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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강 요한계시록 6-20장
세 가지 일곱 재앙 : 세 번째 일곱 대접 재앙
1. 세 번째 일곱 대접 재앙
세 가지 일곱 재앙은 첫 번째 일곱 인 재앙, 두 번째 일곱 대접 재앙에 이어 세 번째에서 보는 일곱 대접 재앙에서 재앙의 마지막에 이른다. 일곱 대접 재앙이 일곱 천사에 의해서 시작되는 본격적인 내용은 요한계시록 16장에서 다루어진다. 그렇지만 일곱 대접 재앙이 시작되는 그 막을 여는 것인 서막은 15장에서부터 말해지고 있다. 그리고 16장에서의 일곱 대접 재앙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은 17-18장에서의 큰 음녀로 말해지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으로 폐막(결말)을 보게 되는데, 19-20장에서 흰 말을 타고 오시는 분으로 묘사되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전개되어 악한 마귀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결국인 지옥불에 처해지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생명록에 기록된 자들은 하늘의 큰 무리를 이루는 자들이 부를 찬양에 있으며, 그들이 뒤따랐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이것의 새하늘과 새땅, 곧 새예루살렘이 말해지면서 이를 이루시기 위해서 마침내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려주시며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분을 바라봄에 있으면서 기다림에 있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구조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21-22장이다.
2. 일곱 대접 재앙(16:1-21)
(1) 첫째 대접 재앙(1-2절)
1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2첫째 천사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더라.
일곱 대접 재앙의 시작은 성전에서 울려나오는 큰 음성에 의해서 이다. 요한은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에 첫째 천사가 성전에서 떠나 즉시 가서 일말의 지체함도 없이 자신이 받은 대접을 땅에 쏟아 부음으로써 첫 번째 재앙이 행해졌다. 이 재앙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는 것이었다.“악하고 독한 종기”에서‘악하고’와‘독한’은 모두‘나쁘고 해로운’을 뜻하는 것으로‘나쁘고 해로운 곪은 상처’를 말한다. 그리고‘종기’는‘종기’란 뜻 외에도‘종양’,‘문둥병’이란 뜻도 있는데, 사람이나 동물에게 생기는 피부병의 일종을 의미하는 것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악하고 독한 종기’는 출애굽기에서의 열 가지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로 행해졌던‘악성 종기 재앙’에서 보게 된다. 애굽에 재앙을 내려 징벌하고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나오게 하는 것에서 행하셨던 악성 종기의 재앙을 하나님께서는 일곱 대접 재앙을 내리실 것에서 사용하시고 있다. 애굽은 악성 종기의 재앙으로 온 땅의 사람뿐만이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발하여 고통을 당하며 괴로워했었다. 그러한 악성 종기의 재앙은 첫째 대접 재앙으로 애굽에 한하지 않고 온 세상에 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재앙은 애굽 사람에 한하지 않고 온 세상에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모두에게 내려질 것이었다.“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은‘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그리고)‘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로 한글성경은 대체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1) 따라서 일곱 대접 재앙에서 첫째 대접 재앙의 대상은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인을 맞음에 있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로서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일곱 인 재앙이 1/4이란 숫자에 의해서, 그리고 일곱 나팔 재앙에서는 1/3이란 숫자에 의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재앙이 온 세상에 임하되 이것으로 끝나지 않은, 곧 앞으로도 재앙이 남아 있음을 뜻하여 왔지만, 일곱 대접 재앙에서는 이 숫자가 등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모든 사람에게로 확대된다. 이들은 악성 종기로 고통당하며 괴로움을 겪고 있음으로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악한 죄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2) 둘째 대접 재앙(3절)
3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첫째 천사에 이어서 둘째 천사가 받아 들고 있는 대접을 쏟아 부었다. 그러자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같이 되어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이 죽었다. 첫째 대접 재앙이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면 둘째 대접 재앙은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을 향한 것이었다. 이 재앙으로 바다에 사는 모든 것은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둘째 대접 재앙은 둘째 나팔 재앙의 확대, 확장이다, 둘째 나팔 재앙에서는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 바다의 1/3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1/3이 죽고 배들의 1/3이 깨지는 재앙이 임했었다. 하지만 이번의 둘째 대접 재앙에서는 둘째 나팔 재앙에서의 1/3이 암시하고 있는 바인 끝나지 않고 남은 재앙이 계속되어 남김없이 다 쏟아 부어져 바다가 죽은 사람의 피같이 됨으로써 바다에 사는 모든 생물이 죽임을 당하는 해를 입는 것이었다. 이렇게 바다가 해를 입음은 곧 이 바다를 의존하여서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 해가 임하는 것이었다. 이번의 둘째 대접 재앙에 의해서는 1/3이라는 구분이 없어짐으로써 이 재앙에서 해를 입지 않은 바다와 이곳에 사는 생물 중에서 해를 입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바다를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 해를 입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있다. 이러한 것에서 둘째 대접 재앙은 온 세상에 임하여 살아 있는 것이면 모든 것에 미치는 마지막 재앙이다.
