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2005~2020]/정기산행기(2006)
2006-01-23 14:48:04
76차 남한산 산행기
2006. 1. 23. / 서상국
일시 : 2006. 1. 22(일)
참가 : 진홍, 경도, 인식, 경남, 병효, 신림, 택술, 인섭, 부종, 상국, 신인기, 양석모 이상 12명
코스 : 하남 동서울 골프장 입구 - 연주봉 옹성 - 성 외곽을 끼고 돌면서 동장대터 - 성안 길을 통해 서문 - 연주봉 옹성 - 원점 회귀. 총 4시간 15분 소요.
산행대장 : 진홍장정. 말만 대장이지 산행에 대해선 한 개도 모르고, 조디만 팔팔 날아 댕기면서 일행 모두를 얼마나 웃겼던지 일년은 젊게 만듬.
하남 강일동에서 왼쪽 위 연주봉 옹성까지 올라, 성곽을 끼고 북문 지나 동장대터 - 성안길을 통해 걸어 서문밖으로 나옴 - 원점 회귀( 4시간 15분 소요)
1. 07 : 50
시간에 맞춰 나타난 인섭이 차를 타고, 석모를 만나기로 한, 분당 정자동 늘푸른고등학교 앞으로 이동. 어쩜 또 새로운 인연을 맺을 곳이 될지도 몰라 유심히 바라보다. 신설학교라 그런지 운동장은 작고 큰 나무가 없어 몹시 삭막하다. 건너편에 빨간 등산복을 입고 서 있는 사람이 석모같다. 길을 건너오는데 인섭이 보고 한 마디 한다.
“ㅋㅋ. 눈자위가 퉁퉁 부은 거로 보아 어제 술 쫌 많이 묵은 모양이네.”
아니나 다를까, 어제 테니스 월례회에 참가했다가 시작한 술이 결국 아들내미 친구들 대접하는 자리까지 이어져 새벽 3시나 되어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단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어찌나 힘들었는지 미리 약속 안했으면 정말 하루 재끼고 싶었지만, 먼저 말을 꺼내 약속을 한 게 죄가 되어 빈속에 그야말로 지금 비몽사몽간이란다. 마님이 “살아서만 돌아오라.” 했다면서 길이 험하지는 않은지 걱정을 한다.
서현역앞에서 부종이가 새로 산 빨간 등산점퍼를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부은 얼굴이다. 친구 집들이 갔다가 새벽 2시 반까지 술 마시고 왔다며, 석모 이야기를 듣더니 한 마디 한다.
“허허, 테니스 치러 간 사람이나, 집들이 간 사람이나, 집에 들어오는 시간은 똑 같네? 쯧쯧.”
그러던 부종, 이번엔 또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들어 온 걸 읽어주며 중얼거린다.
“아빠, 왜 어제 집에 안 들어왔어요?”
새벽에 모두들 자고 있을 때 집에 들어왔다가, 또 아이들 자는데 등산 간다고 집을 나왔으니 애비가 외박한 걸로 아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2. 08 : 40
집합장소인 경도 골프연습장에 차를 세웠다. 신림이가 혼자 걸어오고 있고, 강동에서 오는 병효차에서 경남이와 진홍이가 내려 반갑게 맞이한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펭귄 인식이와 인기, 둘이 비슷한 덩치에 얼굴도 좀 비슷한 친구들이 반겨준다.
사무실 난로 위에 밀감과 떡이 놓여있다. 상냥한 아가씨가 빼 온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부산에서 온 인기가 떡을 집다가 놀랜다.
“어? 이거 와 떡이 안 따시노? 지금 떡 꿉는 거 아니가?”
“어이, 여게는 무슨... 밀감도 꾸버 묵나?”
경도가 웃으면서 “아니, 내는 너그들 한 개씩 먹기 좋으라고 난로 우에 얹어놨는데... ”
그러고 보니 요즘 난로는 죄다 위에 방열처리가 된 것이라 만져보아도 하나도 뜨겁지 않아 모두들 웃었다.
