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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20코스 역방향
용동마을회관-두모마을-용교마을-정착마을-무안국제공항-톱머리해변-톱머리항
-대도마을-태천마을-복룡마을-상마정마을-용계천-도림마을-청계면복합센터
20221012
1.톱머리 해변의 아름다움과 봉대산 고림봉의 중요성
서해랑길 20코스 탐방을 끝내고 벌써 두 달 열흘이 지났다. 그 동안 이리저리 방랑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탐방 기록을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가을이 한창인 10월 중순의 무안 지역은 고구마 수확철이었다. 고구마 수확 이후 양파 재배를 위해 밭을 일구던 무안의 풍경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 때의 기억과 사진 속 추억을 되살려 서해랑길 20코스 역방향 탐방 체험을 간략히 기록한다.
서해랑길 21코스를 역방향으로 끝낸 뒤 용동마을회관 앞 쉼터정자에서 아침을 먹고 20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20코스는 21코스와 해안을 마주보고 있다. 20코스를 먼저 탐방하면 21코스가 미지의 세계 속에서 어둠이었을 것이지만, 21코스를 먼저 탐방하였기에 20코스 탐방길에 21코스의 지역이 그리움으로 환하게 빛난다. 이 탐방에서는 그것이 큰 기쁨이었다.
망운면 송현리 용동 버스정류소에서 망운 방향으로 운해로를 따라가면 무안군 망운면은 남서쪽 바다로 뻗쳐 있다는 것이 감각된다. 그래서 운해로에서는 망운면 동남쪽 해안과 서북쪽 해안이 모두 조망된다. 동남쪽으로 무안국제공항과 톱머리해수욕장, 압해도 송공산과 김대중대교, 21코스의 끝 지점 운남면 동암리 영해마을이 가늠되고, 서북쪽으로는 23코스에서 탐방하는 망운면 탄도만의 목서리 무안낙지공원과 송정리 봉대산 해안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다. 운해로 두모마을 앞을 거치며 망운면 곰솔나무를 멀리 바라만 보며 앞으로 내닫는다. 운해로에서 용교마을로 들어간다. 이곳에서부터 망운면 피서리 지역이다.
망운면 피서리는 톱머리해수욕장까지 이어진다. 용교마을-정착마을-무안국제공항 레이더기지-청운로-톱머리해수욕장-톱머리항-톱머리방조제, 이 구간이 20코스의 핵심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정착마을, 왜 정착마을일까? 피서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문의하니 6.25 때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지정해 주었으며, 무안국제공항은 일제 때부터 있었던 비행장이었다고 함께 알려준다. 이 답변으로 이 지역이 생생하게 탐방객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진다.
무안국제공항 레이더기지 앞에 호남고속철도 2단계 제4공구 현장사무실이 있다. 불편한 교통 때문에 무안국제공항의 이용자가 감소한다는 내용을 방송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호남고속철도를 무안국제공항 앞으로 통과시켜 공항역을 설치할 것이라는 예상이 들었다. 그렇게 하여 무안공항의 이용자들을 늘리려는 철도교통 정책 같았다.
톱머리해안으로 나갔다. 톱머리는 토끼의 머리를 닮아 '兎머리'라 불리던 지명이 토머리→톳머리→톱머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톱머리 해안은 무안군 망운면 북쪽으로 바다가 깊숙하게 파고들어 청계면 구로리·강정리·도내리, 운남면 동암리·하묘리, 망운면 송현리·피서리 사이에 동그란 해안을 그리며 톱머리만을 형성하였다. 그 아름다움이 망운면 피서리 톱머리 해안 백사장에 펼쳐져 있다. 망운면·청계면과 운남면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고, 동쪽의 청계면 도내리·강정리·구로리 해안은 망운면 피서리 남쪽으로 이어져 있다. 톱머리해수욕장 남쪽에 톱머리항에는 방파제등대가 조성되어 있는데 등대 모양을 무안국제공항과 연관시켜 비행기 모양으로 조성하였다. 그래서 이 등대를 비행기 조형 등대라고 이른다.