(3) 셋째 대접 재앙(4-7절)
4셋째 천사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둘째 천사에 이어서 셋째 천사가 받아 들고 있는 대접을 이번에는 강과 물의 근원이 되는 모든 샘에 쏟아 부었다. 그러자 모든 물은 핏물이 됨으로써 사람이 마실 수 없는 물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바다에 이어 강과 그리고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줄기가 되는 물의 근원이 되는 모든 샘도 재앙을 입음으로써 바다이든 강물이든 냇물이든 물에 사는 모든 생물은 살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물이 살아 있는 물이 아닌 죽은 물이 되는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바다와 강과 샘의 물이 핏물이 되어 먹을 수 없는 죽은 물이 됨으로써 이곳에 사는 물고기를 비롯해서 모든 생물이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입은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바다와 강과 샘을 의지하여 살아왔던 사람이 더 이상 이것을 의지할 수 없게 됨으로써 악성 종기로 큰 고통을 당하며 괴로움을 겪는 것에 더하여 재앙을 겪는 것에 있는 것이었다. 이 재앙 역시 일곱 나팔 재앙에서 셋째 나팔 재앙과 연관이 되어 있다. 셋째 나팔 재앙에서는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쓴 쑥이라는 이름을 가진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1/3과 여러 물샘에 떨어져 물의 1/3이 쓴 쑥이 되어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는 해를 입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의 넷째 대접 재앙에 의해서는 1/3이라는 구분이 없어짐으로써 이 재앙에서 해를 입지 않은 강과 물샘이 없으며, 이로 인해서 물에 사는 생물이 해를 입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강과 물샘을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그 해를 입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있다. 셋째 대접 재앙은 그러한 것에서 앞서의 대접 재앙에서 보는 온 세상에 임하여 모든 것에 미치는 마지막 재앙이다.
(4) 넷째 대접 재앙(8-9절)
8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셋째 천사에 이어서 넷째 천사가 받아 들고 있는 대접을 이번에는 하늘의 해(태양)에 쏟아 부었다. 그러자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 해가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해가 모든 사람을 태워버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2) 그러므로 해는 부여받은 권세로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해의 불길에서 나오는 강하고 뜨거운 열기가 사람들을 태워버린 것을 뜻한다.
이 넷째 대접 재앙은 일곱 나팔 재앙 중에서 넷째 나팔 재앙과 연관이 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을 때 해의 1/3과 달의 1/3과 별들의 1/3이 해(害)를 입고 광명체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므로 크게 어두워졌었다. 그 때문에 낮은 1/3이 어두워지고 밤은 더욱더 캄캄해졌었다. 이로 인해서 하늘 아래 온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식물이든 동물이든 사람이든 해와 달과 별이 제공하는 빛과 그로 인한 열에너지로 인해서 생존해 있을 수 있었던 혜택을 잃음으로 연결고리가 끊겨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이번의 넷째 대접 재앙에서는 단지 해와 달과 별이 광명체로서의 기능을 얼마간 잃는 것에서가 아니라 해가 지닌 뜨거운 불길이 모든 사람을 태워버리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해의 뜨거운 불길에 타들어가 죽어가면서도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여 모독할 뿐 태도를 바꾸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는 결코 하지 않았다. 이는 물로 심판을 받았던 노아 때의 홍수에서도 사람들은 아무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던 것과 잘 상응 된다. 물에 의한 심판에서든, 불에 의한 심판에서든 재앙이 강해진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이 바뀌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할수록 사람의 마음은 더욱더 강팎해져 완고하다. 이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려는 하나님에 대항하는 애굽의 바로에 의해서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애굽 땅에 놀라운 일과 이적들을 많이 베푸시는데,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함에 내버려 두셔서 그가 고집을 부리고 완강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르지 않게 하셨다(출 7:3-4). 이러한 사실은 세상 마지막에 이르는 재앙을 대할 때도 동일하다. 사람이 이러한 것은 전적 타락한 사람의 마음은 전적 부패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름에 있는 선에 전적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전적 부패한 사람에게서 인정되는 것은 죄이다. 따라서“의인은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이며, 이러한 사실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발견한 사람이 갖는 고백은“나는 죄인입니다.”인 것이며, 그러한 사람은“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하며 크게 회개에 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도무지 이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하는 재앙에 대하여 크게 반발하며 대항한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여 모독하며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님이심을 완강하게 반대하여 대적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다.
