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大笒) 소리의 원리(3)-성음(成音)과 득음(得音)
성음과 득음이라는 말을 다루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위의 두 단어는 주로 판소리 하시는 분들 사이에서 사용되어졌지만, 근래에는 음악쪽의 여러 분야에서 두루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십년을 판소리 공부하여 당대 최고의 명창이니, 국창이니 하는 칭송을 듣는 분들도 스스로 “나는 득음했다.”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나는 평생을 소릿길을 걸어 왔어.”라던가,
“아직도 득음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여...”라는 완곡한 표현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성음이니 득음이니 하는 말은 당사자 보다는 곁에서 보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용어가 아닐까 여깁니다.
성음이라는 단어는 한자로 쓰야 이해가 빠릅니다.
판소리 분야에서는 성음(性音)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이 말은 소리 하는 사람의 목 구성이나 소리의 특성을 두고 하는 말로써 창자(唱者)의 소리 특성에 따라 수없이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성음(聲音)이라는 표현은 노래나 소리하는 사람이 목소리도 제대로 갖췄고, 노래나 소리 가락의 흐름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 “저 사람은 성음을 했다.”라는 식으로 쓰입니다. 국악 뿐 아니라 성악을 하는 분들도 이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성음(成音)이라는 표현은 소리를 이루었다라는 의미로, 주로 악기를 다루는 분야에서 쓰이는 말이라고 봅니다. 물론, 성악이나 민요, 시조, 판소리 하는 분들도 그 음악을 하기 위해 요구되는 목소리를 갖췄을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때는 성음(聲音)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굳이 중복되는 의미를 다른 단어로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처음 악기를 배울 때, 그 악기의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해 고생하다가 어느 시점에 그 악기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그 때는 “저 사람은 성음(成音)을 했다”라는 표현을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기악분야에서도 성음(聲音)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저 사람은 성음이 아주 좋다”라고 한다면, 악기의 소리가 좋다라는 의미인 거지요.
대금을 처음 배울 때는 소리가 나지 않아 퍽이나 애를 많이 먹습니다.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상태에서 정악이나 산조도 배우고, 민요나 가요 등도 배웁니다.
그 때 대금 배우는 사람의 심정은 “제발, 소리 좀 시원하게 났으면...”하는 게 꿈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12율명의 소리 내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이 때가 되면 자기가 아는 노래는 거의 대금으로 부를 수 있게 되지요.
이 단계가 대금을 성음(成音)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본인들이 조금만 노력을 하고 연습을 부지런히 하면 별 무리 없이 전공자나 아마츄어나 도달할 수 있습니다.
허파에서 나온 바람을 취구로 보내서 나름대로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다가 점차 또 다른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이제 좀더 맛깔스럽고, 통통하고, 매끄럽고, 빵빵한 대금소리를 꿈꾸는 겁니다.
이 단계가 되면 자기보다 못 부른다고 생각되는 사람의 대금소리는 듣기 싫어지고, 자꾸만 대금 고수님들이나 명인님들의 대금소리만이 귀에 들리는 거지요.
자기는 나름대로 연구도 하고, 고민도 하고, 연습도 하고...별의별 묘수를 다 짜내는데도 자기 대금소리는 영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역시 전공자나 고수님들의 소리는 뭔가가 있다 라는 식으로 체념을 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야 말로 대금소리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아마, 이 단계에서 머무르는 아마츄어들이 숫자로 보면 가장 많을 겁니다.
업그레이드를 위한 노력은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고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대금소리의 원리를 다시 터득해야만 할 시점인 거지요.
호흡부터 다시 가다듬어야 합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대금을 불 때는 복식호흡을 하라고 하지요.
그런데, 정작 복식호흡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숨을 마실 때 아랫배가 불룩 나오도록 아랫배에 힘을 주라고 합니다.
숨을 내쉴 때 아랫배가 쏘옥 들어가도록 뱉아내라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방법은 아주 잘못된 방법입니다.
대금을 불 때 사용되는 바람은 오로지 허파에서만 나옵니다.