톱머리항 북동쪽으로 아름다운 창포호가 있다. 창포호는 톱머리 해안에 조성된 방조제로 형성된 인공호수이다. 망운면 피서리와 청계면 도내리를 사이에 두고 학계천과 태봉천이 합수하여 톱머리 앞 바다로 흘러들었다. 이 하천을 가로막아 방조제를 조성하여 톱머리항 북동쪽으로 형성된 드넓은 인공호수가 창포호이다. 창포호를 형성한 방조제는 너구리섬을 매개로 하여 2개로 조성되어 있다. 첫 번째 방조제는 망운면 톱머리항에서 청계면 도내리 너구리섬으로 이어지고, 두 번째 방조제는 너구리섬에서 중근봉 앞으로 이어진다. 이 방조제에 의하여 드넓은 창포호가 형성되었고 창포호를 배경으로 무안컨트리클럽 골프장이 조성되었다. 톱머리 해변에서 이 풍경들을 감상하고 남쪽 끝에 압해도의 송공산과 목포와 압해도를 잇는 김대중대교(22코스)를 가늠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운남면 동암리 용해마을에서 출발하여 새벽의 어둠을 헤치며 21코스를 걸었다. 그때 동쪽 해안에서 불빛 깜빡이는 산봉이 보였다. 저 산봉이 뭐지? 저기가 어딜까? 불빛은 어둠 속에서 깜빡이며 행로의 위치를 어림하는 기준이 되었었다. 톱머리 해안 수보라횟집 마당에서 톱머리만과 지형을 살피며 그 산, 바다의 등대처럼 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희망의 불빛 반짝거리는 산을 바라보았다. 수보라횟집 주인장에게 산 이름을 물으니 도대봉이라고 알려준다. "아, 도대봉이었구나. 도대봉의 등불은 무안공항과 관련이 있겠어. 밤에 비행기 항로의 기준이 되는 거겠지." 이런 생각을 품었었다.
청계면 도대리로 넘어가 도대마을 앞을 거쳐 강정리 태천마을로 내려갔다. 태천마을 앞 빈터에서 말리는 씨종자 벼를 흩어주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이 도대봉의 유래를 말씀해 주셨다. 도대봉은 태천마을의 주산으로 고림봉이라고 이르며 봉화대가 있었던 곳으로 봉대산이 원래의 이름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태천마을을 빠져나가 마을 앞에서 봉대산을 바라보았다. 봉대산 고림봉이 낮지만 듬직하다. 저 산에서는 목포 유달산과 광주 무등산이 보인다고 하니 대단히 주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봉대산은 서해랑길 20코스와 21코스 탐방의 기준이 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20.26km
전체 소요 시간 : 5시간 15분
전남 무안군 망운면 송현리교차로 앞 용동마을회관 입구 옆에 서해랑길 무안 20·21코스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거리 18.7km, 소요시간 6시간, 보통 난도, 용동마을회관-무안국제공항-톱머리해수욕장-청계면복합센터로 이어진다.
국도 77호선 송현교차로가 앞쪽에 있다. 서해랑길 23코스는 송현교차로에서 조금나루터 방향으로 이어진다.
망운면 송현리 용동마을회관 옆 쉼터정자에서 아침을 먹었다. 전봇대에 서해랑길 21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망운-운남 간 운해로 옆에 형성되어 있다. 행정 구역명으로는 망운면 송현2리 용동마을이다. 마을유래지에서는 '용동' 마을 이름의 유래를 "마을의 형태가 용이 S자 모양으로 누워있는 것처럼 길쭉하게 생겼다 하여 용골이라 하였다가 지금은 龍洞으로 부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민들도 같은 의견을 갖고 있었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서해랑길 20코스 역방향은 용동 버스정류소 앞에서 용교 버스정류소까지 운해로를 따라 이어간다.
톱머리해수욕장과 그 뒤에 도대봉(봉대산)이 우뚝하다. 서해랑길 20코스는 저곳을 통과한다.
서해랑길 23코스에서 탐방하는 탄도만 해안과 목서리의 무안낙지공원, 송정리의 봉대산 방향을 가늠한다.
