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1년전. 2002년 5월에 일어난 일들을 기억하시나요? . 한국 축구사에 있어 큰 획을 그었던 '2002 한일 월드컵'. 그 해 열이면 열 모두가 '축구'라는 단어에 열광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열기가 절정에 달했던 4강전.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떠올려 봅니다. 전차군단 독일과의 준결승전에서 우리는 비록 1:0으로 패했지만 큰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섹션처럼 말이죠. 2002 월드컵은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꿈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여기, 그 때의 축구의 꿈을 11년째 이어오고 있는 '여성'축구단이 있습니다. 운동장 가득, 남자들의 우렁찬 목소리 대신 고음 함성소리로 화이팅을 외치는 '교차로 여성축구단'이 그 주인공입니다. 어머니들이 꽃꽂이, 뜨개질, 헬스, 요가 등 수많은 취미를 뒤로 하고 축구를 선택한 이유와 매력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힘찬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열악하지만 11년 동안 이어온 축구사랑, '교차로 여성 축구단'
2002년 월드컵 이후 전국은 그야말로 축구 붐이 일어났습니다. 축구동아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너나 할 것없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축구를 즐기곤 했죠. 교차로 여성축구단도 당시의 축구열기와 함께 2002년 창단되었습니다. 교차로 여성축구단은 여성 축구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여성들의 체력향상과 가정의 건강을 다지고자 2002년 12월부터 공식 창단되어 활동에 나섰습니다.
창단 당시, 축구가 국민스포츠로 발돋움하고 있긴 했지만 여성 축구의 저변마저 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여와 지원 등 여러 부분에서 여성 실업 축구팀마저도 열악한 실정이던 터라 클럽과 동아리는 얼마나 열악한지 상상조차 힘들었다고. 지금도 여전히 도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7개팀의 여성축구단이 재정과 운동장 사용 등 여러 부분에 있어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조건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멤버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어져 온 교차로 여성 축구단은 올해 영광스런 1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구성원은 20대부터 40대 후반까지 다양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 20여명의 회원들은 전업주부, 회사원, 간호사, 상담원 등 다양한 직종에서 활약 중입니다. 축구단의 연습날은 일요일 아침. 선수들은 아침 7시면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에 위치한 조촌초등학교로 모여듭니다. 유니폼을 입고 축구화 끈을 매는 주부들의 모습들이 상상이 되시나요? 저처럼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일요일 연습현장을 직접 찾아가봤습니다.
설원 위, 어머니들의 '발놀림'을 맛보다
사실 축구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여성 축구단 취재가 반가웠습니다. 대학시절 축구시합 중 결코 남자선수에 비해 뒤쳐지지 않는 여성 선수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일요일 '교차로 여성 축구단'을 찾아갔습니다. 전날부터 하염없이 내린 눈은 경기장을 가득 덮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눈이 쌓였는데.. 연습을 할까? 의문이 들 때 쯤 한쪽에서 축구공 가방, 난로 및 주전자, 구급상자 등을 챙겨 놓고 운동 준비하는 교차로 여성 축구단을 만났습니다. 어머님들은 축구화 끈을 동여 메고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는데요. 더불어 목토시, 장갑 등 방안용품도 꼼꼼히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장비를 착용하고 나니, 어머님들의 눈빛부터 달라지셨는데요. 온화한 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선수모드'로 돌입했습니다.
스트레칭으로 시작된 운동과 동시에 들려오는 소리는 매우 낯설었습니다. "민정 엄마~ 굿 패스~", "언니~ 나이스 슛~", "언니, 오늘 컨디션 좋은데~!"등 고요한 새벽 운동장을 가득 매웠습니다. 지금까지 따뜻한 어머니의 손맛만 느껴봤는데 정확한 패싱력과 볼키핑력을 구사하는 어머니들의 발맛(!)까지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교차로 여성축구단은 이렇게 꾸준한 연습으로 각종 대회에서 입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친목도모 삼아 시작된 축구모임이 이제는 나아가 개인의 건강과 자신감까지 키워주고 있는 셈이죠.
취재를 위해 저도 열심히 뛰어 다녔는데요. 고등학교 이후 처음으로 눈밭을 뛰어본 것 같습니다. 금새 발이 시려오고, 얼굴이 빨갛게 얼어붙더라구요. 몇 시간 동안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어머님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습니다. ^^
축구선수 아들을 위해 엄마는 오늘도 '축구'를 배운다
운동 중간 손과 발을 녹일 겸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님들이 축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많은 어머니들이 실제 축구선수 자녀를 두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중 아들이 암을 이겨내고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아 총무와 짧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 여기서 대부분 활동하는 어머님들은 자식들이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어요. 제 아들도 현재 호원대학교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하고 있는데요. 아들이 어렸을 적 암에 걸렸었는데... 지금은 완쾌해 축구선수라는 꿈을 계속 키워나가고 있어요. 아들이 아팠던 시기에 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엄마가 축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많이 놀랐을 것 같아요.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들이 저를 너무 자랑스러워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아들한테 더 고맙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고 자기가 원하는 축구선수로 활약하고 있으니까요.... 남편 역시 축구에 대해 하나둘씩 가르쳐주려 고 가족들간의 대화가 많아져 더욱 화목하게 되었어요."
아들의 꿈을 위해 축구를 시작한 어머니, 암이라는 힘든 시기 아들이 꿈을 잃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아들의 꿈을 지켜주고자 했던 어머니의 노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슴찡한 사연을 듣고 나니, 어머님들의 이유있는 축구사랑이 더욱 이해가 가더라구요. 축구로 하나되는 가족의 모습,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
그라운드에선 선수로, 밖에선 봉사로 나눔을 전하는 '여성축구단'
더불어 김은아 총무는 현재 미용실을 운영하며 자신의 미용 기술을 통해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위하여 꽃밭정이노인복지관 및 정심원에서 미용봉사를 하고 있었는데요. 여성축구단 회원들 모두 식당봉사, 청소 등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라운드에선 거친 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지만, 밖에선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어머님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따뜻한 손길을 모아 이웃에게 나누는 모습, 이런 마음이 11년 동안 여성축구단을 이어온 끈끈한 비결이겠죠? 교차로 여성 축구단은 축구 활동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도내 여성축구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2013년에도 축구선수로, 엄마로 우승해야죠!
교차로 여성축구단의 새해목표는 역시 우승이었습니다. 봄에 있을 전주시 시장기배 우승을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고. 또한, 자체 팀을 11대11로 구성해 경기할 수 있도록 팀의 두꺼운 선수층을 바라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주부들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 그들의 새해 바램은 팀의 우승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어머니의 마음이 더 가득했습니다. 한 남편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써 그들의 새해 꿈과 희망은 가족들의 건강과, 자녀들의 학업 및 진로였습니다. 2013년 한 해, 그들의 꿈이 진정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여성 축구단에 많은 관심과 참여 보내주세요. 이번 주말에도 어머니들의 힘찬 드리블은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