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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슈타는 계속했다.
새들이 쓰러지려고 하는 나무를 버리듯이, 그 사이 생명의 호흡은 비두라타 왕의 몸을 떠났습니다. 그의 지성은 에테르의 모습으로 공간 속으로 올라갔습니다. 릴라와 사라스와티는 이것을 보고 따라갔습니다. 잠시 후, 죽은 뒤 무의식의 기간이 끝나자, 에테르의 모습이 의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친척들이 수습한 육체의 모습까지 보았다고 상상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난뒤 그는 남쪽을 여행하여 죽음의 신의 거처에 도달했습니다. 죽음의 신은 왕이 죄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자에게 왕으로 하여금 향료로 방부 처리된 이전의 몸인 파드마 왕의 몸으로 들어가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즉시 비두라타의 지바는 여러 우주를 가로질러 파드마 왕의 몸이 누워 있는 궁궐에 도착했습니다. 먼 나라들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보물을 묻어 둔 곳에 늘 집착하고 있듯이, 확실히 비두라타는 파드마 왕의 자아를 통해 빠드마 왕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오, 성스런 분이시여! 자신의 친척들이 장례식을 적절하게 치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에테르의 모습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시슈타가 답했다.
장례식이 적당하게 치러졌든 치러지지 않았든 상관없이, 죽은 자가 장례식이 잘 치러졌다고 믿는다면 그는 에테르 모습의 이익을 갖습니다.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신의 의식이 무엇이 되면, 그 무엇으로 그는 존재합니다. 대상이나 물질 같은 대상들은 자신의 생각 혹은 관념과 같은 공상 때문에 존재 안으로 들어옵니다. 자신의 공상 또한 사물들로부터 일어납니다. 독은 자신의 신념인 공상을 통하여 감로주로 변합니다. 그처럼 그와 같은 강한 신념이 있다면, 실제로 있지 않은 대상이나 물체가 실재가 됩니다.
원인이 없이는 결과는 언제, 어디서도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공상도 생각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원인이 없는 무한한 의식에게는
어떠한 것도 결코 일어나거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확신하십시오.
죽은 자의 영혼이 극히 부도덕하지 않은 한, 장례식이 올바른 신념을 지닌 자신의 친척들에 의하여 치러진다면 그것은 죽은 영혼의 지성을 돕습니다.
파드마 왕의 궁궐로 돌아가도록 합시다. 앞서 말한 대로 릴라와 사라스와티는 아름다운 궁궐로 다시 들어가 향료가 발라진 파드마 왕의 몸이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왕실의 하인들은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했다.
거기서, 그들은 파드마 왕의 몸 가까이 앉아서 왕에게 열심히 부채질 하고 있는 두 번째 릴라를 보았습니다. 첫 번째 릴라와 사라스와티는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그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첫 번째 릴라는 왕 가까이에 있는 그녀의 몸을 잠시 떠나 에테르의 몸으로 사라스와티와 함께 여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첫 번 째 릴라의 몸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첫 번째 릴라가 깨달음을 얻게 되자, 그녀의 자아에서 나온 진정한 존 재에 대한 공상은 사라져 그녀는 육체와의 연결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눈처럼 녹아 버렸습니다. 사실, 릴라가 자신이 육체적 몸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릴라의 무지한 공상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나는 사슴이다.’라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꿈을 꾸고서, 깨어나 잃어버린 사슴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 사슴을 찾으러 가야 합니까? 미혹된 마음 안에는 실재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나타냅니다. ‘그것은 밧줄이지 뱀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되어 미혹이 추방되면, 거기에는 더 이상 무지한 공상이 없게 됩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이 실재 한다는 공상에서 나온 확신은 되풀이하면 깊어집니다.
꿈 속에서 앞의 모습을 버리지 않고 또 다른 모습을 취할 수 있듯이, 하나의 에테르 몸에서 그 몸을 버리지 않고 다른 에테르의 몸으로 이동 할 수 있습니다. 요기의 몸은 무지한 자의 눈에는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기의 몸은 진실로 보이지 않으며 미세합니다. 그 자신의 무지로‘이 요기가 죽었다.’라고 생각하며 말하는 자는 그런 식으로 보는 자 입니다. 몸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존재하며, 무엇이 죽는단 말입니까? 존재하고 있는 것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직 미혹만이 사라졌습니다!