마시는 바람도 허파로만 들어가고, 나오는 바람도 오직 허파에서만 나옵니다.
사람의 허파는 두 개입니다. 입과 코로 들이마신 바람은 하나의 기도(氣道)를 거쳐 양족 허파로 들어가지요. 이 때 가야금의 안족(雁足)처럼 하나의 기도가 둘로 갈라져서 양 허파로 바람이 들어갑니다. 사람은 절대 임의로 허파를 늘였다 조였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허파로 들어가는 바람의 량을 늘이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슴과 배를 가로막고 있는 근육인 횡격막(橫隔膜)을 여하히 운동시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숨을 마실 때 횡격막을 최대로 밑으로 내리고, 숨을 뱉을 때 횡격막을 최대로 위로 올릴수만 있으면 되는 거지요.
방법이 있습니다.
양손을 양쪽 갈비뼈 맨 아래쪽에 찔러넣고 숨을 마시면서 의식적으로 옆구리가 불룩하게 나오도록 숨을 마시고, 뱉을 때 양쪽 옆구리가 쏘옥 들어가도록 뱉는 겁니다.
이렇게 호흡을 해야 횡격막을 제대로 밑으로 위로 운동시킬 수 있습니다.
마치 개구리가 앉아서 숨을 쉴 때 배 옆구리가 불룩불룩 하듯이, 옆구리로 숨을 쉬는 겁니다. 이렇게 숨을 쉬는 연습을 하다보면 아랫배가 어떻게 움직일까요.
호흡의 중심을 아랫배에 두지 말고, 옆구리에 두라는 겁니다.
이렇게 호흡을 해야 대금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기초작업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마실 때 횡격막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허파의 꽈리 주머니를 늘리고, 뱉을 때 횡격막이 위로 올라오면서 허파를 쥐어짜서 더 많은 바람을 뱉게 해줄수 있는 겁니다.
아랫배에만 힘을 주고 배가 불룩불룩하게 숨을 쉴 때와, 옆구리에 힘을 주고 숨을 쉴 때 어떤 차이가 있는 금방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대금의 성음(成音)은 누구나 어느 정도 시기만 지나면 이룰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금소리의 득음(得音)은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수 많은 조건중, 입바람의 파동과 대금 자체의 파동을 일치하는 공명을 말씀드렸습니다.
대금 자체의 파동은 고정되어 있습니다.
“汰”음을 내고자 하면, 1.2공을 막고, 3.4.5.6공을 열어주지요.
이 상태의 대금은 이미 “汰”에 맞는 대금의 파동을 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때 취구를 통해 들어오는 입바람만 “汰”에 맞게 들어와 준다면 공명은 되는거지요.
중요한 것은 입에서 나오는 바람이 여하히 “태”에 맞는 파동을 낼 수 있느냐입니다.
대금을 부는 사람의 의식(意識), 허파에서 나오는 바람, 기도와 성대를 거쳐 입안에서 소용돌이, 혀의 위치, 입천장, 입술 주변의 근육, 밀어내는 힘, 입밖으로 나오는 바람의 밀도, 바람의 세기...이러한 모든 조건이 “汰”에 맞아서, “汰”에 맞는 바람이 취구의 적당한 각도를 통해 대금 안으로 휘돌아 들어가야 제대론 된 공명이 될 수 있습니다.
어렵지요.
얼마나 많은 연습과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득음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가 봅니다.
제가 아는 대금 전공자와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더니,
“와, 그러면 설촌님은 대금을 디게 잘 불겠네요?”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히딩크가 축구를 잘해서 명감독이 아니잖어....”
골치 아픈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원리를 알고 대금 부는 사람과, 전혀 모르고 무지막지하게 대금 부는 사람과는 지금 당장은 차이가 나지 않아도,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는 크게 벌어질 겁니다.
저의 이야기가 모두 옳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혹,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던지 마음을 열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대금 성음(成音), 득음(得音)하시기 바랍니다.
2008. 8. 20 설촌(雪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