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디르크 보우츠
디르크 보우츠(Dirk Bouts, 1415-1475)는 원래 하를렘 출신의 화가로
1444년경에 루뱅에 정착했다.
루뱅 성 베드로 성당의 남자 성체회 회원 네 명은 1464년에 보우츠에게
<최후의 만찬> 세 폭 제단화를 주문했고,
계약서에 두 명의 신학자가 그림의 내용에 대해 조언할 것임을 명기했다.
그래서 중앙 패널에 최후의 만찬을 중심에 놓고
양쪽 패널에 구약성경에 나오는 성찬식의 예표인 네 가지 이야기를 묘사했다.
첫 번째 장면은 창세기 14장 17-24절에 나오는데,
사제가 처음으로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준 사건인 아브람과 멜키체덱 이야기이다.
두 번째 장면은 탈출기 12장 1-28절에 나오는데,
양이나 염소 한 마리의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파스카 축제 이야기이다.
세 번째 장면은 탈출기 16장 1-36절에 나오는데,
굶어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는 만나 이야기이다.
네 번째 장면은 열왕기 상권 19장 1-8절에 나오는데,
천사가 엘리야에게 빵과 물을 갖다 주었던 광야에서의 엘리야 이야기이다.
보우츠는 중앙 패널에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에서 유행했던 고딕식 실내장식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가 빵과 포도주를 축복하는 엄숙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것이 바로 가톨릭 교리의 칠성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체성사의 제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오 26,26)
성체성사가 제정되는 순간,
예수님 오른편에 있는 베드로는 헌신의 표시로 두 손을 가슴에 포개고 있다.
그의 잿빛 머리카락 한 가운데가 텅 빈 것은
아마도 그 당시 청빈을 모토로 했던 탁발수도회를 염두에 둔 것 같고,
예수님의 오른편에 베드로를 위치하게 한 것도
이 제단화를 봉헌할 곳의 주보성인이 성 베드로라는 것을 반영한 것 같다.
예수님의 왼편에는 사도 요한이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엄숙하고 경건하게 성체성사의 제정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왼쪽 앞에 등을 보이는 유다도 동료들과 함께 있지만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성체성사의 제정을 화난 표정으로 지켜만 보고 있다.
유다에 대한 특별한 표시는 없지만
성난 표정과 거친 이목구비가 유다라는 사실을 대변해준다.
그렇다면 분노와 화가 가득 찬 상태로 미사를 드린다면
우리도 유다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식탁 위에는 여러 개의 물 잔과 빵과 칼이 놓여 있고,
예수님께서 축성하는 빵과 포도주 앞에 큰 주석 접시가 있는데,
접시 안에는 어린양의 피가 기름과 함께 섞여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양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파스카 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탁 앞에 둥글게 드리워진 흰 천은 어린양의 피를 담은 접시와
예수님 손에 들려진 성체로 우리의 시선을 더욱 집중시킨다.
또 예수님의 머리 뒤에는 나무로 된 벽난로가리개가 있는데,
그 십자가 문양이 예수님의 머리를 감싸고 있어
성체성사가 십자가 희생제사의 재현이라는 신학적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과 열두 사도 외에도 15세기 복장을 한 네 명의 시중드는 사람이 보이는데,
이들은 이 제단화를 봉헌한 성체회 회원들이다.
왼쪽의 창밖에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루뱅 시내의 정경이 희미하게 보이고,
재미있게도 최후의 만찬이 열리고 있는 시간이 대낮이다.
그 당시에는 미사를 밤보다는 대낮에 더 많이 드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