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이진호
방에 손주가 들어와
아침 하늘을 빛으로 연다
세배하고 일어 선
색동옷에서 떨어지는 빛
금빛가루들
묵은 수염 끝에
금빛 가루를 달고
이제 몇 살고
오오라 여섯 살
대견해 하시는 할아버지
움푹한 볼 우물에
금빛가루를 퍼 담고
내년에 할미하고 핵교 가야재
할미는 손주와 동학년
금방 하늘에서 내려 온
꽃잎에 싸여
싱그런 새 날
새 아침이 열린다
설날
엄기원
새해 첫날은
설날
온 세상이 기쁨으로 맞이하는 날
뭐든지
첫 시작 잘해야지
설날
그래서 설날은
마음도 조심
몸도 조신
우리가 어른에게 세배 드리는 건
새해 첫날부터
조심하고
조신한다는
값진 약속이라네.
*조심(操心): 실수 없도록 마음을 삼가서 경계함
*조신(操身): 몸을 삼가서 행동함
눈길
정호승
의자에 쓰러질 듯 앉은
아흔 노모에게 마지막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지 못했다
나는 아직 세뱃돈을 받고 싶은데
이제 아무한테도 세뱃돈을 받을 데가 없다
아파트 앞마당
산수유 붉은 열매를 쪼아먹는
새에게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산수유나무 아래 아이들과 신나게 세워둔
눈사람한테 세배를 하면
세뱃돈을 줄 것인가
새해 아침에 함박눈은 자꾸 내리는데
세뱃돈을 받으러
어머니가 가신 먼 눈길을 걸어가는 내가
눈보라에 파묻힌다
떡국을 끓이며
장순복
새해 첫날 아침
조용히 일어나 떡국을
끓일 준비를 합니다
해처럼 둥근 떡을 꺼내 놓고
재료를 하나씩 채워
먹음직한 떡국을 만드니
여명이 밝았습니다
새로움이 깃든 이 시간
가족들을 떠올립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온갖 서러움을 365일에 채우고
미처 비울 시간도 없이
또 다시 삶에 도전하는
한없이 약한 저들에게 힘을 주옵소서
한 살 더 많아지니 기도할 것도 늘어납니다
딱딱했던 떡이 시간을 들이니
먹기 좋게 익은 것처럼
올해도 매일의 삶이
먹음직한 요리가 되게 해 주소서
양념과 섞여도 새하얀 떡살처럼
험한 세상 살 때에
어우러지되 물들지 않게 지켜주소서
일 년이 매일 첫 날 같게 하소서.
세뱃돈
강순구
설명절은
추억이 숨을 쉬고
그리움은 더 차오른다
저 하늘은 보았을까
저 강물은 들었을까
머리속 스쳐가는 아련한
어린시절의 희미한 흑백사진
옛 추억은 떠오르고
내 호주머니 속 갑북갑북
구겨진 십 원짜리 종이돈
짤랑대는 오원짜리 동전소리
할배와 할매의 소중한 쌈짓돈
빙그레 웃음 보내 주시던
할배 할매 그리움에
웃고 울며 달려간다
고향에 가고 싶은
견딜수 없는 이 마음
아~ 그리운 내 고향..
아 ~설날
이형숙
설날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설레며 기다리던
때가 있었지
예쁜 치마 색동 저고리입고
부모님께 얌전히 절하면
올 한해도 건강해라시며
세뱃돈을 주시고
맛있는음식도 먹고
동네 어르신들께
세배하러 다니며
세뱃돈을 받는 재미에
떼지어 다니던 그때
오늘날 설날은.?