라마가 물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그러면 요기의 육체적 몸이 에테르의 몸이 됩니까?
바시슈타가 대답했다.
오, 라마여! 여러 번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에테르의 몸만이 있습니다. 계속되는 상상으로 인해, 그것이 육체적 몸과 관계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을 육체적 몸이라고 생각하는 무지한 자가 죽어서 화장될 때, 그는 미세한 몸을 가집니다. 그처럼 살아 있는 동안에 깨달음을 얻은 요기는 에테르의 몸을 가집니다.
육체적 몸은 그 사람의 무지한 상상의 창조물일 따름이며, 실재가 아닙니다. 몸과 무지 간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이 둘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정말이지 되풀이되는 삶인 삼사라입니다.
바시슈타는 계속했다.
그러는 사이에 사라스와티는 비두라타의 지바가 파드마 왕의 몸 안 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사라스와티에게 물었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제가 여기서 지금까지 명상하면서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사라스와티가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명상에 들어간 지 한 달이 되었다. 처음 15일 동안에 그대의 몸은 프라나야마에 의해 생긴 열로 수분이 증발되었다. 그래서 그대의 몸은 마른 잎처럼 되어 떨어졌다. 그래서 굳고 차가워졌다. 그러자 대신들은 그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 몸을 화장했다. 그대의 소원 때문에 이제 그대는 에테르의 몸으로 여기에 나타나 있다. 그대 안에는 과거 삶에 대한 기억들도, 이전의 환생에서 나온 잠재된 경향성들도 없다. 젊은 나이에 이르게 되면 자신이 태아였을 때의 삶을 잊듯이, 지성이 자신의 에테르의 본질에 대하여 확신이 서면 몸은 잊혀 지기 때문이다. 오늘은 31일째이고 그대는 여기에 있다. 우리 자신을 다른 릴라에게 드러내도록 하자.
두 번째 릴라는 그녀 앞에 있는 그들을 보고서 그들의 발아래에 엎드 려 경배했다.
사라스와티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대가 여기에 왔는지 우리에게 말해 보거라.
두 번째 릴라가 대답했다.
비두라타의 궁전에서 기절했을 때, 저는 한동안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때 저는 제 미세한 몸이 하늘로 올라가 공기와 같은 운송 수단을 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여기로 데려왔습니다. 저는 비두라타가 화원 안에 누워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가 전쟁을 하여 지쳤다고 생각하고는 그를 깨우지 않고 부채질을 하였습니다.
사라스와티는 즉시 비두라타의 지바를 몸 안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왕은 선잠에서 깬 듯 바로 깨어났습니다. 두 명의 릴라는 그에게 절 했습니다.
왕은 깨달음을 얻은 릴라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저 여인은 누구인가? 그녀는 어디에서 왔는가?”
깨달음을 얻은 릴라가 답했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전생의 당신 아내이며, 말 그대로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이 릴라는 당신의 또 다른 아내입니다. 그녀는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제가 만든 나 자신의 그림자입니다. 저쪽 황금의 옥좌에 앉아 계시는 분은 사라스와티 여신이십니다. 우리의 대단한 행운으로 인해 그분이 여기에 계십니다.”
이 말을 듣고, 왕은 바로 앉아 사라스와티를 경배했습니다. 사라스와티는 그에게 장수와 부 등과 깨달음의 은총을 내려 주었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희망했던 은총들을 왕에게 내린 후, 사라스와티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습니다. 왕과 왕비는 서로 정답게 껴안았습니다. 왕의 몸을 지키던 시종들도 깨어났으며 왕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된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 나라는 큰 즐거움에 빠졌습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릴라 왕비가 왕에 대한 선물로서 또 다른 릴라를 데리고 다른 세상에서 되돌아왔는지를 오랫동안 서로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왕은 깨달음을 얻은 릴라로부터 지난 달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들었습니다. 그는 계속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 자신의 자기 노력으로 얻은 것이 확실한 사라스와티의 은총을 통해 왕은 삼계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오, 라마여! 이것이 그대에게 내가 상세히 설명한 릴라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묵상하면 그대는 지각되는 대상들이 지니고 있는 실재성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마음으로부터 사라질 것입니다. 사실, 진실인 것만이 없애질 수 있다면, 어떻게 실재가 아닌 것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없애야 할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흙 등과 같이 그대의 눈에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오로지 무한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만들어졌다면, 그것마저도 의식 안에서 의식에 의하여 일어났습니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태 아무것도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마야의 창조물이라고 그대는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야 자체도 실재가 아닙니다!