오늘 산행대장은 진홍인데, 뭘 물어봐도 아는 게라곤 하나도 없다. 어디서 산행을 시작하고 어디까지 가는 지, 얼마나 걸릴 것이지, 한 개도 모르고 무조건 앵무새가 되어 모든 걸 경도한테 미루고 있다.
“야, 내는 남한산성 한 번도 안 가봤다. 갱도가 다 알아서 할 끼다. 그라고 내 아는 것도 하나 있다. 그기 뭥고 하몬... 누룽지 막걸리가 참 맛있단다.”
모두 승용차 4대로 하남시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택술이를 태우고, 하남 강일동 동서울 골프장 입구, 길이 꼬불꼬불해서 이 지역 빠꿈이인 경도 아니면 아무도 못 찾아올 길인 것 같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했다.
3. 09 : 10 산행 시작
진홍이가 뒤에 따라오면서 하소연(?)한다.
어제, 관악산에 갔다가, 그리고 오늘은 또 펭귄보다 좀 늦게 나왔다고, 펭귄한테 이렇게 야단을 들었단다.
“봐라, 진홍아! 니는 멘탈에 문제가 있다!”
아, 멘탈 운운은 예전에 진홍이가 펭귄이 산에서 헉헉대는 걸 보고 야단칠 때 썼던 말 아닌가?
“봐라, 인식아! 니는 잘 갈 수 있는데도, 무엇보다 멘탈에 문제가 있는 기라! 정신 상태를 뜯어 고치야 되는 기라.”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진홍이는 이제 자기보다 걸음이 훨씬 빨라진 펭귄한테 완전 찍혀서, 멘탈 소리를 몇 번 더 들어야 했다.
진홍이더러 앞장서라 했더니, 말은 잘 한다.
“야, 산행대장은 본래 맨 앞에 가는 기 아이고, 허리를 지키야 되는 기라. 그러이 내는... 중간에 따라가께.”
길 잘 아는 경도가 앞장서고, 펭귄이 바짝 붙고 나머지는 줄을 지어 올라가는데 펭귄이 “오늘은 뭐, 비이 줄 것도 없는 산보수준이네.”며 큰 소리 치면서 올라간다.
진홍이 대단한 입심에, 머리 시원하게 벗겨진 인기도 소문난 이빨이지, 게다가 경남이까지 합세하니 산행이 보통 때보다 훨씬 더 시끄럽다. 모두들 웃느라 정신이 없다.
좀 오르막이 계속되니 몸이 무거운 인기와 진홍이 뒤로 자꾸 쳐진다. 급기야 “좀 쉬었다 가자.”며 고함을 치던 인기는, 부산 바닷가에 살다가 여기 오니까 산이 높아 산소결핍증이 나타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다리가 떨리면서, 무엇보다 목에서 피 냄새가 난다는데, 모두들 배를 잡는다.
연주봉 옹성까지 가는 길이 호젓하니 참 좋았다. 여기 자주 오른다는 경도 말에 여름에 오면 더 좋다고 한다. 제일 먼저 오른 펭귄을 축하한다고 독사진 찍어주고, 단체 사진을 찍는데 한 사람, 인섭이가 빠졌다.(내가 찍은 사진은 어둡게 나와서, 인섭이가 찍은 사진을 올린다. 인섭아, 미안)
옹성 안, 그러니까 성안쪽으로는 길이 아주 좋은데 성을 끼고 도는 바깥길은 얼음이 얼어있고 길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아주 걷기가 사납다. 서문을 통해 들어가면 길이 좋을 것이지만 입장료 1,000원씩 아끼려고 밖으로 돌았다.
저기가 관악이고, 저긴 청계산, 또 이쪽에 저 나지막한 산은 아차산이고 저 멀리 북한산이 어렴풋이 보이네. 아파트로 말하자면 저건 패밀리아파트고.... 저기 저건 우리집이다.
누가 옆에서 거든다.