(5) 다섯째 대접 재앙(10-11절)
10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다섯째 천사가 손에 들고 있는 대접에 든 것을 짐승의 왕좌에 쏟았다.‘짐승의 왕좌’는 짐승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를 모방하여 앉은 자리를 뜻한다. 여기서‘짐승의 보좌’를 많은 주석가들은 로마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짐승은 13장에 나오는 용의 사주를 받는 바다에서와 땅에서 올라온 두 짐승을 의미하는 것3)으로서 짐승의 보좌는 그 짐승이 지닌 권세가 나오는 곳으로 짐승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권세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다스리는 일을 하는 것이니 짐승의 나라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는 대접에 든 것을 짐승의 왕좌 위에 쏟았다는 것으로 짐승이 앉은 자리에 있는 그 짐승을 향하여 쏟았다는 것이요 이는 또한 그 짐승이 다스리는 나라에 쏟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섯째 대접 재앙의 대상은 짐승과 그의 나라인 것이다. 그러므로“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졌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출애굽기에서의 열 가지 재앙 중에서 죽음의 재앙인 장자 재앙 앞에 있은 흑암 재앙에 의해 애굽 전역을 뒤덮은 흑암에 휩싸이게 된 것을 의미한다. 애굽에 임한 흑암 재앙은 일시적이요 애굽에 제한된 것이었지만, 여기에서의 흑암은 온 세상에 임하는 것으로 이 대접 재앙 이후의 영원한 흑암에 처해지는 것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런데 다섯째 천사에 의해 대접이 짐승의 왕좌에 쏟아지자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질 뿐만 아니라 그 어둠 속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아픔으로 크게 고통스러워하면서 그 고통에 못 이겨 혀를 깨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하였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이는“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와 동의병행법으로, 흑암, 곧 어둠의 재앙이 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4) 어둠의 재앙에 처해져 괴로움에 있는 사람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욱 고통을 겪는다. 그것은 종기로 살이 헐어 극심한 아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크고 심한지 그들은 아픔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저주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겪는 괴로움과 아픔의 고통으로도 결코 자기들의 악한 행위를 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재앙이 무엇 때문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하며, 그런 까닭에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재앙에서 회개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지 못하며, 단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재앙에 대항하여 더욱 강팎한 상태에 있으며 하나님을 저주하는 완악함을 나타낼 뿐이다. 그들의 눈은 하나님에 대하여 감겨 있고 그들의 귀는 닫혀 있으며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결코 찾을 수 없도록 멀어져 있다. 다섯째 천사가 대접을 쏟아 부어 있게 된 재앙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재앙은 참으로 크고 심각한 괴로움과 아픔의 고통을 겪을지라도 결코 하나님을 떠올리는 생각에 있지 못하며 하나님에게로 나아오지 못함에 있는 재앙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섯째 천사가 대접에 든 것을 쏟음이 재앙이 되는 것은 이로 인하여 겪는 고통으로 이들의 마음과 몸이 온유함에 있어 순해져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마음을 더욱더 강팎하게 하는, 그래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항하는 완악함에 있는 완고함으로 나아가는 충동을 일으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출애굽기에서의 열 가지 재앙의 성격에서 잘 알 수 있다. 애굽의 바로(왕)는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재앙을 거듭 겪으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대하면서도 매 재앙에서 그의 마음은 온유함에 있어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강팎하여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항하는 것에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맊고 묶어 놓고자 하였다. 이는 애굽의 바로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실행된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모세는 다음과 같이 반복하여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출 7:1-5)
하나님께서 이처럼 말씀하신 것의 결과,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알려 주신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 7:22)
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출 8:15)
요술사가 바로에게 말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였으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 8:19)
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 8:32)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강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니라.(출 9:7)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출 9:12)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출 9:34-35).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 10:20)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출 10:27-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적을 더하리라 하셨고,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 11:9-10)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출 14:4-8)
이는 세상이 마지막 때에 있는 날도 동일하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두신다. 그래서 저희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그래서 저희가 생각하고 좋아하는 대로 하게 있게 하신다. 그들은“우리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어찌 알랴?”하며, 또는“우리가 하는 일을 하나님이 어찌 막으랴?”하며, 자신들의 악행을 즐기지 그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저희 마음대로 함은 저희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마음과 의지의 상태에 있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저희의 마음을 하나님에 대하여 상실한 마음에 있도록 유기하시는 것을 통해서 저희의 마음이 더욱 강팎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저희가 굴복하는 것에서이다. 누가 하나님의 권능을 거스리며, 이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시는 것이 출애굽기의 열 가지 재앙이다.
