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디어 보충 끝나고 진짜 방학 시작했다.
그동안 방구석에서 굴러다니다 지쳐
징징거리는 아들놈부터 우선 스키장에 데려가기로 해서
어제 수업 끝나자마자 전에 살던 동네 가서 애 친구놈 하나 델고 집으로 왔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만나 밤새 속닥거리느라고 잠도 제대로 못 잔 놈들
잡아일으켜 밥 먹이고 8시에 출발...
강촌에 새로 스키장이 생겼는데, 슬로프랑 스키 대여랑 합해서 하루 4만 3천원이면 3백원 거슬러 준다.
동네 앞 지나가는 무료 버스도 있는데,
요즘 초등 졸업반은 우리 때와 달라 애기나 다름 없으니 우선은 델고 가서
어디서 무얼 해야 하는지 보여 줘야할 거 같아서...
어쨌거나 외곽순환도로 퇴계원서 새터 3거리(대성리 바로 앞)까지 자동차 전용도로가 뚫려서
춘천길이 30분은 단축된다.
9시 반 못 돼 도착했는데, 줄이 징하게 길다.
겨우 표 사고 스키 빌려 신겨서 슬로프 태우고 나니 10시 20분.
이제 난 뭐 하나??
4시 30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자유다.
북쪽으로 강을 끼고 슬슬 올라간다.
이 근처 오면 가끔 들르는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허름한 수퍼 겸 낚시점에 가
낚시와는 하나도 상관 없어 보이는 늙수그레한 아줌씨한테
아무 기대 않고 붕어 어디 나오느냐고 물으니,
요즘 강원도엔 붕어 낚시 오는 사람 없단다.
빙어나 잡으란다.
대답 대신 씩 웃으니
아자씬 큰거만 좋아하나베유 한다.
지렁이 대신 오랜만에 삼천원짜리 담배 하나 사고,
달걀 세개, '토종'이라는 강냉이 한봉... 합이 오천원이다.
거기다가 집에서 들고 온 두유 두 봉지-- 요게 오늘 내 점심이다.
들르는 낚시 가게마다
아예 지렁이는 없고 그저 구더기만 득실득실이다.
언제부터 강원도는 빙어 천국이 되었가?
하여간 구르는 바퀴를 멈출 수는 없는지라
계속 올라간다.
반송지.
의암댐을 지나쳐 화천쪽으로 가다가 왼쪽 산 밑으로 돌아들어 나타나는 저수지
이 저수지는 낚시보다도 그 풍광이 마음에 들어 가끔 들르는 곳이다.
가긴 열번 스무번도 더 갔지만 실제로 낚시해 본 건 아마 다섯번이 채 안 될걸...
특히 중류쯤에 잘 꾸며 놓은 무덤이 하나 있는데,
어느 해던가 초가을 무렵 그 앞 잔디에 누워
한들거리는 연분홍 코스모스 사이로 눈이 시린 하늘을 바라보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게 얼마 전인가.. 십년 전인가 이십 년 전인가...
근데 이제 동네도 많이 커진 거 같고...
아, 게다가 물까지 빠져 있다.
무슨 공사를 하려는지 드러난 물가를 이리저리 오간 트럭 바큇자국이 심란하다.
반토막 난 저수지,
만수위보다 오미터는 더 아래로 내려가 얼어붙은 하얀 얼음을 내려다보며,
아무도 없는 빙판 위로 까마귀 두엇이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언뜻 옛날 그 무덤은 그대로인 것이 멀리 눈에 들어왔으나,
가 보지도 않고 차 세워 둔 길가로 걸어 올라왔다.
이제 어디로 간다냐?
지나치다 빙어 낚는 무리들이 얼음판 위에 새카맣게 뒤덮은 것을 보긴 했으나
(지난 주 사촌과 매제들, 큰집 장조카까지 열 두엇이 뭉쳐
바로 요 위 춘천호 세월리 얼음판 위에서 나 역시 그 인파 속에 끼어 있었다. )
시끌벅적한 데다가 찌올리는 멋도,
손맛도 없는 빙어를 낚겠다고 더욱이 혼자서 얼음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긴 싫다.
차를 돌려 신매교를 건너 인형박물관을 뒤로하고 다시 북상한다.
(좀전에는 애니메이션 박물관도 지나쳤다.
그러고 보니 춘천은 애니메이션의 도시다)
전에 비해 길이 엄청 넓어졌다.
군 부대가 나오며 다시 갑자기 좁아지는 길목, 그 오른쪽에 또 작은 저수지 하나가 숨어 있다.
넓디넓은 부대 입구 옆으로 차 한대 겨우 들어갈까 싶은 골목이 숨어 있고
그 곁으로 한참 꼬불꼬불 올라가면 또 하나 저수지...
용산지.
두어 사람 얼음판 위에 서성이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급히 내려다가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손을 잘못 짚었는지 왼손바닥이 아프다.(지금까지도...)
이제 조심해야 할 나이인데도 난 아직 철이 없나보다. ㅎㅎ~~
다들 이제 왔단다.
한 사람에게서 지렁이를 몇 마리 빌려 낚시를 시작한다.
(대신 두유 한 봉지 줬으니 서로 손해는 아니다)
얼음 구멍을 판다.
이십여 년 전 겨울, 처음 얼음낚시 배웠을 때 설악산 넘어가서 경포대서 낚시 하겠다고
(이십년전 경포대 정말 굉장했지.. 버스만도 수백대...)
남대문 가서 가장 가벼운 걸로 골라 만이천원 주고 샀는데
그게 그래도 내 낚시 인생의 절반 넘어를 함께해 주더니
지난해 말 첫얼음을 찍다가 갑자기 힘없이 휘었다.
가운데가 텅 빈 것이 너무 약해 보여서 손으로 비틀었더니 얼씨구 부러져 버렸다.
어이없다.
어떻게 이렇게 약한 것이 이십년을 버텼단 말인가.
쇠도 늙는가?
지금 쓰는 건 거금 삼만 오천 냥짜리 새 끌...(이십년만에 세 곱이면 많이 오른 것도 아니구나)
무게는 그전것의 두배는 되는데
워낙 두껍게 얼어 마흔번은 찍어야 겨우 물이 터진다.
그렇게 다섯 개.
보통은 일곱 개씩 뚫는데, 마흔번에 터지는 두께에서는 사실 다섯개도 숨가쁘다.
물론 운동은 된다. ㅎㅎ
한시간 동안 찌는 꼼짝 않는다.
좀더 깊은 곳으로 옮겨 본다.
다시 다섯개 구멍.. 이번에는 쉰번을 넘겨 찍어야 한다.
한 구멍 파다가 두어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이럴 때 안 보면 언제 하늘 볼 일이나 있겠나.
그렇게 뚫은 구멍 -- 깊기도 하다.
세칸반 대 깊이. 약 6미터 수심이다.
그러나 가끔 꼼지락대기는 하지만 붕어의 입질은 아니다.
오늘은 그렇게 구멍만 이십개 파다 보니 담배도 절반은 피웠고,
그 많던 강냉이도 한줌밖에 남지 않았다.
3시 반
어느 새 접어야 할 시간이다.
하나하나 어루만지듯 닦고 접고 줄을 감고 하다 보니 얼음판서 일어선 건 4시.
길을 되짚어 스키장으로 향한다.
4시 30분 스키장 문을 들어서니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들떠서 몰려내려오는 인파 사이로 나타나는 두 꼬마..
만족으로 지친 표정들이다.
그래, 자, 또 들어가자.... 다시 벗어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