풍요속에 빈곤으로
설날의 설렘이 묻혀 버린듯
세대 차이가 이런 것일까라고
속물음 묻는다
감싸도는 얼굴
석정희
골똘해지는 그리움
눈처럼 내려 쌓이네
그 순백의 정렬
녹아 고드름되어
님의 가슴에 투명하게
사랑이라 쓰네
머언 어디선가
종이 울리는듯
가슴을 채워 가다
그대로 터뜨리고 말면
하얗던 눈발
하나 하나
님의 얼굴이 되어
날 감싸고 도네
떠오르는 새해
嘉恩 서비아
쑥스러운 얼굴
무늬를 그리며
떠오르는 태양
삶의 은총
희망찬 분화구
첫걸음 새 출발
암울한 정적 밀쳐내고
홍조 띤 바닷물 결
꽃으로 피어나는
비상하는 날개
철석 철석
번쩍이는 광채
질주하는 도약 癸卯年
피고 피는 대망 찬란한 빛
떠오릅니다 .
어머니의 저울
정다겸
설 명절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즈음
어머니의 저울이 등장한다
세 개의 봉지가 나란히 놓이고
대접 안의 잡채가
하나, 둘, 셋 봉지에 담긴다
우리 가족 4명, 동서네 3명,
막내딸은 달랑 두 식구인데도
봉지 크기는 똑같다
어머니의 몸이
해와 달을 닮아가는 사이
큰일은 모두 큰 며느리 차지가 되었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즈음,
봉지도 따라갈 채비를 서두른다
어머니네 둘, 동서네 셋, 고모네 넷인데…
새로운 저울이 당도하기 전
어머니의 저울이 급히 달려오고
봉지는 서로 똑같다며 웃는다.
구정 설에
박대산
고향이 그리운 건
쓸쓸해서만 아니다
값없이 받은 은혜
내실에 오롯해도
설이면 자라온 고향이
타향보다 정겹더라
지인들 안부 물어
평강을 기원하고
또 한해 떡국 먹고
도량 있는 어른이 되면
까치도 이웃이 되어
새 희망을 전한다.
설날 덕담
장병진
창밖에 세배 인사
소망이 용솟음쳐
새 아침 덕담 인사
새해 삶 뛰며 살자
올해는
웃음꽃 만발
잘 살았다 말하자
설날이 되면
윤정식
세자매
색동저고리
빨간 치마
손수
만들어 주신
엄마의 사랑
아빠는
옥색 바지저고리
두루마기까지
아빠 손잡고
고개 넘어
할머니께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던 길
어제와 같아라.
설날
박동진
섣달에 태어났다 고
돌 돌 싸매놓아
소피 볼 때
눈물 질끔 도
잠들면 눈썹 쉰다는
누나들 놀음에
버티다 잠든 놈
차례상 앞 때
놋화로 따스함에
콜 콜 콜콜
끝났다 고 깨우면
술잔 못 올렸다고
오히려 생트집
음복 후
용돈에
헤벌레
그날 만
같애라.
고향 설날은 엊그제 같은데
전한구
고향 설날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가서
그 시절 그리움 꿈꾸다
오롯이 가슴속에 새긴 추억
살며시 끄집어내는 반 백년 세월 따라
탐스런 해맑은 아름다움 찾아드는
우리는 지금 타향에 와 있네
가는 세월 그 누구도 잡을 수야 있겠냐마는
무정스레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맘
간절한 염원으로 남는구나
엊그제 지난 듯한 고향 설날은
삶의 언저리에서 쓰디쓴 고배를 마실 때에도
은빛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 무언가를 내게 주는 사랑의 속삭임
눈 내린 앞 들판에 초롱이 지나간 발자국 따라
새 옷 입고 새 신발 신고
새해아침 세배 가는 아이들의 분주한 웃음소리들
은빛 아침햇살 곱게 받은 하얀 들판에
감미롭고 포근한 모습이 드리운 곳
자꾸만 떠오르는 엊그제 같은 고향 설날은
참 따뜻하고 평온하기만 하다!
서설(瑞雪)
은봉(恩峰) 박철민
설날을 기다리던 어린아이 마음처럼
흰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서설이다
가려진 은총속에서 시작되는 새아침
온가족 옹기종기 아랫목에 모여앉아
세배와 덕담속에 밝은기운 솟아나고
올한해 웃을일들만 가득하길 기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