그러나 이 재앙이 출애굽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을 여실히 보게 되는 것으로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 강한 손으로 말미암아 바로가 그들을 그의 땅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6:1-8, 14:13-14)
그에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에 있은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에 있었다.
이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원수가 말하기를 내가 뒤쫓아 따라잡아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내 욕망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거센 물에 납 같이 잠겼나이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출 15:1-18)
결국 바로의 말과 병거와 기마병들이 함께 바다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물벽을 이루고 있는 홍해를 그들 위로 다시 흐르게 하심으로써 몰살시키셨다. 그러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한 사람도 상함이 없이 바다 가운데 마른 땅으로 지나갔다. 이렇게 안전히 홍해를 건너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아론의 누이이며 선지자인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고 나서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는데, 여인들이 모두 소고를 잡고 따라 나와 춤을 추며 함께 찬양함에 있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 15:21)
다섯째 천사가 대접에 든 것을 쏟음은 하나님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큰 환난에 있는 대재앙이다. 대접 재앙이 의도하는 것은 사람들은 죽음의 화에 있으면서도 이 재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더 충동받아 하나님에게 비방하는 말을 쏟아내며 하나님을 멸시하기를 그치지 않고 악행 또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적 타락하여 또한 전적 부패한 사람의 본성과 그 행위가 이렇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회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겪는 것이 전쟁이나 기근이나 질병이나 또는 자연의 재해나 어떤 것으로 말해지는 것에 의해서이든지 간에, 또는 사건이나 사고에 의해 신체적이나 물리적인 고통을 겪을 때에 그 모두를 예사롭게 보지 않고 거기에 담겨 있는 자신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의식하고 있기에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며 혹이나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또는 몸이 떠나 있지는 않는지를 생각하고 자신을 살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다. 사도 바울은 이를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성령의 소욕을 좇는 자의 삶으로 말해 준다(갈 5:16-23).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품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있는 그분의 뜻을 이해하여 알기에 그분의 뜻을 따르고자 하며, 그분이 가지신 생각을 품고 그 생각을 따르며 살고자 함을 갖는다. 혹, 여기에서 벗어나 있음을 알면 여기에서 돌이켜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몸을 반듯하게 가져나가고자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존함에 있는 믿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스도인의 눈은 하나님을 보게 항상 떠 있고 그들의 귀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따르도록 열려 있으며 그 마음은 하나님으로 채워져 있다.
(6) 여섯째 대접 재앙(12-16절)
12또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더라 13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6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여섯째 천사가 손에 들고 있는 대접에 든 재앙을 쏟았다. 이번에 대접 재앙이 쏟아진 곳은 큰 강 유브라데였다. 대접 재앙이 유브라데에 쏟아지자 강물이 말라 버려서, 해 돋는 곳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마련되었다. 해 돋는 곳이란 이스라엘 땅에서 동쪽의 땅, 곧 동방을 말한다. 그런데 여섯째 대접 재앙이 쏟아짐으로 해서 이곳으로부터 오는 왕들5)의 길이 마련되어 이들의 군대가 물밀 듯이 쳐들어올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 용이한 길이 되었다. 이렇게 동방의 왕들이 이끄는 군대가 쳐들어올 수 있는 최적의 길목이 된 큰 강인 유브라데는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가 되고 있는 곳으로서 여섯 번째 나팔 재앙(9:13-21)과 관련해서도 언급된다. 이 나팔 재앙으로 인해서 유브라데 강에 묶여 있던 네 천사가 놓임을 받아 인류의 1/3을 죽이는 이만의 만을 이루고 있는 마병대로 형성된 엄청나게 큰 군대로부터 당하는 화를 입는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저지른 일들을 회개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도리어 귀신들과 금, 은, 동과 돌, 나무로 만든 보거나 듣거나 걷지도 못하는 우상들에게 경배했으며, 살인과 복술(마술적인 행위)과 음행과 도둑질을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9:15-21).
이 유브라데 강의 마른 길로 오는 재앙은 출애굽 때의 홍해의 마른 길에 임한 재앙을 그대로 따른다. 유브라데 강의 마른 길로 쏟아 밀려든 이만의 만의 군대의 진격에서 보는 엄청난 위력은 홍해의 마른 길로 무너져 쏟아져 내린 거대한 물이 순식간에 삼켜 버린 위력 그대로 이다.
