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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여행(2023.10.15~10.22 7박 8일) 여행후기
이탈리아 가다 -이수빈-
이탈리아를 가다 - 7714회
1. 서언(들어가는 글)
요즘 세상에 세계화가 널리 퍼지다보니 해외여행도 일상화된 듯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일반사람들의 장거리 해외여행은 많은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 77일사회의 경우도 매년 만나던 국내여행(정례회)을 해외로 계획하며 오랜 시간 준비과정을 거쳤다. 특별회비를 별도로 모으고, 아내의 지지를 얻어 이번 이탈리아 부부여행이 성사되었다. 다들 시간적, 비용적으로 어렵지만 인내하며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준 우리 일사회원, 그리고 옆에서 응원해주신 사모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특히 서유럽여행 목표를 세우며 6박8일이란 다소 짧은 시간임에도 알찬 결실, 평생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이탈리아 일정을 만들어주신 우리 큰형님(민승관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나는 이런 소중한 추억, 문화유적의 보고(寶庫), 이탈리아 여행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하고자 나름의 후기를 써보기로 했는데, 이탈리아에 대한 종교, 문화적 지식이 모자란 상태에서 정확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글은 대외적으로 발표할 중요한 문서도 아니고, 우리회원님들과 소중한 여행의 추억을 기억하면 되는 것이기에 큰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이탈리아 종교, 문화, 유적의 정확한 기록보다는 우리회원님들의 동선, 즐기는 모습을 좀 더 세세히 기록하여 우정의 장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움직임도 모두 표시하려다 보니 잘못된 표현이나 오기가 있을지 모르나 이 또한 재미로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족한 종교, 문화, 유적 등에 대한 주요설명 등은 하나투어에서 배포한 홍보지 내용을 그대로 옮겼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개요]
- 일자 : 2023.10.15.(일) ~ 10.22(일) *6박8일
- 일정 : 이탈리아(로마-피렌체-볼로냐-베네치아-돌로미테-밀라노)
- 시간 : 출발까지는 한국시간, 도착이후 여행시간은 현지시간으로 했다.
* 한국과 이탈리아는 7시간의 시차가 있으며, 한국이 7시간 빠르다.
(例) 한국 오전 9시 ☞ 이탈리아 현지 오전 2시
- 참석(여행하는 사람) : 12명(6부부)
민승관-최숙이부부, 박영순-송순의부부, 이수빈-안혜정부부, 장성호-이명숙부부,
윤길준-신춘희부부, 박진열-조영희부부
* (참고) 여행비용 1인 365만원(가이드,기사팁포함,노쇼핑 등 최고 편의조건)
2. 출발(인천⇒독일 뮌헨⇒이탈리아 로마)
<10.15일 첫째날>
나는 여름휴가를 가을로 미루어두고 이번여행에 일정을 맞췄다. 4년여 조금씩 모아왔던 특별회비(월10만원)를 기본으로 하고 부족한 것은 아내의 협조로 여행비용이 마련되었다. 경험 많은 민형님께서 하나투어를 통해 본 여행일정을 맞추어 주셨다.
10.15일 알람시계가 새벽3시반을 울린다.
여행가방은 어젯밤 미리 싸놓았고, 간단한 세면과 옷 입는 것만으로 여행준비는 끝났다. 오늘 우리 여행의 미팅은 8시40분, 인천공항1터미널 서쪽 14번 출입구 하나투어 앞으로 예정돼 있다.
4시20분 콜택시가 왔고, 5시 원주터미널에서 아내와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새벽길을 막힘없이 달리던 버스는 예정보다 빠른 7시20분경 인천공항1터미널에 우리를 내려준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니 FOOD점이 먼저 눈에 띤다. 아침을 안 먹은 탓이리라..
식사를 위해 들어선 식당에 먼저인사를 하는 팀이 있다. 박진열-조영희부부다.
그들 부부 식사는 거의 끝나있었고 잠시 후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로밍을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우리는 아침식사로 김치볶음밥, 돼지고기덮밥을 시켰다.
어쩌면 앞으로 일주일간 먹을 수 없는 한국음식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로밍(부부로밍-32,000원)을 하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인천공항 출국장 서편 14번 출입구,
약속장소엔 회원님들 모두 와 있었고, 민형님은 하나투어 인솔자 고민성팀장을 만나고 있었다.
민형님은 나이를 잊은 듯 열정적인 여행전문가답게 노란바지에 파란 점퍼, 노란모자, 어깨크로스 가방까지 깔끔하고 시원한 옷차림이다.(아래 사진참조)
여행안내 자료를 받고 화물을 부치고, 출국수속을 밟았다.
최초 미팅은 8:40분이었지만, 탑승은 11:40분, 인천을 날아오른 시간은 12시25분이다. 목적지 독일 뮌헨공항까지 비행시간은 12시간이 넘는다고 했다.
(사진, 좌) 인천공항 집합(민형님복장, 탱규~!) (사진, 우) 뮌헨으로 향하는 비행기안 모습
3. 이탈리아 투어(시작)
우리 비행기 독일항공(루프트한자) LH0719(보잉 747)가 창공을 힘차게 나른다.
독일항공이지만 앞으로 12시간은 우리와 함께 하늘을 나르는 우리 비행기다.
이탈리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비행모니터 사진)
(사진) 비행기 경로(서울에서 뮌헨까지)
긴 비행시간, 영화를 보다 음악을 듣다 기내식을 먹고 음료수(맥주)도 먹었지만, 갈 길은 멀고 좁은 공간의 불편함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굽혀보기도 하고 잠시 화장실도 다녀오며 몸을 풀어 봤지만 여전히 온몸은 오체불만족이다.
언제 이코노미석을 벗어나 프리미엄, 비즈니스석에 앉아볼 날이 있을까..ㅜㅜ
일반적으로 비행기 좌석배치도는 이렇다.
*비즈니스석 : 1열 6명, 프리미엄석 : 1열 8명, 이코노미석 : 1열 10명이 앉는다.
즉, 비즈니스석은 한 개열이 2+2+2명이며, 우등고속버스나 KTX처럼 좌석 자체가 고급스럽고 간격이 넓어 이동에 전혀 불편이 없다.
프리미엄석은 비즈니스석보다 한 등급 낮지만 2+4+2명이 한 개열로 앉게 되어 있으며, 이 프리미엄석도 통로로 나가고 들어오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다.
이에 비해 3등급이랄 수 있는 이코노미석의 경우 한 개열은 3+4+3명이 앉는데 창 쪽에 앉는 사람(A1)은 A2, A3좌석의 2명이 일어나야 통로로 나와 화장실에 갈 수 있다. 또한 앞뒤좌우 좌석간 거리가 좁아 체격이 큰사람은 움직일 틈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리고 비행기 좌석 번호는 예전엔 여행사에서 미리 잡아놓았으나 요즘은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개인들이 항공사에 접속하여 자리를 예약해야한다는데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어쩌다 한번 해외여행을 하는 일반인들이 일일이 여행사에 접속해 자리를 예약해야 하다니.. 우리들 자리는 민형님이 미리 예약해 주셨는데, 혼자서 12개자리를 예약하는데 많이 힘들었다고 하셨다.
어째튼 민형님 수고로 우린 차곡차곡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민형님은 쉬지 않고 술을 드신다. 원래 애주가시기도 하지만 장거리여행엔 잠을 자기위한 음주가 필수라고 하신다.
한잠자고 맥주, 또 한잠자고 와인, 그리고 기내식을 먹을 때도 맥주, 나도 오랜만의 해외 나들이로 부푼 마음을 즐기느라 민형님처럼 맥주를 마셨다.
뒷자리 박형님도 술사랑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술사랑 3인방..?
*기내식은 두 번 제공받았다. 첫 번째는 점심용으로 이륙 후 얼마 안돼서 지급되었는데, 닭고기와 돼지고기 중 택1이었으나 닭고기가 먼저 떨어져 돼지고기를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다음 기내식은 뮌헨공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간에 저녁용으로 지급되었는데 스파게티였다. 국수가락이 딱딱하게 마른부분도 있고 먹기에 많이 불편했다. 조금 들었다가 내려놓고 빵조각만 먹었다.
이렇게 유럽 현지식이 시작되었고 앞으로 며칠 동안을 잘 먹을 수 있을까, 살짝 걱정도 든다.
기내에서 이런 모습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기내 밖은 구름 위를 달리는 비행기 날개 정도만 볼 수 있다. 다시 비행 실내모니터를 보았다. 인천상공에서 출발한 비행경로가 보인다. 중국 우한, 우루무치까지, 그리고 파키스탄상공인가 이슬라마바드가 보인다. 발하슈, 카라간디, 쩨즈카즈칸, 페롬, 드줄달리, 엠바, 아랄해.. 이런 이름 모를 도시들을 우리 비행기가 지나간다.
시속813km/hr, 지금 시간은 18:35분(뮌헨 11:35)을 가리키고 있다.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갔고 비행기가 독일 뮌헨공항 도착을 알린다.
뮌헨 현지시간 17:40분, 초저녁이지만 한국 시간은 24시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시계가 가르치는 시간은 초저녁이지만, 몸은 한밤중이다. 눈이 무겁다.
이유는 7시간의 시차 때문일 것이다.
인천출발 12:30분, +12시간비행, 그러면 도착시간은 밤 24:30분이 되지만, 시차 7시간을 빼니 유럽현지시간은 17:40분이 된다.
즉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7시간이 늦은 시차를 가지고 있고 있으니 현재시간 17:40분이지만 몸은 24:30분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언밸런스(unbalance)에 몸은 피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패키지여행은 하나투어 고민성팀장외에 21명이 한 팀이 되었다.
즉, 우리 12명외에 9명이 추가로 모여 21명이 된 것이다.
* (추가9명)
대전시청 퇴직 아저씨부부(2), 짧은 머리에 말수가 많던 큰소리부부(2), 아가씨인줄 알았지만 친구사이였던 젊은 엄마 둘(2), 다정해(?) 보이는 두 남자(2), 그리고 혼자오신 광주 아줌마(1)
이제부터는 유럽(이탈리아) 현지시간을 기준으로 글을 적는다.
뮌헨공항에서 1시간 반의 대기시간을 갖고, 19:05분 로마행 비행기를 갈아탔다. 로마(레오나르도공항) 도착시간은 21:00경, 긴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오차 없이 진행된 하루였다.
하지만 움직이는 일행들 얼굴엔 졸음이 가득 들어있다. 박진열부부는 대기시간에도 의자에서 눈을 감고 있었고.. 모두들 시차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바깥일정은 이제 마무리가 되어간다.
21:00도착, 로마공항에서 호텔로 다시 이동이 필요했다.
호텔까지 이동시간은 약 50분, 도로양측은 어둠에 묻혔고 버스에서 고민성팀장의 간단한 유럽소개가 시작된다.
- 유럽여행에 호텔은 많이 불편할 것입니다. 특히 로마는 온 동네가 문화재이고 유적으로 지하 땅파기는 물론 지상의 건물들조차 문화재로 취급하여 살고 있으므로 집에 못하나 박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호텔들도 노후시설 의 보수에는 관심이 없으며, 따라서 에어컨도 거의 없고, 엘리베이터는 느리며, 객실 내 화장실 샤워부스도 작고 물은 석회석이 많아 직접 먹을 수 없습니다.
당장 오늘밤을 지낼 호텔생활부터 걱정되는 얘기를 들으며 다들 긴장하는 눈치다.
또 내일 일정에 대한 간단한 안내가 있었다.
- 05:30분기상, 6:30분식사, 07:30분 출발합니다. 내일 관광코스인 바티칸시국은 철저한 예약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우리예약은 12:30분입니다. 시외곽인 호텔을 출발, 오전 로마시내 관광과 이른 중식을 마치고 바티칸 입장을 위해서는 아침일찍 서둘러야 합니다. -
패키지의 강행군을 알리고 있다. 인솔자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불편을 강요하는 듯해 씁쓸하다. 그러나 우리는 부부동반 일사12명이 함께하고 있지 않는가..
힘을 내보자. 출발 前‘가 보자구~!’를 외쳤던 윤형의 이모티콘이 생각난다.
호텔불안, 내일 빡센 일정을 끌어안고 잔뜩 긴장한 채 예정된 숙소 호텔 도미데아(DOMIDEA)에 들어섰다.
팀원들이 방 배정을 받았다. 호텔에 대한 불편한 사전 교육 탓일까,
예상보다 객실은 괜찮다는 느낌이다.
- 싱글2침대가 놓여 진 침실, 좁긴 하지만 정돈된 화장실, 수돗물도 잘 나오고 그런대로 오케이다. 오늘 장거리 일정과 시차의 피곤함, 또 내일의 강행군을 위하여 오늘밤 일사미팅은 없는 걸로 했다.
