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聖公會)는 한자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사용하는 교회이름으로, 사도신조의 '거룩한 보편교회'(Holy Catholic Church)를 한자로 옮긴 이름이다. 영어로는 Anglican Church 또는 Episcopal Church 라고 쓰며, 세계 성공회 공동체를 말 할때는 The Anglican Communion 라고 하면 전 세계 160여 개국, 38개의 독립적이고 자치적인 지역 교회(관구)로 이루어진 기독교 교파이며 신자는 약 7000만 명이다.
■ 성공회의 역사
정치적 동기
영국의 군주 헨리 8세는 정치적 동기로 1519년 로마 가톨릭과의 단절을 선언하였다. 헨리 8세는 아라곤의 카타리나와의 사이에서 왕세자가 태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국가의 존속과 관계된 문제였으므로 영국의회에서는 1534년 영국국왕을 영국 성공회의 수장으로 인정함으로써 로마 가톨릭과의 단절을 하였다. 물론 영국 종교개혁은 헨리 8세의 독단적인 행동은 이라는 설과, 로마 가톨릭의 정치, 사회, 경제에서의 영향력을 극복하려는 영국 국민들의 국가주의에 의한 정치적 사건이었다고 미화하는 설이 있다.
신학적 동기
영국 종교개혁의 신학적 동기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이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운동(Reformation)이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영국 기독교인들도 마르틴 루터, 장 깔뱅의 종교개혁 사상으로부터 신학적인 영향을 받았다. 실제로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 활동한 종교개혁자 토머스 크랜머 캔터베리 대주교는 루터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1549년 영문 성공회 기도서를 출간하여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배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중도
1558년 여왕이 된 엘리자베스 1세는 언니인 메리 여왕 치세에 기독교인들끼리 개신교이다, 로마 가톨릭이다 하는 교단의 차이로 대립하는 종교적 분쟁을 보고 자랐으므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양극단을 극복하려는 중도(라틴말로 비아메디아)을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교회사에서의 전통은 성공회가 자신의 신앙을 고집하기보다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이전의 고대교회가 갖고 있던 기독교 전통을 구심점으로 일치를 이루게 하였다.
복음주의 운동
대영제국의 발전으로 성공회는 전 세계로 확산되지만,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였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성공회 사제인 존 웨슬리 사제이다. 존 웨슬리 사제는 거리에서 민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주의 운동을 하였다. 하지만 존 웨슬리 사제의 복음주의 운동은 무기력한 영국 성공회를 전례중심의 신앙생활,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등을 강조함으로써 갱신하고자 한 신학운동이었으므로 존 웨슬리 사제는 1791년 별세할때까지 성공회 사제였으나 그의 추종자들중 일부가 개신교와 성공회에서 탈퇴함으로써 감리교가 성공회에서 분리되었다. 존 웨슬리 사제의 복음주의 운동은 종교개혁과 더불어 성공회에 복음주의라는 훌륭한 전통을 심어주었으며 저교회라고도 불린다.
옥스퍼드 운동
옥스퍼드 운동은 영국 성공회가 국가권력에 지배받는 영국 국교회로 안주하는 것에 반대하는 신학운동으로 성공회의 보편적 교회 전통을 강조하였다. 옥스퍼드 운동에서는 교회의 전통, 전례, 성사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한국 성공회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사회선교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다. 흔히 고교회라고 불리는 신학조류는 옥스퍼드 운동 전통을 가리킨다.
■ 세계 성공회 공동체
근대 성공회는 대영제국의 식민지 건설과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영국성공회(Church of England)에서 세계 성공회공동체(the Anglican Communion)로 발전하는 두 단계의 과정을 겪는다.
그 첫단계는 17세기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에 퍼지는 단계이다. 18세기에 이르러서 두 번째 단계가 펼쳐지는데 이때 성공회는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이는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성공회의 선교적 노력이 낳은 결과였다.
세계성공회공동체(the Anglican Communion)에 속한 각 지역 성공회 교회들은 교회는 교회가 위치한 나라에 속해 있다는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자치적이고 독립적인 교회로 성장해 갔으나, 19세기 말부터는 역사적 기원과 신학적 이해를 공유하는 하나된 교회의 인식을 강화하고 세계성공회공동체의 당면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램버스 회의(the Lambeth Conference)를 약 10년마다 열어 모이고 있다.
람베스 회의는 강제적 권한을 가진 법적 기구가 아니라 협의체이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일치의 한 상징일 뿐 치리 권한을 갖지 않으며 각 나라의 성공회들은 동등한 자치적인 권한을 갖는다. 1888년 람베스회의에서는 세계성공회공동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독교의 일치를 위한 신앙적 기준을 마련했는데 이는 기독교의 기본 신앙 선언을 함축하고 있다. 람베스-시카고 4개 조항(the Lambeth-Chicago Quadrilateral, 1888년)이라 불리는 이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