그런데 이번 여섯째 대접 재앙에서 요한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와 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 이 셋 영은 귀신의 영, 곧 악한 영으로서 13장 13절에서 볼 수 있는 것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에서 불이 땅에 내려오게 이적을 행하는 기이한 일을 행하면서6) 온 세계의 왕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 대비하여 왕들을 모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게 되는데 요한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 주어졌다. 그것은“보라,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이다! 그때에 누구든지 깨어 있어서 자기의 옷을 단정히 입고 있으므로 벌거벗은 채 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수치에 있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이다.
유브라데 강의 마른 길을 통해서 오는 재앙의 위력 앞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큰 화를 당할 자들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와 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에 의해서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대항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는 것에서 귀신들과 금, 은, 동과 돌, 나무로 만든 보거나 듣거나 걷지도 못하는 우상들에게 경배했으며, 살인과 복술(마술적인 행위)과 음행과 도둑질을 결코 그만두지 않는 자들인데, 이들은 최후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히브리어로‘아마겟돈’, 곧 히브리어가 음역된‘아마겟돈’7)이라고 하는 전쟁에 이를 때까지 자신들이 저지르는 행위에 계속해서 있는다. 그러므로 그 세 영은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온 세상 나라들의 왕들을 모았다. 하나님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고자 해서 세력을 모으는 것에 있는 것이다. 14절 후반절은 이 전쟁을“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이는 용, 짐승, 거짓 선지자로 표현하고 있는 악한 영인 마귀의 세력들이 하나님을 대항하여 온 세상 나라를 미혹해서 일대 전쟁을 일으키는 최후의 날에 있게 되는데, 그 전쟁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신 전능하신 이의 큰 날, 즉 심판의 날이 되는 전쟁이 될 것임을 말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언급되고 있는‘천년 동안’,‘천 년이 차도록 ’,‘천 년이 차기까지’,‘천 년이 차메’에서의‘천년’을 실제적인 숫자의 천년의 기간으로 보아‘천년왕국’의 실존을 주장하는 자들 중에는 천년왕국 이전에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전천년설’을 말하는‘전천년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중에서‘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세우실 때까지 세상은 더더욱 악하여져 가며, 많은 사람들의 배도가 진행되어 간다고 말한다. (2)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두 단계에 의해서 있게 된다고 보면서, 공중재림하실 때 죽은 의인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의 변화가 있게 된다고 한다. (3) 공중재림 후 지상재림이 있기까지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지배하는 7년간의 대환난의 시대가 있다고 말하며, 지상재림 하실 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그리스도가 적그리스도와 그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심으로서 영광의 주로 임하여 천년 동안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영광스런 통치가 행해져 성전과 희생을 드리는 예배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다. (4) 천년이 끝날 때 무저갱에 갇혔던 사단이 잠간 놓임을 받아 세상의 사람들을 미혹하여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성도들을 공격하나 하늘에서 내린 불로 파멸될 것이라고 말한다. (5) 이 일 후 모든 시대의 죽은 악인의 부활(둘째 부활)이 있어 마지막 심판을 받고 사단과 악한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던져지고, 새하늘과 새땅의 새로운 세계가 영원히 펼쳐진다고 말한다.
여기서‘아마겟돈 전쟁’을 말하는데, 이들의 주장에 의한 아마겟돈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재림하시고 다시 지상재림 하실 때 지구에서 일어나는 최후의 전쟁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 간에 벌어지는 최후의 전쟁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전개되는 천년이 끝날 때 무저갱에서 잠간 놓임을 받은 사단의 전쟁 도모에 의해 다시 한 번 전쟁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전쟁은‘곡과 마곡의 전쟁’이라고 이름 붙여진다.8)
이들의 주장에 의한 아마겟돈 전쟁은 세상 마지막 날이 되는 어느 날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종말지말의 사건인 지구 최후의 전쟁이다. 그런데 이 전쟁은 그야 말로 전쟁이 터지는 것이다. 가령, 제3차 세계대전, 또는 제4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데 이때의 전쟁은 핵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핵에 의해서 지구가 멸망할 것인데, 그 전쟁은 중동지역에서 일어나는 이스라엘과 치러지는 전쟁이 시발이 되지만 이스라엘 땅에 국한하지 않고 전세계의 전쟁으로 확산되어 결국은 지구 온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은 이런 물리적인 전쟁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아마겟돈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이 있을 때 겪는 마지막 날이 되는 어느 날 한 순간에 겪는 전쟁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말해지는 지구 최후의 날에 이르게 될 것이지만, 이것은 어느 날 한 순간에 터지는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래서 종말지말의 사건으로 일어나는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시작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나는 종말기간 내내 진행되어 종말의 사건으로 있는 전쟁인 까닭에 최후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아마겟돈 전쟁은 지구 최후의 날에 있는 자들이 겪는 그들의 전쟁인 것이 아닌 그 날이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의 모든 세대가 믿음의 선한 싸움에 있는 전쟁에서 보는“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6:8; 8:11)에 굳게 있는 믿음에서“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히 11:37; 13:10)에서 보는“…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하는 자는 살 것이라”라고 하는 그 치열한 싸움을 겪는 것에 있는 것이다. 