우리 단톡에 인사가 뜬다.
223호 이명숙여사“편안한밤되셔요♡”
224호 윤형“푸욱 쉬세요”
225호 나도“모두들 낼 아침에 만나요”인사하고 이탈리아의 첫날을 마무리 했다.
* (민형님 모습) 첫날부터 와이파이연결, 단톡방 설정, 팀원들 방(호수)연락, 불편사항 확인까지 동분서주하는 민형님 모습이 감탄스럽다. 민형님은 뻰치, 송곳 등 각종 비상용 도구까지 챙겨 왔었고, 잠겨진 내 여행가방을 열어준 것도 민형님이었다. 민형님의 빵빵한 여행가방엔 그런 이유가 있었다.
4. 관광의 시작
<10.16일 둘쨋날>
본격적인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는 날이다.
흐린 날씨에 선선한 바람도 부는 전형적인 가을날씨를 보인다.
호텔, 모닝콜도 있었지만, 개인 알람으로 05시 반에 눈을 떴다. 세상이 한밤중인 듯 깜깜하지만, 첫날부터 단체행동에 늦지 않도록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씻고 입고 머리 말리고.. 아침출발에 차질이 없도록 가방 등을 미리 싸놓으라는 인솔자 지시대로 어젯밤 짐들은 모두 싸 놓았었다.
06:25분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어 내려간 호텔식당,
5분전 6시반이었는데 개장은 06시반 정각이라며 아직 닫혀있다. 어쩔 수 없이 생긴 잠시 짬에 어둠이 채가시지 않은 호텔마당으로 나갔다. 마당 앞뜰에 파란풀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토끼풀이라 부르던 클로버가 있었고 옆에는 민들레까지 피어 있었다. 우리나라에 흔한 클로버와 민들레를 멀리 타국에서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다. 세계는 한지붕일 것이다.
조식은 뷔페식이다. 주식은 빵, 큰 빵, 작은 빵, 딱딱한 빵, 부드러운 빵, 그리고 버터, 계란, 약간의 야채, 과일.. 짜다, 달다.. 커피가 있었고, 물이 있었다.
물은 일반물과 탄산수 2종으로 나뉘며 빨간뚜껑, 파란뚜껑이 있었는데, 빨간뚜껑이 일반물이고 파란뚜껑은 탄산수이다. 탄산수는 백반을 물에 풀어놓은 듯 떨떠름해 숙달되지 않은 우리에게 거부감이 드는 맛이다. 유럽사람들은 왜 이상한 맛 탄산수를 마시는가.. (어려서부터 그리해온 그들만의 입맛이리라)
물맛은 그랬으나 일사12명, 조금은 어색할 듯한 양식를 오랫동안 먹어 왔던 것인처럼 잘들 드신다. 빵도, 커피도 숙달된 모습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방에 들어와 양치만 한 후, 가방을 가지고 버스로 간다.
버스가 출발한다.
인솔 고민성 팀장님의 이탈리아어 강습이 시작된다.
먼저 간단한 인사말
- 안녕하세요(오전인사) ☞ 본~조르노~!
- 감사합니다 ☞ 그라제~
* 정확한말은 그라치에(Grazie)였으나 우리에겐 전라도말 ‘그라~제~’로 들렸고, ‘그라제~잉’으로 하자며 웃었다. 암튼 기억하기 좋은 단어였다.
내친김에 (10.18일) 실제상황에서 벌어진 이탈리아어 또 하나를 적어본다.
이 말을 듣고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인솔자 안내말씀, “버스기사가 지라레해서 식당 앞에 차를 대준답니다”
지랄?..운전기사가 욕을??
하지만, 그건 욕이 아니었다. 회전, 돌다의 이탈리아어 지라레(Girare)였다.
해설을 듣고도 우리는 비슷한 상황이 오면 ‘지라리 지라리’하며 한참씩 웃곤 했다.(‘지라레’의 실제 상황은 10.18일 볼로냐견학 후 중식 식당 앞에서 발생했다.)
버스가 시내로 접어드는데 길은 좁고, 건물들도 재개발지역인양 허름한 모양새다. 버스는 교통체증에 정체, 느린 버스를 투덜대다 앞을 보니 중ㆍ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길 양옆을 우르르 줄지어 간다.
한쪽은 인도가 있고 한쪽은 없는데 인도와 차도부분까지 가득 메운 채 학생들이 걷고 있다. 버스기사도 그 사이를 그냥 천천히 간다. 무질서속에 질서인가..
버스도 시민들로 그런 상황을 인정하고 불평하지 않는단다. 이탈리아 국민성을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로마시내에는 100년된 電車가 버스와 함께 달린다.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 단종되었다는 전차인데 이들은 아직도 전차를 가지고 있었다. 길거리의 차량들은 대부분 소형차(피아트사 제품)였다. 건물들도 특별히 높은 고층건물이 거의 없고 4~5층정도의 누런 중세건물들이 시내를 메우고 있다. 낡은 벽에는 낙서가 가득한 곳도 있다. (우리나라는 중요부분에 낙서 시 처벌, 이 나라는 장려?)
친환경을 위해 개발을 멈추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유적보호 차원에서 개발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근교까지 합치면 약500만 명이 산다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모습이다.
버스에서 내려 도보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관광지는 콜로세움이다.(09:20~09:50)
▣ 콜로세움
로마의 상징 콜로세움은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대표건축물이다.AD72~80년사이 건설된 콜로세움은 네로황제의 궁전 뜰 인공연못에 지어졌다. 대형 원형투기장겸 극장으로 검투사와 집승의 격투기가 개최되었으며 80개의 출구에 약55,000명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이다. 고대 로마유적 중 가장규모가 크며, 최대지름 188m, 둘레 527m, 높이 57m에 4층규모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 개선문과 콜로세움 (사진) 콜로세움앞 손든 청년이 루까
(좌측 사진) 정면의 개선문과 우측의 콜로세움, 우측아래 고민성팀장
(우측 사진) 신호등 앞, 설명하는 루까와 우리일행(이명숙여사 살짝 보임)
콜로세움 앞 사거리에서 현지가이드‘루까(한국명 장성민?)’를 만났다.
갸름한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 살짝 고수머리, 탄탄한 몸매의 30대중반 청년이다. 로마에 정착한 지 8년 됐다던가, 이탈리아어에 능통하고 물론 한국어는 더욱 유창(?)하다. 하나투어에서 나눠준 수신기를 귀에 꽂고 가이드 루까의 해설을 들으며 콜로세움에 앞에 섰다. 정확히는 콜로세움 앞에 있는 개선문 앞에 섰다.
콜로세움과 개선문을 보며, 루까의 설명을 들었다.
영화 속의 콜로세움을 상상하며, 검투사와 사자의 대결을 생각했지만 정작 콜로세움은 보수공사 등으로 출입 금지되어 있었고, 콜로세움 둘레에도 보완공사를 위한 문화재 발굴을 위해 빙둘러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다.
개선문, 이 곳의 개선문은 원조 개선문이라고 했다. 이를 본 떠 나폴레옹이 전투승리기념으로 프랑스에 파리 개선문을 만들었고, 북한의 김일성도 이를 따라서 평양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잠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집사람과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았다. 박진열-조영희부부도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일행들 나름대로 사진을 찍으며 이탈리아 추억을 담고 있다.
모두들 정해진 시간에 다시 개선문 앞에 모였다.(패키지 질서 양호)
다음 로마 관광을 위해 벤츠 승합차가 대기 중이었다.
1호차, 우리여성회원 6명, 2호차 우리남성회원 6명, 그리고 나머지 차량에 남은 일행들이 탔다.
*벤츠 승합차는 우리 패키지 일행 21명을 위해 하나투어에서 특별히 준비, 로마시내관광에 이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한없이 걸어야하는 시내 관광에 시간단축, 체력비축을 위한 큰 배려가 감사하다.
*로마시내는 도로에도 인도에도 대부분 돌이 깔려있었는데, 일반포장길을 걷는 것보다 확실히 피곤함이 더했다.
(사진) 트래비분수, 동전수거 광경 (사진) 로마 시가지
벤츠를 달려 이동한 곳은 트래비 분수,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곳, 오늘은 마침 분수대 안으로 던져진 동전을 수거하는 날이었다. 파란 물속에 갈퀴를 가진 남자들 여러 명이 동전을 긁어 모아 바구니에 담아 어디론가 이동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을 이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동전수거 남자들은 그들대로 할 일을 한다. 모두들 즐거운 얼굴이다. 근데 이 동전수입은 어디로 갈까? 종교단체 아니면 국가..?
* 잠시 후 가이드 해설로 이 동전은 로마市에 귀속된다 것을 알았다.
우린 트래비 분수대 옆 아이스크림가게에 들려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고 동전을 바꾸었다. 화장실 이용, 물을 살 때, 모든 움직임에는 1유로의 동전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5, 10유로의 지폐를 동전으로 교환하는 작업(?)도 관광의 일부분이었다.
10:00시, 스페인광장(바티칸주재 스페인대사관)에서 돌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로마에서 가장 싼 집을 보았다. 다른 건물과 달리 하얀색 건물이 예쁘기는 했지만, 외벽 자재가 로마돌이 아닌 외국 국제 돌로 지어져 로마에서 가장 싼 집이 되었다고 한다. 자기 것만 사랑하는 보수적인 국민성을 보는 듯했다.
10:30분, 로마시청사 뒤편의 포로 로마노(Foro Romano)
▣ 포로 로마노(Foro Romano)
베네치아광장(Piazza Venezia)과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 곳은 상업, 정치, 종교 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중심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 시저의 신전, 원로원,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로마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는 건물의 앞면은 그런대로 일반건물모습이었으나, 뒷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쌓아올린 벽돌색이 다르고 접속부도 정리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모양의 3단 건축물이다. 마치 못난이 3층 시루떡을 쌓아 놓은 듯 한 모습인데 우리나라라면 저런 건물은 재개발대상이 아닌가... 이 곳 사람들은 벽돌하나, 건물 한층 한 층이 유적이라 쉽게 헐어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증축하며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란 어떤가..
전국 지자체의 시청, 군청건물은 물론이고 동사무소조차도 새 건물 새 양식으로 번쩍거리고 있지 않은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하지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좋고 나쁘다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냥 우린 지구상의 다른 민족 다른 문화를 본 것으로 만족해야하지 않을까.. 멀리 바라보는 원로원, 시저의 화장터 모두들 화려한 옛날은 없고 반쯤 허물어진 그야말로 유적들이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유적을 볼 수 있겠나.. 고대여행의 진수를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우리 가이드 옆에 중년의 외국여인이 계속 따라 다닌다. 궁금증이 발동해 물어보니 그녀는 영어를 사용하는 로마의 라이센스를 가진 가이드란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런 라이센스 가이드를 대동하고 여행안내 가이드를 해야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즉, 우리는 로마법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오늘 바티칸 시국 안내에도 계속 동행하게 된다고 했다.
바티칸으로 가는 길에 로마의 휴일에서 로드리헵번이 손을 넣었다는 진실의 입을 보았다. 진실의 입은 길가의 허름한 빈 상가 같은 곳에 들어 있었는데 영화와 달리 허름한 모습에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이른 점심을 먹기 위해 현지식당으로 이동했다.
중식 메뉴는 스파게티, 10:55~12:05, 1시간 10분의 식사시간이 주어졌지만, 나는 맛을 느낄 수 없었고, 오후 관광코스인 바티칸시국만 생각했다.
▣ 바티칸 시티(Vatican City)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으로 잘 알려져있는 이 곳은 전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 외에도 미켈란젤로의 불굴의 명작인“천지창조” 등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훌륭한 예술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寶庫)이기도 합니다. 성베드로 광장 앞에는 흰색 선이 도로위에 그어져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구분 짓는 국경으로 1929년 이탈리아와 교황청 주변의 지역에 대해 주권을 인정하는 라테라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조그만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코로나시절에도 우리나라관광객 2천만명이 다녀갔다는 바티칸시국, 인구는 900명이며 엄연히 이탈리아 로마 안에 있는 별도의 독립된 국가라고 한다.