서해랑길 20코스에서 통과하는 무안국제공항과 무안국제공항레이더기지를 조망한다.
운해로에서 서쪽 두모마을을 조망하는데, 무안의 명품 소나무 '망운면 곰솔나무'가 왼쪽 전봇대 뒤에 조망된다.
*두모는 월곡과 함께 송현1리에 속하는 마을이다. 큰마을 작은마을로 불려지기도 하는데 작은마을에 해당되는 월곡은 200여년 전에 파평 윤씨 月谷 윤상은 윤참봉에 의해서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유래지에는 윤은보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하나 마을 앞 파평 윤씨 집안의 무덤에 있는 비문과 월곡이라는 마을 이름을 볼 때 윤상은에 의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파평 윤씨의 족보를 볼 수 없어서 더 이상의 확인은 할 수 없었다. 마을 앞에는 재잣등이라는 산이 있으며 산 아래에 확골이라는 들이 있다. 큰마을에 해당하는 두모 마을은 김해 김씨 서보(金瑞甫, 1584~1642)에 의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터를 닦은 연대는 경상도 김해에서 이곳으로 온 16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되는데 당시에 주변의 풍광과 풍수적인 지형을 봤을 때 좋은 터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을 이름의 한자 표기가 잘못되었다. 마을 유래지에는 "토지가 비옥하여 보리가 많이 생산된 지역으로 마을 근처에 조금나루가 있어 國稅를 바칠 때 각처의 대맥(大麥)을 이 마을로 가지고 와 소작했다 해서 말 '斗'자와 보리 '牟'자를 합해서 두모(斗牟)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의견은 다르다. 지세를 바탕으로 한 이름인 斗毛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마을의 지형이 꿩이 엎드린 형국(伏雉)이기 때문이다. 현재 곰솔나무 주변의 창녕 조씨 무덤이 복치 형국이다. 비행장으로 편입된 피서리의 일부가 솔개재에 해당하는데 그 솔개가 꿩을 노리고 있어 이 마을의 꿩은 비상하기 위해 엎드린 자세로 있기 때문에 마을 이름도 斗牟가 아니라 斗毛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알고 있듯이 斗毛雉(두모치, 두무치로 음운 변화) 마을이다. 꿩알바위도 있다. 주민들은 공알바위라 부르기도 하는데 풍수적 지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당산나무 옆에 있다. 1789년의 호구총수에는 영광군 망운면 斗毛村으로 나온다. 그러나 1912년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부터는 무안군 망운면 斗牟里로 나온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운해로 용교 버스정류소 앞에서 서해랑길은 오른쪽 용교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용교마을의 농부 부부가 양파 모종을 솎아내고 있다. 이 모종을 양파밭에 파종하여 양파를 재배한다.
고구마 밭에서 농부들이 고구마를 수확하고 있다.
운해로를 따라오다가 중앙 뒤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용교마을을 거쳐 정착길을 따라가고 있다. 고구마를 수확하고 이 밭에 양파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양파 모종을 파종할 밭으로 일구고 있다.
*용교는 피서1리에 속하는 마을로 마을에서 쓰는 이름과 행정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다르다. 마을에서는 용교라 부르는데 각종 행정 자료에는 춘교로 나온다. 원래의 지명은 마을의 형국이 방아다리(디딜방아라고도 하며 발로 밟아서 곡식을 찧거나 빻는 농기구를 말한다) 모습이라 마을 이름을 용교(舂橋)라 했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의 지형이 디딜방아 형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자의 舂은 찧을 '용'자로 봄 春자와 비슷하다. 그래서 1912년의 지방 행정명칭일람이나 1917년 조선면리동 일람에도 피서리 춘교로 나온다. 이 마을은 새터, 방아다리, 확골 등 세 마을로 이루어졌다. 새터는 방아다리 옆에 있는 마을로 새로 형성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확골은 용교와 조금 떨어진 마을로 정착마을 옆에 있으나 용교와 한 마을이다. 마을 이름을 학공 또는 학골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표기도 춘교와 마찬가지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지명이다. 확골은 확돌(돌절구)에서 나온 말로 예전에 곡식을 갈거나 고추 등을 빻을 때 사용하던 것으로 둥그런 돌을 우물처럼 파내어 그곳에 곡식이나 고추 등을 넣고 갈거나 빻아 사용하는 기구이다. 확골이 현재의 학골로 변한 것은 발음의 편의성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며, 臼(절구 구, 확 구)谷이라 부르기도 한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오른쪽에 정착마을회관이 보인다.