“정말 조디 하나는 끝내준다.”
인기가 듣고 화답한다.
“그래, 내 당구는 50밖에 못쳐도 조디로는 500 다마 아이가? 크크”
옹성을 오른쪽으로 끼고 약간 돌아 다시 3-40미터쯤 아래에 가면 맛있는 막걸리 파는 곳이 있다고 거길 가잔다. ‘누룽지 막걸리’라는 이름의 처음 먹어보는 막걸리. 아주 특이한 맛인데 기가 차고, 게다가 안주도 푸짐하다. 노란 배추에다 봄동도 푸짐하게 나오고, 풋고추에 마늘쫑, 멸치에 초장까지 한상 그득이다.
경도가 시범을 보인다. 배추잎에 초장 찍은 멸치를 놓고 풋고추 썰은 것에, 마늘쫑도 놓고 쌈을 싸 먹으니 그 맛이 별미다. 모두들 과메기 맛이 난다며 맛나게 먹었다. 아저씨가 막걸리 리필도 가능하다며 후한 인심을 보인다. 네댓 잔 더 공짜로 얻어먹으니 아이들 얼굴이 죄다 환하게 피어난다.
다시 산성을 끼고 걸었다. 무슨 말끝에 이발관 이야기가 나오자 누구는 장가가던 날 아침에 머리 깎던 이야기에, 누구는 장화 신다 실수한 이야기 등등 배를 잡아가면서 길을 가는데 뒤에서 씩씩거리며 따라오던 부종이는 “도대체 어디까지 갈 작정이냐?”며 틈만 나면 물어온다. 우짜든지 좀 짧은 코스가 있으면 그리 가고 싶은 게 부종이와 진홍, 인기의 마음이고 평소 테니스와 골프로 체력을 잘 다진 석모는 어젯밤의 과음에도 불구하고 1진에 속해 잘 걷는다.
북문을 거쳐 한참 가다가 개구멍보다는 크지만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암문(暗門이)란 곳을 통과해 동장대터를 지난다. 이젠 대부분 아이젠을 벗는 형국,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아이젠 벗고 조금 가다가 얼음판에 쫄딱 미끄러져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 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엄청 길이 좋은 편이다. 바람이 덜 불고 넓직한 자리가 있어 간식을 먹자고 잠시 쉬었다.
오늘은 산행시간이 짧아 아무 것도 갖고 올 필요가 없다했는데도, 석모가 사과 예쁘게 깎은 것에, 씻어 온 딸기를 내놓고, 또 다른 친구들이 술에, 멸치에, 밀감에... 짐을 푸는 걸 보고, 인기가 깜짝 놀란다.
“아니, 너그들은 냉장고를 털어왔나? 뭘 이리 많이... 집에서 야단 안 묵나? 어라, 의자도 갖고 댕기네?”
아마 인기 눈에 산에서 저리 많이 먹는 건, 머리 털 나고 처음 일 것이다.(인기 머리엔 털이 별로 없다만. ^^)
조껍데기 술을 받으면서 또 인기는 받침이 빠졌다고 좌중을 웃긴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아까 잠시 쉬면서, 웃으면 입술 터진 데가 자꾸 찢어져서 오늘 일회용 밴드를 갖고 온다는 게, 그만 문앞에 깜빡, 놓고 오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더니, 모든 걸 잘 챙겨 다니는, 산우회 팀 닥터인 권박이 씨익 웃으며 대일밴드를 내주었었는데, 그래도 일단 먹고 나서 붙여야지.
날씨가 많이 추워 오래 쉴 수가 없었다. 커피도 타마시고 그 많던 먹거리를 대충 처리한 다음, 모든 쓰레기는 인기더러 한 군데 모아 봉투에 담으라했다.
“아, 쫄이란 게 이런 거구나.” 중얼거리던 인기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가려는데, “그래도 오늘은 손님인데...” 하며 경도가 마음 좋게 그 봉투를 뺏어 자기 배낭에 넣어, 인기 간을 키워놓는다.
