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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는가?
새로운 기능을 가진 혁신적 제품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혁신적 제품은 대개 경쟁 상품보다 품질이 다소 낮지만, 몇몇 고객이 중시하는 획기적인 성능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기업들이 무시하거나 멀리하는 시장에서 주로 일어나며, 기존 기업과는 다른 사업 모델로 성공을 거두며 일자리를 창출한다. 대기업의 경우 규모와 성향으로 인해 파괴적 혁신을 일으키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왜 위대한 기업들조차 실패하는가? 이 질문을 물고 늘어진 미국 하버드대학 경영대학원 교수 클레이턴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1952~)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란 답을 내놓았다. 선두기업 자리에 오르게 해준 경영 관행이 바로 그들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그들의 시장을 빼앗아갈 진보된 신기술, 즉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을 개발하는 것을 극도로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크리스텐슨이 내놓은 답이다.
파괴적 기술은 처음에 등장할 때는 거의 언제나 주류 소비자들이 관심을 갖는 특징 면에서 더 낮은 성능을 제공하지만, 몇몇 새로운 고객들이 중시하는 다른 특성들을 갖고 있다. 그런 기술은 일반적으로 더 저렴하고, 작고, 단순하고, 사용하기가 편리하다. 따라서 그들은 신규 시장을 창조한다. 아울러 파괴적 기술의 개발 업체들은 풍부한 경험과 충분한 투자금을 바탕으로 항상 제품 성능을 개선한 끝에 궁극적으로 기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텐슨은 "세 가지 혁신이 조화를 이뤄야 경제가 균형을 이룬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는 기존 제품의 품질을 업그레이드하는 '존속적 혁신(sustainable innovation)'이고,
둘째는 과거 도요타처럼 생산·인건비 등을 절감하는 '효율적 혁신(efficient innovation)'이며,
마지막은 파괴적 혁신이다.
과거 소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주류이던 진공관 라디오를 대체한 파괴적 혁신이다. 이런 파괴적 혁신이 성장을 장려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존속적 혁신과 효율적 혁신에만 목을 맸다. 매년 줄어든 인력으로 생산성을 짜내고 있으니 번뜩이는 파괴적 혁신이 없다. 파괴적 혁신은 '고객이 하고 싶지만 못한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에선 똑똑한 경영진과 막대한 자원을 갖춘 대기업들이 더 단순하고 저렴하며 열등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 계속해서 밀리는 사례가 많이 나타났다. 이런 신생 기업이 바로 파괴적 혁신 기업인데, 이들은 기존 기업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업 모델로 시장에 접근해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하위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제품은 대기업이 취급해서는 수익을 낼 수 없으며, 대기업 고객들의 수요도 없다.
그러다가 이런 파괴적 혁신 기업들이 나중에 상위 시장으로 진입하면 대기업들은 기습을 당하는 셈이다. 도요타나 혼다 같은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1970년대에 소형 승용차로 시장 공략을 한 게 대표적 사례다. 파괴적 혁신 기업은 고객들이 결코 구매할 수 없었던 신제품을 소개하기도 한다. 기존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존 사업 모델과는 너무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했던 것들이다. PC의 역사도 바로 그런 사례로 볼 수 있다.
크리스텐슨은 이렇게 말한다. "뭔가 점점 파괴적으로 변해가는 곳에 그대로 있다는 건 마치 물이 빠진 썰물 때 해변에 우뚝 서서 팔을 벌리고 '파도야, 오지 마라' 하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물결은 그걸 신경 쓰지 않죠. 그냥 거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내 상품은 일상재화(commodification)가 되고 말아요."(일상재화는 특정 상품이 어디서나 구입 가능한 범용성을 띠고 있다는 걸 의미하며, 이는 다른 상품과의 차별성을 전제로 한 혁신재(innovative product)와 비교된다.)
크리스텐슨은 다양한 시장에서 모두 좋은 성과를 올리는 대기업들이 획기적인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실패를 겪는 걸 가리켜 '혁신가의 딜레마(innovator's dilemma)'라고 했다. 획기적인 기술들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협력업체와 고객업체들로 구성된 새로운 네트워크를 구축해야만 하는데, 이러한 작업은 가볍고 민첩한 차세대 기업들에 유리하며, 또한 대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을 재빨리 낚아채서 상업화할 만큼 충분히 빠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교수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1946~)는 『권력의 기술(Power: Why Some People Have It and Others Don't)』(2010)에서 '혁신가의 딜레마'를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리스크를 피하고 안전한 쪽으로 택하는 등 혁신을 외면하게 된다는 점"으로 재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크리스텐슨은 기업이 성장하여 완전히 궤도에 오르면 다음 세대를 대비한 개혁을 좀처럼 시도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개혁이 기존 사업 모델에 파괴적이거나 지장을 줄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지적·재정적 수단을 동원하여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실제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찾아내고 개발하는 데 선두 주자 격인 대기업들도 이런 개혁 기피증을 피하지는 못했다."
IT·미디어 전문가인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 니코 멜레(Nicco Mele)는 2014년 5월 "최근 보도된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신 보고서는 굉장히 뛰어나고 '스마트'한 리포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자신들이 제안한 대로는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대로 하려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죽여야 한다. 그게 바로 '혁신가의 딜레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뉴스의 미래가 되려면 종이신문을 죽여야 한다. 그런데 『뉴욕타임스』가 종이신문을 죽이겠는가? 대부분 임원들은 나이가 들었고, 신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뉴욕타임스』 수익의 80퍼센트 이상이 종이신문에서 나온다. 그래서 오갈 데가 없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 리포트를 쓴 애덤 B. 엘릭(Adam B. Ellick)은 내 제자 중의 한 명이다. 나는 그에게 뭔가 흥미로운 일을 하려면 『뉴욕타임스』를 떠나라고 조언했다. 『뉴욕타임스』의 장점은 딱 하나, 브랜드다. 브랜드 빼고는 모두 다 단점이다. 당신이 『뉴욕타임스』 시니어 기자라면 위로 상사가 10명은 될 것이다. 당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안 돼'라고 말할 사람이 10명이나 된다. 이런 굉장히 큰 조직 안에서 혁신을 하는 건 힘들다."