*행정구역명은 망운면 피서3리 정착마을이다. 원래는 당산끝머리라는 이름의 마을로 정착민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세 가구가 살았었는데 현재는 한 가구도 남아 있지 않다. 이 마을은 이름 그대로 피난민들이 정착한 마을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체로 북쪽 서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내려와 무안을 비롯한 진도나 목포 등 전남 각지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 1956년 보사부의 피난민 입주 정책으로 망운면 피서리 산69번지 98정보의 땅에 100세대 497명이 정착하면서 건설된 마을이다. 원래 이 마을 주민들은 정착이라는 이름을 싫어해서 정착농원이라 부르던 때도 있었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이 지역은 망운면 피서리 정착마을이며, 서해랑길은 정착길을 따라 앞쪽의 축사를 지나서 피서길로 이어진다.
정착마을 축사의 한우 송아지들이 길손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정착길이 피서길과 만나는 지점으로, 서해랑길은 피서길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皮西里는 망운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5km 떨어져 있다. 간척사업(톱머리와 청계면 도대리의 머구리 섬)으로 농경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은 바다와 접하여 있다. 피서리는 피란지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확인할 수 없다. 1910년 목포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피동리, 조산, 도무리, 율리와 춘교리 그리고 두모리 일부를 병합하여 무안군에 편입되었다. 용교, 조산, 피동, 피서, 정착, 용호 등의 마을이 있었으나 피동, 피서, 용호 마을은 무안국제공항 건설에 편입되어 버리고 현재는 용교, 조산, 정착, 톱머리 등 4개 마을로 이루어졌다.
피서라는 이름은 避世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즉 '조선중엽 국정이 혼란하고 민심이 소란하여 뜻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다 이곳이 세상을 피할(避世) 수 있는 곳이라 여겨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현재 쓰고 있는 皮西로 바뀌었는데, 바뀐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추측컨대 피서리의 주산인 솔개산을 중심으로 하여 피난지의 동쪽을 나타내는 피동과 서쪽을 나타내는 피서로 구분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볼 수 있다. 또 다른 유래도 있다. 해수욕장이 있어서 더위를 피하는 마을이란 뜻의 避暑라 했다거나 주변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솔개산을 넘어서 서쪽으로 피난을 왔다는 의미의 避西 마을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1789년에 발행된 호구총수에는 현재 쓰고 있는 영광군 망운면 栗里, 皮東村, 皮西村으로 나온다. 이어 1912년의 지방행정구역 명칭일람에는 무안군 망운면 용교리(舂橋里), 造山里, 栗里, 皮東里, 皮西里, 龍湖里로 나온다. 1917년의 자료에는 무안군 망운면 용교리(舂橋里), 造山里, 栗里, 皮東里, 皮西里, 龍湖里, 桃茂里, 1987년의 자료에는 망운면 피서리, 용교, 조산, 피동, 피서, 정착, 용호로 나온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피서길 아래 무안국제공항 옆으로 청운로가 광주(왼쪽 방향)-목포(오른쪽 방향)로 이어지고 있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뒤 레이더기지 앞을 통과하여 청운로로 나가 청운로를 따라가다가 톱머리해변으로 나가 왼쪽 뒤에 보이는 도대봉(봉대산) 앞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뒤의 도대봉이 위치를 확인하는 기준이 되어 준다. 20코스 시작점은 중앙 맨 뒤에 보이는 승달산 아래쪽이다.
서해랑길은 레이더기자 앞쪽을 통과하여 청운로로 이어진다.
바로 앞 건물은 호남고속철도 2단계 제4공구 현장사무실이다.
