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당신이 옳다』 (정혜신, 해냄)
지금은 ‘공감’을 배울 때
‘공감’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이다. 나는 감정, 느낌에 대해 예민한 편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귀가 쫑긋하는 편이다. 나는 감정이나 느낌을 이야기하고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 반해 나의 의견이나 주장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워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나를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 유쾌하고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해주곤 한다. ‘공감’이라는 단어를 콕 집어 사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관계 속에서 나는 공감을 잘하는 사람으로 지내왔다. 나 역시 내가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좋은 느낌의 말. 따스하고 다정한 느낌.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공감’이었다. 첫째 아이와 부딪기 전까지는. 『당신이 옳다』를 읽기 전까지는.
예민한 첫째와 예민한 나는 자주 부딪는다.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 아이는 뭘까’. ‘왜 나는 이 아이가 이해되지 않을까.’ 참 어려웠다. 아이가 크면서 아이와 나의 관계에는 학교생활, 친구 관계 등 아이와 나 말고도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는 더 힘들어했고, 아이가 힘들어하며 나에게 보이는 반응들에 내 마음은 수시로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도대체 왜?’ 하루건너 하루, 어떤 날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질문을 던지며 몸도 마음도 다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나를 괴롭히기로 작정하고 덤벼드는 것만 같은 아이에게 나는 다정한 사람도, 유쾌한 사람도 아니었다. 공감을 잘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이의 행동과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보기 싫은 것, 피하고만 싶은 것이 되었다. 막막했다. 안 보면 그만인 사람도 아니기에 나는 무엇인가 해야 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병원에도 갔고 심리검사도 받았다. 아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다. 검사 결과 아이는 불안감이 매우 높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매우 예민한 상태라고 했다. 누구에게나 불안은 있고, 누구나 타인을 의식하지만 아이는 일상에서 어려움을 느낄 정도의 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와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를, 아이가 그토록 짜증과 화를 반복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하나도 시원치가 않았다. 전문가는 전문적인 치료 방법을 권했다. 그리고 아이를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부모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했다. 원인도 알게 되고 처방도 받았는데 오히려 더 막막했고 더 무너져 내리는 마음이었다. 이제 어쩌란 말인가. 한동안 많이 힘들었고, 많이 울었고, 많이 자책했다. 순간순간 아이를 보며 먹먹한 마음, 답답한 마음, 울컥하는 마음이 반복됐다. 지금도 종종 그렇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알아보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느낌, 어쩌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이 옳다』를 알게 되었다.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도무지 읽히지 않아 저만치 밀어두었던 책을 이제야 읽었다. 찬찬히 읽었다. 읽고 또다시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하지 않고 있었던 것들이 보인다.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나누고, 아이에게 좋은 감정만을 요구했던 내가 보인다. 너의 나쁜 감정은 나를 힘들게 한다고 눈빛으로, 깊은 한숨으로,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사랑을 표현해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얼마나 더, 언제까지, 이 정도면 됐지. 다그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 공감 잘하는 사람으로 살았지만, 나의 밑바닥까지 본 아이 앞에서는 ‘감정 노동’을 멈추고 스러지고 있는 내가 보인다. 아이의 불안함을 보며 나 역시 불안하고 예민한 사람인 것을, 아주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운 사람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괴로워하는 내가 보인다. 이토록 많은 허들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으니, 아이와 나 사이에 있었으니 ‘정확한 공감’(110쪽)을 향해 가지 못했구나. 아이와 함께하는 많은 순간, 나는 아이의 존재, 아이의 마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하고 불안함이 높은 아이는 그 많은 순간 더욱 흔들렸고 나보다 더 많이 힘들고 아팠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믿음과 지지’(49쪽), ‘존재에 대한 수용’(50쪽). 아이가 엄마인 나에게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아이에게 ‘결정적인 치유자’(110쪽)가 되고 싶다. ‘다정한 전사’(211쪽)가 되고 싶다. 나는 “약물치료보다 더 빠르게 사람 마음을 움직인 힘”(27쪽), “삶의 고통에 실질적으로 대처하는 실용적인 힘”(27쪽)인 공감을 배우고 싶다. 아이와의 관계에서 아이와 함께 그 힘을 경험하고 싶다. 그래서 『당신이 옳다』를 따라 행동해 보려 한다. “사랑에 대한 욕구를 지겨워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꺼이 공급하며 공급받는 일”(229쪽)이 삶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만큼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 주려 한다. 아이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거나 있을 수 없는 일, 비합리적인 일이라고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밀어내지”(272쪽) 않으려 한다. 아이의 “고통에 진심으로 눈을 포개고 듣고 또 듣는 사람”, 아이의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또 물어주는 사람, 대답을 채근하지 않고 먹먹하게 기다려주는 사람”(110쪽)이 되려 한다. 꼭 되고 싶다. 아이의 존재는 옳으니까. 아이가 느끼고 있는 그 마음은 옳으니까. 그 자체로.