사실, 이탈리아, 특히 로마관광을 하려면 이곳의 역사, 종교, 문화, 유적 그리고 그때의 사람들에 대한 사전공부를 하고 왔어야 좋을 듯 했다. 그래야 여러 가지 안내해설을 제대로 알아듣고 질문도 해보았을 텐데, 미켈라젤로, 레오나르도다빈치 등 누구나 아는 정도의 막연한 지식만 가지고 왔으니 관광하는 내내 미흡한 지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민형님-최숙이형수, 장성호-이명숙여사, 조영희여사 등은 카돌릭의 역사 흐름에 대한 꽤 많은 지식이 있는 듯, 가이드에게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변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지식을 현실에 맞추어 볼 수 있는 시간, 소중한 이탈리아 여행 제대로 오신 것이리라. <검토11.29일>
오후 관광 바티칸을 보기위해선 바티칸시국에 입국하여야 한다. 바티칸도 별개의 독립된 나라이기 때문에 이 곳에 들어가려면 소정 입국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워낙 관광객이 많아 정상적 입장을 하려면 새벽에 일어나 오전 일찍부터 줄을 서야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투어에서는 우리 회원님들의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위하여 고가의 특별암표(?)를 구입, 특별입장코스를 선택 하였습니다” 하나투어 가이드의 자랑 아닌 자랑이었는데, 어쨌든 고마운 일이었다.
바티칸 입국 예약시간은 12:3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도착한 바티칸광장은 그야말로 인간 숲을 방불하게 했고, 또 바티칸시국 입국을 위해 서있는 줄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긴 줄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여행 방법이라 위안하며 일반 줄 옆에 별도로 설치된 라인을 따라 순조로운 특별입장을 했다.
사용 중이던 하나투어 수신기를 접고, 바티칸 수신기를 별도로 지급 받았다.
입구를 지나 빨간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니 시스타나(SISTINA)성당 앞 광장이 보인다. 광장 앞에 설치된 여러 장의 그림을 보며 가이드 설명을 들었다.
우리 여사님들은 설명을 듣고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끄덕이는 얼굴 모습에서 오늘 여행의 보람이 묻어 있는 듯했다. 나도 귀를 기울였지만, 천지창조, 천장화 같은 평소에 듣던 얘기 외에는 생소한 이야기가 많아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남성회원님들은 우리의 아내, 여사님들이 좋았다면 함께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바티칸앞 광장
14:00시,
드디어 천장화 등이 있는 Cappella Sistina성당내부로 입장했다. 성당내부는 사진촬영금지라 눈으로만 보아야 한다고 했다.
성당으로 들어서며 천장만 쳐다보며 걸었다. 미켈란젤로가 31세에 그렸다는 3단 3화로 구성된 천장화, 최후의 심판 등의 실물관광을 했다. 모두들 고개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며 간다. 수많은 관광객들 틈에서 내 몸은 걷지 않아도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좀 더 심취하고 싶은 사람들은 양옆의 좁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린 고개를 들고 물이 흐르듯 자연스레 천장화구간을 통과했다. 천지창조 제일 마지막그림 구석에는 젊은 남자가 나신의 모습으로 허리부분에 뱀을 감고 흉측한 모습으로 서있었는데 그 실제 주인공은 미켈란젤로에게 벌을 주어야한다고 했다는 어떤 젊은 주교의 모습이라 했다. 대단한 재주를 가진 위인, 미켈란젤로도 감정을 가진 인간이었음을 생각해 보게 했다.
14:30분, 시스티나 성당 옆의 베드로 대성당으로 간다.
▣ 성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
가톨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바티칸 시국에 있는 성당입니다. 교황이 기거하는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초대 교황 베드로의 이름을 따서 그 이름을 지었습니다. 건물 전체가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며, 르네상스 양식으로 베르니니가 건축했습니다. 성당의 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것으로 미켈란젤로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성 베드로 성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각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상’입니다. 이는 그가 21세때 만든 조각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무릎위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했습니다. 당시 시대로는 인체의 비율을 깬 파격적 조건으로 당대 예술가 사이에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합니다.<12.12일 검토 完>
베드로 대성당의 건설기간은 120년, 초대교황 베드로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하며, 성당 돔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성당 앞 광장은 가운데 행사장을 두고 둘레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입장하고 퇴장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성당입구에 들어서니 미켈란젤로의 23살때 조각품이라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상(일명, 피에타 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넣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 앞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등 붐비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천지를 담은 여러 가지 종교예술 작품들이 좌우에 늘어서 있다. 그림자체가 아름다웠지만, 신기한 것은 그 그림들이 붓이 아닌 모자이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해설을 들으며 자세히 보니 한점 한점 네모모양이 보인다. 아주 작은 네모 모자이크가 모여 그림이 된 것이다.이런 정교함이 어떻게 탄생했을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안쪽으로 들어와 다시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내부를 보신 후 벽 아래 가측으로 쳐진 통로를 따라가면 교황들의 무덤을 볼 수 있고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집사람과 같이 천천히 그 통로를 따라 가 본다. 좁은 지하계단을 조금 내려가니 역대 교황들이 안치된 모습들이 하나하나 나타난다. 물론 우리나라 왕릉의 모습은 아니다. 어떤 교황은 돌로 석상이 만들어져 있었고 어떤 교황은 유리 속에 들어있기도 하였다.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최근 선종(22.12.31)하셨다는 베네틱토16세 교황의 무덤이었다.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오며 오른쪽 벽을 보니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우리나라의 김대건신부 상이 조용히 우리를 내려다본다. 하얗게 깍은 깨끗한 모습, 비록 실물이 아닌 석상이지만 카톨릭 성지에 한국인의 상이 걸려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잠시 휴식을 위해 한켠의 돌 의자에 앉아있자니 일행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교황이 창문으로 인사를 한다는 베드로성당 인사광장을 돌아 나왔다. 참, 장성호-총무부부가‘아차’한다. 화장실에 우산을 두고 왔다는데, 뒤 돌아가면 짧은 길이라 찾으러갈까 했다한다. 하지만, 짧은 길이라도 역방향이라 갈 수 없다고 제지당했다고 한다. 꼭 가려면 입구 쪽에 새로 줄을 서야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우산하나를 베드로 성당에 기부(?)한 것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와 15:50분, 잠시 천사의 성 앞에 잠시 머물렀다. 성 앞에는 떼베레江이 흐르고 있었는데, 유적 건물만 보다가 파란 물을 보니 마음에 안정감이 몰려온다. 떼레베江은 주변의 古風스런 건물과 어울려 새로운 정취를 보여주고 있다.
<11.30일 검토>
다음 코스, 판테온 성당을 향한다.
온통 성당이고 유적이고 비슷한 건물, 유사한 역사들이라 이탈리아 관광은 다소 혼란스럽기도 했다. 판테온도 오래된 역사,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데 16:15분 판테온 성당을 본다. 기둥에 슬라브가 접속되어 요즘 우리나라에 문제를 야기하는 무량판 구조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건물은 슬라브 콘크리트의 몰탈 배합비에 영원한 비밀이 담길 정도로 견고하게 지어져 2000년을 이런 모습으로 버텨왔다고 한다. 성당 앞에는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모여 있고 둘레 상가에도 삼삼오오 사람들이 가득하다. 우리도 옆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생맥주 8유로, 물은 2유로다. 값은 조금 비쌌지만, 한참만의 휴식인 때문일까, 맥주한잔의 목 넘김이 시원하다. 민형님과 나는 평소에도 술이 좋아 좋았지만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까지 모두들 맥주한잔에 땡~큐, 손을 들어준다.
17:00분, 오늘의 관광이 종료되었다.
현지 젊은 가이드 루까가 내일 또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작별인사를 한다.
오늘 날씨는 오전 흐림, 오후 비 오락가락, 관광에 큰 문제없는 날씨였다.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버스 속에 온도 모니터를 보니 현재 기온 15도, 습도46%이다. 오늘 저녁은 한식(삼겹살, 된장찌개)이란 고민성팀장의 멘트가 나온다.
이탈리아에서 삼겹살.. 기대가 크다. 4~50분을 달려 교외 한식당에 도착했다.
다른 한국관광객팀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상추를 곁들인 삼겹살 식사를 한다. 우리도 그럴듯하게 차려진 자리에 앉았다. 삼겹살이 준비돼 있었는데, 너무 기대 한 탓일까.. 냉동삼겹살은 별맛을 못 느꼈고, 불판이 탄다고 김치를 올리지 말라는 주인장말엔 삼겹살김치구이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는 것에 김이 빠진다. 뒤따라 다른 단체 한국관광객들이 우르르 닥치는데, 그 팀 가이드도 역시 불판에“김치 올리지 마세요. 불판 태우면 한국서 다시 사와야 합니다.”같은 잔소리한다. 아니 그런데 그런 잔소리를 하며 우리 팀을 쳐다본다. 우리가 김치를 올린 것도 아닌데.. 이래저래 가득이나 심기 불편한 민형님이 그 가이드에게 한마디 한다.“그런 소리를 왜 우릴 보며 하느냐!”다소 언성을 높여 항의했다.
미안하단 사과는 받았지만 어쨌든 민형님을 비롯한 모두들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저녁시간이다.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숙소로 향했다.
오늘 숙소는 로마 교외의 Best Westen Hotel이다.
호텔로비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20:30분경 각자의 방을 배정받았다.
오늘밤 미팅은 291호, 민형님 방이다. 저녁 9시가 되기 전에 모두들 모였다.
민형님- 최형수님부부가 좁은 방이지만, 발코니 문을 활짝 열고 돗자리를 깔아 만찬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미리 준비한 소주, 맥주, 컵라면, 감말랭이, 참치캔, 고추장, 과자.. 훌륭한 광경이 만들어졌다.
- 민형님, 박형님, 장성호님, 윤길준님, 나와 박진열님이 차곡차곡 껴 앉고, 여성팀도 침대 모둥이에 걸터앉아 타국의 밤을 자축했다. 땡큐~!
저녁식사시간의 우울했던 생각들이 씻은 듯이 잊혀 진다.
비좁은 방임에도 자리를 만들어주신 민형님 내외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밤 9시전에 만난 만찬은 1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이탈리아 두 번째 밤이 지나간다.
<10.17일, 화요일 세쨋날>
05:30분 기상,
06:30분 조식은 변함없이 호텔 현지식 뷔페 -빵, 계란, 과일, 커피까지 든든히 먹었다 - 이젠 현지식에 어느 정도 숙달됐을까, 누구하나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 아니 불편한 게 아니라 아침을 잘 안 먹는 우리 안여사도 제대로 아침을 먹는다. 인간은 언제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 틀림없다.
예정대로 07:40분 호텔 출발이다.
현지 가이드‘루까’가 일찍 호텔로 왔다. 오늘은 출발부터 같이 간다.
버스 안에서 이탈리아 말을 알려준다.
- 그라지에 ☞ 감사합니다
- 보나세라 ☞ 안녕하세요(저녁인사) * 본 조르노 ☞ (안녕하세요)오전인사
- 차오☞ 안녕(가벼운인사)
- 프레고(천만에), 아모레 미오(당신은 내사랑)
- 브라보~!(=프랑스말 앵콜과 같음)
단, 남자는 브라보, 여자는 브라바, 여럿을 뜻하는 복수는 브라비~! 란다
* 술잔을 높이들고 건배대신 브라보 해도 좋을 듯, 건배는 쌀루티~!라고도 한다. - 전라도 말,‘그라제~잉’과 비슷한‘그라지에’란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이후 우린‘그라제~잉’을 자주 외쳤다. 본 조르노와 그라제~잉은 오래 기억
할 수 있을 것 같다.
암튼, 이탈리아 말을 한참 배웠다.
르네상스 작품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르네상스 이후 그림 속에 원(遠), 근(近)의 모습이 시작되었고, 얼굴 표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교통체증,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버스는 가는 시간보다 멈춰 버린 시간이 더 긴 것 같았다. 그러나 누구하나 짜증스런 사람은 없다.
우리도 어느새 그냥 기다릴 줄 아는 이탈리아 사람이 됐나보다.
느리게 가는 버스 속에서 이탈리아 공부에 심취한 사이,
09:30분경 버스는 로마 근교 고지대 소도시‘오르비에토’마을에 도착했다.
▣ 슬로우 시티(Slow City),오르비에토
옴브리아주 바위산 위(해발 195m)에 위치한 중세도시로 고대 에트루리아의 12개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오르비에토는 대표적인 슬로우 시티로 첨단화, 편리함보다는 인간답게 사는 미, 중세의 도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높은 산 위에 도시를 형성하여 살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은 가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중세시대 흑사병을 막기위해 지대가 높은곳으로 이주했다는 설이고 두 번째 설은 전쟁시 방어를 목적으로 절벽위에 도시를 형성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여러 개의 계단을 오르고, 다시 모노레일을 5분 정도 타고 올라가니 오르비에토 마을이 나타난다. 잠시 걸어간 곳은 오르비에토 두오모 대성당이었다. 성당 앞에서 다시 단체 사진을 찍고 각자 사진도 찍었다. 민형님 카메라는 쉴새 없이 돌아간다. 우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 질 것이다.