라마가 말했다.
신이시여! 당신은 제게 궁극의 진리에 대한 커다란 통찰을 주셨습니다! 성스러운 분이시여! 하지만 제 안에는 깨달음을 주는 당신의 감로주 같은 말씀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습니다. 청컨대, 제게 시간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릴라의 이야기에서 어떤 경우에는 8일 만에 전 생애를 살았고, 때로는 한 달 만에 전 생애를 살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여러 우주 속에 각기 다른 시간의 척도가 있습니까?
바사슈타는 대답했다.
오, 라마여! 사람이 자신의 지성으로 자신 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만을 그는 경험합니다. 감로주마저도 독이라고 상상하면 독으로 체험됩니다. 내적 태도에 따라 친구가 적이 되기도 하고, 적이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대상은 자신의 내적 느낌에 따라 그 사람에 의해 정확히 경험됩니다. 고통을 받는 사람에게 하룻밤은 한 시대와 같습니다. 환락의 밤은 순간처럼 지나갑니다. 꿈 속에서 한 순간은 한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마누의 전 생애는 브람마에게 한 시간 반일 따름 입니다. 브람마의 전 생애는 비슈누의 하루입니다. 비슈누의 전 생애는 쉬바의 하루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의식의 한계들을 극복한 현자에게는 낮도 밤도 없습니다.
바시슈타는 계속 말했다.
요기들은 달콤한 것이 쓴 것으로 바뀌고 또 그 반대가 되는 것, 친구가 적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되는 것은 오직 마음의 상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꿈으로써 그리고 계속적인 수행을 함으로, 흥미롭지 않았던 경전들에 대한 연구와 자파 등에 대한 취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질은 대상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뱃멀미 하는 사람이 세상이 돌고 있다고 보듯이, 무지한 사람들은 이런 자질이 대상들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술 취한 사람은 벽들이 있는 곳에서 빈 공간을 보며, 존재하지도 않는 악귀가 미혹된 사람을 죽입니다.
이 세상은 다름 아닌 의식의 단순한 진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지한 자의 눈에 악귀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듯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은 마야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무한한 의식과 눈에 보이는 우주의 존재 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깨어 있는 사람이 꾸는 놀라운 꿈과도 같습니다.
오, 라마여! 가을에는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립니다. 봄에는 같은 나무들이 자신들 안에 확실히 있었던 새로운 잎들을 싹 틔웁니다. 그처럼 이 창조물은 절대 의식 안에 늘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금 안에 늘 있는 유동성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한 시대를 만든 창조자가 해방을 얻고, 그리고 만약 다음 시대의 창조자가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투사한다면, 그 기억조차 다름 아닌 무한한 의식일 뿐입니다.
라마가 물었다.
신이시여! 왕과 시민들 또한 동일한 외적인 것을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시슈타는 대답했다.
오, 라마여! 그렇게 된 것은 모든 지바의 지성이 하나의 무한한 의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들 역시 자신들의 왕이 그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의 진동은 무한한 의식 안에서는 자연스럽고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기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왕의 지성은‘나는 왕 비두라타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도 그러합니다. 자신의 지성이 무한한 의식에 관련한 이 진리 안에 자리 잡는다면, 그는 해방이라는 지고의 상태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그의 자기 노력의 강렬함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 개의 각기 다른 방향에 이끌립니다. 하나는 절대자인 브람만을 깨닫고자 하는 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이 실재라는 것을 무지하게 수용하는 방향입니다. 강렬한 열정으로 노력하는 것이 이깁니다! 일단 무지를 극복하면, 실재가 아닌 것에 대한 미혹된 시각은 영원히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