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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5:1-17
찬송가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사람은 살면서 세 가지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누구나 평생에 한 번 쯤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은 특히 어려움과 힘든 일을 겪을 때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마음 먹은 대로 풀리지 않을 때, 혹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치고, 허망함을 느낄 때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신자된 우리도 답이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성전 재건(1-2)
성전 재건을 멈춘 지, 15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고레스 칙령이 선포된 후, 포로 귀환민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간절히 열망했던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과 열정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방해와 어려움이 계속 되자, 현실적 문제가 눈에 들어왔고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성전 짓기보다 중요한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불확실한 미래에 더 이상 힘을 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 성전 지을 때가 아니라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자신의 집을 돌보러가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에도 삶은 그리 윤택해지지 않습니다(학 1:6). 이런 모습은 다리오 왕 제2년까지 이어졌습니다.
(1-2)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
하나님은 그 침묵을 깨뜨리고 백성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어 하나님의 이름과 권위로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 공허한 인생에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게 하셨습니다. 필요와 이익을 좇아 세상을 따르는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에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났고 그들을 중심으로 성전 건축이 재개되었습니다. 선지자들은 백성과 함께 지내며 말씀과 격려로 백성들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성전 재건의 주도자(3-5)
(3-5)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유다 백성이 성전을 재건한다는 소식은 큰 이슈였습니다. 페르시아 내에 반란이 진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리오 왕이 왕위에 오른 뒤 2년 동안 반란이 들끓었습니다. 이에 관리들은 어떤 조짐이 보이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 있는 총독 닷드내와 그의 보좌관 스달보스내, 그의 동관들이 그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다. 당시 통신과 교통이 오늘날과 달리 느렸기 때문에 그들은 건축이 어느 정도 진척이 된 후 도착했을 겁니다. 닷드내는 반란의 징후를 살피며, 백성들에게 무슨 권한으로 성전을 건축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이 장면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재건을 할 때도 이런 압박을 받았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두려움에 작업을 중단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제국의 관리들이 찾아와 위협했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당하게 고레스 왕의 허락받은 일임을 알리고, 공사를 계속 이어갔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주신 은혜가 컸고, 그때보다 믿음이 자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결단을 한 지도자 장로들을 돌보셨습니다.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를 원어로 보면 ‘그들의 하나님의 눈이 장로들 위에 있었다’입니다. 에스라서에서 '손'과 '눈'은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나타냅니다. 선지자를 보내 성전 재건 공사를 재개하도록 한 것과 장로들을 돌보사 관할 총독이 성전 재건 공사를 직접 방해하지 않게 한 것은 우연도, 운도 아닙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왕에게 편지를 보내고 회신을 받기까지는 최소한 4-5개월이 걸렸는데, 그 동안 성전 건축은 순조롭게 진행된 되었을 겁니다. 이 조차도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닷드내는 고레스 칙령에 대해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가 권력을 잡기 전에 칙령이 중단되었기에 이에 대해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다리오 왕에게 고레스의 허락이 진실인지 물으려 편지를 썼습니다. 처음엔 페르시아 관리 닷드내는 공사를 당장 멈추게 할 요량이었고, 그럴 권한을 가졌지만, 마음을 바꾸어 왕으로부터 회신이 올 때까지 공사를 허락하기로 합니다. 유다 백성을 돕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해석된 시선(6-17)
(6-9)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인 유브라데 강 건너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라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평안하옵소서 왕께 아뢰옵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가 본즉 성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일하므로 공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에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보기를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라고 하였느냐 하고
다리오 왕에게 올린 편지 내용에는 그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말한 바였습니다. 닷드내와 그 동료들은 유다 행정 구역에 세워지고 있는 지극히 큰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큰 하나님'이라 부른 것은 그들의 믿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페르시아인들이평소 쓰는 표현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큰 돌로 세우고, 벽에 나무를 얹으며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벽에 재목을 쌓는 방법은 솔로몬 성전의 건축을 따라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무너졌던 신앙을 세우는 영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닷드내는 이런 열심 뒤에는 숨은 동기가 있을 거라 의심하고, 장로들에게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성전을 건축과 성곽 완성을 명령했는지 물었습니다.