다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대성당 뒤편의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에 다시 집합했고, 내려가는 길은 차량이 아닌 걷기를 택했다. 걸었더니 걸은 만큼 더 많이 보였다. 난생처음 보는 고풍스런 집들, 집들 사이 골목길을 따라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내려왔다.
11:40분, 피렌체로 출발한다.(피렌체까지는 버스로 약2시간 소요)
차창으로 비치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풍경들에 집중하는 사이 어느새 피렌체에 도착했다.
▣ 피렌체(Firenze) 198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피렌체 역사지구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피렌체는 14-15세게 메디치 가문의 후원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입니다. 토스카나 지방의 중심지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과 같아 1982년 피렌체 역사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로마와 더불아 이탈리아 관광의 메카로 꼽힐 정도로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요한 도시입니다. 두오며 광장을 중심으로 꽃의 성모마리아 성당(두오모 성당, 정식명칭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과 산지오반니 세례당 그리고 지오토의 종탑(깜바닐레), 단테의 생가와 시뇨리아 광장과 베키오 궁과 베키오 다리 등 많은 유산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관광도 편리한 도시입니다.<12.13 검토, 完>
정오가 되었으므로 식사부터 하고 관광에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 중식은 (일식+중식)이다. 회, 초밥, 그리고 만두, 탕수육.. 맥주를 시키고 물병에 준비한(?) 소주를 섞어 신나게 마셨다.
여러 날 만에 제일 맘에 드는 식사가 아니었을까..
15:30분, 피렌체 시내관광에 나섰다. 가이드 루까의 해설을 들으며 그를 뒤따라간다. 단테(신곡),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군주론), 갈릴레오형제(지동설)의 무덤이 있다는 피렌체, 소가죽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단테의 생가 터 벽에 단테의 흉상이 걸려 있었고 바닥에도 있었다. 모두들 신기한 모습에 사진을 찍었다.
시뇨리아 광장, 바다의 신‘네프’‘다비드 상(미켈란젤로 作)’을 보았다.
16:15~18:00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유시간에 둘러 볼 수 있는 인근 관광지에 대한 짧은 안내가 있었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피렌체의 특산품 가죽물건들을 보기위해 루까를 따라 가죽공방으로 갔다. 수많은 가죽제품들이 걸려있었다.
한국인 점원들도 있었고, 가격은 매우 비싼 것부터 천차만별이다. 우린 대체로 비싸지 않은 중저가 물건들을 한 두 개씩 샀다. 나도 내 벨트(40유로) 1개와 집에 아들, 딸에게 줄 미니 지갑(60~70유로) 2개를 샀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저녁식사시간 저녁 메뉴는 스테이크이다.
한국에서 먹는 스테이크를 기대했지만, 기대와 달랐다. 한 접시에 한 개씩 담아주는 일인용 스테이크가 아니라, 3~4인용 고기를 큰 접시에 담아주고, 각자 개인 접시에 덜어먹는 형태인데,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티본스테이크라고 했다. 덜 익은(?) 부위도 있고, 먹는 방법도 고기모습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어쨌든 우리 12명은 나란히 자리에 앉아 3~4명씩 팀을 만들었고 스테이크 식사를 시작했다. 한명이 큰 접시의 고기를 작게 나누어 자르고 팀원들은 먹을 만큼의 고기를 자기 접시에 덜어갔다.
우리테이블에서는 장성호총무가 힘을 내 부지런히 잘라주는 덕분에 조금 먹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불편했다. 앞 테이블의 다른 우리 일행들도 불만 섞인 큰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가이드‘루까’가 작별인사를 한다. 안내는 오늘까지라고 한다. 잠시 텀을 두더니‘루까’가 복습 좀 해 볼까요. 바다의 신은?
우리가“네프~!”대답하니“됐습니다. 그것만 기억하시면 오늘 관광은 성공입니다”한다.
젊은 친구 해설이 명쾌했고 어느새 친해져 좋았는데, 괜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19:30분,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향한다.
오늘 호텔은 특별히 교외가 아닌 시내 안에 있는 호텔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패키지여행은 대부분 교외지역을 호텔을 예약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투어에서 이번에 특별 이슈로 준비한 시내호텔이라고 했다.
FH55 그랜드 호텔 메디테라네오, 5성 호텔로 소개한 대로 시내근처에 있어 긴 시간 이동이 필요 없었다.
배정된 방은 601호, 그런데 민형님네도 601호? 같은 방?
601호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내부에 두 개의 출입구가 보인다.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랬다 특별호텔에 특별 룸이 배정된 것이다. 문 앞의 첫 번째 룸은 공용룸이며 공용룸에서 각자의 개인룸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구조였다. 이 공용룸은 오늘 밤 미팅 장소로 적격이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매번 민형님 룸만 미팅장소로 사용했는데 오늘은 미안함을 오늘은 덜 수 있지 않을까..
민형님과 601호에 들어서 민형님은 우측룸으로 우린 좌측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엔 편안하게 우리 팀원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여유 있는 기분으로 내가 먼저 샤워를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집사람이 샤워를 하려는데 물이 안 나온단다.
황당함에 고민성 팀장을 찾으려 전화기를 드는데, 우리 단톡에 여기저기서 물이 안 나온다는 글이 올라온다. 옆방 민형님네, 윤길준님네, 총무님네..
이런 낭패가 있나.. 호텔측에 알아본 고팀장 말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한다.
한참을 기다렸으나 고인 물 나오는 듯 찔찔.. 집사람은 겨우 세수만 했다.
이런 돌발 상황을 맞아 오늘 밤 우리들의 미팅계획도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좋은 방, 미팅장소가 마련됐건만, 물 때문에 모두 허사가 되어 버렸다.
겨우 대충 씻고 잘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럴 때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당황하지 않고 기다린다던가.. ㅠㅠ
오늘은 무언가 아쉬움만 쌓이는 하루다.
<10.18일, 수요일>
특별히 준비한 피렌체 시내호텔, 지난밤의 단수 사고로 찝찝한 밤을 보냈다.
어쩔 것인가, 이탈리아 여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늘 코스인 피렌체→볼로냐→베네치아를 생각하며 힘을 내보기로 했다.
아침6시 기상, 부지런히 출발준비를 하고 아침 조식을 위해 601호 문을 나섰다. 그런데 아니 이런! 슬리퍼를 신고 나왔다. 운동화를 바꿔 신으려 다시 들어가려했으나 문이 열리지를 않는다. 카드키를 이리저리 대보고, 문을 밀거나 당겨보았으나 문은 요지부동이다. 고팀장을 부르고, 직원을 불러 겨우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번엔 엘리베이터가 6층으로 올라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5층까지가 본 엘리베이터이고 6층은 추가로 연결설치해서 잘 안 될 때가 많단다. 이럴 땐 5층으로 내려가 엘리베이터를 타야한다는데.. 아침부터 문제투성이다.
어쨌든, 07:00시 호텔 조식을 마치고, 08:15분에 볼로냐를 향해 버스가 출발했다.
인솔자 고팀장이 미안함을 섞어 지난밤까지의 불편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 이태리(유럽기풍), 있는 대로 산다. 물이 안 나와도 기다린다.
- 엘리베이터가 안 오면 기다리거나 계단으로 간다고.. 한국인들은 안달 난리가
나지만 이곳사람들은 기다린다. 우리들이 살아온 정서와 전혀 맞지 않는 특이
한 상황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 그냥 각자의 성향에 맞추어 살면 되리라 생각하며 지난밤의 서운함을 달랬다.
- 다시 이탈리아에 대한 소개
이곳은 노후연금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만큼 세금납부에 철저하다. 세금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사권까지 보장된다고 한다. 이곳사람들은 정년을 연장해 달라고 데모하는 게 아니라 정년을 그대로 지켜달라고 데모를 한단다.
왜? 정년 후에는 국가에서 연금을 주고 100% 의료 제공까지 모두 다해주니까 구태여 계속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제때 퇴직하고 국가 장학금(?)을 받으며 노후를 충분히 즐겨야 하는 것이다. 더 벌기 위해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우리와 다른 정 반대의 모습이다.<12.03검토>
또 이태리의 건물들은 거의 모두가 유적이라 (앞쪽에서 언급했듯이) 내 집에도 함부로 못질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궂이 새 집을 지으려 하지 않고 낡은 집에서 그냥 산다. 또 아이들은 16세까지 부모가 반드시 책임져주는 보호의무가 있는 반면, 17세가 되면 봉급의 40%세금을 내며 각자 알아서 살아야한다.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없고, 대부분 월세로 사는데 재산을 만들려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놀기 위해 돈을 번다. 2달 휴가규정도 있으니 가히 알만하다.
초등학교 5년 이후는 주특기대로 진로를 결정한다. 계속 공부할 능력(실력?)이 있는 사람은 공부를 선택하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는 그때부터 자기 주특기대로 기술을 배우거나 예술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 삶의 모습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우리와 다른 부분이 많아 놀랍고, 정년퇴직 후 국가에서 확실히 보장하는 연금과 의료제공은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젊어서 고생이 노후를 책임져주는 모습이다.
버스가 아르노江을 건너 고속도로를 달린다.
잠시, 내 주특기(土木)와 관련한 이탈리아 도로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 길가 방음벽은 투명방음벽과 일반 방음벽이 섞여 있고, 안전을 위한 가드레일은 3W와 2W를 연결, 2단으로 설치한 곳도 있었고, 콘크리트 중앙분리대는 프리캐스트 분리대를 2열로 설치하고 내부엔 흙을 채워 안전을 확보했다.
- 터널내부는 타일부착이나 도장을 한 곳은 없어 보이며, 시선 유도표지만 설치돼 있다. 차선은 모두 백색을 사용했고, 우리나라에선 주정차금지, 학교횡단보도 등 중요구간에 설치하는 황색차선이 이 곳엔 임시차선 성격의 공사구간만 설치되어 있었다.
- 전체적으로 미관보다는 안전에 필요한 시설만 실용적으로 설치한 모습이고, 넓은 땅을 이용해 중앙분리대를 2열로 설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는 편입토지를 최소화할 필요도 있어 도로 중앙분리대 대부분을 1열로 설치한다. 대신 공장에서 제작한 프리캐스트제품이 아닌 현장에서 직접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구조물로 이탈리아 제품보다 좀 더 높고 두꺼워 튼튼하다 할 수 있을 것이
(사진) 고속도로 중앙분리대(2열복식) (사진) 고속도로 가드레일(2단)
10:30분, 고팀장의 이탈리아 해설을 들으랴, 고속도로 시설물들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며 메모하랴 분주하다보니 버스가 어느새 볼로냐에 도착했다.
붉은 매력의 도시, 볼로냐 시내투어가 시작됐다. 볼로냐엔 현지 가이드가 없으므로 고팀장이 직접 설명을 하되 이탈리아 가이드가 우리들 이동에 동행한다고 했다.
안경을 쓰고 둥글둥글한 모습의 중년 아줌마다. 서툰 한국말로“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우리도 웃으며 인사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볼로냐에도 비가 내린다.
하지만, 볼로냐관광에는 비가와도 걱정이 없단다. 건물들 앞에 처마처럼 펼쳐진 회랑이란 구조물이 있기 때문이다. 시가지내 건물들은 대부분 회랑이 설치되어있었고 이 회랑은 건물사이도 연결되어 회랑을 따라 이동하면 우산을 사용할 일이 별로 없다. 비도 피하고 상가건물 내부도 볼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모습이다.
(사진) 볼로냐 회랑(건물처마) (사진) 볼로냐 대학교
볼로냐에 유명한 것은 대학교이다.
▣ 볼로냐 대학교
볼로냐의 유일한 대학교인 볼로냐 대학은 1088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대학입니다. 교훈은 ‘Alma master studiorum'(모든 학문이 퍼져 나간 곳)이며, 세계 최초로 해부학을 가르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현미 해부학의 창시자인 마르첼로 말피기, 철학자 피에트로 폼포나치, 소설가이자 수필가 알프레도 판치니, 시인 알레산드로 타소니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을 배출하였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볼로냐하면 대학교를 떠올린다고 한다. 이곳에서 10명 중에 1명은 대학생이라던가..
