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시가총액 1위 알짜은행 '웰스파고 Wells Fargo'
고객 한 명에게 여러 상품 패키지 판매 기존 고객 만족시켜 반복 구매 이끌어
순이익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19.5%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매출 2배 불려
- ▲ 1852년 설립 후 올해 창업 160주년을 맞은 웰스파고는 당시 '골드 러시'를 찾아 몰려온 투기꾼과 벤처기업가를 상대로 역마차(stagecoach)를 이용해 미국 서부와 동부를 오가는 운송 회사로 출발했다. 이후 금융업으로 업종을 바꿔 250여개의 금융회사를 인수합병하며 대형은행으로 성장했다. 존 스텀프 회장은 "역마차는 웰스파고 고유의 '지역 밀착형'기업을 보여주는 정신적 뿌리"라며 "마차는 곧 고객이며, 마차를 이끄는 말(馬)은 웰스파고의 팀 멤버(직원)"라고 말했다.
JP모건체이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아니라 국내에는 생소한 웰스파고(Wells Fargo·시가총액 1797억달러·올 8월 30일 기준) 은행 얘기다. 웰스파고의 시장 가치는 BOA(시가총액 861억달러)의 두 배가 넘고, 순이익은 세계 최대 유통기업인 월마트(156억달러)를 능가한다.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19.5%)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웰스파고가 수익성과 실력, 투자자 선호도 등에서 가장 앞선 '진정한 1등'인 셈이다. 미국 내 9000개 지점과 26만5000명의 직원을 둔 웰스파고는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서진원 신한은행장 등이 적극 벤치마킹하고 있는 은행이기도 하다.
지난달 초 샌프란시스코 금융의 중심 몽고메리가에 있는 웰스파고 본사.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서 내리자 백발의 신사가 손을 들며 나왔다. 존 스텀프(Stumpf·59) 회장이다. 9.9㎡(약 3평)쯤 되는 그의 집무실을 들어가자 옅은 갈색 카펫 위에 책상과 낡은 소파가 놓여 있었다. 2009년 월스트리트 연봉 1위(2130만달러)인 '빅샷(big shot·거물)'의 집무실치고는 너무 단출했다.
기자가 직전에 둘러본 본사 주변 웰스파고 지점 3곳이 모두 대리석과 최고급 목재로 내부 치장을 하고 천장에 샹들리에를 걸어놓는 등 5성급 호텔 같은 분위기였던 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집무실이 너무 소박한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라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고객이 금융상품을 사는 지점을 우리는 '가게(store)'라고 불러요. 또 고객들이 최대한 만족과 편안함을 느끼도록 가게를 아주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꾸밉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회사의 '스타'는 현장에서 고객의 금융업무를 봐주는 은행창구 담당 직원이지, 제가 아닙니다."
어깨에 힘주며 위압적인 모습은커녕 갓 사업에 뛰어든 20~30대 창업자와 같은 열정이 그에게 흠뻑 느껴졌다. 그는 기자도 편안히 대접해야 할 고객으로 의식했는지 "나도 한국인처럼 돌솥비빔밥과 불고기를 즐겨 먹는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웰스파고는 '금융상품 전문 유통 기업'을 지향합니다. 우리의 경쟁자는 고객들이 그 회사의 제품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반복적으로 구매하는 애플·구글·아마존 같은 기업입니다. 맥도날드의 '해피밀(happy meal)'처럼 우리는 금융상품을 '패키지'로 제공합니다. 햄버거, 콜라, 감자튀김은 물론 갖고 싶은 장난감까지 모두 드리는 것이죠!"
웰스파고의 성공 비결로 그가 가장 먼저 꼽은 것은 '고객에게 충실해 고객을 부자로 만들라'는 기업 철학이었다.
다른 하나는 경쟁자들과 반대로 가는 것을 두려워 않고 즐기는 담대한 '독자 경영 전략'이다. 경쟁사들이 몸집을 늘리려고 대대적으로 해외 소매금융에 진출할 때, 웰스파고는 성급한 해외진출을 거부했다. 경기가 좋을수록 대출을 더 억제하는 것 역시 160년 된 웰스파고의 생존법이다.
"성장 방법에는 인재 양성, 인수합병(M&A), 기존 고객 활용 극대화 등 세 가지가 있지만, 마지막을 잘못하면 앞의 두 개는 소용없다고 확신해요."
JP모건체이스·바클레이즈·골드만삭스 같은 전통의 강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변신에 실패하고 도덕적 해이에 빠져 줄줄이 추락하는 와중에, 웰스파고는 매출·시가총액 등을 두 배씩 불리며 신흥 최강자로 치솟았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 불신이 고조되고 있는 요즘, 글로벌 금융계의 롤 모델로 떠오른 웰스파고와 스텀프 회장은...