호남고속철도는 무안국제공항 이용객을 늘리기 위해 무안공항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건설하는 것 같다.
청운로로 나가 목포 방향으로 이어간다.
레이더기지 앞을 거쳐 오른쪽 청운로로 나와 이곳으로 왔다. 레이더기지 앞에서 왼쪽으로 피서길을 따라와도 될 듯하다.
아침에 20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 지점인 망운면 송현리 용동마을회관이 중앙에 가늠된다.
새벽에 역방향으로 걸었던 21코스 운남면 동암리와 하묘리 해안이 맞은편 왼쪽 뒤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앙에 우뚝한 도대봉(봉대산), 그 왼쪽 맨 뒤에 봉긋하게 보이는 산봉이 무안군 청계면의 鎭山인 승달산이라 가늠한다.
청운로 서쪽 해안에 자리잡은 펜션&카페들, 무안갯벌낙지 직판장을 거쳐 청운로를 따라 걸어왔다.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오른쪽 에버그린 펜션 방향으로 꺾어 해안으로 나간다. 중앙 뒤의 도대봉이 탐방의 기준이 된다.
서해랑길은 에버그린 펜션 앞을 거쳐 해안길을 따라가다가 톱머리해변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톱머리해안 관광지로 이어간다.
오른쪽의 섬은 유도, 그 오른쪽 마을은 21코스에서 탐방한 동암마을, 중앙 맨 끝에 솟은 산봉은 압해도의 송공산인 듯.
유도 오른쪽 운남면 동암리 해변과 오른쪽 운남면 하묘리 해변, 21코스에서 탐방한 곳이다.
건너편 왼쪽은 운남면 하묘리 해안이고, 오른쪽은 망운면 송현리 해안이다.
왼쪽 해안 솔숲 우거진 곳이 수보라횟집으로 그 마당에서 맞은편 운남면 해안을 조망했다. 오른쪽은 톱머리리조트이다. 이 해안은 압창어촌계 공동어업 면허제 지역이라고 한다.
*압창 마을은 목동2리에 속한다. 이 마을은 근대에 들어서 형성된 마을이다. 왜냐 하면 조선시대에 발간된 호구총수에도 나오지 않고 1914년 일본인에 의해서 실시된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에도 나오지 않았던 지명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곳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려는 일본인들에 의해서 포구가 개발되고 1923년에 이곳 압창과 현경면 동산리 간, 뒤이어 압창-조산 간 간척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의 마을 이름은 압창(鴨唱)(표지석엔 鴨蒼이라 쓰였다)이었다. 마을 앞까지 갈매기 떼가 시끄럽게 소리 지르며 많이 모여드는 지역이라는 의미다. 당시에는 갈매기 떼가 들판을 덮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재는 押倉으로 쓰고 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때 곡물창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톱머리해수욕장 너머 톱머리항의 방파제등대가 있고, 그 뒤로 톱머리방조제가 오른쪽 끝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톱머리는 피서4리에 속하는 마을로 원래는 용호동과 같은 행정구역이었다. 용호동이 무안공항 부지로 편입되면서 2000년대에 분리되어 나온 마을이다. 이곳은 톱머리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해안은 간만의 차가 커 간조 때 펼쳐지는 끝없이 넓은 백사장과 보호림으로 지정된 울창한 해송숲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창포만 간척으로 인한 거대한 호수가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톱머리라는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유당농원 쪽에서 공항로를 따라오다가 보면 톱머리해수욕장과 무안국제공항으로 가는 삼거리가 있다. 그곳에서 해수욕장으로 들어오는 언덕을 넘어 오른쪽에 바위산이 있었는데 이곳에 길이 나기 전에 이 바위의 모습은 동물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이 '코뺑이'라고 부르는 이 바위가 거북이 머리라고 보기도 하고 토끼 머리라고 보기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토끼 머리라고 했다. 탱크의 모습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톱머리'는 '토(兎)머리'에서 비롯된 음운변화의 결과로 보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1917년 일제강점기 때 펴낸 조선 면리동일람에서 망운면 도무리(桃茂里)라는 지명이 나온다. 의미로 본다면 복숭아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는 마을이라는 말인데 추측컨대 당시 과수농장에서 비롯된 지명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후의 자료에는 桃茂里라는 지명은 나오지 않고, 2,000년대에 와서야 독립된 마을로 표기되었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왼쪽의 톱머리방조제 끝의 낮은 산봉이 중근봉, 그 뒤 높은 산봉은 도대봉(봉대산)이다. 건너편 중앙 오른쪽은 21코스 종점인 운남면 동암리 영해마을, 중앙 맨 뒤에 솟은 산봉이 신안군 압해도 송공산, 오른쪽 섬은 동암마을 유도섬이라 가늠한다.