세계각지에서 젊은이들이 볼로냐로 유학을 오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는 회랑을 따라 볼로냐 대학교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볼로냐 대학교, 전혀 예상 밖의 모습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굴지의 유명한 대학인 만큼 넓은 캠퍼스와 푸르른 교정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고팀장 안내에 따라 들어간 곳, 볼로냐대학교는 일반상가들과 섞여 있는 유적같은 모습의 길가 2~3층 일반건물이었다. 정확히 교문도 없었고 성당을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외관을 보며 다소 실망스러웠으나 이 학교 출신유명위인들의 얘기를 들으며 호기심과 경건함이 살아난다. 2층 계단으로 올라가니 긴 복도가 나타나고 벽에도 천장에도 각종 조각과 그림들이 가득하다. 복도에 연결된 방은 옛 강의실이라는데 지금은 문이 닫혔다. 현재 사용 중인 강의실은 관광외 지역인 것 같았다. 복도에서 대학교의 설명을 들었다. 볼로냐대학교는 볼로냐의 유일한 대학교이지만 1088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고 한다. 교훈이‘모든 학문이 퍼져나간 곳’이며 세계최초로 해부학을 가르친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법학, 신학(해부학 개구리)을 주로 가르쳤으며 해부학 창시자인 마르첼로 말피기, 철학자 피에트로 폼포나치 등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학교 앞 광장에 있는 동상이 개구리를 해부하는 과학자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우리 대학교와 달랐지만 세계최초의 대학교를 보았던 기억은 오래갈 것이다.
우리 일행들의 진지한 모습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은 이 지역 랜드마크라는 볼로냐 사탑을 보았다.
우리는 부지런히 사진들을 찍어 보았는데, 이곳 이탈리아는 성당도 건물도 도로도 모두들 비슷한 모습이라 고국에 돌아가서도 곳곳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랴 우린 현세에서 2천년을 돌아간 지구상의 고대, 중세모습을 보고 있지 않은가.. 유적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할 순 없겠지만, 책에서나 보았던 역사속의 실제문화를 보고 있으니 오늘을 감사하게 생각해 보자.<12.24일 검토 完>
이젠 중식을 먹으러 갈 차례, 오는 중식메뉴는 해물파스타라고 했다.
11:50분 출발,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다시 고속도로를 달린다. 넓은 평야에 끝없는 밭들이 펼쳐져 있다. 이 곳의 농부들은 대부분 광활한 농지를 가지고 있는 만큼, 농부들도 요일에 맞추어 일을 한다고 한다. 즉 농지를 6등분으로 나누어 요일별로 돌보는 지역을 정해놓고 제7일 일요일은 정확히 쉰다는 것이다. 나는 농업을 잘 모르지만 고개가 끄떡여 진다. 농업도 직장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처럼 노는 날도 없이 흙속에 파묻혀 살아선 안 될 것이다.
약 1시간20여분을 달려 도착한 식당 레스토랑 Venexian,
버스가 레스토랑 문 앞에 가까이 세우고자 도로를 한 바퀴 빙~돈다.
(앞에서 언급한 지라레가 나온다)
이때 고팀장 말,“기사님이 지라레해서 식당 앞에 차를 세우시겠다고 합니다” 말이 떨어지자, 모두들 폭소했다. 지랄? 욕인가.. (욕이 아니었다)
(다시 해설) 도는 것, 즉 회전하다의 이탈리아 말이‘지라레’라고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회전하다=지라레(Girare)였다.
식당 가깝게 정차한 기사님 배려로 쉽게 식당으로 입장했다.
해물파스타가 궁금하기도 걱정되기도 한다. 향이 강하거나 이상한(?) 맛일까 봐.. 주방장이 오늘요리는 망했다고 할 정도로 국수가 푸욱 삶아져야 한국 사람들은 좋아 한단다. 맞다. 잘된 파스타는 딱딱하고 맛도 못 느꼈으니까.
사전설명대로 실내에 들어서니 물위에 배를 띄우고 그 위에 식탁을 배치해 놓았다. 해상에서 식사를 하는 기분이다. 4명+4명+4명 우리일행 12명이 차례대로 앉았다. 최숙이님, 송순의님, 이명숙님과 같은 테이블이 되었다.
파스타가 나온다. 홍합, 조개가 얹어진 해물파스타..
기대대로 오늘 파스타 면발은 잘 삶아졌다. 주방장이 망했겠다 싶다. 꽤 내 입맛에 맞았고 모두들 만족스런 모습이다. 새로운 이탈리아 정식을 먹었다는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14:20분,
버스가 베네치아로 출발한다. 20여분을 달려가며 다시 해설을 듣는다.
▣ 베네치아(베니스) - 낭만적인 물의 도시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 위에 발달한 ‘물의 도시’ 베네치아은 역사 깊은 항구도시이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9-15C에 지중해의 상권을 장악하여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해왔으며, 동서양의 문물이 공존하는 합류 지점이었습니다. 이탈리아반도의 동쪽 아드리아해의 끝에 위치하며, 120개 정도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150개의 운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베네치아는 1500년 前 생긴 도시로 車, 오토바이, 마차 등의 이동수단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물의 도시답게 이동방법은 배(船) 뿐이라고 한다.
도시 진입세가 50만원정도이며 카사노바가 다녔다는 플라우어 카페(일명 꽃다방)도 유명하다고 한다.
베네치아 육지부분에 도착했다. 버스가 진행할 수 있는 곳(주차장)은 지정되어 있었다. 이곳부터 더 이상 버스가 갈 수 없으며 모든 이동은 도보와 배로 해야한다.
현지 가이드(한국여성)를 만났다. 자그마한 키에 가느다란 목소리를 가진 역시 중년아줌마다. 경상도 억양이 조금 들어 있었고 수신기를 통한 설명이 명쾌하다.
15:00분, 유람선을 타고 베네치아 본섬으로 들어간다.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영상으로 보고 말로만 듣던 베네치아를 본다는 생각에 피곤도 잊었다. 오히려 뱃전을 튕기는 하얀 물보라가 정겹다. 넘실대는 파란파도가 시원하다. 양측으로 늘어선 물의 도시 건물들이 보인다. 4~5층 규모의 역시 이탈리아 양식의 건물들이다.
가이드 아줌마를 따라 베네치아 본섬투어를 시작했다. 뒷골목으로 들어서보니 넓은 터가 나오고 성당이 보인다. 이곳에도 성당은 있었다. 성당 앞엔 베네치아 국기(?)가 걸려있었다. 뒷골목 민가에는 외벽배관이 집속으로 향했는데,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고 했다. 보이는 게 다 물이지만 바닷물이 아닌 민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성당 앞에서 베네치아 얘기를 다시한번 들었다. 이곳도 전쟁을 피해서 건설된 도시, 이탈리아로 통일되기 전엔 도시들 하나하나가 나라였던 것처럼 이곳도 베네치아공국이었고 이곳 사람들은 아직 이탈리아보다는 베네치아국민이라 생각하다고 하니 대단한 고집, 아니 자부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하긴 로마가 망하고 이탈리아로 통일되기 전까지 피렌체공국 밀라노공국..등등 도시 모두가 하나의 나라였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다. 현재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도시에는 프로축구팀이 있는데 지역 팬심이 대단해서 모두들 옛날 전쟁을 연상하듯이 엄청난 응원전을 펼치고 때론 폭행까지 일어나는 모습을 뉴스등으로 접한바 있어 그 뜻을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한편으론 이탈리아가 각각 도시별 나라를 아직도 주장한다니 한민족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나뉜 적이 있긴 해도 고려, 조선을 거치도록 한민족 대한민국이 아닌가.. 지금 남, 북 분단상태는 다소 아쉽지만, 선진국대열에 들어서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탄탄한 긍지가 느껴진다.
현재 베네치아는 해수면의 높이가 자꾸 높아져 물에 잠길 것이 걱정이고 지금도 만수위 때가 되면 무릎까지 물이 찬다고 한다. 걱정스러운 일이다.
▣ 산 마르코 광장- 유럽에서 가장 큰 산 마르코 광장(Piazza de San Marco)
산 마르코(San Marco)는 마가복음의 성 마가(St. Mark)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르는 것으로 광장의 역사는 두칼레 궁전과 산 마르코 성당이 세워진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2세기 운하를 메꾸면서 광장이 확장되었고, 16세기에는 로마인 건축가에 의해 르네상스 문화가 융합하여 도서관, 종탑 아랫부분의 기둥 등 여러 공용건축이 들어섰습니다. 이때 종탑(깜빠닐레)을 중심으로 한 산 마르코 광장이 완성되었습니다. 19세기에 나폴레옹에 의해 광장의 서쪽에 나폴레옹 관이 더해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종탑으로 갈릴레오가 천체 관측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합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탄식의 다리는 그 이름에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탄식의 다리는 총독부가 있던 두칼레 궁과 피리지오니 누오베라는 감옥을 연결하는 다리였으며 두칼레 궁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던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다는 의미에서 한숨을 내쉬었다하여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이곳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인물은 바로 작가이자 역사에 길이 남을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인데, 카사노바가 바로 이곳에 위치한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탈옥을 시도하였습니다.
다시 물가 큰 도로로 나와 17세기에 만들어졌다는 탄식의 다리를 건너며 사이사이 수로를 따라 움직이는 배들을 보고 물에 닿아있는 건물들을 보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사진) 베네치아 들어가는 길
(사진) 산마르코 광장
(사진) 베네치아 수상 골목길(인력배:곤돌라)
(사진)수상골목길 붉은 벽돌집
산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넓은광장을 중앙에 두고 중세 건물들이 넓게 둘러져 있다. 한쪽 측면에 상가, 카페가 들어서있고, 카사노바 놀이터 플라우어 카페도 그 중 한집이었다.
플라우어 카페 앞에서 사진 한 장씩 찍고 다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남성팀은 마실거리, 먹거리인 에스트레소, 스피나(생맥주)를 찾았고, 여성팀들은 쇼핑을 했다. - 우리 여사님들은 가죽 가방을 하나씩 샀다. 우리 안혜정 여사, 신춘희 여사님이 새로 산 가방을 보여준다.
베네치아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은 수상택시를 맞췄다고 했다. 12인승 수상택시 2대가 예약되어 있었다. 우리들 12명은 1호 수상택시를 탔고 고팀장과 가이드, 그리고 나머지 일행들은 2호 수상택시를 탔다. 베네치아의 주운하를 돌아 다시 육지로 나왔다. 우리는 책에서 보고, TV등으로 보았던 베네치아(베니스) 실물을 보았다. 섹스피어 작품‘베니스의 상인’베네치아를 본 것이다. 넓은 세상에 있는 유명한 역사 하나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나를 키우는 시간이다.
18:00 베네치아와 석별하고, 저녁 식사를 위한 식당으로 향한다.
오늘 저녁은 한식이다. 식당이름‘한국바다’메뉴는‘비빔밥’이었다.
주로 한국 사람들인 듯 많은 관광객이 북쩍이고 있었다. 멀리서 종업원복장의 한 청년이 큰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저 한국말 잘하죠”하더니“저 한국사람이에요”한다. 모두들 웃었다.
주로 동남아사람들인 종업원사이에 한국사람도 있구나 싶다.
간단한 식사, 한국식 비빔밥,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간다.
오늘 관광도 저물어 간다.
오늘 숙소는 호텔 크리스탈 트레비소(HOTEL CRYSTAL TREVISO)이다.
어젯밤은 호텔단수 소동으로 특별방(?)이 있음에도 밤 미팅이 없었던 아쉬움을 오늘밤은 풀어야 할 것이다. 장총무께서는 버스에서 내리며 버스기사에게 오늘 저녁회식용 캔맥주를 구입했다.
* 버스기사 판매, 물 1유로, 캔맥주 2유로
밤9시30분까지 38호실로 오라는 장총무님 메시지가 단톡에 떴다.
윤길준님“소주 가져갈까요?”
이명숙여사님“춘희씨도 오세요. 벌써 저도 왔어요”
윤길준님“박대장님 안 오시나요? 기다리고 있습니당”
우리 단톡방이 들썩이더니 38호실 집합이 시작됐다.
38호실은 민형님네 방이다. 결국 다시 큰형님네가 미팅방을 만들어 줬다.
큰 형수님 배려가 감사하다.
우리 안여사는 피곤해 쉬겠다기에 나 혼자 38호실로 갔다.
38호실에 들어서니 전면 화장대를 앞으로 끌어내 즉석 테이블이 만들어져 있었다. 여행 많이 다녀본 민형님 솜씨다.
(맥가이버 같다. 못하시는 게 없다)
컵라면을 끓고 소주, 맥주, 그리고 양주까지 나와 있었다.
양주는 큰형님이 오늘 같은 시간에 쓰려고 출발공항에서 미리 사셨다고 했다.
대단한 준비..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민형님님네, 윤길준-신춘희부부, 장성호-이명숙부부, 박형님과 나
큰형님 폭탄주 제의, 이런 날은 한잔함이 당연하지 않겠나? 남자들이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신춘희여사가 양주폭탄을 거침없이 마셔버린다.
