한 반응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황상기씨는 “죽은사람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절대 대답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다고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치명적인 화학물질 지속 노출?”
아직 역학조사 단계라서 단정 짓긴 힘들지만 황유미씨 사망이 화학물질 노출과 개연성이 있는 것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황 씨는 기흥공장 3라인에 근무했는데 주된 일은 반도체의 원판인 웨이퍼를 화학용액이 담긴 용기 안에 넣었다 빼는 작업이었다. 이를 하루 8시간 정도 반복했다. 그런데 삼성반도체 홍보직원에 따르면 화학용액의 종류로는 불산(HF), 이온화수(DI), 과산화수소(H2O2), 황산암모늄(NH4) 등이 담겨있다고 했다. 이중 불산의 경우 인체에 매우 유해한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사람 피부에 닿게 되면 피부 속에 침투해 뼈와 반응하여 뼈를 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화학성분이다. 작업현장에서는 점차 줄여나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산업보건 전문가는 “(열거된 용액들이)특별히 누출되는 것과 엎질러지는 사고를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했던 이들의 말에 의하면 화학용액이 엎질러지거나 누출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고 밝힌바 있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똑같은 일을 했던 황 씨의 동료 이숙영씨 또한 2006년 8월경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공교롭게 같은 라인에서 근무했던 2명의 노동자가 똑같이 급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사망한 놀라운 일이 발생했기에 의구심은 더욱 가중돼 있다.
이 두 명을 진료했던 아주대병원 박준성 주치의는 백혈병에 걸린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항암제, 방사능, 벤젠이나 유기용매에 노출되있을 가능성이 있다”며 “환자가 수년간 다양한 화학물질과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짙으며 백혈병 발병의 인과관계의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진단소견을 밝혔다.
이어 장안석 ‘건강한 노동세상’ 사무처장은 “같은 라인에서 2명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은 충분히 직업병요소로 파악 된다”며 “산재법상 회사와 근로복지공단이 발암성 화학물질이 황 씨의 백혈병을 발병시킨 게 아니라고 증명치 못하면 직업병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반도체 측에선 일각에서 제기된 추측에 대해 일절 부인하고 있다. “작업현장은 청정지역이다. 모든 게 개인의 잘못에서 기인된 결과”라며 “산재에 포함되느냐마느냐를 떠나서 공장내부에서 백혈병에 걸린 수치는 대한민국에서 백혈병에 걸린 수치보다 더 낮은데 어떻게 특수한 일로 단정 지을 수 있겠냐”며 결백함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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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및 전자부품산업 유해물질, 세계적 공통분모?
사실 반도체 공장과 작업환경이 유사한 전자부품산업의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유해물질의 백화점’으로 불릴 정도로 논란을 빚어온 문제다. 국내외에서 화학물질이 실제 질병으로 연결됐던 사례를 찾아보면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 2005년에는 경기도 화성시 소재의 모 LCD 부품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던 태국 여성노동자 5명이 세척제로 쓰이는 유기용제에 중독돼 ‘다발성 신경장애’에 걸린 일이 발생해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또한 1995년 경남 양산의 LG전자부품공장에서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황유미씨가 했던 일과 비슷한 부품 세척작업을 하던 여성노동자들이 2-브로모프로판(2-bromopropane)에 중독돼 생리불순과 같은 집단 생식독성 증상을 보인 일이 있다. 남성노동자의 경우 무정자증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당시 2-브로모프로판이 사람의 생식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전 세계 최초로 밝힌 것이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된다.
2001년 영국 HSE (Health & Safety Executive)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공장의 작업이 노동자에게 해롭다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HSE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의 그리녹 공장 노동자를 상대로 암 발생률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경우 폐암, 위암, 유방암의 발생률이 일반인에 비해 2~5배가량 높게 나타났고 남성의 경우 뇌암 발생률이 4배 높게 나왔다. 이 조사를 통해서 백혈병과 반도체와 연관성을 직접적으로 밝히긴 힘들지만 상당부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백혈병에 걸린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이 20대 초반에서 40대 중반이다. 일반적으로 백혈병은 대다수가 선천성이거나 면역력이 떨어질 때 발생하는데 선천성일 경우 20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태반이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에는 주로 50~60대에 발생한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삼성에서 백혈병 걸린 환자들을 진료했던 병원에서는 “20대를 넘겨서 실려 왔던 환자들은 삼성환자들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고 대책위측은 전한다.
