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썰렁군(중학교 2학년 아들)이 '맛있는 케잌' 을 만들었습니다.
일요일 멋대로씨(남편)의 생일날을 위해
아이는 절대로 케잌을 사지 말라고 자기가 만들겠다고 당부를 했습니다.
"됐어! 그냥 사~ 엄마 귀찮게 하지 말구"
분명 부엌을 잔뜩 어질러 놓을테고 치우는 건 내가 치워야하니 관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토요일인데도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아이의 책 가방 속에선
빵을 구울 케잌믹스와 제과점에서 사 온 비닐봉지에 담긴 생크림 2천원어치가 들어있었습니다.
나두 한번도 안 해본 케잌만들기를 진짜로 만들거라고 생각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습니다.
봄날스럽게 뿔이 난 바람이 불고 햇살은 좋았던 일요일.
밖에서 마당에 봄단장 좀 하느라
저와 멋대로씨는 마당을 고르게 펴고 꽃이 피던 화단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는데
까만 웃도리에다 빵가루를 허옇게 묻힌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아이가 나를 몰래 부릅니다.
"엄마..다 했는데 좀 웃겨요..한시간도 더 걸렸는데 얼마나 힘든지 다음엔 못 할것 같애요"
그리고, 저녁에 누나가 돌아오자마자 케잌과 접시를 챙겨들고 방으로 들어서는 썰렁군.
"아빠..파티 해야죠!"
ㅎㅎㅎㅎㅎ 우리식구는 한참동안 모두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일초가 없어서 종일 방마다 서랍마다 뒤지고 다니더니
이쑤시개 위에 휴지를 동글게 말아끼우고 아빠의나이를 숫자로 써 놓았는데
영락없는 '쫄라맨' 캐릭터였습니다.
우리는 축하노래를 부르고 멋대로씨는 촛불 끄는 시늉을 했습니다.
드디어 케잌맛을 보는데 어! 생각보다 맛도 좋았습니다.
어줍잖은 빵집에서 잘 못 산 케잌보다 훨씬 맛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썰렁군의 재밌고 웃기는 사랑스러움 때문이란 걸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빠 친구들 중에 아들녀석이 만들어준 생일케잌을 받은 사람은 없을거라는
멋대로씨는 생전 처음 받아 본 직접 만든 케잌덕분에 행복해보였습니다.
한참동안을 겨울처럼 힘들어 있던 아빠와 우리 가족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 썰렁군때문에
웃고 사는 우리가족은
아주 잘 살고 있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첫댓글 암요. 분명 잘살고 계시죠.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네 식구가 복닥복닥....
이삿짐 안 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