"경쟁자가 지점 늘릴 땐 우린 줄였고, 불량 파생상품은 손도 안 대… 청개구리 정신이 성공비결"
금융상품 패키지 판매로 히트_은행 부서 간 소통의 벽 허물어
고객 수요 파악해 여러 상품 팔아 채권 회수ㆍ비용 절감에 훨씬 유리
고객도 금융비용 부담 줄어 이익
고객을 부자로 만들어라_고객 수십만명 초청 워크숍
전문가들이 모기지 상품 상담 부가가치 극대화 도와줘야
세계 중산층 붐 일어날 것_불황이지만 기업들 현금 엄청나
지금은 저축하고 빚 갚는 시기 '자신감 적자' 벗어나면 성장
영웅적 CEO는 없다_팀플레이 하는 참여형 CEO 지향
요즘 시기 금융권 리더에겐 신뢰가 가장 중요한 덕목
- ▲ 웰스파고 존 스텀프 회장
유년 시절 소젖을 짜기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났던 그는 지금도 오전 4시 30분에 기상해 5시 30분까지 사무실에 도착한다. 승용차보다 걷는 게 익숙해 45분 정도 거리인 집까지 걸어서 퇴근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제빵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금융계 투신 후 1998년 노웨스트(Norwest)은행과 웰스파고의 합병을 주도했으며 2008년에는 시티그룹보다 7배 많은 인수대금(140억달러)을 써내며 매물로 나온 와코비아(Wachovia) 은행을 인수, 웰스파고의 덩치를 두 배 넘게 키웠다.
“나는 영웅적 CEO의 성공을 믿지 않아요. 대신 팀으로 일하며, 팀의 모든 일원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소박한(down to earth) 참여형(participating) CEO입니다.”
“요즘 시대 금융권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회사의 비전과 가치를 믿고 일관되게 행동하는 ‘신뢰’(trust)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자가 준비해간 35개의 질문을 예정된 1시간도 안 돼 모두 속사포처럼 대답하는 적극성과 치밀함을 보였다.
◇“남들과 반대로 움직이는 ‘청개구리 경영’으로 기회를 포착한다”
―웰스파고의 성공 비결을 하나만 꼽는다면?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는 ‘청개구리’ 정신이다. 경쟁자가 지점을 늘릴 때 우리는 축소하고, 그들이 자산을 축소할 때 우리는 늘려왔다. 경기가 어려울 때가 ‘고객이 진짜 은행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다’고 믿는다. 1980년대 말, 미국 은행들이 모기지(mortgage·부동산을 담보로 장기주택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 사업에 손대지 않을 때, 우리는 뛰어들어 지금 모기지 대출시장 미국 1위가 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판매를 최소화해 2008년 금융위기를 넘겼다는데 진짜인가?
“모기지저당증권(MBS), 부채담보증권(CDO) 같은 불량 파생상품을 팔지 않았다. 수백만달러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부실 규모가 엄청날 수 있는 그런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 때문에 2003년 11.9%이던 시장 점유율이 2006년에 10.2%로 떨어졌지만 지금 보면 탁월한 결정이었다.”
―웰스파고는 2009년 미국 정부로부터 25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 은행으로 혜택받은 것 아닌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대마불사에 반대한다. 되돌릴 수 없는 위기에 봉착하면, CEO인 내가 해고되고 이사회가 해체돼야 한다. 국가가 세금을 퍼부어가며 살릴 필요가 없다. 나는 굳이 구제금융을 받을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은행들이 현금을 많이 쥐고 있어야 한다’고 요구해 받은 다음 1년 만에 전액 갚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도 은행이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이 많다.
“지금 같은 격변기에 ‘은행은 고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특히 고객과의 신뢰 재건이 중요하다.”
―웰스파고는 어떻게 실행하는가?
“지역 공동체가 살아야 은행도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모기지론 재조정에 열심이다. 미국에서 모기지 대출을 받은 5000만 가구 가운데 500만 가구가 연체 중이며, 100만 가구는 주택압류대상자다. 우리는 70여만명의 고객에게 더 싼 대출금리로 모기지를 조정해줬다. 대출 상환이 불가능한 고객들에게는 아예 모기지 금액을 탕감해줬다. 총 41억달러 규모인데 상당한 금액이다. 미국은 주택시장이 살아나야 경제가 회복할 수 있다.”
