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명산, 오대산에 오르다.
(지상 김근학)
94년 2월 마지막 주말에 고등학교 동창 몇과 함께 한반도의 수많은 명산 중에서도 덕산으로 꼽히는 강원도 평창의 국립공원 오대산에 등반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박용규 친구와 나는 부부등반으로 참여 하였고, 채홍원과 김정길은 싱글로 동행 하였으며, 김길수는 부부와 중학교 3학년인 둘째 아들 용구를 동반하였고, 그 이외에 동창 관계는 아니지만 청원군 오창 출신으로 토건업을 하는 이종국 사장까지 포함해 일행 10명이 오대산 등반을 위해 서울동부터미널에서 26일(토) 오후 5시에 출발하는 진부행 시외버스에 승차하고 출발하였다.
우리가 탄 버스는 쉐라톤워커힐호텔 옆을 지나 구리시와 미금시를 거쳐 양수리 양평을 경유하여 영동고속도로 새말휴게소까지는 국도를 따라간 다음, 새말인터체인지부터는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4시간 반만인 9시경에 평창하진부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하였다.
가는 도중에 일행 김길수 부인 정 여사가 새말인터체인지에서 속이 불편하여 활명수를 복용한 것에 취해서 의식을 잠시 잃은 것 이외에는 별 이상없이 도착하였다.
진부여관에서 여장을 푼 일행은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지난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으며 옛 이야기들에 꽃을 피우다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27일에 일찍 일어나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오대산에 오르기 위해서 상원사행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날 날씨는 우리 일행의 오대산 등반을 반기듯 매우 맑아 하늘에는 구름을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고 오대산을 호위하듯 도열한 여러 산 정상 주위에는 아직도 지난겨울에 내렸던 눈이 녹지 않고 쌓여 겨울의 잔영이 가시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탄 마을버스는 전나무 숲과 월정사를 지나 덜커덩덜커덩 하며 약 50분을 달려 마침내 상원사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오대산은 몇 년 전 10월 초순 상원사 계곡에 오색단풍이 울긋불긋 짖고 곱게 물들어 선경 같은 풍경을 연출하고 있을 때, 고향 친구들과 더불어 다녀간 적이 있었다. 그때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이어지는 약 8km 계곡은 하나의 거대한 단풍 파노라마가 꿈틀대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월정사에는 92년 11월에 막내 숙부(우상)의 따님인 4촌 매제 순임이가 진부에 있는 박씨 성을 가진 총각과 진부 월정사 입구에 있는 세종예식장에서 결혼 예식을 올리게 되어 집사람과 같이 참석했는데, 예식이 끝난 후 상원사와 월정사에 잠깐 들려 부처님에게 예불을 드리고 적명보궁복원불사에 적은 보탬이나마 하려고 가족들의 이름과 연령을 적은 동기와를 기증하고 절 경내를 둘러보고 월정사에서 생수를 2통 받아 갖고 와서 며칠 두고 가족들이 아껴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명산 오대산의 상원사와 월정사를 주마간산 격으로 보긴 하였으나 정작 오대산 정산인 비로봉을 등반한다고 생각하니 기대와 설렘이 뿌듯하게 가슴에 밀려 왔다. 어느 산이던 오를 때는 나도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스며들곤 하였지만 웬일인지 오대산을 등반한다고 생각하니 여느 때보다도 더욱 가슴이 뿌듯하고 마음이 설레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청담 이중환(1690~1756)은 그가 쓴 팔역지의 山水論(산수론)에서 우리나라의 명산으로 12개산을 꼽았는데 그가 꼽은 바에 의하면 태백산맥에 있는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등 4개산과 태백산맥에서 갈라져 한반도 중허리의 남서로 뻗어 내린 차령산맥에 군데군데 불끈 솟아 있는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지리산 등 4개 명산을 차례로 지적 했고, 그리고 그 이외에 함북의 칠보산, 평북의 모향산, 경남의 가야산, 경북의 청랑산 등 4산을 합쳐 우리나라의 12대 명산으로 칭하였다.
그러나 명산의 평은 모든 산이 나름대로 특색과 빼어남과 아름다움을 갖추어 담고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명산으로 꼽는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일 수는 없지만 이중환의 산수평은 지금까지도 높게 평가 되고 있다 하겠다.
오대산은 고대로 우리나라 불교 성지의 하나로 불교와 인연이 깊은 명산으로 주봉인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효령봉, 상왕봉, 두루봉, 동대산의 웅장한 고봉 등이 그 웅자를 나타내고 국토의 젖줄인 한강 발원지의 하나인 오대천 상류를 둘러싸고 수려한 계곡을 이루고 있다.