가령, 우리 대한민국의 상황을 염두에 둬보라.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북한이 갈라져 있으면서 적대적 관계로 대립되는 상황에 있으면서 틈만 나면 국지전이 벌어진다. 예전에 있었던 북한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에서나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사건인 제2연평해전이란 영화가 나왔듯이 해상에서도, 그런가 하면 섬에 북한의 포탄이 떨어져 전쟁 일촉즉발의 사태에 이르기도 하는 등 육상에서도, 가끔 영역을 넘어서는 북한기의 출현에 의한 공중에서도 전쟁의 상태는 계속되고 있으며, 결국 이것의 끝에 이를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 따라서 요한이 본 환상에서의 아마겟돈 전쟁이 의도하며 의미하는 바는, 종말기간 내내 있는 크고 작은 전쟁(재앙)을 겪는 중에 이 전쟁의 마지막 날인 종말지말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이며, 요한은 이때에 있을 악의 세력의 파멸을 환상 계시에서의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에서 알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한 운명이 되어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의에 있는 일로 인하여 그 의를 반대하며 대적하는 세력으로부터 겪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감에 일생을 가져나간다. 그러한 교회는 아마겟돈 전쟁이 치러지는 마지막의 생사기로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 아마게돈 전쟁에 있음으로 해서 그 치러나가는 치열한 싸움에서 그의 믿음이 오직 주께만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이 아마겟돈 전쟁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와 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에 의해서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대항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는 것에서 귀신들과 금, 은, 동과 돌, 나무로 만든 보거나 듣거나 걷지도 못하는 우상들에게 경배했으며,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결코 그만두지 않는 자들 것에서 말해지는 것이다. 이때 아마겟돈 전쟁은 구약시대에서 있었던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대항하는 사단과 그 추종자인 악의 세력이 세상 끝인 주님이 재림하실 때 겪을 참혹한 결과를 보여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더러운 영, 곧 악한 귀신의 영이 하나님을 모방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흉내 내어서 이적을 행하며 온 세상의 왕들을 모으고 닥쳐올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심판날에 대비해서 한 덩어리가 되어 주님을 대항하여 싸울 것을 충동질시키는 미혹하는 일을 한다. 그러한 악의 세력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싸움을 헛되게 돌아가게 하시니 마침내 그들이 걸어오는 싸움을 끝내신다. 그때 요한이 들은 음성이 있다. 그것은“보라, 너희는 깨어 있으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내가 도둑같이 갑자기 들이닥칠 것이다. 그때 너희가 깨어 있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 사람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기 때문에 벌거벗고 다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바로 이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더러운 귀신의 영들이 미혹하는 일에서도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함에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에서‘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 비유’를 비롯한 인자가 오시는 날에 있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할 것이나 한 사람은 버림 당할 것을 여러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에서 여러 주님이 오실 때 깨어 있는 슬기에 있을 것을 가르치신 주께 대해‘깨어 있음’에 있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미혹하는 일을 통해서 싸움을 걸어오는 악한 마귀와 그 세력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확정되어 있다. 구약에서 므깃도에 있는 한 산 갈멜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 엘리야가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된 제사장 850명과“누가 살아 계시고 참된 신이신가?”를 온 이스라엘 앞에 드러내는 싸움의 전쟁에 있었던 것에서 보게 되듯이 우상을 섬기는 악한 마귀와 그 세력은 멸절당하는 참담한 상태에 처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있게 되는 아마겟돈 전쟁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따름에 있는 이 마지막 때에서 매일 겪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그 뒤를 따름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있는 사실로 인해서 아마겟돈 전쟁이 치러지는 한복판에 놓여져 있다. 이 전쟁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실로 인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인하여 의로운 고난을 당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심이 되신다. 그러기에‘고난’이란 것에서 떠올릴 수 있는 온갖 힘들고 어려움, 고단한 삶에서도 자신이 치르는 아마겟돈 전쟁이 승리로 끝날 것임을 알기에 이를 내다보면서 믿음으로 인내한다. 이 전쟁을 매일 치르면서 언제나 우리에게 약속된 승리에 있어가는 것이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에서 치러지는 심판의 날이 누구든지 깨어 있어서 자기의 옷을 단정히 입고 있으므로 벌거벗은 채 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수치에 있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이 된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다음의 말씀에서 이미 알려주신 것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4-17)
