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한배달] 4337(2004)년 6월호
마리산 참성단 우물청소
추가혈침 제거
소윤하 / 민족정기선양위원장
참성단 쇠말뚝은 방치할 수 없어
마리산의 혈침은 다른 지역의 것보다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이었습니다. 단군왕검께서 하늘에 제사를 올린 신성한 참성단이 있는 산이기 때문에 백두산 이상의 의미가 있는 산이므로, 일단 일제가 박은 혈침이라고 판단이 된 이상 하루라도 더 방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 20일 춘분절을 맞이하여 이날 정오에 참성단에서는 고천례(告天禮)를 올렸고, 오후 두 시에 마리산 입구 상설무대에서는 고유제(告由祭)를 올렸습니다.
이 행사의 의미는 지금까지 일제가 박아 놓은 쇠말뚝을 이제야 뽑고 원상회복 시키겠다는 것을 하늘과 땅, 만물에게 알리는 지극히 소박한 의례입니다. 쇠말뚝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극소이긴 하지만 바위를 뚫고 쇠말뚝을 들어내는 수술과 같은 과정이 있기 때문에 만약 신경선을 건드리면 통증이 있어도 참아 달라는 예고이기도 합니다.
행사를 마치고 난 뒤 당초에 발견되었던 돌층계 바로 옆에 있던 쇠말뚝은 이상섭씨가 제작한 장비를 이용하여 용이하게 뽑았습니다. 그리고 화도면 내 수개의 부락에 있는 노인들의 제보가 잇따라 있었습니다. 망경봉에도 박혔고, 함허동천 뒷산에도 박혔고, 전토골에도 박혔고, 가무락고개 우측 서쪽방향 큰 소나무 있는 곳에도 박혔고, 깃대봉 아래에도 박혔다는 것입니다. 당초에는 층계 옆에 한 개가 박혔던 것을 신상윤씨가 발견하여 제보하였으나, 정작 작업을 시작하고 탐문 해 보니 여덟 개나 더 박혔다는 것입니다. 이 모두 이 고장에 큰 인물이 못나게 하기 위해서 일본 사람들이 박았다는 것입니다.
추가 발견된 쇠말뚝 제거
행사를 마치고 제보내용에 대한 탐사를 계속하던 중 참성단에서 북쪽으로 내려오는 길의 자연석 돌층계가 시작되는 곳, 바닥바위에 일곱 개의 구멍이 나 있는 바위 오른쪽 벼랑바위에 박힌 쇠말뚝을 이상섭씨가 발견하였습니다. 지난번 제일 먼저 뽑은 것은 윗부분이 T자형이었으나 새로 발견된 것은 ㄱ 자 모양이었습니다. 이 쇠말뚝은 삼월삼짓 날(4월 21일)제거하고 원상회복시켰습니다.
참성단 우물 탐문
. 지난 1월 1일 처음, 쇠말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 탐사 할 때 마리산국민관광지 관리사무소에 들렀을 때 장명훈 사장이 의문스러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장사장의 말에 의하면 ‘지난 봄에 일본사람이 와서 참성단에 있는 샘을 청소를 해 주겠다고 했는데 이상해서 거절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일행들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행 가운데도 마리산 참성단에 우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하물며 일본 사람이 그 곳에 우물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으며, 또 왜 청소를 해 주겠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혹시 쇠말뚝과의 어떤 관계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장사장으로부터 그 일본사람이 주고 갔다는 명함을 복사해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일본인에게 김세환 역사천문학회장께서 직접 전화통화를 하시고, 지난 4월 9일 내한한 문제의 일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초면이라서 대화내용에서 구체적인 것은 확인하지 못했고, 다만 그가 일본의 황족이며, 전주이씨 종묘제례에 참석하려 왔으며, 다음달 5월 3일에 와서 마리산을 등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인왕산에 있는 국사당을 원래의 위치인 남산으로 복원시켜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참성단에 있는 샘을 청소해야 하고 국사당(國師堂)복원작업을 추진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의도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편 민족정기선양위원회에서는 올해 1월 1일부터 강화도 전역의 산에 쇠말뚝이 박혀있는지 여부와 참성단의 샘이 언제부터 있었으며, 언제부터 샘물이 나오지 않았는가에 대하여 탐문조사를 벌였습니다.