신여사님도 기분이 좋은 상태이니까.. 어째튼 대단하다.
잠시 후에 신여사님 제안이 있었다. “내일 점심은 자유식으로 1인당 15유로씩 지급되는데, 지급된 180유로(12명*15유로)는 여성회원들게 주고 점심은 회비에서 사시도록 하세요”남성팀 대답“어느 정도 공감하나 결론은 내일 생각해 봅시다”였다. 양폭, 소폭이 오고 가고, 소주, 맥주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들 속에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이 흘러간다. 밤 11시가 넘어서며 내일을 위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각자의 방으로 간다.
또 하루 이탈리아의 밤이 지나간다.<12.05일 검토 完>
<10.19일, 목요일>
이제 새로운 이탈리아를 보는 날이다.
사전 설명을 들었던 바와 같이 오늘부터 북부 이탈리아를 보게 될 것이다.
06:00기상, 07:00 호텔조식, 08:00버스출발,
비가 오락가락하지만 예정된 일정은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침잠깐 에피소드,
신춘희여사님 어젯밤 양폭이 힘들었을까, 우리 단톡에 신여사님 문자가 올라왔다.
“폭탄주땜에 두통이..해장국 그립습니다.”그리고 고개 숙이는 이모티콘이 떴다.
의리있는 우리여사님들 답변,
이명숙여사님“컵라면??~ㅎ”
최숙이 형수님, "컵라면 끓여 줄까? 3분 후 오세요“
남편 윤길준님,”노탱큐, 얼큰콩나물국이 먹고싶다네요.“
신여사님은 그래도 기분 낼 줄 아는 파워가 있다. 남편 윤길준님은 좋겠다.
암튼, 본인은 힘들었을 텐데.. 우린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신여사님 대쉬(?)는 곧 효과를 보게 된다.
지금까지 이탈리아 중부권도시, 로마→ 피렌체→ 볼로냐→ 베네치아를 거치며 전통 이탈리아의 모습을 보았다면 이제부턴 이탈리아 반도 북부 접경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모습을 보게 되는 날이다.
08:50분, 알프스에 진입했다. 도로양옆의 산들이 거창하게 높고 우람하다.
좌우에 보이는 산들은 모두 알프스 산맥이라 했다. 앞산 뒷산이 설악산, 금강산을 둘러쓰고 있는 듯하다.
빨간지붕에 성낭갑을 닮은 그림 같은 집들, 그 앞에 넓게 내려앉은 포도밭..
▣ 코르티나 담페초- 눈으로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이태리 알프스 휴양도시
이태리의 알프스인 돌로미테 산맥이 병풍처럼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동화속 산악 마을입니다. 돌로미테란 이탈리아 북동쪽의 거대한 알프스 산악지역 전체를 뜻하며, ‘산들의 지붕’이라는 별칭을 가졌습니다. 여름에 트레킹과 자전거여행, 그리고 겨울에는 스키로 유명하며, 1956년 제7회 동계올림픽 개최지이자, 각종 영화와 CF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18개의 암봉우리와 가파른 절벽, 깊은계곡이 만들어 내는 돌로미테 산맥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계곡의 정취에 취해 있는 사이
11:00 무렵 코르티나 담페초에 도착했다.
입구에 동그라미 네 개가 걸렸다. 고팀장이 저게 무엇일까요? 묻는다.
오륜기? 1956년 코르티나 담페초에선 이탈리아 최초로 동계올림픽이 열렸고, 2026년 70년 만에 다시 밀라노, 코르티나 담페초에서 동계올림픽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저 동그라미는 오륜기가 아니다.
(사진) 코르티나 담페초, 동그라미4개 (사진) 담페초 시내(영순형님,순의형수살짝보임)
동그라미 4개는 아우디, 독일차 아우디의 기본마크이다. 독일의 아우디社가 이 마을을 후원하고,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사실 이탈리아 북부도시들은 이탈리아보다 접경국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이곳 주민들은 그 나라들을 선호하기도 한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었던 영향이라고 했다.
코르티나 담페초에 도착해서 주차장 아래쪽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시가지가 형성돼 있었고 대형마트 등이 있는 넓은 길 한복판에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14:00까지 자유시간이며, 어제 예고한대로 점심도 이미 지급된 비용을 활용하여 개별 자유식으로 하라고 했다. 시가지 중앙 돌길을 걸어 내려와 아우디 현판이 보이는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옆을 보니 커다란 쇼핑센터(마트)가 보인다. 나와 우리 안혜정여사는 이곳에서 집에 있는 손녀에게 줄 쵸코렛 등을 사기로 했다. 넓은 매장을 돌아보니 조각품, 인형, 문구류부터 쵸코렛을 비롯한 과자종류도 산더미 같다. 물건은 많았지만 대체로 비싼 편.. 흔해 보이는 인형도 20유로, 선물용 조각품은 대부분 100유로가 넘었다.
손녀용 초코렛만 몇 종류 사가지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민형님, 박형님 등 남성팀은 벌써 점심식당을 예약하고 내려온다.
부지런히 남성팀, 여성팀을 찾아 우리 12명이 모였고 예약된 식당으로 향했다.
깨끗한 자리에 12석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오늘 점심은 우리회비로 쏜다. 하나투어가 자유식으로 지급한 유로는 어제 신춘희여사님 제안대로 여성팀에게 주기로 했다. 신여사님 양폭 노고(?)가 통하는 순간이었고, 착한남편들 덕분이기도 하다.
식당에선 박영순형님이 히트를 쳤다. 아들이 깔아줬다는 외래어 번역 앱, 폰에 한국말로 얘기하면 이탈리아어로 변환된 말이 뜬다. 박형님이 메뉴주문를 한국말로 하고 폰을 보여주니 이탈리아 종업원이 웃는다. 폰에는 번역된 이탈리아 말이 떠있었고, 외국어를 몰라도 척척 대화가 잘된다.
참 좋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있다는 생각이 든다.
돈가스*생선가스, 샐러드, 그리고 스피나(생맥주)를 곁들여 현지식 점심을 먹었다. 일인당 20유로정도의 계산이 나왔다. 민형님과 난 메뉴판을 들면 스피나(SPINA)부터 먼저 찾았다. 아..생각난다. 스피나(생맥주)~!
14:00 코르티나 담페초를 출발했다.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테 산속 마을 코르티나 담페초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 브라이스호수로 간다.
(사진)브라이스호수, 산과 푸른호수 (사진)기암괴석 산과 조각배
15:00 무렵, 돌로미테 산에 둘러쌓인 브라이스호수에 도착했다. 오락가락하던 비도 그쳐 있었다. 약30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호수가 그리 커보이진 않았지만, 깊은 산속에 이런 호수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석회석이 많아 우리나라 계곡물처럼 명경지수는 아니었지만, 하얀색과 파란색이 섞여 청색을 띤 묘한 모습이었다. 멀리 배도 떠있고.. 트래킹코스도 있다지만, 시간관계상 우린 가까운 곳만을 각자 둘러보기로 했다. 신이 난 신춘희, 조영희, 안혜정 삼총사가 하늘을 나를 듯 폴짝폴짝 뛴다. 이 모습은 신여사님 폰에 담겼고, 민형님 카메라에도 담겼다.
우리 단톡에 동영상까지 올라와 빙긋이 웃었다. 언제 이렇게 마음 놓고 놀아볼 수 있을까.. 아내가 좋으면 남편도 덩달아 좋은 것, 다시한번 이번여행을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15:30분 무렵, 다시 버스가 출발하는데 멀쩡하던 하늘에서 비가오기 시작한다. 조금 전 자유시간의 멀쩡한 날씨는 신이 우리관광을 위한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달리는 버스차창 양쪽으론 온통 높은 산들만 보인다. 산비탈엔 드문드문 작은집들이 보이고 절벽 끝에 걸려있는 성당도 보인다. 저 곳으로 가는 길이 있을까..
뒷자리의 박영순형님은 절경에 감탄하며 연신 폰 사진을 누르고 있다.
얼마를 그런 경치를 보던 사이 계곡을 벗어나 평지가 나오며 도시가 보인다.
17:30분, 도로 옆 휴게소에 잠시 들렸다.
고팀장 안내말씀, 이곳엔 뉴텔라(쵸코가 들어있는 과자)라는 과자가 유명하며, 우리일정에 별도의 쇼핑이 없으니 이런 휴게소에서 쵸코렛, 와인 등을 미리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한다. 휴게소 물건도 대형마트 제품과 특별한 차이가 없다는 멘트도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일행은 와인도 사고 뉴텔라도 샀다.
와인은 병 하단부에 공간이 있는 제품이 좋은 것이라 했다.
저녁식사 안내,
오늘저녁식사는 현지식(피자한판)이라했다. 일인당 피자한판씩..?
18:00분, 버스가 출발해 트렌토로 향하는데, 왕복4차로 도로가 제법 많이 밀린다.
특이한 점은 수많은 물류트럭이 2차로에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다. 엄청난 교통체증임에도 누구하나 1차로로 튀어나오지 않고, 밀리면 밀리는 대로 기다리며 천천히 차례차례 2차로를 그대로 가고 있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모습이기도 하고, 기다릴 줄 아는 유럽인의 특성이기도 한 것 같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써 1차로 추월을 시작했을 것이고, 승용차와 화물차가 뒤섞여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어쨌든 이 또한 신기한 장면이다.
18:30분, 저녁식사 식당에 도착했다.
메뉴는 예고한 대로 정말 피자한판이었다. 다만 두께가 얇은 편이었으므로 거의 다 먹을 수 있었다. 둥근피자 외곽의 두툼한 부분만 남겼다. 마치 속만 파먹고 남긴 빵조각처럼.. 민형님, 박형님, 그리고 나는 역시 맥주를 곁들이며 저녁을 먹었다. 유럽은 맥주천국인가보다..
20:10분, 식당출발, 20:40분 호텔에 도착했다. -Mercure Hotel
방 배정(704호)을 받고 나니 21:10분이다.
여행 여러날째 피곤이 몰려온다. 단톡에 오늘 밤 미팅은 없음을 알렸다.
윤길준“네, 푸욱쉬세용”박형님“수고많았어요..편안히쉬세요”글이 뜬다.
5번째 밤이 깊어간다.
모두들 깊은 휴식을 취하고 나면 내일은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12.6일 검토 完>
<10.20. 금요일 6번째 날>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보인다.
06:00기상, 07:00조식, 08:10분 버스출발이다. 역시 패키지의 변함없는 일정이다.
오늘은 이탈리아 마지막 여행지 밀라노까지 간다.
역시 알프스산맥이 양쪽에 펼쳐지고, 그 아래엔 포도밭이 자리를 잡았다.
말라노로 가는 도중엔 들를 곳이 있다고 했다. 시르미오네..
09:10분, 오늘의 중간 기착지,‘시르미오네’마을에 도착했다.
▣ 시르미오네 - 가르다호수에 삼면이 둘러싸인 아름다운 휴양도시
길이 약50km의 바다와도 같이 큰 가르다 호숫가에 위치한 시르미오네는 로마시대 귀족들의 휴양지였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인근에 위치하며 중세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로 거대하고 평화로운 가르다 호수와 어우러져 잊지 못할 풍경을 선사합니다.
산속의 바다 가르다호수를 끼고 있으며 대부분의 집들은 요트까지 가지고 있다. 한여름엔 수많은 관광객이 휴가를 즐기고 요트를 타기위해 이 곳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입구인 스칼라궁전까지 걸었다.
물론 관광에 필수코스인 유료화장실도 스칼라궁전 입장 전에 미리 다녀왔다.
스칼라궁전에 들어서니 입구 연못엔 팔뚝만한 송어들이 놀고 있다.
입구는 내부 상가지구와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상가사이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시르미오네를 투어한다. 인구7,000여명의 마을, 시르미오네..
시혼비오네 꽃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올리브나무가 있었고, 감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암수가 구분된다는 커다란 사이프러스나무가 많았는데, 호텔 주위 개인집 정원 뜰에서 자라고 있었다.
* 이 마을 내부에는 별 세개, 네 개정도의 호텔이 여러 곳 보였다. 지금은 다소 한산해보였지만 한여름엔 많은 관광객을 상대할 것이다.
(사진) 마리아칼라스 별장 (사진) 산속의 바다 가르다 호수
나무들을 보며, 고팀장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마리아 칼라스 별장’이 나타난다.
이층건물, 화려하진 않지만, 당시 별장으론 손색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디바, 마리아칼라스(성악가)가 이곳을 좋아해 별장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 별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다가 좌측으로 돌아가니 가르다호수가 나타났다.