일행은 등반 중에 스님의 독경 소리와 풍경 소리가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상원사에 들렀다. 상원사는 월정사의 말사로서 신라 성덕왕 4년(905년)에 창건된 유서 같은 사찰로 상원사의 처음 이름은 진여원이었다고 하며 우리나라 동종 중에 훌륭한 일품으로 꼽히고 가장 오래되어 국보 36호로 지정되어 국사교과서에 소개되고 있는 상원사 동종이 이곳에 고이 안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상원사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부처님의 정골 사리를 봉안한 한국 제일의 명당자리라고 알려진 적멸보궁이 있는바 적멸보궁의 지형은 연꽃 같은 산세의 화심에 해당하는 명당에 자리하고 있어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사람이 일별해 보아도 훌륭한 명당이라고 볼 수 있는 대덕길지 같았다.
특히 조선 초 세조와 깊은 인연이 있어 상원사에는 세조의 어의가 원형대로 지금도 보존 되어 있다.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내치고 등극한 후 병명도 모르는 괴질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이곳 상원사에 와서 병을 고치고 정양중에 자객의 침입을 예고해 목숨을 지키게 한 고양이를 위한 전답을 하사한 묘전도 있었다고 한다.
상원사에 들러 상원사 감로수각에서 시원한 물로 갈증을 달래니 물맛도 명산인 오대산을 찾는 이들에게 더없는 기쁨과 보람을 보태주는 것인 것 같았다. 상원사를 뒤로 하고 일행은 오대산의 제일봉인 비로봉을 향해 약 30분 오르니 중대사가 나타나서 중대사에서 잠시 쉬면서 약수를 들고 수통에 물을 담은 후 갖고 간 아이젠을 등산화에 부착하고 약 600M 떨어진 부처님 정골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에 들려 경배한 다음에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입춘과 우수가 지났지만 이곳은 해발이 1300이상 고지이기 때문에 아직도 산자락이나 계곡은 물론 산 코숭이에도 잔설이 남아 있었고 특히 등산로에는 눈이 녹았다가 저녁에는 다시 얼었고 그 후에 흙먼지가 약간 덥힌 데도 있고 해서 미끄러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비로봉이 가까워질수록 응달인 산길에는 흰 눈이 그대로 쌓인 채 순백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양달인 등산로에는 따사롭게 쬐이는 햇볕과 동해안의 미풍에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제법 쫄쫄 소리를 내고 계곡을 향해 흐르고 있어서 봄이 오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이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일행이 정상으로 오르며 때로는 된비알 길로, 때로는 완만하지만 거목이 우거진 산길을 오르는 내내 먼 산에서는 딱딱구리의 나무를 맹렬히 쪼는 소리, 까마귀가 깍깍대며 우는 소리가 들렸고, 가까이에서는 동고비, 박새 이외에 이름 모를 산새들이 이리저리 날고 지저귀며 봄의 소리를 당겨주고 우리 일행을 벗 해주고 있었다.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면서 힘이 들면 등산로에 누워 있는 고사목 있는 곳에서 잠시 쉬면서 송골송골 솟은 땀을 들이면서 정상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오른쪽 능선사이로 검푸른 거대한 물체 같은 것이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라 오대산과 연결된 산맥인가 싶었으나 색깔이 산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자세히 보니 동해의 푸른 바다가 아닌가! 동해의 푸른 바다는 우리 일행이 오대산 등반을 환영하듯 그 무한한 포용력을 갖고 우리 일행이 민족의 영산인 오대산을 등반한 것을 환영하는 손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와 ‘애국의 노래’ 등에도 나오는 동해! 우리 민족과 더불어 영원히 존재하고 우리 후손에게 삶의 희망과 용기와 생명의 힘을 길러 주는 동해가 그 늠연한 자태를 우리에게 보여 주며 조용히 미소 짓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일행에게 ‘동해다 동해 바다가 우리를 보고 환영의 손짓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
비로봉 정상에 숨가쁘게 올라 호흡을 고르며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과 소망을 생각하고 뒤이어 천천히 사위를 조망했다. 드디어 오대산 비로봉 널찍한 정상에 서있는 ‘비로봉 1563M' 정상 표지석은 차가운 북풍한설에도 많이 내린 눈에도 의연히 서 있으며 우리 일행을 반겨주고 있었다. 주변의 산봉들을 호령하듯 당차게 장대하게 솟구쳐 있는 비로봉은 동해바다는 물론 멀리 태백산과 멀리 경북 청송 일원의 산봉우리도 눈에 들어와 꽉 막힌 가슴을 열어 주는 것 같고 약동하는 우리의 기상과 위용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래서 산에 땀 흘려 오르고 새로운 용기와 의지, 희망을 품고 다지게 되는 것 같다.
199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