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막노동으로 사회 첫발
한국전력 입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고 보니 학교 선생님들의 칭찬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온 동네와
친척들로부터 축하와 격려를 받으니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실습을 가지 않으려고 위장 신고까지 했었는데 이제는 떳떳이 학교 측에 얘기할 수가 있었다.
실습생으로 종전과 같이 적을 두고 이제는 나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지낼 수가 있었다.
며칠을 집에 머물며 앞으로의 나의 갈 길을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일단 실업계 고등학교에 들어와 가난을 벗기 위해서는 취직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고생을 한 것이 나에게 큰 도움과 경험이 되었고 이를 연장하여 대학교도 자립하여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기에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를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토록 염원하던 취직시험이 되면서 갈등이 생겼다.
남들은 취직이 안 되어 방황하며 애를 쓰고 있는데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대학에 간다고 하였을 때
과연 지금보다 얼마나 달라지고 또 취직을 하기위해 새롭게 시험을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해서 결론을 내린 것이 일단 취직하였으니 안정 속에 열심히 직장을 다니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배움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결정을 하고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나는 이제 진학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았다. 발령이 나기까지 남은 시간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그동안 나를 뒷받침해준 가족에게 보답이 될 것 같았다.
큰형님은 건축일을 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벽돌공으로 기술을 배운뒤 경력이 쌓이니까 이제는 직접 집을 짓는
업자로 일을 하셨다.
단순 노무직으로 벽돌을 쌓는 것보다 집을 한 채 맡아 감독을 함으로서 수익이 더 많이 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형님께 나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사회 경험 겸 그동안 형님들이 후원해준 데 대한 감사와 보답하는
차원에서 형님의 공사판에 잡부로 취직하였다.
그동안 나름대로 힘든 일을 하면서 단련이 되었다고 했지만 막상 노동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나는 주로 시멘트를 모래와 비비면 그것을 퍼다가 벽돌 쌓는 기술자에게 갔다주거나 벽돌을 등에지고
운반해주는 일이었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이라 힘도 있고, 형님이 직접하는 하는일이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농땡이 치지않고
열심히 일했다.
농사일도 힘들었지만 이런 막노동은 시간을 맞추는 일이라 더욱 힘들었다.
며칠은 견디었지만, 연속으로 참여하기는 체력이 달려 며칠 쉬고 또 일하고 그런 속에서 단련이 되어 나중에는
잘 견딜 수 있었고 일에 대한 요령이 생겼다.
그렇게 한 5개월을 지나고 나자 한전에서 입소 통지가 날라왔다.
보통은 졸업하고 2~3월에 입사하는 것이 통례인데 졸업도 하기 전 12월 1일에 서울에 있는 한전 연수원으로
입소하라는 통보가 온 것이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사회 첫발의 노동경험이 후에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상황이 닥쳐와도 참고 이겨내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