크리스텐슨의 연구 파트너인 마이클 레이너(Michael E. Raynor)는 "파괴적 혁신은 기존 기업들이 기꺼이 무시하거나 멀리하는 시장에 초점을 맞춘다"며 이렇게 말한다. "그 이유는 파괴적 혁신은 기존 기업이 보유한 우량 고객이 대부분의 수익을 창출해주는 영역에서는 성과가 더 나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별로 매력이 없거나 혹은 작은 영역에서만 그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런 보잘것없는 성과는 '파괴적 혁신'을 지향하는 신상품이나 서비스에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교두보를 제공해준다. 이를 발판 삼아 점점 더 넓은 영역으로 세력을 넓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국엔 파괴적 혁신자들이 기존 기업을 따라 잡지만 기존 기업들이 반응하기엔 이미 타이밍이 한참 늦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파괴당한 것이다."
따라서 많은 기업에 더 큰 위협은 현존하는 경쟁사가 아니라 파괴적 기술이다. 기계식 계산기는 주판을, 자동차는 마차를, 어떤 알약은 수술을 대체했듯이 말이다.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 1931~)는 "모든 신기술을 계속 예의 주시하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업은 기본적인 제품이나 생산 과정을 대체하게 될지 모르는 모든 기술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위협적인 기술을 투자옵션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신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미래를 보호할지도 모른다. '다른 기업이 우리 기업을 정리하기 전에 기업 스스로 정비해야 한다'는 격언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파괴적 혁신 이론을 전쟁에 도입한 연구도 있다. 보스턴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이반 아레귄-토프트(Ivan Arreguin-Toft)는 『약자가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How the Weak Win Wars: A Theory of Asymmetric Conflict)』(2005)에서 1800년부터 2003년까지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일어난 200개 이상의 전쟁을 분석했는데, 놀랍게도 강대국이 승리할 확률은 72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는 병력과 인구 규모 등의 자원이 10배 이상 차이 나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전쟁을 '비대칭전(asymmetric conflicts)'으로 명명했는데, 자원의 비대칭성이 큰 전쟁만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 모든 전쟁을 포함하면 약소국이 승전한 비율은 훨씬 높을 것이다.
아레귄-토프트의 연구에선 지난 2세기에 걸쳐 약소국이 승전하는 비율이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1800년부터 1849년까지 약소국이 승전한 전쟁은 12퍼센트에 불과했으나, 1950년부터 1999년 사이에는 50퍼센트를 넘어서는 수준으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약소국의 승전율이 오랜 시간에 걸쳐 증가하는 추세인 것은 그동안 다른 나라가 성공을 거둔 전략을 파악하고 모방한데다 강대국과 똑같은 조건으로 교전하지 않아야 승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접전'을 벌이면 약소국이 패할 확률이 80퍼센트지만, 약소국이 전장의 숫자를 늘리는 등 전략에 변화를 주면 패전 확률이 40퍼센트 미만으로 줄어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마이클 모부신(Michael J. Mauboussin)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면승부에서 운을 바꿀 길이 없을 때는 여러분이 강자인지 약자인지에 따라 기량의 상대적 중요성을 늘리거나 줄이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조약돌과 새총 대신 긴 칼과 갑옷으로 무장했더라면 어떤 결과를 얻었을까?"
파괴적 혁신 이론은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謀攻)」편에 나오는 다음 전법과 무관치 않다. "적과 아군의 실정을 잘 비교 검토한 후 승산이 있을 때 싸운다면 백번을 싸워도 결코 위태(危殆)롭지 아니하다(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의 실정을 모른 채 아군의 전력만 알고 싸운다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적의 실정은 물론 아군의 전력까지 모르고 싸운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不知彼不知己 每戰必敗)."
한국에서 파괴적 혁신이 가장 필요한 곳은 정치가 아닐까? 그럼에도 정치 분야에서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파괴적 혁신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 적잖은 '신뢰 자본'을 형성한 명망가들은 앞다퉈 거대 정당 앞에 줄을 선다. 아예 혁신의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호랑이 굴 안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겠다고 말은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건 무얼 말하는가? 우리 풍토에서 "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은 "왜 다윗이 골리앗에 도전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반문으로 변질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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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대표 저서로는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 23권), <미국사 산책>(전 17권) 등이 있다.
사람들마다 생각의 내용은 물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이유는 각자 다른 생각의 문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확신’과 ‘확신’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아줄 수 있는 ‘공통의 문법’을 찾고자 여러 분야 학자들에 의해 논의된 유사 이론을 끌어들여 답을 제시한다.
단순하고 저렴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의 밑바닥을 공략한 후 빠르게 시장 전체를 장악하는 방식의 혁신을 말한다. 세계적 경영학자인 미국의 크리스텐슨 교수가 창시한 용어로 그가 1997년에 쓴 저서 《혁신 기업의 딜레마》를 통해 처음 이 개념을 소개했다. 책은 10개 언어로 번역돼 25개국에서 출판됐으며 현재까지 경영학 분야 최고 스테디셀러 중 하나로 꼽힌다.
195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태어난 크리스텐은 브리검영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0년에는 경영컨설팅 회사인 이노사이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2012년 2월 미국 경영전문 사이트 ‘싱커스 50’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로 선정하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괴적 혁신 [disruptive innovation] (한경 경제용어사전,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