스텀프 회장은 요즘 미국 전역의 대형 체육관이나 컨벤션 센터 등에서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모기지 홈 워크숍’을 열고 있다. “지금까지 40여 차례 워크숍을 열어 수십만명을 상대로 전문가 상담을 하고 모기지 상품을 면밀하게 재점검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웰스파고의 리스크 관리능력은 독보적이다. 모기지대출 연체율(7.6%)은 시티그룹(8.3%), JP모건체이스(11.5%), 뱅크오브아메리카(BOA·13.5%)보다 훨씬 낮고, 회수불능채권 비율(1.3%)도 BOA(1.8%), 시티그룹(2.5%)보다 양호하다. 미국 신용평가사 피코(FICO)에 따르면, 신용 점수 660점 이하를 서브프라임 고객으로 분류하는데, 웰스파고 고객의 평균 신용점수는 725점이다.
스텀프 회장은 “720점 이상 고객에게만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고 있으며 ‘팀 멤버’(웰스파고는 직원을 팀 멤버라고 칭한다)라도 신용기록이 충분하지 않으면 카드발급을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교차판매전략’이 웰스파고의 핵심 마케팅 무기인데. 목표는?
“현재 고객 1인당 평균 6개의 금융상품을 팔고 있는데 이는 시작일 뿐이다. 14개가 목표다. 우리는 고객을 부자로 만드는 ‘금융상품 패키지’를 선물하고자 한다. 신용카드 포인트로도 대출금을 갚게 하고,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식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패키지를 구성한다. 대학생은 신용·직불카드, 예금계좌, 학자금 대출 등 4개 상품이 기본 패키지고, 은퇴자는 퇴직연금·자산 플랜·보험이 추가돼 7~8개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가?
“상당수 은행의 창구직원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프라이빗 뱅커(PB)’ 등과 상의 없이 고객을 직접 상대하다가 불완전 판매를 저지른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우리는 부서 소통의 벽을 허물었다. 모든 고객정보를 정보통합 전문가가 관리하고, 팀 멤버와 정보를 실시간 공유하며 업데이트한다. 고객이 은행을 다시 방문하기 전에 미리 그들의 수요(needs)를 파악해 대응한다. 팀 멤버는 개별상품의 이해가 높은 동료에게 고객을 안내해야 한다. 팀 멤버는 부서를 순환근무하며 다양한 전문성을 쌓도록 한다.”
―교차판매의 장점은?
“채권 회수 시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금융 소비자라면 대출금을 급하게 상환해야 할 때, 8개 상품에 가입한 곳을 챙길까, 아니면 1개 가입한 곳을 챙길까? 당연히 8개다. 교차판매는 금융회사 입장에서 볼 때 이자 수익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수수료 수익 같은 비이자 수익(non-interest income) 비중을 높이는 효과를 낳는다. 현재 웰스파고의 이자와 비이자수익 비중은 5대 5 정도다. 한 고객에게 여러 상품을 계속 팔면 다른 고객에게 따로 파는 비용의 10%만 들어 경비절감 효과가 크다.”
◇“은행 고객들에게 단순한 가치 이상의 부가가치를 제공해야”
―지금 웰스파고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을 꼽는다면?
“미국 경제 회복이 예상보다 늦다는 점이다. 특히 2007년과 비교해 500만개의 일자리가 부족한 등 높은 실업률이 큰 부담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현재 엄청난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미국 금융계는 서브프라임 위기 후 3800억달러의 손실을 봤지만 지금 유동성을 회복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향후 경제 회복을 낙관한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세계적인 중산층 붐이다. 2030년이면 중국과 인도가 GDP 1, 2위를 차지할 것이다. 60조달러인 현재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50년 뒤에 200조달러가 될 것이다. 지금은 소비자들이 저축하고 빚을 갚는 시기다. 소비자들이 ‘자신감 적자’에서 벗어나면 성장동력이 생길 것이다. 그 성장에 어떻게 동참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은행들의 해외진출은 필수인가.
“그렇다. 우리 생각은 외형이 커져야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은행이 좋아져야 외형도 커진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기반을 쌓은 지금이 적기(適期)다. 웰스파고는 현재 해외 20개국에 사무실을 차리고 투자(IB)와 기업금융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의 금융회사들에 조언한다면.
“단순한 가치 이상의 부가가치(value-added)를 고객에게 제공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또 M&A를 너무 빨리 진행하면 회사가 위기에 빠질 수 있으며 손해가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가될 수 있는 만큼 그런 위험에 사전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대형은행들은 안전하니까 이용하겠다’는 고객은 없다. 고객들은 ‘나를 알아서 이해하고 보상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달라진 상황을 직시(直視)해야 한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