오른쪽에 톱머리항과 톱머리등대가 보인다.
지방도815호선 청계공항로 교차로에서 톱머리해수욕장으로 들어오는 언덕길이다. 언덕의 왼쪽 산이 토끼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토(兎)머리로 불리다가 음운변화의 결과로 '톱머리'라는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톱머리항 물양장과 비행기 조형의 방파제등대, 맨 뒤에 도대봉(봉대산), 그 앞의 중근봉이 모두 조망된다.
첫 방조제는 망운면 피서리 톱머리에서 청계면 도대리 머구리섬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앞은 중근봉, 그 뒤는 도대봉이다.
중앙 위쪽 톱머리해변 톱머리리조트에서 해수욕장과 비치호텔, 톱머리항을 거쳐 톱머리방조제로 걸어왔다. 오른쪽 뒤에 보이는 나무숲이 토끼 머리 모양으로 보였는지, 이곳 지명 '兎(토끼, 토)머리'가 '톱머리'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학계천과 태봉천이 합수하는 하구에 톱머리방조제를 조성하여 인공호 창포호가 형성되었다.
두 번째 방조제는 머구리섬에서 오른쪽 중근봉 아래로 이어지며, 중근봉 왼쪽 높은 산은 도대봉(봉대산)이다.
머구리섬에서 중근봉 아래로 이어지는 방조제를 따라간다. 왼쪽은 무안컨트리클럽 골프장 가는 길이다.
왼쪽에 톱머리해수욕장과 톱머리항, 중앙 뒤에 무안국제공항이 보인다. 머구리 섬을 중앙에 두고 방조제가 2개 조성되었다.
맞은편 왼쪽 유도섬 뒤 운남면 동암리에서 오른쪽 위로 운남면 하묘리와 망운면 송현리, 그리고 맞은편 망운면 피서리로 동그랗게 이어지는 해안이 아름답다.
방조제는 중근봉 앞까지 이어지고, 서해랑길은 방조제 끝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청운로를 따라간다.
운남면 동암리 유도섬과 동암마을, 그리고 오른쪽으로 운남면 하묘리 해안이 이어진다.
도대교차로에서 지방도815호선 청계공항로 도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청운로를 따라간다.
멀구슬 가득히 열린 멀구슬나무가 있는 청운로에서 오른쪽 농로로 진입하여 도대리 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정면으로 멀리 도대리마을이 보인다.
청계면 도대리 도대마을을 바라보며 강변들 농로를 따라 오른쪽 끝에 보이는 축사가 있는 언덕을 넘어간다.
*도대(道垈)는 도대리에 속한 마을로 길 옆에 터를 잡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른 의견도 있다. 마을을 중심을 많은 길이 날 것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도 한다. 또한 마을 앞에 우뚝 서 있는 도대봉 아래에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도대봉은 고림봉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봉활르 올렸던 봉우리이다. 무안군이 발행한 마을유래지는 지명의 유래를 "도대 마을은 도대봉 뒤에 위치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전에는 절이 있어 절골로 불렸다. 이후 도대 봉수가 있어 道垈로 부르다가 일제강점기 때는 마을 주변에 해당화가 많이 있어 해당촌으로 불렸다. 이후 마을 중앙에 길이 가로질러 있기 때문에 刀垈라 하였다가 현재의 이름인 道垈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서해랑길은 지방도815호선 청계공항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언덕을 넘어 청계면 강정리 태천마을로 내려간다.
