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6:1-14
찬송가 19장 ‘찬송하는 소리 있어’
에스더서는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여인 에스더를 통해 피지배민의 신분 상승에 관한 감동적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라 선택받은 민족을 버리지 않으시고 영원히 존속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에스더서는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고 성령님의 보증이 된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고난 가운데에서도 악인에 의해 함몰되지 않게 하시고 영원히 존속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섭리를 알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초대 왕 고레스 원년에 바벨론 포로 1차 귀환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2차와 3차 귀환에 앞서 귀환의 틀을 만들어주셨습니다. 2차와 3차 귀환은 페르시아 5대 왕 아닥사스다 왕 때 이루어졌는데, 2차 귀환 전 페르시아 4대 왕 아하수에로가 지배할 때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좋은 감정이 페르시아 제국과 왕실에 있도록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도구 삼아 포로 시대 이스라엘 백성을 존속시켜 주시지 않으셨다면, 에스라 인도의 2차 귀환과 느헤미야 인도의 3차 귀환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페르시아 왕후가 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믿음으로 왕께 나아간 일과 왕을 모시고 하만과 함께 하는 1차 잔치를 베푼 후, 왕께 소청을 아뢸 2차 잔치 직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하만의 몰락을 예고할 뿐만 아니라 하만의 유다인 말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것임을 암시합니다. 에스더 6장에서도 주목해야 점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치의 오차 없이 치밀하게 선민의 보호하심을 에스더 6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섭리_아하수에로 왕이 역대 일기를 접하다(1-3절)
1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날 밤’의 ‘그 날’은 5장에서 전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던 날입니다. 5장 1절의 ‘제삼일’에 해당하고, 5장 4절의 ‘오늘’이기도 하고, 5장 9절의 ‘그 날’이기도 합니다. 5장 1절의 ‘제삼일’이란 왕후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왕이 있는 왕궁 안 뜰에 간 날이고, 5장 4절의 ‘오늘’이란 왕후 에스더가 잔치에 왕과 하만을 초대한 날이고 찬치가 끝난 후 내일 하루 더 잔치에 왕과 하만을 초대한 날이고, 5장 9절의 ‘그 날’은 하만이 다음 날 찬치에도 참석하게 되어 기쁨을 참지 못하고 즐거이 나오다가 모르드개를 보고 분노하여 모르드개를 죽이고자 약 23미터 높이의 나무를 제작한 날입니다. 하루 사이에 중요한 일들이 많았던 날이 ‘그 날’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끝난 ‘그 날 밤’에 왕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왕들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는데, 아하수에로 왕의 불면의 이유를 성경은 전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이유가 어떠했든지 왕이 잠이 오지 않았기에 신하에게 궁중 일기를 읽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2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5년 전(에2:16, 에3:7)에 발생한,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 사건을 듣습니다. 그리고 암살 시도자와 암살 시도를 막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듣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린 왕은 잠이 오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 잠이 깰만한 사건을 듣게 된 것입니다. 궁중 일기의 분량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의 통치 12년째 해(에3:7)에 그 이전에 기록된 궁중 일기 내용을 하룻밤에 들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일들 중 모르드개가 왕의 암살 시도를 막은 사건을 듣게 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묻습니다.
3 왕이 이르되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하니 측근 신하들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왕이 무슨 존귀와 관작을 베풀었는지를 물었던 이유는 충신에 대한 적절한 대우를 해주어야지만 신하들이나 백성이 왕에게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신하로부터 들었던 답변은 잠이 더 달아날 답변이었습니다. 5년 전 모르드개에 대한 존귀와 관작을 베풀지 않았던 것을 왕이 ‘그 날 밤’에 알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우리가 과거 ‘잘 풀리지 않았던 일’에 의구심을 가졌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생각해 보십시다.
왕이 존귀하게 여길 사람을 어떻게 할지를 하만에게 묻다(4-9절)
4 왕이 이르되 누가 뜰에 있느냐 하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이른지라
3절과 4절은 바로 이어진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왕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궁중 일기를 듣다가, 모르드개 관련 사건을 알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만 역시 1차 잔치 참석 후 다음 날 2차 잔치 참석 전에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일 생각을 하고, 왕에게 재가를 받으려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왕과 하만 모두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각자 원하는 것을 빨리 처리하고자 했는데, 하만의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5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하만이 왕궁 바깥뜰에 있는 것을 알게 된 왕은 하만을 불러들였습니다. 하만은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왕의 호출을 받았기에 마음이 더욱 들뜬 상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6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하만의 입장에서 보면, 왕이 자신을 호출하여 한동안 풀지 못했던 난제나 새로운 국사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시고 어떤 배경이나 취지 설명 없이,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라고 물으시니, 하만은 더더욱 흥분을 감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하만은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자신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왕께 대답하였습니다.
