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탕이나 라면 한 그릇으로 식사를 할 수도 있지만 가끔씩 근사한 식사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서울 시내에 수많은 식당이 있지만 제대로 먹는다거나, 혹은 고급스럽게 한끼 식사를 즐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과연 근사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손에 꼽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제대로 갖춘 맛과 서비스는 그런 식당들에 차별성을 준다.
일식집 ‘스시 효’
청담동에 위치한 ‘스시 효(孝)’에 갔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요리 만화 ‘미스터 초밥왕’ 한국편에 등장했던 신라호텔 출신의 안효주 사장이 오너 세프(chef)로 있는 곳이다. 이제 개업한 지 1년3개월 가량 지나면서 가게 틀이 더 잡혀서 안정감이 든다. 평소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점심ㆍ저녁 시간이 붐비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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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식집 '스시 효'의 초밥. 푸아그라 초밥, 게알 초밥 등 이색초밥이 눈에 띈다. |
안 사장을 비롯한 네 명의 요리사가 오픈된 주방에서 열심히 생선을 자르고, 초밥을 쥔다. 이 집 음식에 맛을 들이면 다른 초밥 집에 가기가 힘들 정도로 안 사장의 개성과 솜씨가 듬뿍 담겨있다. ‘효’라는 가게 이름도 안 사장 본인의 이름에서 따왔다. 자기 이름을 건 만큼 책임감이 담긴 음식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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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식집 '스시 효' 내부모습. |
안 사장은 일식 요리에 관한 책을 펴낸 저자이기도 하지만 초밥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손님이 갈 때마다 새로운 맛을, 깊은 맛을 보여주기 위해 고심하는 스타일이다. 일반적인 초밥 코스 외에 가끔 프랑스 재료인 푸아그라 초밥을 만들기도 하고, 게 알을 넣어 특유의 냄새가 입안에 화려하게 퍼지는 초밥도 있다. 이런 눈요깃거리도 있지만 정통적인 생선과 조개 초밥이 인상에 더 깊이 남곤 한다.
흰살생선의 경우는 재료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맛이 명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인 재료로 맛의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말 그대로 초밥이란 단순한 음식이다. 하지만 단순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그만큼 더 많다.
초밥이라는 이름처럼 밥은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안 사장이 가장 고민하는 것은 밥이다. 지금은 춘천에서 약수를 길어다 밥을 짓는다. 기름진 밥은 초밥 자체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룸 안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도 많지만 이 집에서 제대로 식사를 하려면 다이에 앉아야 한다. 요리사의 칼 솜씨가 한눈에 들어오고 원하는 재료를 골라서 먹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요리사와 손님이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면서 먹는 초밥은 맛이 배가 된다. 손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나오는 것이니만큼 훨씬 더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정갈한 맛 한식당 ‘프티 시즌’
최근에는 특급 호텔에서 한식당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영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외국 귀빈이 많이 찾는 특급 호텔에서 한식당이 문을 닫는다는 건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세계 어딜 가나 자기네 전통 음식을 하는 식당이 없는 특급 호텔은 드문데도 말이다. 외국에서 손님이 올 때마다 한 번쯤은 우리 음식으로 대접을 하기 때문에 식당을 고르는 데 어려움이 많은 편이다. 그때마다 찾아가는 식당 중 하나가 ‘프티 시즌(Petit Seas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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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식당 '프티 시즌' 의 코스 요리. |
프티 시즌의 음식은 언제 봐도 정갈하다. 남도(南道) 음식처럼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라 담백한 서울 음식이다. 여기에 약간의 평양 스타일이 가미되었다. 식사는 일품 요리로 주문하는 게 아니라 코스가 정해져 있다. 뜨거운 잣죽으로 입맛을 다신 후 편육, 호박찜, 게 튀김, 편수, 육회, 전유어, 떡갈비 등이 이어진다. 그렇게 먹고 나서 밥이나 면으로 식사를 한 후 차와 떡으로 마무리된다.
