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적 관점에서 본 동성애 -우리 시대의 이방인-
요즘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가면서 대중 매체을 통해서 인본주의적 인식이 점차 넗혀가고 있다. 아울려 기독교계 안에서도 이런 조류에 편승하여 동성애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문제가 양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이 동성애를 왜? 정죄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것이다.
성경적 관점이 동성애는 단호하게 부정적이다. 남색 하는자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또 다른 많은 죄악과 함께 (롬1;29-31)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라고 했으니, 이보다 더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일각에서 수용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다원화된 현대의 세속사회에서 이해할수 있을지 모르나 한국교회는 성경구절의 근거하여 결코 용납될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의 선척적 경향성을 고려 할때 ,생래적으로 동성애적 경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은 결코 교회의 성도가 될 수 없는것일까?
사도행전 행10장 로마군대의 백부장 이었던 고넬료의회심 사건에서 당시 베드로를 포함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교회로의 영입을 수용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환상중에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율법에 어긋나는일로 알았다. 즉 성경에 어긋나는것이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는 자신이 이방인 고넬료을 만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라는 것을 깨달는다.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절)
그런 개인적인 체험을 사도행전15장 에 소개된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 에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게 되었고, 이와 아울러 주의 형제 야고보의 중재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의 유대교 교회는 마침내 이방인의 교회의 영입을 승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요건대 성경에 어긋나는일 이라고 알았던 것을 이제는 하나님의 뜻으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고넬료의 회심 사간이 동성애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 하시는 포용적인 사랑을 감안 하면, 생리적 동성애자 들은 예수 믿고 교회의 성도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없어야 할것이다.
만약 불가능 하다면 같은 논리로 알콜 중독자,인종 차별주의자 같은 사람들도 교회 성도가 되는 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불연속성을 띤 내용들도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음식을 가려 먹는 구약의 음식법이 그러하고, (레11;1-47절)고린도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여자의 두건 문제와 남자의 긴 머리가 그것이다.그러한 불연속성 가운데 생래적 동성애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애초부터 동성애자로 태어난 그들을 용납하는 것이 과거에는 무관하게 애초부터 동성애자로 태어난 그들을 용납하는 것이 과거에는 성경에는 어긋 나는것이었지만 ,과연 그원칙이 지금까지 유효한것일가?
그러면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을 영입 했듯이 ,교회가 생리적 동성애자들을 우리 시대의 이방인으로 간주하고 교회의 성도로 영입할수 있다고 한다면, 동성애자 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것인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비록 교회가 생래적인 동성애자들을 용납할수 있지만,,동성애자들의 성행위까지 인정할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동성애는 하나님께서 미워 하시는바 죄일것이고, 교회는 용납해서는 안된다.
더욱기 동성애자들은 한결같이 성경을 수용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교회는 생리적 동성애자들을 대할 때 1)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변화을 유도해야 할것이다. 2)금욕을 가르쳐야 한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변화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변화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금욕은 동성애와이성애 이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일것이다. 예수님과 바울은 이땅에서 독신으로 지냈고,그렇다면 평생 금욕적 삶을 살았을것이 분명하다. 목회지가 있더라도 경제적 필요를 채우지 못할 때 충분히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결국 생리적 동성애자들을 교회는 그들의 인권을 인정하고, 성도는 그들을 수용해야 할것이다.그들도 예수 믿으면 천국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