7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8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9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
하만이 왕에게 한 대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 대상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하만은 왕의 자리까지 넘겨보고 있다고도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하만이 말하는 왕복이란 왕의 여벌의 옷이 아니라 왕이 집무 중 입는 옷을 가리킵니다. 어떻게 신하가 왕복을 쉽게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한편 ‘머리에 쓰시는 왕관’으로 번역된 표현은 원문의 분석과 더불어 9절과 10절과 11절에서 ‘왕관’이 언급되지 않은 것을 종합할 때, 8절의 ‘왕관’으로 번역한 단어는 왕의 머리에 쓰는 왕관이 아니라 왕이 타는 말에만 씌우는 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리무진 번호판에 ‘봉황 그림’이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 전용차임을 알 수 있듯이, 당시 페르시아 왕이 타는 말의 머리에 특별한 관을 씌웠기에 백성이 볼 때 그 말은 일반인이나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닌 왕이 타는 말임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에 태워 성 중 거리로 데리고 나갈 사람으로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라고 하만이 말했다는 점입니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 다음으로 가장 높은 사람은 하만 자신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독자가 볼 때는 하만의 이 대답은, 왕의 말을 탄 사람을 끌고 다닐 사람이 자신이 될 것임을 마치 예언한 것처럼 들립니다. 하만의 대답을 들은 왕이 이제 그 존귀하게 여길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왕이 존귀하게 여길 사람이 모르드개임을 하만이 알다(10-11절)
10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성경은 하만의 심리 상태를 전하지 않지만, 왕의 말을 들은 하만은 충격에 빠졌을 것입니다.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는 어명에 하만은 그대로 실행했어야 했습니다.
11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모르드개와 하만은 원수지간이었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에 기인한 원수지간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 기인한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에스더 3장에는 하만을 아각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 아각은 아말렉의 왕이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가나안 땅으로 행진할 때 아말렉은 이스라엘에 싸움을 걸었던 족속입니다.(출17:8) 이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셨고,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사람과 그들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고 사울에게 명령하셨는데, 사울 왕은 아말렉 왕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 등 모든 좋을 것을 남기고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이를 알고 아각을 죽였지만, 이때 사울이 살려둔 아말렉 사람들이 본문의 시대까지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하만이 바로 아말렉 사람 아각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 역시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포로민으로서 바벨론에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 왕 통치 시대에 하만이 대신들 중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고, 모르드개를 포함해서 과거부터 원수였던 이스라엘 사람을 의미하는 ‘유다인’을 진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은 한순간에 자신의 원수를 왕이 타는 말에 태워 말을 이끄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하만의 심리 상태와 행동을 다음 구절이 짤막하게 증거합니다.
하만이 번뇌하며, 자신의 몰락 예고를 듣다(12-14절)
12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서
하만은 번뇌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당한 수치를 그의 아내와 측근들에게 알렸습니다.
13 자기가 당한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말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의 아내 세레스가 이르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사람의 후손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그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하만은 자기 집에서 위로의 말조차 듣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몰락할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을 듣던 중 왕의 내시들이 찾아왔습니다.
14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하만은 왕후 에스더가 베푸는 2차 잔치에 왕을 제외한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 잔치가 자신이 겪은 수모와 번뇌를 풀 수 있는 위로의 시간이 될 것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서의 독자는 지금까지의 전개를 생각한다면 하만의 몰락이 어느 시점이 될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하신 이스라엘 사람이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를 영원히 지켜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에 어떤 위기에도 결코 진멸되거나 함몰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만난 환난의 여파나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것만을 보지 마시고 현실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시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님의 보증이 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시며 오늘 하루도 주어진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택정해 주시고 예수님의 보혈로 속량해 주시고 성령님으로 보증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각자 인생사를 주관하심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지 않게 하시옵고 현실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그 날 밤’의 ‘그 날’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내 인생에 하나님의 섭리의 ‘그 날’을 생각해 봅시다.
2. 모르드개가 충성을 다하고도 당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나의 인생에 무엇이 잘되지 않았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했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잘되지 않는 것이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깨달았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3.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의 공통점을 찾아봅시다.
4. 하만이 왕복을 입은 모르드개를 왕의 말에 태우고 성 중에 돌아다녔을 때, 하만과 모르드개가 각각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5. 하나님을 향한 창문을 여는 사람은 당장 무언가 잘되지 않을지라도 취해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작성: 김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