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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 7구간 제2부
운리임도-성불정사-청계마을-탑동마을-
단속사지-다물평생교육원-운리마을주차장
20260407
1.단속사지(斷俗寺址)의 정당매(政堂梅)
-남명(南冥) 조식(曹植) 선생의 평가
한식 다음날 지리산둘레길 성심원-운리 7구간 탐방을 떠났다. 1월 20일 수철-성심원 6구간 탐방을 마친 뒤 도보여행팀에서 7~9구간을 뒤로 미루고 10~13구간을 먼저 탐방하였다. 6구간 탐방으로부터 2개월 보름을 지나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 4월 7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산청성심원으로 떠났다. 안내버스는 경호강 동단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풍현 버스정류소에 10시 25분쯤 도착, 도보여행 회원들을 내려준다.
지리산둘레길 사이트에서는 이번 구간을 이렇게 개략한다. "거리 13.4km, 예상시간 약 5시간, 난도 : 상, 경유지 : 성심원 - 아침재(2.3km) - 웅석봉하부헬기장(2.5km) - 점촌마을(6.4km) - 탑동마을(1.5km) - 운리마을(0.7km).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내리마을 성심원과 단성면 운리를 잇는 13.4km의 지리산둘레길. 이 구간은 웅석봉 턱밑인 800고지까지 올라가야 하는 힘든 오르막과 탑동마을로 가는 긴 내리막 임도를 품고 있다. 풍현마을과 어천마을을 이어주는 아침재, 웅석봉에서 흘러 경호강에 오르는 어천계곡,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계저수지가 아름답다. 단속사터였던 탑동마을에서 동서삼층석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산청 삼매 중 하나인 정당매를 만나 역사와 걷는 길이다." 그런데 거리 13.4km는 성심원 정문 앞 이정목에 12.6km로 표시되어 있으며, 구간 내 모든 이정목은 거리 12.6km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 구간의 어느 거리 표시가 맞는 것일까? 지리산둘레길 7구간 탐방 체험을 2부로 나누어 정리한다.
제2부(운리임도-운리마을 주차장) : 운리 임도를 따라 웅석봉의 달뜨기능선 동쪽을 돌아 내려간다. 운리 임도의 전체 지형도를 살피면, 청계계곡을 중앙에 두고, 웅석봉의 남부능선인 달뜨기능선과 웅석봉의 동남부능선이 양쪽으로 벋어내리는데, 운리 임도는 달뜨기능선 동쪽 비탈을 따라가는 임도이다. 운리 임도의 맞은편, 청계계곡 동쪽의 웅석봉 동남부능선 산비탈에는 어천고개 임도가 이어진다. 그리고 0.5km의 작업임도가 청계계곡을 가로질러 운리 임도와 어천고개 임도를 이어준다. 그러니까 세 곳의 임도가 웅석봉을 정점으로 삼각형 모양을 이루는데, 청계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업임도가 삼각형의 밑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 밑변 아래쪽에 웅석봉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을 모으는 청계저수지가 있고, 청계저수지의 물은 남사천으로 흘러내려 경호강으로 유입된다.
운리 임도의 산비탈과 길가에는 히어리 연노랑 꽃들이 떼지어 종소리를 울리며 길손을 맞이하고, 청계저수지 남쪽 너머에는 진주시가지와 경호강이 유입되는 진양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운리 임도는 달뜨기능선을 완만하게 굽이돌아 정감이 넘치며 낭만을 불러 일으킨다. 천지가 개벽하여 세상이 물에 잠겼을 때 웅석봉 정상에 달 하나 앉을 만한 공간만 남았다고 하여 달뜨기능선이라 불렸다는 유래는 낭만을 더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새 세상을 꿈꾸며 지리산으로 숨어든 빨치산들이 능선 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며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했다고 하여 '달뜨기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유래에는 가슴이 시리다.
낙석 보호 설치물이 있는 낙석 위험 구간을 지나 작업임도 갈림길에 이른다. 갈림길에서 건너편 어천고개 임도를 살피면, 청계계곡을 가로지르는 0.5km 작업임도가 어천고개 임도와 이어지는 곳이 보인다. 작업임도 갈림길을 지나서 운리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임도는 급하게 굽이돌아 내려간다. 운리 4.6km 지점을 알리는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나면 웅석봉의 달뜨기능선 비탈에 조림 지역이 펼쳐지고, 달뜨기능선 골짜기에서는 골물이 흘러내린다. 이곳을 지나면 산청군 단성면 운리 성불정사가 골짜기 아래 내려다보인다.