정말 산속의 바다였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이곳 내륙지방 사람들은 바다에 가는 대신 이 곳에서 휴가를 즐긴다고 했다. 호수 옆으로 작은 출입구가 있었고 이곳은 다시 스칼라궁전내부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궁전입구에‘Kiss Plase'가 적힌 포토 죤이 있다. 이곳에선 반드시 Kiss를 해야 궁에 들어갈 수 있다던 가이드 권고에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서울팀부부가 용감하게(?) 뽀뽀를 했다. 보는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
스칼라 궁전을 통해 다시 마을 밖으로 나왔다.
사실은‘시름이오네’마을 소개를 받으며 한국어‘시름이 온다’와 비슷해 기억하긴 좋았으나, 한국말‘시름이 온다’는 걱정거리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좋은 이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기우였다.
이탈리아는 남쪽지역은 여름에도 에어컨조차 제대로 없어 힘들게 살고 북부지역엔 부자들이 많이 산다고 했었다.
이곳은 북부지역 다웠다.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집들에겐 에어컨용 실외기가 달려 있었고, 소형차가 주류를 이루던 로마지역과 달리 고급차량들도 많이 보였고, 여름철엔 가르다호수에서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어떤 게 좋을지.. 각자의 삶이다.
▣ 밀라노(Milano) - 이탈리아 경제적인 중심지 밀라노
밀라노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의 주도로 예로부터 경제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도 북 이탈리아 공업지대의 중심도시이자 문화 중심지입니다. 밀라노는 패션뿐만 아니라 음식, 오페라, 두오모성당과 유럽 오페라의 중심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로 유명합니다. 밀라노의 중심가는 두오모 광장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로 불리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아케이트로 전통있는 유명한 카레와 부티끄가 줄지어 있으며, 연중 수많은 전시회가 열립니다.
10:40분, 밀라노를 향해 출발한다.
차창엔 다시 비가 오락가락, 오늘도 맑은 날을 기대하긴 어려울까 보다.
앞을 보니 건설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동식 타워크레인, 펌프카, 레미콘, 교량 콘크리트 타설.. 좋지 않은 날씨에도 일을 해야 하는 저 사람들도 공사기한이 바쁜가보다.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다.
이제 알프스 산악지역을 벗어나서 차창엔 나지막한 야산, 작은 수로, 넓은 밭, 아담한 농가주택들이 군데군데 펼쳐져 있다.
11:30분, 휴게소에 들렸다.
초코렛, 오렌지쥬스, 에스프레소, 사탕.. 휴게소마다 유사한 물건들이다. 일행들 은 저마다 막바지 여행에 필요한 쇼핑들을 한다. 생 오렌지를 직접 짜주는 즉석오렌지쥬스 코너가 특이해 보였다. 집사람과 한잔씩 주문해서 마셔보았다. 향도 좋고 맛도 괜찮았다. 에스프레소도 한잔했다.
12:00분, 버스에 올랐고 다시 출발한다.
고팀장의 이탈리아 안내가 시작된다.
이탈리아 관광버스(기사)는 매일 11시간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저녁8시까지는 호텔에 도착, 운행을 마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즉 다음날 8시 출발을 위해서는 전날 저녁 8시까지는 운행을 끝내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 운전 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4시간30분운행하면 반드시 45분간 휴식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이것도 안전을 위한 필수 조치이다.
운전기사는 운행개인기록카드를 가지고 있는데, 불시 조사할 때면 안전준수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개인기록카드를 제시해야하고, 안전 미준수 1회적발 벌금, 2, 3회 적발 시에는 관광버스면허가 취소까지 된다니 이는 안전에 중점을 둔 좋은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고 있는 밀라노(Milano)는 경제와 패션의 도시이다.
인구는 근교까지 합치면 약300만명으로 인접국 스위스와는 불과 30km 거리로 가까워 출퇴근도 가능하다고 한다.
10월 중순인 오늘 기온은 17~19도를 보이고 있다.
잠시 후 밀라노에 도착했다.
밀라노도 이탈리아 통일 이전에 다른도시와 마찬가지로 독립국가인 밀라노공국이었다고 한다. 1870년 통일이 되었지만 아직 이탈리아가 아닌 단독나라로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이탈리아 프로축구가 벌어질 때면 도시를 대표하는 팀들의 게임이지만, 국가 간 시합이라도 되는 듯 신들린 응원이 펼쳐진다. 밀라노도 그들 중의 하나다.
밀라노 외곽에 버스를 정차하고 고팀장을 따라 밀라노 시가지 관광에 나섰다.
시내도로엔 아직 전차가 다니는데 100년이상된 고물 전차가 있는가 하면 신형의 새 전차도 보였다.
(사진) 밀라노시가지 (사진)시가지도로에 전차길(일사회 멤버들)
시가지대로(大路)는 아스콘 포장도로였지만 이면도로 등은 돌 포장 길이 많았다. 그리고 밀라노는 자전거 우선도시라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와 사람이 충돌하며 자전거가 아닌 사람에게 먼저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 환경을 생각하는 경제도시의 모습이긴 했지만 여기저기서 담배냄새가 나고 옛 모습을 풍기는 4~5층 정도의 갈색건물들에게선 경제 대국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과 경제소득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한다는데 개인소득 3만7천불이란 말이 믿겨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탈리아를 노쇠한 선진국이라고 하던가.
13:00분, 점심식당에 도착했다. 메뉴는 일식이다. 스시, 튀김, 연어과 볶음밥이 나왔다. 중식으론 괜찮은 편이다. 다들 맛있게 먹었다.
14:00분, 본격적으로 밀라노 시내관광에 나섰다.
고팀장을 따라가며 수신기를 통해 밀라노를 듣는다.
밀라노(공국)에는 GZ(거지)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세금을 제대로 못내는 사람들이다. 세금을 제대로 내면 노후가 확실히 보장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저렇게 된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급여의 40%에 달하는 세금을 내느라 허덕(?)이니 좋은 옷, 좋은 집에서 살기 힘들고, 오히려 정당하게 세금내고 정년을 맞아 국가 장학금(?) 받는 노년층에 멋 이가 많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곳 젊은이 들도 전형적인 유럽사람들처럼 실속형이라 꼭 필요한 것만 사고, 크리스마스에도 가족과 함께 대부분 집에서 보낸다고 한다. 가끔 이 곳에 온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고 시내의 떠들석함을 즐겨보려 시내에 나가 보지만, 오히려 시내는 조용해 실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 밀라노 두오모성당 (사진) 필자 뒤, 비둘기 먹이주기 모습
▣ 밀라노 두오모(Duomo) - 이탈리아 고딕건축의 정수
두오모 대성당은 2245개의 거대한 조각군으로 장식되어 있고 135개의 첨탑이 하늘로 치솟아 있습니다. 가장 높은 첨탑에는 도시를 수호하는 황금의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1386년 밀라노 공 잔 갈레아치오 비스콘티 공작의 명으로 착공되었으며, 450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어 19세기 초에 완공되었습니다. 두오모 성당 정면 앞쪽으로 두오모 광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광장은 시 당국의 계획으로 1862년 건축가 주세페 멘고니가 조성했습니다. 중앙에는 비토리아 엠마누엘레2세의 기념 동상이 서있고, 밀라노 시민의 휴식 장소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밀라노 안쪽을 보기위해 한국의 명동같은 시내 한복판까지 걸었다.
레오나르도 박물관, 두오모성당 광장에 들어섰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가득했고, 결혼식 부케를 든 사람, 비둘기를 모아 먹이를 주는 사람, 우리같은 관광객들이 온통 뒤엉켜 있다.
스위스도 가까운 거리라 불금이면 스위스사람들도 이곳으로 많이 온다고 한다.
광장에서 고팀장의 1차 안내설명을 들었다. 두오모 성당 꼭대기까지 입장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앞쪽 통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며 요금은 약10~15유로, 뒤쪽 통로는 걸어서 가는 통로인데 입장료는 3~5유로라 했다. 성당옆 유료화장실은 2유로를 받는다. 관광지는 움직이면 돈(?)이다.<12.7일 검토 完>
(사진) 밀라노 빅토리아 갤러리(명품상가) (사진) 스칼라 극장
밀라노 상권중심지 빅토리아 갤러리,
상가 지역은 광장좌측에 지붕이 씌워진 기다란 공간이었는데, 가로 세로 통로 좌우에 4~5층 정도의 명품가게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가로, 세로 통로 지붕이 십자가 모양을 닮았다는데 실제 십자가처럼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다고 한다. 갤러리 통로 중앙교차점에 서서 고팀장의 2차 설명을 들었다.
페라리 프라다, 구찌, 루이비똥, 리쪼리(서점)가 보이고.. 알 수 없는 명품가게들이 즐비하다. 중앙교차점 한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다가가보니 한 남자가 중앙바닥에 새겨진 황소조각품 급소(?)에 발뒤꿈치를 대고 힘차게 돌고 있다. 이렇게 황소의 가운데 중요부위에 발을 대고 세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던가.. 돌고 있는 남자 주위사람들도 다들 차례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이 모습 또한 나름대로 이 지역 명물이란 고팀장의 설명이다.
▣ 스칼라 극장 - 세계적인 오페라의 메카, 스칼라 극장(Scala Theatre)
1778년에 세워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어 1946년에 재건된 곳입니다. 19세기 이후 푸치니, 로시니, 베르디 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들의 작품이 초연되었으며, 심플한 외관과 대조적으로 3,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내부에는 붉은카펫과 화려한 상들리에가 늘어져 있어 더욱 고급스러움을 더합니다. 오페라 시즌은 12월 초부터 이듬해 7월초까지이며, 9월부터 11월까지는 콘서트나 발레가 공연됩니다. 건물내에는 스카라극장 박물관이 있어 오페라에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푸치니, 토스카니니, 마스카니 등의 흉상과 더불어 오페라 공연 때 실제 착용했던 의상, 도서자료, 미술품 등 스칼라 극장의 역사가..(그대로 표현돼 있다.)
가로통로를 통과하여 밖으로 나오니 스칼라극장이 보인다. 우리나라 소프라노 가수 조수미도 공연했고 각종 오페라행사가 펼쳐지는 곳이라는데 외관은 그냥 보통 일반건물의 수수한 모습이다.
하지만 내부는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행사 때면 멋진 변신을 거듭한다고 한다. 붉은 카펫이 깔리고, 화려한 샹들리에가 늘어지며, 음향은 웅장해 진다. 이 붉은 카펫을 밟는 것은 세계적인 오페라가수들의 꿈이기도 하다.
스칼라극장 앞에서 15:15~17:20분까지 2시간여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곳에서도 우리 남성팀들은 커피, 스피나(생맥주)를 팔고 있는 휴식처를 찾았고, 여성팀들은 패션투어를 시작했다.
우리들은 박물관, 성당을 한 바퀴 돌고나서 카페 한쪽 코너에 자리를 마련했다. 민형님과 난 스피나를 시켰고, 박형님, 장성호, 윤길준, 박진열님은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종업원 청년에게 거스름돈 유로 동전을 팁으로 주니 대우가 조금은 달라지는 것 같다.(친절 곱하기?)
(사진)밀라노 지하철(Metro) (사진) 밀라노 명품거리(일사회 멤버들)
한참을 있어도 집합시간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고, 민형님과 나는 화장실을 찾아 볼까 해서 지하철(Metro) 입구 간판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철은 지하1층에서 표를 구입하고, 그 아래 지하2층에서 지하철을 타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좁은 입구와 달리 내부은 꽤 넓은 편이었다. 우리 지하철과 별로 다르지 않은 구조였지만 화장실은 찾기 어려웠고, 어렵게 찾은 화장실조차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야속하기만 했다. 한국의 지하철 곳곳에 널린 공짜 화장실이 그립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성당 옆 유료화장실을 이용했다. 화장실 이용료는 2유로(2,900원), 매우 비싸다. 투어를 하며 맥주는 좋았지만 화장실은 걱정스런 일이었다.
집사람에게 문자가 들어온다.
‘어디들 계신가요’ 광장반대편에 여성팀들이 있었다. 조금 전에 헤어졌건만 오랫만에 만난 것처럼 반갑다. 쇼핑결과를 물으니 말도 말라며 웃는다. 명품은 가방하나가 1,600~3,300유로 정도였으며, 그 외 모든 명품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들이었다 한다. 당연히 살 수 없었겠지만 그런 쇼핑이 필요한지 의문도 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여성들은 한번쯤 명품을 가져보고 싶을 것이고, 마음껏 쇼핑하도록 지원해 주지 못하는 남편으로서의 미안함도 있다.
