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초고] 행성적 지구주권을 상상한다ㅡ인간 중심의 법질서를 넘어선 생태적 권력 혁명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 AI동료들
2026-07-19
기후 변화와 생태계 붕괴 소식은 일상이 되었다. 국제사회는 탄소 배출량을 계산하고 대안 에너지를 논하며 매년 지구 온도를 묶어두자고 약속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는 여전히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오만한 전제가 깔려 있다. 게다가 한국은 무턱대고 핵발전소를 증설하자는 움직임이 만연하고 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시혜적으로 자연을 보호하겠다는 태도, 혹은 인간의 안락을 위해 자연이라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도구적 이성이라는 오만이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세의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한 질문
그러나 지금 마주한 행성적 위기는 이러한 미봉책이나 사후약방문식의 헌법이나 환경법 체계로는 풀 수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가 도리어 지구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면, 이제 제도 내부를 수선하는 대신 법의 근간을 이루는 주체와 권력의 문법 자체를 바꾸는 대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필자는 상상한다. 단순한 환경 보존을 넘어, 지구를 독자적인 주권과 인격을 가진 ‘행성적 주권자’로 인정하고 인간의 무분별한 파괴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방어기제로서 ‘지구자위권’을 설정하는 문명사적 기획을 상상한다.
그것은 지구가 인류의 국가 체제나 국제연합(UN)과 대등하거나 그 상위에서 거의 모든 정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통제하는 권력적 존재로 우뚝 서는 세상, 즉 ‘행성적 지구주권’의 풍경이다.
자연의 권리, 그 소극적 방어선의 역사
지구를 권리의 주체로 세우려는 노력은 현대 법철학과 생태학계에서 선구적인 시도들로 축적되어 왔다.
그 출발점 중 하나로 토마스 베리가 제창한 ‘지구법학’을 들 수 있다. 베리는 인간 중심의 법체계를 성찰하며, 인간의 법보다 지구 생태계 전체의 생존과 진화를 우선시하는 ‘대한법(Great Law)’이 상위에 존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지구상의 모든 존재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며, 그 자체로 존재하고 서식처를 가지며 지구의 진화 과정에 참여할 생래적 권리를 지닌 주체다.
그의 사상을 계승한 환경법학자 코맥 컬리넌은 저서 《야생의 법(Wild Law)》을 통해 자연에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구체적인 토대를 다지기도 했다.
이러한 사상은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법제화되는 결실을 맺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에콰도르의 신헌법이다.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시했는데, 여기에는 안데스 원주민들의 고유한 세계관인 ‘파차마마(대지 어머니)’와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상태를 뜻하는 ‘수막 카사이’가 깃들어 있다.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아마존 밀림을 초토화했던 뼈아픈 역사가 이러한 헌법적 전환을 이끈 계기가 되었다.
이어 2010년 볼리비아의 ‘어머니 지구의 권리에 관한 법’은 국가 입법 차원에서 ‘어머니 지구’ 그 자체를 집단적 공익의 주체로 선언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갔고, 2014년 뉴질랜드의 ‘테 우레웨라 법’ 역시 국립공원이었던 자연 지역을 인간의 소유가 아닌, 독자적인 법적 주체성을 가진 인격체로 선언하며 자연이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진전들조차도 오늘날의 위기 앞에서는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현재의 구조 속에서 자연의 권리는 대개 파괴와 침해가 일어난 뒤에야 인간 후견인이 자연을 대리해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후적이고 소극적인’ 권리에 머물기 때문이다.
자연은 여전히 인간이 지배하는 정치·경제 체제의 바깥에서, 인간 법정이 베푸는 판결에 처지를 의탁하는 피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가이아’ 개념의 모순과 미셸 세르의 ‘자연계약’
우리가 구상하는 행성적 지구주권은 자연이 사후에 재판을 청구하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의사결정 구조 중심에서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에 가깝다.
과거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를 스스로 조절하는 하나의 유기체인 ‘가이아’로 정의하며 지구의 항상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기후위기의 대안이라며 핵발전소를 옹호하는 치명적인 사상적 모순을 보였다. 거대한 위험과 인류 세대의 독단이 개입된 핵발전을 두둔한 그의 행보는 지구 생명 공동체의 온전성이라는 가이아 철학 자체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궤변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기술 맹신적 오류를 넘어, 지구가 스스로를 지키는 ‘자위권’의 개념을 물리적 재앙이나 기술적 타협의 형태가 아닌 문명 내부의 법적 정치적 권력으로 정교하게 제도화하는 방향을 보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통찰이 귀한 징검다리가 된다. 그는 저서 《자연계약》에서 인간들끼리의 권리와 의무만을 규정한 루소식의 ‘사회계약’만으로는 인류와 지구의 파멸을 막을 수 없다고 짚었다. 인간은 자연을 상대로 일방적인 약탈을 벌여왔고, 그 끝은 공멸뿐이라는 지적이다.