운리 임도는 성불정사 출입구에서부터 호암로701번길로 명명된다. 호암로701번길 임도 길가에는 산벚꽃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며 아름답게 산화한다. 호젓한 산벚꽃길을 따라 굽잇길을 돌아 내려가면 성불정사에서 길가에 설치한, 불경의 명언들을 적은 게시판들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이익을 분에 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수에 넘으면 어리석은 마음이 발동하니 작은 이익을 부귀로 삼으라." 훌륭한 명언들은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실천의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 가치 있는 올바른 길에서 실천하는 삶이 참다운 삶이다. 산벚꽃 꽃잎들이 산화하는 길에서 죽음의 순간을 떠올린다. 얼마나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는가? 남은 날은 실천하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호암로701번길은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며 청계저수지 풍경을 활짝 열어준다. 동북쪽에 솟은 매봉 서남쪽에 청계저수지가 펼쳐져 있는데, 서북쪽에 솟은 웅석봉 남쪽의 청계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이 청계저수지로 유입되며 이 물은 청계호수를 이루다가 남사천으로 흘러 동남쪽에 솟은 석대산 서쪽 자락으로 흘러간다. 단성면 운리와 청계리의 경계선이 청계저수지 중앙을 가르고, 청계저수지가 생겨나면서 수몰된 청계리 점촌마을은 청계저수지 서남쪽 운리 지역의 청계마을로 이주한 것 같다. 단성면 운리 청계마을에는 여러 펜션들과 캠핑장, 전원주택들이 옹기종기 도란도란 아름답게 자리한다. 호암로701번길 북쪽 아래에 펼쳐진 청계저수지와 주변 풍경은 이번 탐방의 가장 시원한 풍경으로 보인다. 주변을 산줄기가 에워싸고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으며, 그 가운데 새파란 호수가 펼쳐진 풍경은 단연 으뜸 풍경이다.
청계마을 입구에서 산벚꽃 흐드러진 호암로701번길을 따라 탑동마을로 내려간다. 운리 탑동마을 앞에는 탑동저수지와 들녘이 펼쳐지는데,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이 자리하여 탑동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담한 탑동마을에는 마을 뒤에 금계사, 마을 앞 정당매각(政堂梅閣) 위쪽에 새로 생겨난 단속사 등 두 곳의 사찰이 있다. 그런데 한국불교태고종 단속사 뜰로 들어가 보니, 단속사 현관 위에 '海東故禪宗初入 神行禪師之碑建立 千日祈禱 智異山斷俗寺' 알림막이 걸려 있다. 알림막은 우리나라 선종(禪宗) 초입기(初入期)의 신행선사비(神行禪師碑) 건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올린다는 내용이다. 단속사 주지 자흥스님의 글을 통해 단속사와 신행선사(神行禪師)에 대해 알아본다.
"신라 진흥왕(534~576) 시절 연기스님이 조연소사(槽淵小寺)를 창건하였고, 이후 조연소사를 고쳐 단속사(斷俗寺)를 창건(경덕왕 748년)했다. 단속사는 한국선종 초입지로 구산선문이 개창되고 당으로부터 선법이 최초로 전래된 곳이다. 신행선사(神行禪師, 704~779)가 혜공왕 15년 입적한 후 813년(헌덕왕 5년) 단속사 석탑과 신행선사탑비가 건립되었다. 또한 유마경(불교초기경전) 강론장으로 강당은 불·유·선 3교의 회통으로 국론통일의 대가람이 형성되었고, 솔거는 유마상을 봉안했고 고운 최치원은 독서당에서 신선을 찾아 놀았다. 이는 신라 경주의 석굴암 조성의 기반이 되었다. 고려 때는 호국사찰로서 팔만대장경판 판각과 선문염송 등 수선사(송광사)의 4국사가 단속사 주지를 겸직하였다. 조선 중에 서산대사, 사명대사, 원규대선사 등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으나 세종 이후 숭유억불 정책으로 사세는 약하되고 임진왜란(1592년, 선조25년)과 정유재란(1597년)을 거치며 천 년 사찰 단속사는 서서히 폐사되었다." - 단속사 주지 자흥.