홍해의 마른 길, 유브라데 강의 마른 길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화를 당하는 재앙의 길이 될 것이지만,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정결에 있는 옷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재앙으로부터 나오는 길이 되게 하실 것이니 결코 그 재앙이 화로 미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니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므로 다시는 굶주리거나 목말라 하지 않을 것이며, 해나 그 어떤 뜨거움도 그들을 상하게 하지 못할 것으로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께서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7)일곱째 대접 재앙(3절)
17일곱째 천사가 그 대접을 공중에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이르되 되었다 하시니 18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21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우박의 재앙 때문에 하나님을 비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마침내 세 가지 일곱 재앙 중에서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의 끝에 이르렀다.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와 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만국을 미혹하여 하나님과 최후의 일전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를 알려 주시고 있는 것이 일곱 대접 재앙의 끝인 일곱째 대접 재앙이다. 일곱째 천사가 받아 든 대접에 든 것을 공증에 쏟았다. 그러자“되었다”라고 하는 큰 음성이 하늘의 성전 보좌로부터 들려 왔다. 이 말에 사용된 단어는 영어 it is finished에서 보게 되듯이 원문이 지닌 시제는 완료시제이다. 이는 앞서 단순과거시제들을 사용한 것과의 대비를 보여주고 하나님께서 세상에 가한 일련의 재앙들의 절정이자 끝을 보여주는 것으로,“다 되었다”9),“(이제)다 끝났다”10), “다 이루어졌도다”11)를 뜻하여 그야말로“모든 것이 끝났다”를 의미한다. 일곱째 천사에 의해 대접 재앙이 쏟아지자 하늘의 성전에서 이와 같은 큰 음성이 있는 그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며 지진이 일어났는데, 이 지진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존재하며 살아온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시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 지진으로 큰 성(도시) 바벨론은 세 조각으로 갈라지며 산산조각이 나고 세계 각처에 있는 각국의 성들도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이러한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이 지은 죄를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그곳에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시게 하는 벌을 내리신 것이었다. 그 결과의 여파가 얼마나 심한지 섬들은 다 사라지고 산들은 평지가 되어버림으로써 남아 있는 나라가 없었다. 그런가 하면 또한 무게가 한 달란트, 오늘날의 중량 무게로 계산하면 약 4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엄청난 크기의 우박이 일시에 쏟아져 땅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대지진으로, 그리고 우박으로 무서운 재앙을 당하면서도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무서운 재앙을 당할수록 하나님께 품은 마음인 저주하는 비방을 쏟아냈다(참조. 계 16:9, 11).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있는 부패한 악한 죄성에서 나오는 사람의 본성이다.
3. 결론
일곱째 천사가 받아 들고 있던 대접을 마지막으로 쏟으므로 더 이상 남아 있는 재앙이 없게 되었다. 인과 나팔과 대접에 의한 세 가지 일곱 재앙은 그 행해지는 것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맡은 바의 소임을 다했다. 이 재앙이 왜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지는 것인지를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을 비방하여 저주하며 하나님께로 나아오지 않는 그들의 결국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 자신들이 저지른 악한 행위에 대해 영원한 멸망시키실 것으로 행해질 것이다(17:8), 그 까닭은 하나님의 보좌에 계신 어린양은 만주의 주님이요, 만왕의 왕으로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어린양은 자신을 믿음으로 따라 온 자들을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두시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으로 받은 자로서 어린양이 어디로 가시든지 그 뒤를 따르는 충성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좌에 앉으신 어린양에게 자신들이 받은 구원의 공로를 돌리며 이를 행하신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의 것임을 찬양할 것이다(참조. 17:14; 1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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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번역에 있는 한글성경으로는 현대인의 성경, 현대어성경, 우리말성경이 있다.
2) 현대어성경, 공동번역, 한글킹제임스, 새번역, 우리말성경, 킹제임스흠정역.
3) 현대어성경은 16:10에서의 ‘짐승의 보좌’에 앉은 짐승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13장에서의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두 짐승을 뜻하는 것이므로 바다에서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4) 아우내(Aune)는“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와“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를 동의병행법으로 보면서도 어둠의 재앙이 왜 짐승의 나라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었는지는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며, 어둠과 사람들이 겪는 고통 및 종기 사이에는 명백한 연결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본문 속에는 일관되지 못한 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5) 해 돋는 곳으로부터 오는 왕들, 곧 동방으로부터 오는 왕들은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 너머에 있는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대적자 바벨론 왕과 앗수르 왕을 염두에 둔 것일 것이다.