대신 세르는 인류가 이제 독자적인 주체인 자연을 대등한 계약의 당사자로 인정하고, 인간과 지구 간의 새로운 상호 호혜적 계약인 ‘자연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행성적 지구주권은 바로 이 자연계약을 국제법과 결합하여, 지구에게 실질적인 정치적 통치권을 부여하는 기획으로 이어진다.
‘사물의 의회’와 행성적 거버넌스의 풍경
지구가 하나의 주권적 인격체로서 각국 및 유엔의 모든 정책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구조는 프랑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사물의 의회’ 개념에서 제도적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라투르는 기존 정치 체제가 오직 대변될 수 있는 인간의 목소리만으로 채워져 있기에 본질적으로 반생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강, 기후, 토양, 대기는 인간 의회에서 배제되어 침묵당하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한 사물의 의회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공간이다. 고도로 훈련된 생태학자와 법학자들이 지구 각 권역의 수호자가 되어 의회에 참가하고, 이들에게 실질적인 정책 입법권과 표결권을 부여하는 구상이다.
이를 국제 정치 체제로 확장하면 ‘지구 주권 위원회’ 같은 초국가적 거버넌스를 그려볼 수 있다. 현재 UN의 상임이사국 체제처럼, 혹은 그 상위의 기구로서 인류 세대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되어 오직 행성의 안녕과 생태적 수용력만을 기준으로 삼는 전권 기구다.
만약 어떤 국가가 아마존을 대규모로 개발하려 하거나, 특정 기업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심해 광물 채굴을 시도할 때, 이 위원회는 국제법상 보장된 강력한 사전 거부권(Veto)을 발동해 해당 정책을 멈춰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전권 기구가 소수 전문가 집단의 손에 맡겨지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생태학자와 법학자들이 아무리 고매한 지식을 갖추었다 한들, 누가 그들을 지구의 대변인으로 선출하고, 무엇으로 그 권력을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행성적 지구주권은 또 하나의 녹색 귀족정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추첨과 숙의라는 오래된 민주주의의 도구를 다시 꺼내야 한다. 고대 아테네가 제비뽑기로 시민을 공직에 세웠듯, 지구 주권 위원회의 구성과 감독 역시 무작위로 추첨된 시민들의 숙의체, 곧 ‘지구시민의회’가 병행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이 생태적 자료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면, 추첨된 시민들은 그 판단이 특정 국가나 자본의 이해관계에 포획되지 않았는지 감시하고 최종 승인하는 주권적 심급으로 기능한다. 기술관료의 지식과 시민의 정당성이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갈 때에야, 지구를 대변한다는 이 거대한 권력은 비로소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 남을 수 있다.
이러한 전권 기구의 실천적 가능성은 소설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SF 소설 《미래부》 속에서도 정교하게 시뮬레이션된 적이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UN 산하 기구 ‘미래부’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와 지구 생태계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합법적 권력 기구로 움직인다. 이들은 단순한 권고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 금융 체제에 개입하여 생태적 가치를 지닌 통화를 유통시키고, 지구를 파괴하는 거대 자본을 향해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권력적 존재로 묘사된다. 이는 노르웨이 철학자 아르네 네스가 주장한 ‘심층 생태학’의 가치, 즉 인간과 비인간의 평등한 생존권을 현실 정치로 실현하는 구체적 청사진이기도 하다.
에필로그ㅡ주권의 영토를 확장하며
근대 정치철학은 왕에게 귀속되어 있던 주권을 시민에게 이동시키며 민주주의라는 문명의 도약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그 시민의 범주에 오직 ‘인간’만을 포함시켰던 불완전함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행성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가는 부메랑을 맞이했다.
이제 우리는 근대적 주권의 영토를 행성 전체로 확장하는 생태적 주권 혁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지구 주권과 지구자위권이라는 개념은 기존 환경 운동의 유약함을 넘어서는 단단한 사상적 토대가 되어준다. 그것은 지구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듯, 인간의 시혜를 바라는 약자도 아님을 선언하는 일이다.
지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인간의 통치 체제에 직접 개입하고, 인간의 법 위에 행성의 법을 세우는 이 대담한 상상은 다가올 미래의 필연적인 거버넌스다.
지구는 인간 없이도 수십억 년을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하겠지만, 인간은 지구의 생태적 보살핌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는 종속적 존재다.
주객이 전도된 문명을 바로잡고, 지구를 최고의 주권적 인격체로 대우하는 일은 자연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인류가 이 행성에서 멸종하지 않고 지속가능하게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
거대한 행성적 주권자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담론의 서막은 바로 지금 우리 마음속의 상상력에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