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 –오스트리아 빈-
가곡을 잘 부르던 큰언니는 내 어린 날의 겨울, 따스한 찻잔 같았다. 어린 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빨간 리본으로 꽃봉오리를 만들어 정성스레 머리를 묶어주었고, 어느날은 책을 선물로 건네며 내 세상을 넓혀주었다. 거울을 보며 목청 높여 가곡을 부르는 언니를 볼 때면 어린 나는 황홀에 젖어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언니는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음악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때 그 시절, 가난했던 집안 사정으로 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구로공단에 사무원으로 취직을 해야 했다.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 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 양 나래 싣고 가노라. <그네>
그때 들었던 언니의 노래 <그네>는 나로 하여금 창공을 나르게 했고, 언니가 <내 고향 남쪽바다>를 부를 때면 서울이 고향인 나는 바닷가 어느 마을이 고향이 된 듯했다.
하지만 원곡이 <도나우강의 물결>인 <사의 찬미>를 들을 때면 왠지 구슬픈 멜로디에 울음이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언니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고작 10살 아이가 삶속에 담겨진 삶의 애환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삶의 끝이나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를 남몰래 떠올리며, 위태로운 마음으로 한강을 걷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었다. 그러나 어린 그 아이는 차마 한강까지 가지 못하고 외로운 밤이면 장독대에 올라가 별을 세며 언니가 불렀던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불렀다. 그때의 그 노래는 어린 나를 달래주는 유일한 온기였다.
오스트리아를 지나던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시간을 뒤로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고 싶었다.‘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강 한가운데 정거장이 있고, 그곳에서 강물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정보에 나는 비행기 시간이 촉박함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어 그곳으로 내달렸다. 헝가리에도 독일에도 흐르는 도나우강을 나는 왜 이곳에서 꼭 보고 싶었을까. 전철이 지나가는 길목,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흐르는 강물을 보며 인생 무상함을 느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그 서글픈 멜로디를 들으며 죽음을 생각했던 어린 날의 나와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노인의 길목에 들어선 나는, 어린 날의 나와 달리 삶이 즐겁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스트리아의 도나우강 물결에 씻어 내린 듯, 나의 발걸음은 한결 편하게 느껴졌다. <사의 찬미> 후렴은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의 찾는 것 허무치 않냐’고 노래하지만, 죽음 후의 세상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고, 살아 있음도 기쁘다.
독일에서 발원하여 오스트리아를 지나 헝가리와 루마니아를 거쳐 흑해에 이르기까지, 도나우강은 수많은 나라를 흐르며 국경을 만들고 유럽의 기나긴 역사와 문화를 빚어냈다. 그렇게 끊임없이 흐르며 거대한 문명과 역사를 만들어낸 저 강물처럼, 우리의 인생 또한 흐르는 세월 앞에서 저마다의 자기만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세월의 흐름 속에 때로는 절망과 고통에 휩싸이고, 때로는 기쁨과 환희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막을 수 없듯, 세월의 흐름 또한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도도한 흐름이 야속하지만은 않은 것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단단해진 지금의 내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를 따스한 찻잔 같이 다정함으로 채워주던 언니의 손길과 노랫소리가 내 안에 여전히 살아있기에 지나온 세월마저 아쉽지 않다. 세월의 강물은 많은 것을 떠내려 보내지만, 나의 역사를 만들고, 나의 사랑을 만들고, 나의 꿈이 닿는 곳까지 이끌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