이뿐 아니라 2000년에 발간된 직장건강저널(Journal of Occupational Health)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되는 유해금속을 중심으로 노동자에게 생길 수 있는 건강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각종호흡기 질환, 피부질환, 특히 여성이 유산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자료가 증빙돼 있다.
실제 고(故) 이숙영 씨의 경우 13년간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그 기간 동안 갖은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1997년 6월 13일부터 2006년 12월까지 이 씨의 건강보험요양급여내역서 기록을 보면 이 씨는 무려 118건에 걸쳐 병원을 찾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접촉성 피부질환과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며 병원을 찾아온 것이다.
2000년 12월에는 유산까지 있었다. 이에 대해 이 씨의 남편 김모씨는 “내가 듣기로는 당시 아내가 유산했을 때 동시에 6명이 유산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대책위는 현장 주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면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삼성반도체의 고위급 관계자는 “작업환경에 아무 문제가 없다. 세계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한 사례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도 “화학물질이 사실 위험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아직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가 규명되지 않은 물질이 너무 많아 뭐라고 단정 짓기 힘들다”며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일정부분 인정했다.
철저한 역학조사로 삼성반도체 본보기 삼아야
삼성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이 백혈병을 유발시켰는지에 대한 부분은 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가 이뤄진 후 재차 논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는 보다 대대적인 역학조사를 통해 ‘백혈병 괴담’이라는 말이 떠돌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이 돼야할 것이다. 이번 문제를 단순한 사건으로 덮어두기에는 너무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다. 얼마 전 한국타이어사망사건은 실체 규명 없는 ‘의문의 죽음’으로 매듭지어졌다. 속 시원하지 못한 결론이다.
재차 이런 일이 발생하면 결국 노동자들은 힘이 빠질게 자명하다. 이에 차후에 발생될 사건을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번 삼성반도체 사건이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종란 민주노총 법규차장은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해 대대적인 역학조사가 실시돼야 한다. 퇴직자, 이직자, 협력사원, 비정규직 등 전 사원에 걸쳐 조사가 이뤄져야만 실체가 명확히 밝혀야 한다”면서 “작업환경 문제를 정확히 규명하는 일은 앞으로 또 다른 피해 노동자들이 발생치 않도록 개선하는 매우 중차대한 일이다”고 밝혔다.
이런 일이 선행되려면 무엇보다 삼성반도체에서 적극 협조하려는 자세가 가장 필요하다. 유야무야 묻히기에는 이미 문제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져버렸으니 실체규명을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지난번 태안원유유출사태에서 보여주었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릴 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소장은 “과거 탄광을 캐는 광산에 유독가스가 많을 때 카나리아를 날려 보내서 생사여부를 확인하고 작업을 했다. 만약 카나리아가 죽게 되면 그곳에선 절대 일하지 않았다. 현재 삼성반도체 문제가 이와 비견된다”며 “돈이 없어서 공장 내 유해물질을 차단치 못하는 게 아님에도 백혈병환자들이 버젓이 발생하는데 귀중한 노동자의 죽음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삼성반도체가)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004년, 환경부는 각 산업부문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배출량을 조사해 발표했다. 당시 반도체 제조업체가 포함된 ‘전자부품, 영상, 음향과 동신장비제조업’ 부문은 유해화학물질 215종 가운데 58종의 화학물질이 배출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36개 업종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수치였다. 반도체 업체들은 기술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면서 오염관리는 ‘낙제점’을 보여주며 비난의 화살을 면치 못했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작업 현장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재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