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포해변(十里浦海邊)
인천상륙작전 영흥도 소년특공대소사나무 군락지로 유명한 십리포해변 파도 소리가 경쾌한 십리포해변은 길이가 1km, 폭이 30m로 왕모래와 콩알만한 자갈들로 이루어진 특이한 해변이다. 십리포(十里浦)란 이름은 포구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십리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해변 서쪽으로는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해수욕장 뒤편으로는 소사나무가 군락지를 이루어 해변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어떤 자료들을 보면 이곳의 나무를 서어나무라 부르기도 하는데 소사나무는 서어나무의 일종이지만 서어나무는 아니다. 100여 년 전 내동마을에 살던 선조들이 농사를 망치는 해풍을 막기 위해 이런 저런 나무들을 해변에 심었는데 다른 나무들은 모두 죽고 소사나무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지금은 약 350그루의 소사나무가 멋진 숲을 이루고 있어 전국적으로 하나밖에 없는 해변괴수목(怪樹木, 기이한 나무) 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5월이 되면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소사나무는 한 그루도 곧게 자라는 나무가 없이 구불구불 모양이 제멋대로이다. 그런 까닭에 목재로 쓸 수 없고 땔감으로도 마땅치 않은 덕분에 오래도록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소사나무는 모양이 기괴하지만 여름철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정자나무 역할을 해주며 겨울에는 방풍림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나무숲이다.
인천상륙작전 영흥도 소년특공대
십리포 해변은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정보수집 캠프가 설치된 곳으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데 초석 역할을 한 곳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준비했던 미군은 현지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미해군은 미 극동사령부 클라크 대위와 해군대위 연정, 육군방첩부대장 출신 계인주 대령과 함께 인민군이 미처 들어오지 않은 영흥도로 잠입한다. 이들은 영흥도의 10대 청소년들을 모아 부대를 창설하고 어부로 위장시켜 정찰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다. 클라크 대위는 이렇게 모은 정보를 맥아더 장군이 있는 지휘부에 전달함으로써 1950년 9월 15일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마자 대부도에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대대병력이 영흥도로 몰려와 영흥도를 지키던 소수의 해군장병, 소년특공대원들과 전투를 벌였고 이들은 섬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모두 전사했다. 이 때 순국한 소년특공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92년 해군영흥도 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출처:(인천 보물섬에서 놀자)
2022-12-19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