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뜨거운 물
모두가 아는 우렁각시 이야기다. 옛날옛적에 가난한 총각이 우렁이 하나를 집에 가져온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밥이 차려져 있어 숨어 지켜보다가 우렁이 속에서 처녀가 나와 밥 짓는 것을 목격한다. 총각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지만, 원님이 우렁각시의 미모에 반해 뺏어 가버린다. 슬픔에 잠긴 총각은 죽어서 파랑새가 되었다는 비극적 설화다.
다들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있다. 이 설화를 사랑이 아닌 노동력 입장에서 살펴보고 싶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청소, 설거지, 빨래의 노동력을 우렁각시가 대신했다. 총각은 시간을 벌었고 사랑을 얻었다. 우렁각시는 뭘 얻었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이 맞벌이다. 부부가 분담해도 가사 노동이 만만하지는 않다. 우렁각시를 대신해 이모님을 준비한다고 한다. 가사 도우미 3대 이모님은 빨래건조기, 식기세척기, 로봇 청소기를 일컫는 말이다.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는 삼십 년이 넘었어도 이모님을 한 분도 모시지 못했다. 아내는 그럭저럭 우렁각시로 살며 평생토록 가사 노동을 책임지고 있다.
은퇴하고 구례로 떠나올 때 아내도 동행했다. 아내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극복해야 할 것들만 가득하다. 좁은 원룸과 작은 싱크대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얼큰한 육개장 한 그릇을 먹으면 전기 포터로 물을 끓여야 한다. 기름 제거용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 연료비가 비싸 싱크대 온수 밸브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처지에 아내도 웃는다.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생활이 나쁘지는 않다. 작은 것에 만족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자신을 스스로 대견하다고 격려하고 앞으로는 이리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박경리 선생님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를 마음에 새긴 지 오래다. 지금보다 더 줄여도 행복할 수 있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를 버려보면 또 하나를 더 버릴 수 있을 듯하다.
다 버려도 버릴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아직도 초저녁인데 벌써 졸고 있는 아내. 다 버려도 당신만은 못 버리겠다. 다 비워도 절대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사랑!
첫댓글 언니의 수고스러움을 이리 값지게 알아주니 감동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주부의 노고을 당연한 줄 알고 살던 시대의 사람들 틈에서도 이리생각이 깊습니다
또한 내 삶의 노패물을 여기저기 버리고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살다 요즘은 배달음식에서 나오는 프라스틱들 ,정량을 넘게 사용하는 세재, 뜨거운 물을 펑펑 하수구에 흘려보낼때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쉽게 통재되지 않습니다
오늘 이글을 통해 다짐해 봅니다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얻는 행복감을 느끼어볼랍니다
어~ 지나친 글평입니다. 과하십니다.
하지만 후손에 물려줄 환경을 위해 절약하고 생각하며 살면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