왼쪽 언덕을 넘어 지하통로 입구로 왔다. 오른쪽 뒤에 청계면 도대리 도대마을이 보인다.
청계면 강정리 태천마을로 내려간다. 중앙 뒤쪽 바다 건너편은 운남면 동암리 영해마을 일대일 것이라 가늠한다.
청계면 강정2리 태천마을회관 오른쪽 골목길로 내려왔다.
*태천은 강정2리에 속하는 마을로 고림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고림봉은 마을의 주산으로 봉대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주요한 통신수단으로 활용했던 산이다. 참고로 무안에는 4개의 봉대산이 있다. 태천이란 지명의 유래를 마을 유래지에서는 "台川은 강정마을의 동편에 위치한 마을로 지형이 별 모양 같고 마을 앞에 인천강이 있어 태천이라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인천강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지명의 유래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다. 마을 앞에는 복룡리 장자산에서 발원한 거대한 하천인 복룡천이 흐르고 있다. 해서 태천의 지명 유래는 '봉대산 아래의 마을로 큰 하천을 안고 있는 마을'로 정의할 수 있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강정마을 쉼터정자 '유정'에서 점심을 먹고 마을 앞 넓은 마당을 가로질러 강정길을 따라 이어간다.
*마을 앞 부섬산은 소쿠리 또는 두꺼비 형국의 산이다. 부섬산은 우리말 어휘에 따른 동각 할매의 깔따구 전설이 있다. 현재 이 산기슭에는 석산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대형화물차의 잦은 출입과 주변에 뿌옇게 돌가루가 날려 한참 떨어진 마을에 있는데도 목이 따가운 느낌을 준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바다 건너편은 서해랑길 21코스 종점인 운남면 동암리 영해마을 해안이라고 가늠한다.
강정리 태천마을은 도대봉 산줄기가 동쪽으로 내리벋는 곳에 남향하고 있다. 오른쪽 언덕을 넘어 태천마을로 내려왔다.
*마을의 주산인 고림산은 조선시대 봉화를 올렸던 봉대산이다. 고림산이 일제강점기 때 도대봉으로 불리면서부터 도대봉봉수(道垈峰烽燧)라고도 하였다. 고림산은 신안을 비롯한 목포의 유달산과 광주의 무등산까지 보일 정도로 사방이 확 트여 있어 관측이 용이한 곳이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며 한국전쟁 때에는 인민군들이 봉화를 올렸던 산이기도 하다. 해방 직후에는 봉수대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축대와 우물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봉수대를 쌓았던 것으로 짐작되는 자연석만이 도대봉 중턱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서해랑길은 오성레미콘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강정길을 따라간다. 청계면 강정리에서 복룡리로 넘어간다.
강정길을 따라 지방도815호선 청계공항로 복룡교 아래를 통과하여 청운로 앞으로 이어간다. 오른쪽 내는 복룡천인 듯.
건너편에 복룡교회가 있다. 복룡교회 앞을 거쳐가는 게 좋은데 서해랑길은 들녘의 농로를 따라 이어진다. 복룡이란 지명은 지형이 용이 엎드리고 있는 모양이라 하여 생겨났다고 한다.
복룡교회 앞을 거쳐 왼쪽 송복길을 따라 복룡회관 앞에서 이 길로 나오는 게 좋은데 서해랑길은 농로로 이어진다.
건너편에 복룡마을회관이 보이며 건너편 마을은 복룡리 용수마을이다.
*복룡1리는 장자산, 용수동, 복룡동 등 세 개 마을로로 이루어졌다. 마을 뒤쪽으로 차일봉(방구봉)이 있고, 앞으로는 부소산(또는 부섬산, 학두봉)과 장자산 마을 건너에 태봉산이 펼쳐져 있다. 용수동은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에 의하면 "지형이 용의 형상과 가아 붙인 이름이며 그 외 참삯골, 개꼬리라고도 부른다."고 하였으나 용과 관련된 지명은 복룡리의 용을 따서 붙인 이름이 아닌가 한다. 이 마을은 원래 초분골이었으며 강 씨들이 들어와 터를 잡고 살았으나 지금은 살지 않고 탐진 최씨들이 들어와 터를 잡았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서해랑길은 복룡리 용수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른쪽 수로의 다리를 건너 언덕으로 오른다.