먼저 쇠말뚝에 관해서는 마리산 외에는 박혔다는 소문이 없었으나, 강화도는 북쪽에서부터 고려산, 혈구사, 진강산, 마리산으로 일직선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산의 서북쪽에는 봉천산이 있고, 마리산의 동남쪽에는 정족산이 있으며 이곳에 삼랑성이 있습니다. 봉천산이 고려산의 서북쪽에 있고, 정족산이 마리산의 동남쪽에 자리하고 있음에 대한 뭔가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들 산들 가운데 고려산에는 일제가 박은 쇠말뚝이 있었으나 누군가에 의해서 뽑혔는데, 뽑는 과정에서 훼손 된 부분이 방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군부대로 인하여 접근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물조사 및 청소
우물에 관해서 조사해보니 우물은 원래부터 있었다는 것이고,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에는 물이 나왔으나, 어떤 여자가 기저귀를 샘물에 빨았기 때문에 부정을 타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전설이 파다하게 깔려 있으며, 주민들 또한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옛날에는 물이 났었고, 지금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일본사람이 청소하겠다는 내용과 쇠말뚝이 박힌 것과 연관해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 우물을 조사하기로 하고 강화군청문화재계 담당관과 협의를 하였습니다.
우물을 조사하는데 허가를 받아서 해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원칙적으로 허가를 얻어서 작업을 해야 하지만 문화재청의 허가가 형상 변경시키는 허가이기 때문에 우물 속을 조사하는 것은 형상을 변경하는 작업이 아니므로 현장의 관리사무실과 상의해서 조사하시고 결과가 형상변경이 필요한 사항이 발생하면 그 때 문화재청에 허가를 신청하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만물이 소생한다는 삼월삼진 날을 선택하여 참성단의 우물을 조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우물을 덮어 놓은 뚜껑을 관리사무실 이상섭씨가 볼트를 풀고 열어보니 속에는 많은 잡동사니의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속을 보는 순간 너무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고 방치해서 물길이 막힌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보존시키는데 부족함이 많음을 새삼 반성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쓰레기가 꽉 찬 것을 보고 있으려니 단단학회(檀檀學會) 정혜원씨가 팔을 걷어 부치고 우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위에 있던 쓰레기들을 걷어 내니 속에는 까맣게 부식 된 흙이 나왔습니다. 쓰레기와 긁어 낸 흙의 양이 쌀가마니로 한 가마가 넘었습니다. 필자는 정혜원씨와 교대하면서 작업을 했는데, 정씨는 몸이 약간 호리호리 했기 때문에 속에서 작업하기가 쉬웠지만 필자는 꼭 끼여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본 우물 내부
우물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물의 위 부분은 돌로 쌓았고, 너비는 직경 120센티의 원형이며, 아래로 내려가면서 자연 바위로 좁아 졌고 아래 바닥도 자연암이 울퉁불퉁했습니다. 서남쪽은 자연암이 높았고 동북쪽은 아래서부터 돌로 쌓아 올렸습니다.
깊이는 130센티이고, 바닥 중심에는 넓이 15센티, 길이 40센티, 높이가 10센티 가량의 돌이 박혀 있었으며 그 돌의 언저리에 금이 있는 곳을 과도로 찔러보니 약 10센티 가량이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이 틈으로 물이 용출하지 않았나 추측했습니다. 가운데 박힌 돌에 발을 올려놓고 망치로 돌을 치니 발에 진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서 이 돌의 밑이 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날은 일단 깨끗이 청소하고 칼날이 들어가는 틈새에 가느다랗게 생긴 정을 박아두었습니다. 틈새가 벌어져서 물이 다시 용출하기를 기원하면서 단단학회에서 짊어지고 올라온 물 두통을 샘에다 부었습니다. 이로서 일차적으로 청소를 마쳤고 며칠 뒤에 다시 청소한 뒤 뚜껑을 덮고 고정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맺는 말
마리산에 일본사람들이 쇠말뚝을 박은 곳은 모두 여덟 곳이나 됩니다. 이 중 세 개는 제거하고 원상복구까지 마쳤습니다. 앞으로 나머지 다섯 개도 모두 제거하고 원상을 회복시키고 난 뒤에 날을 정하여 정안제(正安祭)를 모심으로써 마리산 쇠말뚝 제거작업을 일단락 지을 생각입니다. 작업을 하다보면 더 많은 쇠말뚝이 나타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처음 한 개가 발견되어 시작했듯이 앞으로 하루 빨리 모두 제거하고 원상회복시킬 날을 기대합니다.
첫댓글 참성단이 있는 마리산은 우리민족의 정신을 갈무리 해 주는 성산이고 단군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무례한 왜인들이 우물에 백회로 물길을 막았으며, 척추로 오르는 세군데에 쇠말뚝을 박아 기맥을 훼손 했었다. 지난 음력 5월5일 단오절을 기하여 원상회복을 다하고 정안제를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