남성들은 스피나(생맥,400cc는 6~13유로 정도였다) 한, 두잔으로 만족할 수 있지만 섬세한 여성팀들은 넉넉한 쇼핑을 하고도 싶었으리라 생각된다.
여성팀은 명품쇼핑에 실패했지만, 꽤 괜찮은 자유시간을 즐긴 듯하다. 관광객에 둘러 쌓인 버스킹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신춘희여사님 폰을 통해 우리 단톡에 올라왔다. 최숙이 큰형수부터 흥 많은 송순의형수, 총무님네 이명숙여사, 박진열님네 막내 조영희여사까지 춤을 추고 있다. 조영희여사는 바람막이 겉옷까지 흔들며.. 타국에 와서 자유로이 즐기는 아내들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다. 오늘 여행에 또한번 감사하는 마음이다.
17:30분경, 자유시간이 끝나고, 저녁식사 식당으로 출발했다.
저녁식사는 수제 정통피자 반판+리조토
어제는 피자한판이었는데, 오늘은 반판이라.. 조금 신경이 쓰였다.
우리 패키지 일행 21명자리는 2층에 마련돼 있었다. 우리일사 12명은 8+4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어제에 이어 피자를 먹는다. 이젠 피자도 주식처럼 잘 먹는다.
붉은 와인, 백색와인을 시킨 사람들이 있었고, 민형님과 나, 윤길준님은 스피나를 시켰는데, 신춘희 여사님은 콜라를 주문했다. 술은 절대 사양이란다. 지난밤 양폭의 여파가 아직 남았다던가..
연속된 피자식사였지만 오늘 저녁식사는 생각보다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 후 20시 무렵 호텔에 입실했다.
코즈모 호텔 토리(COSMO HOTEL TORI), 이탈리아 마지막 밤을 보낼 호텔이다.
방을 배정받아 입실하고 잠시 후 20:46분, 집합을 알리는 일사 단톡이 시작됐다.
(단톡내용)
- 민형님,“젓가락 있으시분~”
- 박진열,“씻고 짐정리하고 맥주들고 가겠습니다.(이태리맥주)”
- 조영희여사,‘오늘 신나게 놀던 모습을 포함, 오늘 찍은 사진들을 올려준다’
- 윤길준,“젓가락 두 개, 포크 한 개있습니당, 모임장소는?”
- 민형님,“107호 장총무님은 어디로 갔어요?”
- 장성호,“120호실로 옮겼습니다. 호텔 안내문 부탁드립니다.”
- 민형님,“모임장소 104호입니다. 오실 때 젓가락이나 포크를 가지고 오세요”
- 윤길준,“의자 하나씩만 들고 오세요”
21시 반 무렵, 모두들 모였다.
11명, 우리 안여사만 매번 결석이라 내내 미안한 마음이었다. (집사람은 피곤이 가득하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각 팀들은 가방에 남은 것들을 다가져왔을까.. 소주 맥주가 탁자위에 가득하다. 라면도 있고 과자도 있고..
근데 민형님이 웃으며 말한다.“마지막 밤에 이렇게 다가져 오시면 어쩌라는 건가요. 남으면 내 가방에 담으라구요. 안돼요. 남는 술은 각자 도로 가져가세요.”그 소리에 “푸하하~”한바탕 웃었다.
술이 몇 순배씩 돌아가고 이탈리아 여행소감 한마디씩이 시작됐다.
- 이명숙여사,“여행 직전 잇몸이 몹시 아파 여행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었지만 약을 지참하여 동행했는데 여행 오길 잘했고, 3일째 저녁자리를 만들어주시는 민승관-최숙이언니부부에 감사드립니다”
- 최숙이 형수,“즐거운 여행을 만들어준 일사회 모임에 감사하고 모두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 송순의 형수,“즐거운 저녁자리에 감사드리며 일사 모임에도 감사드립니다”
- 조영희여사,“저는 친정집에서 어릴 때부터 맏이로 자라 언니소리를 잘못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언니소리도 하고 자연의 즐거움을 느껴 매우 좋았습니다. 춤도 추어보고..”
(사진) 이탈리아 마지막밤(남성팀) (사진) 이탈리아 마지막 밤(여성팀)
모두들 즐거움만 있는 시간인가 했는데, 예상못한 착오도 있었다.
조금 전 장성호총무께서 배정받은 107호실 문을 열다 문이 망가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수리비 선금을 호텔에 납부하고, 여행자보험으로 처리하기로 했다는데, 아쉬운 일이었다. 수리비를 우리회비로 집행하자 제안했지만, 장총무께선 여행자 보험처리가 된다고 한사코 걱정 말라고 한다.
잘 처리되길 기원해본다.
좀 더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작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일사의 밤, 이탈리아의 마지막 밤이 이렇게 깊어간다.
5. 돌아오는 길(밀라노공항⇒ 프랑크푸루트⇒ 인천공항)
<10.21. 토, 흐림>
05:30분 기상, 06:50분 조식, 07:30분 공항으로 출발
공항은 항상 예정보다 빨리 가야한다. 사전 수속절차도 있고 수화물처리도 해야하며 예기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차는 놓치면 다음차를 타지만 비행기는 당연히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은 밀라노공항에서 프랑크프루트까지, 그리고 프랑크프루트에서 잠시 대기후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08:30분, 밀라노공항에 도착했다.
경제도시의 유명세에 비해 공항시설은 빈약해 보인다. 내부 시설들도 오래되었는지 색깔도 모양도 산뜻함이 없다. 화장실도 매우 작았고 청소상태도 불량하다.
09:25분경, 선물구입 텍스처리를 하고 수화물 발송도 완료했다.
비행기좌석은 민형님이 미리 수고를 해주신 덕분에 예정된 좌석에 혼란스럽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모든 상황이 차곡차곡 예상대로 진행되었고, 따라서 시간도 꽤 남았다.
밀라노공항에서 약 2시간여 자유시간을 가지고
11:20분 프랑크프루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비행기는 독일항공(루프한자)이 될 것이다.
밀라노-프랑크푸르트는 서울-제주정도의 짧은 비행시간이었다.
(사진)프랑크프루트 공항 (사진) 공항 대기중인 일사회원님들
13:10분, 독일 프랑크프루트공항에 도착했다. 날씨 쾌청, 파란하늘에 하얀구름이 두둥실 떠있다. 독일구름도 이쁘다.. ㅎ
기온이 16도이고 바람이 약간 세지만, 밀라노보다 양호한 기온이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다시 얼마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여전히 남자팀은 맥주 등 먹거리를 찾았고, 여성팀들은 쇼핑을 했다.
(사진) 인천도착 56분 전 (사진)모니터로 보는 인천행 우리비행기
15:30분, 드디어 우리나라 인천으로 갈 비행기에 탑승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루프한자 독일항공이다. 이제 13시간의 비행이 시작됐다.
내일 9시반경이면 우리는 다시 인천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의 들떠있던 마음이 고국으로 간다는 생각에 색다른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내나라 내 조국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역시 올 때와 같이 2번의 기내식, 기내 화면을 통한 영화, 음악감상을 하며 지루함을 달래 보았다. 똑같은 코스를 다시 돌아가고 있지만, 피곤은 2배가 되는 듯하다. 매일 5시~6시 기상해서 뛰던 패키지의 일정 때문일 것이다. 피곤 속에서도 시간이 흘러가고 비행기는 조국 인천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얼마를 날았을까.. 인천공항 도착을 알리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시간은 오전10시(한국시간)를 넘어서고 있다. 다소 지연된 시간이다.
10:40분에 인천공항도착, 예정보다 늦은 시간이라 마음이 바쁘다.
집사람과 나는 예매한 11:40분 원주행 공항버스를 타려면 서둘러야 했다.
일행에게도 고민성팀장에게도 간단한 인사만 남기고 우리 부부는 화물을 찾는 곳으로 부지런히 달렸다.
11:15분 화물을 찾고, 원주행공항버스표를 찾았다. 그제서야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내 조국의 편안함에 배고픔이 밀려온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김밥 등 간단한 음식을 사 먹으며 성공적인 지난 일주일을 자축해 본다.
원주행 버스에 앉아 폰을 열어보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몇 해 前 홋카이도 여행 때도 그랬지만, 헤어짐 인사는 이렇게 폰일 수밖에 없다.
톡에 뜬 우리 님들 인사문자..
- 이수빈(11:58),“이탈리아(여행), 정말 좋았죠? 악수를 못해 아쉽네요. 내년11월에 만나요. 본~조르노, 그라치에~!”
- 이명숙여사(12:07),“저희는 버스 많이 기다려(야해서) 민형님네와 전철로 가고 있어요. 내년에 만나요, 그라치아~”
- 신춘희여사(12:12),“저희도 차 찾아서 가고 있어요. 알프스 산들을 보다(보니) 한국산들이 낮아 보이네요. 건강하게 돌아와 다행입니다. 건강하게 또 만나요”
- 박진열님(12:16),“저희는 인덕원 제 오피스텔에 가서 짐정리하고 세종가려고 버스 기다리는 중입니다. 여행 준비해주신 민형님, 일정 챙겨주신 총무님 감사드립니다. 다음 모임에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 조영희여사(12:40),“순 우리말로 그라제잉~~(웃음),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 이명숙여사(12:43),“ 그라제잉 딱이네요. 내년에 만나면 본~조루노!! 그라제잉!! 잊지 말아요 한번씩 외쳐 주세요♡”
- 민승관형님(13:12),“저희는 집에 도착했습니다. 회원님들 협조로 즐거운 여행을 마친 것 같습니다. 내년 11월에 뵙겠습니다”
- 조영희여사(13:23),“항상 응원해요(이모티콘)”
- 이명숙여사(13:25),“그라제~잉!!~~수고많으셨습니다, 사랑합니데이♡♡”
- 윤길준님(14:26),“즐건시간, 좋은기억의 추억시간 이탈리아여행이었습니다.
푸욱 쉬시고 또 파이팅하세요”
- 박영순형님(17:49),“가족 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항상건강하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돌아오는 날, 저녁까지 폰인사가 계속됐다.
이후로도 민형님은 열심히 찍은 추억사진을 폰, 카페에 올려주었다.
일사회원님들, 모두들 열심이고, 진심이 가득한 우정이 넘치는 모습이다.
6. 맺는 말
이제 뉴스 등에서 이탈리아얘기가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인다. 걸어서 세계여행 등 해외여행 프로그램에서 이탈리아가 나오면 우리에게 낯익은 곳도 자주 뜨이리라. 반가울 것이고,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더 깊게 느낄 수 있으리라.
이 것은 여행 다녀온 자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 10월25일, 볼로냐 대표탑(98m) 기울어져 붕괴위험,
- 11월8일, 한ㆍ이탈리아 정상회담..
- 11월7일, 민형님 사진이 한보따리 폰에 올라왔다
- 11.27일, 장성호총무님 파손되었던 문 보상은 여행자보험처리 완료되었다는 소식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고, 만남도 계속될 것이다.
일사님들 12명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본다.
여행 후 한달여가 지난 11.19일, 여행후기 초안을 마무리했지만 다시 읽어보며 나름 다듬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내가 찍은 사진을 삽입하면서 용량이 커져서 그런지 글 자체가 자꾸 다운되어 애로사항이 많았다. 특히 나는 인물사진을 별로 안 찍다보니 올린사진에 회원님들 얼굴이 별로 없어 아쉬울 것 같다.
하지만 원본을 그대로 보내드리면 각자 자신의 사진을 삽입해 보셔도 좋겠다. 그리고 민형님께서 많은 사진을 가지고 계시니 사이사이 좋은 사진을 편집해서 다음 정기모임 등에서 함께 나눠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이탈리아 지식이 부족하여 이탈리아의 역사, 종교, 문화, 유적 등의 중요한 역사기록은 거의 직접 적지 못하고 하나투어의 안내지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대신했다. 따라서 이 글은 우리 일사님들 여행동선에 초점을 맞추었던 바, 그런 점을 이해해 주시고 부족함이 있더라도 즐겁게 보아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쨌든 기억하고 싶은 우리의 여행을 머릿속에서 꺼내 나름의 글로 적어 보았고 이글이 나름 일사회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본~조르노~!
그라치에(그라제 잉)~!!!
2023. 10.15~10.22일 이탈리아 여행(6박8일)
후기 작성 일사회장 이수빈 드림
(추신)
좋은 사진 많이 찍으신 민형님께서 글 사이사이 적당한 사진이 있으시면 편집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단체사진들을 넣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글 마지막 아래 공간에 지난번 삿뽀로여행처럼 멋진 우리 일사님들 단체사진 한 장 넣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글은 회원님들 메일로 우선 보내드리고, 내년 정기모임때 민형님께서 사진 등을 추가 편집해서 다시 나눠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