음식은 놋쇠 그릇에 담겨져 나온다. 죽을 서빙하는 직원은 그릇이 뜨거워서 장갑을 낀 손으로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다급하지 않게 모든 일들이 찬찬히 이루어진다. 음식 하나하나에 손이 많이 갔다는 건 그릇만 봐도 알 수가 있다. 모든 음식에 정성이 듬뿍 담겨있어서 손님에게 권할 때도 격이 있어 보인다. 사실 이 집의 음식은 김영희 사장 본인이 어릴 때부터 먹어온 음식을 식당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정통 서울식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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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스토랑 '팔레 드 고몽' 내부(왼쪽)와 한식당 '프티 시즌' 내부. |
최근 들어 식사로 추가된 것 중 하나가 김치말이다. 많은 식당이 김치말이를 만들 때 참기름 범벅을 만들어놓곤 하는데 이 집 김치말이는 상쾌하다.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일부러 식힌 빈대떡을 올려놓았다. 가끔씩 미리 예약을 해서 신선로를 먹곤 한다. 준비하는 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항상 장만해둘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우리 음식을 차려주고 싶은 김 사장의 마음을 담고자 하는 집이 프티 시즌이다. 시즌이라는 이름대로 제철 음식을 사려 깊게 준비한다. 홀은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다. 서울이 아니라 고스란히 뉴욕이나 파리에 옮겨놓아도 모든 이들의 관심을 끌 것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우리 맛을 내는 모던한 공간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
근사한 프렌치 레스토랑 ‘팔레 드 고몽’
가장 근사한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종종 ‘팔레 드 고몽(Palais de Gaumont)’을 꼽는다. 홀에 앉아서 바라보면 계절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처음 오픈할 때부터 가게 주변에 나무를 심은 게 이제는 꽤 크게 자랐다. 봄이면 죽순이 올라오고 가을이면 단풍이 든다. 이처럼 레스토랑을 둘러싼 환경만으로도 사계를 느낄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문을 연 지 벌써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이 집에서 새싹이 돋고, 낙엽이 지는 걸 오랫동안 지켜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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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레스토랑 '팔레 드 고몽' 의 마늘향 개구리 다리.모렐버섯을 얹은 어린 송아지 갈비. |
작년 카르티에 주최로 와인디너를 할 때 지켜보았던 음식은 프랑스 현지 사람도 감탄해 마지않을 정도였다. 넓은 홀에 높은 천장, 유리로 덮인 메인 홀은 아늑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제공한다.
일반적인 쇠고기나 양고기 스테이크는 당연한 일이지만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프랑스의 고급 식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부르고뉴 스타일의 달팽이 요리는 기본이고 마늘 향을 가미한 개구리 다리, 메추리 오븐 구이, 와인에 찐 꿩 요리 등 프랑스 현지에 가서나 맛볼 수 있는 다양한 메뉴가 구성되어 있다.
서현민 사장은 언제나 레스토랑을 지키고 있다. 저녁시간에 사장이 레스토랑을 비운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쉬는 시간에도 항상 식당을 떠나지 않으면서 음식과 와인 책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집의 와인 리스트는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스토랑에 걸맞은 와인을 구하는 건 서 사장의 일이자 취미인 셈이다. 사장 자신의 그런 태도가 팔레 드 고몽이라는 레스토랑의 완성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테이블 두 개인 프랑스 레스토랑 ‘라미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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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한 맛이 일품인 '라미띠에'의 가리비 요리. |
‘라미띠에(L'Amitie)’는 문을 연 지 6년이 되어 가는 작은 프랑스 레스토랑이다. 우리 말로 바꾸면 ‘우정 식당’이 된다. 처음 오픈할 때 떨어진 간판은 지금도 걸려있지 않다. 간판조차 없는 식당이지만 단골들은 알음알음 찾아온다. 한때 테이블이 대여섯 되던 식당이 지금은 딱 두 개로 운영하고 있다. 메뉴를 고를 수 있는 손님의 선택권도 없다. 처음 간 손님에게는 낯설지만 단골에게는 오히려 편한 점이 있다. 거기에는 강한 신뢰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미리 전화로 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오너 세프인 서승호 사장이 직접 재료를 사러 시장으로 나가고 좋은 재료를 골라온다.
프랑스 요리는 손이 너무나 많이 가는 음식이다. 재료 선별부터가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프랑스 현지에서도 고급 식당과 평범한 식당의 차이는 재료 하나만 봐도 알 수가 있다. 평범한 식당에서는 아스파라거스를 통째로 다 쓰지만 고급 식당에서는 아스파라거스 윗부분만 쓴다. 그런 섬세한 차이들이 전체적인 맛과 품격을 가름하는 부분이다.
라미띠에의 음식은 정갈하고 담백하다. 소스보다도 재료 자체의 중요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항상 좋은 재료만을 고집하는 게 음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라미띠에의 고집스러운 면모다. 얼마 전에 먹은 전복과 바닷가재 수프는 맑고 부드러웠다. 언제나 이 집 음식에는 믿음감이 가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지난 1월에 식당 외벽을 나무로 감쌌다. 테이블이 줄어가고, 메뉴판이 없어지고, 벽이 바뀐 게 지난 6년간의 변화다. 하지만 음식 맛은 서 사장의 연륜을 따라 더욱 깊어져가고 있다.
일식집 ‘스시 효’: 강남구 청담동 21-16 (02)545-0023
한식집 ‘프티 시즌’: 강남구 청담동 95-16 (02)546-6732
레스토랑 ‘팔레 드 고몽’: 강남구 청담동 118-10 (02)546-8877
레스토랑 ‘라미띠에’: 강남구 신사동 656-15 (02)546-9621
고형욱 음식 칼럼니스트(kaoda1@yahoo.co.kr)
첫댓글 메뉴판 본다고 다 주문하는거 아닌줄 알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