6) 악한 영, 곧 귀신의 영들이 행하는 이적인 사람들 앞에서 하늘에서 불이 땅에 내려오게 하는 것은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들과 결판을 갖는 싸움에서 행한 이적(왕상 18:36-39)을 흉내 냄으로써 사람들을 미혹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악한 귀신인 셋 영이 하나님의 능력을 흉내 내서 이러한 이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인가? 할 때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이는 그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귀신의 영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야 말로 흉내 내게 하는 것으로 복술(마술)의 속임수를 행하게 하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7) 아마겟돈( JArmageddwvn, Armageddon/Harmagedon)은 ‘산’ 또는 ‘성’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르’(rh')와 ‘므깃도’(Megiddo)라는 지명에서 파생한 ‘메깃돈’(@/DgIm], Megiddon)의 합성어이다. 메깃돈은 성경에 나오는 성읍인 ‘므깃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따라서 ’하르메깃돈‘은 ’므깃도 산‘, 또는 ’므깃도 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데, 실제 므깃도 산은 므깃도라는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을뿐더러, 므깃도 산이라고 할지라도 이는 산의 형태라기보다는 므깃도 구릉지역, 곧 므깃도 언덕이므로, 므깃도 지역을 뜻하는 지명으로서의 므깃도일 것이라고 본다. 이 므깃도는 이스르엘 골짜기 또는 에스드라일론의 남서 지역에 있는 평지에 위치한 고대 성읍이었다. 이곳은 주전 1468년에 투트모스 3세가 가나안의 군소 국가들의 왕들의 연합군을 맞아서 싸운 곳이며. 주전 1220년에 메르넬타의 원정이 있었고, 드보라와 바락이 이끄는 군대가 가나안의 동맹군과 싸워 이겼던 곳이며(삿 4:6-16: 5:19), 기드온이 미디안인들과 싸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곳이고(삿 7장),블레셋인들에 의해서 사울이 패배 당한 곳(삼상 29:1: 31:1 -7)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전 924년에 시삭이 원정했던 곳이고, 주전 609년에 요시야와 파라오 느보가 충돌하여 요시야가 전사한 곳으로서(왕하 23:29-30: 대하 35:22-24) 고대의 몇 몇 중요한 전투들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과 이곳이 갖는 역사적 배경에서 아마겟돈은 마귀의 악한 영들이 소집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군대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치기 위한 최후의 전투를 위하여 모이게 될 묵시적이요 종말적인 장소로서의 산을 나타내면서, 에스겔 38-39장에 나오는 곡과 마곡에 관한 예언에서 북방의 원수가 모이고 또한 패배를 당하는 곳으로, 아마겟돈 전쟁에서는 하나님에 의해서 마귀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인 모든 악의 세력이 멸망당할 곳으로 등장한다. 이때 아마겟돈 전쟁에서의 ’므깃도‘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거짓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과 가진 싸움인 “누가 살아 계시고 참된 신이신가?“를 드러냈던 장소인 ’갈멜산‘이 있는 므깃도 평야와 계곡의 지명을 끌어다가 쓰시는 것을 통해서 여기서 벌어졌던 이스라엘이 섬기는 살아 계신 참 하나님과 거짓 하나님 우상과의 싸움의 결과인 거짓 선지자 850명의 몰살을 요한에게 환상 계시를 통해서 아마겟돈 전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8) 세대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7:7-8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을 16:16의 ‘아마겟돈 전쟁’ 이후에 일어나는 전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 때 아마겟돈 전쟁이 있고, 천년왕국 끝에서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다고 또 한번 있다고 보아 역사적인 순서에 의해서 발생하는 각각의 전쟁이란 견해를 갖는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전쟁의 이름만 달리 표현하는 것일 뿐 동일한 사건으로 같은 한 사건의 반복적인 기술적 표현이다. 요한계시록 17장에서부터 19장은 이 아마겟돈 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치러지는 것에서 큰 음녀, 곧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알려주시고 있는데, 흰말을 타신 위엄 있는 그리스도의 지휘로 치러지는 싸움으로 악의 세력은 패하여 지옥불에 내던져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하늘의 허다한 무리는 자신들의 주를 찬양하며 그분과 치르는 혼인잔치에 들어간다는 것을 환상 계시로 보여 말씀해 주시고 있다.
9) 개역, 개역개정, 공동번역, 바른성경, 새번역
10) 현대어성경, 현대인의성경, 쉬운성경
11) 한글킹제임스, 킹제임스흠정역, 카톨릭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