(10-12) 우리가 또 그 우두머리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고자 하여 그들의 이름을 물은즉 그들이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예전에 건축되었던 성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건축하여 완공한 것이었으나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이 성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닷드내는 성전 착공에 참여한 자들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아뢰려고 물었습니다. 에스라 5장에서는 누구인지를 묻는 것이 세 번 나옵니다. 3절에서 “누가 성전을 재건하라고 했는가”를, 9절에서 “성벽 공사를 누가 마치라고 했는가”를 묻습니다. 세 번째로 10절에서 성전 건축 참여자가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누구의 권위로 누가 성전을 재건하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에 유다 사람들은 자신을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고 답합니다. 이름을 물었더니 쌩뚱맞게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신앙고백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참 왕은 페르시아 왕 다리오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성전을 재건케 하신 하나님이시며, 성전 재건은 인간이나 민족의 의지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창조주이자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명에 따라 시작된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유다 백성은 이스라엘의 큰 왕, 즉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으나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겨져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갔음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의 죄로 인해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민족들 가운데로 흩으시고, 성전이 파괴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과거에 그들은 성전이 파괴된 것을 애굽이 돕지 않아서 혹은 군대의 힘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생각했으나, 이제는 영적인 문제로 보았습니다. 세계를 제패한 왕이라도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3-16)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게 하고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금, 은 그릇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꺼내어 그가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고 부르는 자에게 내주고 일러 말하되 너는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성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제자리에 건축하라 하매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아직도 마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유다 백성들은 고레스 원년에 행해진 고레스 칙령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는 성전 재건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이 가져갔던 성전 기물도 돌려주었습니다. 이에 세스바살이 성전 지대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유대인들의 신앙적 침체로 완공되지 못했습니다. 이후,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성전은 마무리 될 것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고레스를 바벨론 왕으로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고레스는 바벨론 왕이 아니라 페르시아 왕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를 바벨론 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를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고레스는 스스로 자신을 바벨론 왕으로 표현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을 세우면서 바벨론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점을 강조하여 당시 사람들의 반감을 줄이려 했던 것입니다. 둘째, 성경기자의 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대표하는 나라는 바벨론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시킨 자도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었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명한 자도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바벨론 왕 고레스였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으로 세상에 의해 무너진 성전이지만, 하나님의 간섭으로 세상에 의해 재건 되는 성전인 겁니다. 곧 하나님께 성전의 건설과 무너뜨림이 달린 것입니다. 세상의 강대국에 좌우되는 것 같아 보여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라는 말입니다. 선지자를 보내어 예언하며, 성전을 짓도록 동기부여 하신 분도, 직책있는 자를 지도자로 세운 것도, 성전 건축이 중단되지 않도록 장로들을 돌보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성전을 짓도록 이방 왕의 마음을 만지신 것도, 기물들을 다시 돌려보내신 것도 하나님입니다.
(17)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닷드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며,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전각 있는 고레스 왕의 조서를 확인해 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세상의 의심과 불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왕에게 고레스 칙령을 확인 후 기쁘신 뜻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이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결정하시고 알려주시기 바랍니다’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우리는 종종 끝을 두려워 합니다. "마지막은 허망하진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합니다. "이러다 망하는 것 아닌가?"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들,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때 우리 마음이 특히 그렇습니다. 저도 가끔 "나의 끝은 어떠할까?"하고 자문합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물론 이렇게 고민하다보면, 걱정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성경 구절들을 떠올리고 이내 "모두 주님께 달렸다 주님께 맡겨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러 하나님을 더욱 붙들게 됩니다.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치고, 우리를 도와줄 손길이 없다고 느껴져도 희망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눈물 나는 시간을 지나도 낙심하지 않기 원합니다. 우리 인생이 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면 그분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며, 그분 안에서 인생이 마무리 되기 때문입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 해도. 때론 평탄하지 않아도 원하는 그림은 아닐 수 있어도 실망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일이 지연 되어도 수치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그의 손 안에 온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의 주체는 하나님이며, 세상 일과 흥망성쇠는 하나님께 달렸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주를 신뢰하고 붙들고 살아가길 원합니다. 우리가 주께 붙들려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끝내 붙들어 가십니다.
우리 인생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누가 우리 인생을 시작했으며, 누가 우리의 인생을 완성 시킵니까? 인생을 시작하신 이가 하나님이라면, 마치시는 이도 하나님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은 주께 달렸습니다. 주로부터 시작된 삶이오니, 마지막도 맡기겠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이루어가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세상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으며, 주를 신뢰하며, 살아가게 도와주옵소서. 사랑하는 자 안에서 사랑받는 자가 되게 하신 은혜를 언제나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나아가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은 선지자들와 말씀을 통해 백성이 성전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2. 조상들이 하나님께 진노하게 하였을 때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우리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3. 성전의 건축과 무너짐, 그리고 재건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처럼, 인생의 시작과 끝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기대하고 있습니까?
4. 하나님은 바벨론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치시기도 하셨고, 다시 돌아오게도 하셨습니다. 세상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일이 있다면 서술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성: 김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