첫댓글 아.. 헤화 샘.. 정말 많이 힘드셨겠어요. 지금도 종종 울컥하다는 문장을 읽고 나니... 마음이 아득해집니다. 글에 가득찬 어떤 빽빽함이 있는데, 그게 선생님 아이에게로 향한 답답함과 간절함이구나 짐작해 봅니다.
세번째 문단이 참 좋아요.
특히 여기서부터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나누고, 아이에게 좋은 감정만을 요구했던 내가 보인다. (중략)아이와 함께하는 많은 순간, 나는 아이의 존재, 아이의 마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여기까지 정말 공감이 되어요.
이 부분 읽으면서 나도 그랬구나. 어젯밤에도 그랬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 마음 같지 않은 자식을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성숙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함께해서 기쁩니다
선생님의 생생한 이야기들이라 처음부터 몰입되면서 잘 읽혔어요. 저희 둘째도 불안이 높은 아이라 상황이 너무 공감 되는 것도 있었어요. 다음에 뵈면 불안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어요. ;;
혜화 선생님, 이런 마음으로 추천하신 책이었군요. ㅠㅠ <단단한 영어공부>는 몰랐던 책을 알게 된 기쁨이 있었고, <그냥, 사람>은 함께 읽어보자고 초대하고 싶은 책이었는데, <당신이 옳다>는 이 모임이 아니면 선뜻 읽지 않았을 책을 귀한 기회로 만났습니다. 여러 질문이 들게하는 좋은 책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샘, 굉장히 복잡한 마음으로 이 책을 마음에 새겨 가며 읽으신 건 같아요.
근데,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얼마나 예민했기에 그렇게 이해가 안되고, 힘들었는지 구체적인 묘사가 없으니까 상황이 이해가 잘 안돼요. 내 아이 이야기라 글로 꺼내 쓰기 조심스러우시겠지만 그래도 어떤 장면이나, 일화가 나와야 할 거 같아요. 의도적으로 안 쓰겠다 하시면 할 수 없고요.
마지막 단락에서 한 구절 한 구절을 연결해서 공감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절절하게 읽힙니다. 이렇게 연결해서 쓰신 것만으로도 그 의지가 느껴져요. 다정한 전사의 건투를 빕니다.
의도적으로 안 쓴 건 아닌데.. 상황을 쓰자니 너무 자세해지고, 간단히 쓰자니 잘 안되고 해서.. 안쓴거 같은데..
어쩌면 그 상황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싫어서 못쓴거 같기도 하네요ㅎㅎ;;
아... 모임 전에 읽었어야 했는데... 늦게 읽고 후회 중입니다.ㅠㅠ
전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게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아이가 참고 참다가 상처가 곪아 나이 들어 터지는 것보다 차라리 일찍 터지는 게 낫다고 스스로 위안 삼았던 생각이 나네요.
아이의 마음을 일찍 발견하고 아이를 안아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실까요...
쌤들의 댓글이 저에게는 또 공감받는 소소한 경험이 되네요~
감사해용~~~~😊
아이고, 아이 키우는 일이 참... 아이 눈빛 하나에 울고 우는 게 부모 마음인 것 같아요. 저와 우리 아이도 돌아보게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