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누가복음 17장 20-21절.
제목 : 우리 안에 계신 천국.
사복음서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기에 무엇보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이스라엘을 꿈꾸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로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도무지 알지 못하였기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식민지로 계속 살아보니까 아무런 희망도 소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보지도 못하고 더욱이 들어보지도 못한 예수라는 인간이 자기들이 이때껏 경험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이때껏 들었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선포하는가 하면, 예수가 가는 곳곳마다 이적과 기적이 일어나자, 그들도 처음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점점 예수가 하는 소리에 귀기울기기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예수가 전하는 말씀 중간중간에 병자들이 오면 그들을 고치는 놀라운 기적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걷는가 하면, 맹인이 보는 역사가 일어나며, 심지어 죽은 자까지 예수의 명령에 복종하여 그 자리에서 살아나는 역사까지 그들은 직접 보았습니다. 이렇게 가는 곳곳마다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자 점차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으며, 예수님이 계시는 곳곳마다 많은 인파로 인해 움직일 수조차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또한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하고 온 때에는 한꺼번에 어린아이 한 끼의 식사까지로 무려 이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을 정도의 이적까지 일으킬 때에는 이분이야말로 우리를 로마의 식민지에서 구원시켜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하실 왕으로 받들어야 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병자들을 고치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20장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처럼 우리들을 위해 기꺼이 대속물, 즉 우리를 대신하여 대신 죽으시기 위해 오셨다는 말입니다. 이유는 창세기 3장의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한꺼번에 잊어버린 하나님과 인간과의 화해와 아울러 회복을 위해 오셨습니다. 즉 요한복음 14장 6절의 우리들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이것이 회복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순간에 탈바꿈이 되었습니다. 이젠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든지에 상관없이 우리들은 천국에 갈 수 있는 필요조건을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면 죽음 뒤에는 우리들의 신분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순간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은 아직까지 이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마귀가 왕노릇하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어려움과 고통과 난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런 우리들에게 있지 않아도 되는 모든 것은 죄 때문에 들어온 것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죽음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건널 수도, 없애 버릴수도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두려움, 고통, 아픔 등등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모든 어려운 것들은 모두 죄로 인하여 생겨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것이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이유는 이 모든 것이 마귀가 주는 것이기 때문이며, 결국에는 우리들을 망가지고 멸망시키려는 꾀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믿는 우리들에게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기에 어쩌면 믿지 않은 이보다 더 많이, 더 세게 우리들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유는 단 하나 우리들을 넘어뜨려 믿음에서 떨어지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모른다고 고백시키기 위한 괴략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역경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은 왜라는 원망이 나오기 전에 나를 넘어뜨리려는 마귀의 술수임을 느껴셔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한걸음 업크레이트 시키는 계기로 보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런 괴략과 음모를 넘어뜨린다는 확실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에게 오는 시험들은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것밖에 주시지 않고 또한 피할 길로 우리들을 승리케 하신다는 확신에 찬 바울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에게 오는 시험을 짜증내거나 원망할 것이 아니라 이번 계기로 나를 또 얼마나 성숙시킬 것인가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시험들을 바라볼 때 우리들은 그것을 통하여 한걸음 더 성숙된 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만이 비록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천국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들에게 오는 시험과 어려움을 감사로 받아들이고 시험과 어려움을 통하여 한걸음 더 성숙된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