양파 모종밭 뒤쪽에 복룡축산 축사들이 자리하고 있다. 복룡축산 앞을 거쳐 청운로로 나간다.
청운로 북쪽에서 복룡교회 앞, 복룡리 용수마을, 복룡축산을 거쳐 오른쪽 길에서 나와 남쪽에서 청운로와 재회한다.
청운로 고개에서 왼쪽 대숲길로 들어가 농로를 돌아서 은성농장을 거쳐 다시 청운로로 나온다.
왼쪽 뒤 청운로 고개에서 오른쪽 대숲길로 들어와 농로를 따라 은성농장을 거쳐 청운로로 나왔다. 청운로 고개는 청계면 복룡리와 상마리의 경계가 된다.
청운로에서 가로등이 있는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가 지방도815호선 청계공항로 육거리교 방향으로 이어간다.
청계면 상마리 청계공항로 육거리교 아래를 통과하여 상마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위쪽은 상마리 상마정마을 방향, 서해랑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중고래실골 임도를 따라오르다가 앞에 보이는 소망교회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어 올라간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언덕길 임도를 따라 이어간다.
*행정구역으로 청계면 상마1리에 해당된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 주민들은 뒷산인 상곡봉의 형태가 말의 모습과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랫마을인 하마정 사람들은 이른바 송감사의 이야기를 하며 말을 타고 내리는 의미의 지명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마정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사항이었다.
임도를 따라 다솜요양원 입구까지 이어간다.
오른쪽 관동길을 따라 내려가면 청계면 구로리 관동마을에 이른다. 바다 건너편은 운남면 성내리 지역이라고 가늠한다.
청계면 상마리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가 매봉 산자락에 보인다.
오른쪽 임도에서 나오니 다솜요양원 가는 입구에 이른다.
청계면 상마리에 위치한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가 보인다.
에덴노인전문요양원 오른쪽 임도를 따라 내려왔다.
청계면 상마리 평림마을과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가 보인다. 서해랑길은 배달리들 오른쪽 농로를 따라 이어간다.
*평림(平林)은 상마3리에 속하는 마을로 윗평림, 아랫평림, 장등으로 이루어졌다. 평림은 기록에 따르면 원래 죽림 망으로 불렸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의 마을 주변은 대나무가 많았으나 개발로 인해 현재는 대나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현재의 이름인 평림으로 바뀌었다. 마을 뒤 12마지기 가량의 동산에 북풍을 막기 위해 커다란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는 그 동산이 개발되어 노지가 되어 있다. 무안군에서 발행한 마을유래지를 보면 "숲이 울창한 매봉산이 위치하는데 마을의 형세가 꿩의 형상이다. 자세히 보면 꿩이 날지 못하고 엎드려 있는 형상이다. 원래 죽림이라 했으나 평림으로 바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청계면 도림리 용계천 하마교를 건너 용계천변길을 따라 내려간다.
청계면 도림리 용계천변을 따라가다가 쉼터정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청계면보건지소와 면사무소 방향으로 이어간다.
*도림리(道林里)는 청계면 소재지의 중앙에 위치한다. 뒤에는 무안의 주산인 승달산이 있고 里의 중앙으로 광주-목포 간 국도1호선이 지나고 있다. '도림'이란 지명은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는 지역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나 주민들 사이에서는 큰 길가에 숲이 무성하다 하여 도림리라 칭하였다고도 한다. - 무안문화원 지명유래
왼쪽 뒤에 청계중학교가 보인다.
용계천변을 따라 용계교 앞을 거쳐 내려가다가 쉼터정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도림시가지로 나간다.
청계중학교 뒤쪽에 매봉이 솟아 있고 바로 앞 다리는 용계천의 용계교이다.
용계천변 쉼터정자가 있는 체육공원에서 왼쪽으로 꺾어 도림시가지로 나온다. 중앙의 산봉은 소살봉이다.
청계면복합센터 앞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