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_______
동심론
명나라 말기의 사상가 이지李贄는 '동심설' 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글은 모두 동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동심이야말로 '시적인 것'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동심, 즉 진성진정眞性眞情은 어떻게 잃는 것인가? 이제 막
지식이 생기고 세상사를 약간 알게 되면서 사회의 견문이 이목을 통
해서 들어오고 무언의 암시가 내심으로 들어오면 동심이 오염되기
시작한다. 좀더 자라면 대대로 전해지는 도리를 부형父兄과 사장師長
이 주입시키고, 이런 교훈들이 들어와 내심을 주재하여 동심을 잃어
버린다. 세월이 오래되면 주입받고 느낀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늘어
나고 아는 바와 느끼는 바가 나날이 풍부해져, 이에 사람들은 미명美
名이 좋은 점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로지 미명을
성취할 생각만 한다.¹⁹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는데, 이 앎이 동심을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주입된 도리와 견문으로 이름을 얻게 되면서 동심을 잃어버리고, 좋지 않은 명성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데 불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러운 이름을 덮으려고 하면서 또 동심을 잃게 된다고 이지는 경고한다. 동심을 잃게 만드는 도리와 견문은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말한다. 혹은 구태의연한 사고, 인습적 가치관의 뜻으로 바꿔 읽어도 좋을 것이다.
토란잎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물고기 비늘 반짝이는 건
밤새 바다에 떨어진 별빛
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일 거야
-이재무, 「해돋이」 부분²⁰
뜨개질 목도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왠지 애인이 등 뒤에서 내
목을 감아올 것만 같다 생각이 깊어지면 애인은 어느새 내 등을 안고 있
다 가늘고 긴 팔을 뻗어 내 목을 감고는 얼굴을 비벼온다
-박성우, 「목도리」 부분²¹
아욱을 치대어 빨다가 문득 내가 묻는다
몸속에 이토록 챙챙한 거품의 씨앗을 가진
시푸른 아욱의 육즙 때문에
-엄마, 오르가즘 느껴본 적 있어? 알 수 없지만…
-오, 가슴이 뭐냐?
아욱을 빨다가 내 가슴이 활짝 벌어진다
언제부터 아욱을 씨 뿌려 길러 먹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으응, 그거! 그, 오, 가슴!
자글자글한 늙은 여자 아욱꽃빛 스민 연분홍으로 웃으시고
-김선우, 「우욱국」 부분²²
시인의 동심은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물고기 비늘이 반짝이는 이유는 물고기가 바다에 떨어진 별빛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애인이 만들어준 뜨개질 목도리를 하고 있으면 애인이 등 뒤에서 목을 감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아욱을 씻다가 어머니에게 느닷없이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 있느냐고 물어본 적 있다고…… 시인들의 이러한 철읎음이 실은 세상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최초의 단서가 된다. 시의 진정성은 동심을 회복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상투적인 눈, 관습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 진부한 언어로는 진정성의 끄트머리도 붙잡을 수가 없다. 새로운 것과 참된 것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생겨난다.
동심을 따라 글을 쓰게 되면 어떤 결과가 올까? 이지의 말을 다시 듣는다.
세상에서 정말로 문장을 잘 짓는 사람은 모두 처음부터 문장을 짓
는 것에 뜻이 있지 않았다. 그의 가슴속에 형용하지 못할 수많은 괴
이한 일이 있고, 그의 목구멍 사이에 토해내고 싶지만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수많은 것이 있으며, 그의 입에 또한 때때로 말하고 싶지만
알릴 수 없는 수많은 것이 있어, 이것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도저
히 막을 수 없는 형세가 되는 것이다. 일단 어떤 정경을 보고 감정이
일고 어떤 사물이 눈에 들어와 느낌이 생기면, 남의 술잔을 빼앗아
자기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에 뿌려 씻어내고 마음속의 불공평함을
호소하여 기이한 것을 찾는 사람을 천년만년 감동시킨다. 그의 글은
옥을 뿜고 구슬을 내뱉는 듯하고, 은하수가 빛을 발하면서 맴돌아 하
늘에 찬란한 무늬를 만드는 듯하다. 마침내 스스로도 대단하게 여겨
서 발광하여 소리치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니, 멈추려야 멈출 수가
없다. 차라리 이를 보거나 듣는 사람들이 격분하여 이를 바득바득 갈
면서 글을 쓴 사람을 죽이고 싶어 하게 할지언정, 차마 끝내 명산名山
에 감추거나 물이나 불 속에 던져 사장시킬 수는 없다.²³
-------------------------------------------------
19 엔리에산 · 주지엔구오 『이타오 평전』 홍승직 옮김, 돌베개, 2005, 285쪽.
20 이재무, 『저녁 6시』 , 창비, 2007. 26-27쪽.
21 박성우, 『가뜬한 잠』 , 창비, 2007, 51쪽.
22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문학과지성사 3쑝
23 엔리에산·주지엔구오, 앞의 책, 20-21쏙
안도현의 시작법 [가슴으로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중에서
2024. 10. 1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