서문으로 이동하여, 돈을 안 주고 성밖으로 나왔다. 12,000원 벌었다. 이젠 아까 올라온 길을 거슬러 내려가는 길, 한참 오다보니 아무래도 뭔가 허전해 세어보니 2명이 모자란다. 전화를 해보았더니 인섭이와 부종이가 모르고 무조건 동서울cc 쪽이라 해 왼쪽으로 너무 일찍 길을 빠진 모양이다. 나중에 만나기로 하고, 계속 내려왔다.
6. 13 : 25 하산 완료
꼭 4시간 15분 걸렸다. 막걸리 먹은 시간하고 간식 먹은 시간 제하면 약 3시간 50분 정도 걸은 셈이다. 근데 갑자기 인기가 고함을 친다.
“악! 저게 와 내... 뚜껑이 열리있노?”
“뚜껑이라니? 니 오늘 가발... 안 쓰고 왔다 아이가?”
알고 본즉, 인기가 말한 뚜껑이란 가발이 아니고 차 뒤트렁크를 말했던 모양이다. 모르고 뒷트렁크 문을 안 닫고 그냥 산에 다녀 온 모양이다. 인기가 뛰어가는 곳을 바라보니, 정말 트렁크 문이 하늘로 치솟아 있었다.
“아까 언 놈이 짐 내리면서 트렁크 문을 안 닫았던 모양인데, 누고? 누구 짓이고? 아까 누가 탔더라?”
귀중품이 없었기에 다행이지, 하여간 까마귀들이 많이 설쳐대니 이젠 별별 사고가 다 터진다.
경도가 차를 몰고 인섭이와 부종이를 데리러 간 사이, 갑자기 바로 근처에서 총소리가 나 모두들 깜짝 놀랐다. 주위를 살폈다. 어떤 완장 찬 아저씨가 까치를 사냥하고 있었다. ‘유해조류구제 출동차량’이라고 트럭에 적혀 있더니, 아마 한전에 고용된 사람인지 노란 완장을 찬 아저씨가 산탄총을 들고 저리 뛰어가고 있었다. 까치가 과수원 농사에 큰 해를 입힌다는 것은 방송으로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서울 근방에서 이렇게 총으로 사람들 놀라게 해가며 사냥하는 것은 우리 모두 처음 알았다.
“까치 저거, 정력에 좋다는 소문을 내면 하루아침에 해결될 거라.”고 인기와 진홍이 입을 모은다. 둘의 지칠 줄 모르는 입심에 이젠 경남이가 좀 조용한 편이다.
7. 14 :20 가락동 바다장어집.
차로 이동한 뒷풀이 장소. 장어회에 밑반찬이 맛깔스럽다. 또 한 주전자에 15,000원하는 전라도에서 공수해 온다는 ‘특청주’ 술맛이 일품이었다. 술 맛있겠다, 안주 좋겠다, 펭귄의 재미난 발언에, 또 진홍이가 TV에 두 번 출연(?)해 전국적으로 쪽팔린 이야기에 모두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인기는 한달에 두 번 서울 오는데 산행에 자주 와야겠다고 한다. 오늘 좋은 길을 안내한 것만도 고마운데, 맛난 누룽지막걸리, 게다가 장어탕 맛집까지 소개한 경도가 회비를 초과하는 모든 술값을 쏘아버려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다음 주는 설이 끼어 안 되겠고, 설 쇠고 나서 2월 초에 정기산행을 갖기로 하고 헤어졌다. 인기는 미사보러 간다하고, 진홍이는 새벽 교회를 놓쳤기에 오후에라도 교회에 가서 회개를 해야 한단다. 늘 점잖은 병효대사까지 진홍이 교회 가는 걸 기특하게 생각하니, 나머지 친구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진홍이를 밀어준다.
“그래, 진홍아... 니는 평소에 죄 많이 지으니까(?) 일주에 한 번은 꼭 교회 가야 한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