새로 생겨난 단속사를 살피고 단속사지로 내려가니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뒤쪽에 정당매각과 정당매가 돌담장 안에 조성되어 있다. 정당매(政堂梅)는 고려 말 문신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 1357~1402)이 단속사 독서당에서 공부할 때 손수 심은 매화를 이른다. 그 후손들이 이 매화에 통정공의 종2품 ‘정당문학’ 벼슬 이름을 붙여 '정당매(政堂梅)' 이름을 붙여주고, 두 기의 비석을 세운 뒤, 정당매각(政堂梅閣) 비각을 세웠다. 640년 수령의 정당매는 2014년 고사하였고, 현재는 그 후계목이 정당매 옆에 식재되어 있다. 정당매각 비각 안에는 두 기의 정당매비와 통정공 강회백의 칠언절구 '매화원운(梅花元韻)' 등 여러 현판이 걸려 있다. "偶然還訪故山來(우연환방고산래) 우연히 옛 산을 찾아와 돌아보니/ 滿院淸香一樹梅(만원청향일수매) 한 그루 매화 향기 사원에 가득하네./ 物性也能知舊主(물성야능지구주) 나무도 옛 주인을 능히 알아보고/ 慇懃更向雪中開(은근갱향설중개) 은근히 눈 속에서 나를 향해 반기네."(梅花元韻)
그런데 남명(南冥) 조식(曹植, 1501-1572) 선생은 칠언절구 '단속사(斷俗寺) 정당매(政堂梅)'를 통하여 통정공을 이렇게 비판한다. "寺破僧羸山不古(사파승리산불고) 절은 무너져 스님 고달픈데 산마저 예같지 않고/ 前王自是未堪家(전왕자시미감가) 앞의 왕 스스로 옳게 여겨 집안 감당하지 못했네./ 化工正誤寒梅事(화공정오한매사) 하늘의 조화 때마침 겨울 매화의 일을 그릇쳤나/ 昨日開花今日花(작일개화금일화) 어제도 꽃을 피우더니 오늘에도 꽃을 피웠구나." 남명 선생은 고려가 망한 뒤 조선에서도 벼슬한 강회백의 변절을 매화에 투사하여 비판했다. "어제도 꽃 피우더니, 오늘도 꽃 피웠구나."라는 구절을 통해, 조물주조차 지조를 지키는 매화의 일을 그르쳤다며 벼슬아치들의 변절을 질타했다.
단속사지의 동·서 삼층석탑 중 西 삼층석탑은 현재 해체보수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3층석탑 형식인데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에 비해 현저히 규모가 작다. 아마도 통일신라의 왕도 경주의 변방 지역이어서 당당한 규모의 삼층석탑을 건립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삼층석탑 출입구의 남명 조식 선생 시비의 오언절구 "꽃은 조연(槽淵)의 돌에 떨어지고(花落槽淵石) /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春深古寺臺)/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別時勤記取)/ 정당매(政堂校) 푸른 열매 맺었을 때(青子政堂梅)."(贈山人惟政)를 읽었다. 남명은 정당매와 관련된 시를 두편이나 지은 것을 알았다. 남명 시비를 감상한 뒤 단속사지 당간지주로 내려가 당간지주를 살피니 역시 석탑처럼 당간지주도 규모가 작다.
호암로를 따라 운리마을로 내려간다. 운리 지역에는 북쪽에 탑동마을, 남쪽에 원정마을, 그 중앙에 운리마을이 자리한다. 동쪽에는 석대산이 솟아 있고, 그 서쪽에는 백운계곡 능선이 백운산으로 벋어내린다. 그 사이로 남사천과 호암로가 지나고 그 서쪽의 들녘에 마을이 자리한다. 운리마을 바로 위쪽에 다물민족학교 다물평생교육원이 있다. 입석초등학교 운리 분교장을 다물평생교육원이 인수하여 다물민족학교 다물평생교육원으로 개교하였는데, 다물 운동은 35년 만에 종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물민족학교도 현재 운영하지 않는 듯.
"다물민족학교 다물평생교육원은 구한말 대성학원과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잇는 자생적 민족교육기관으로 1990년에 설립되었다. 다물(多勿)은 ‘되물리다’, ‘되찾는다’,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로 고구려 동명성왕의 ‘고조선 영토와 문화를 회복한다’는 취지를 본뜬 ‘다물 정신’으로, 왜곡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건강한 민족혼의 교육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민족교육, 민주교육, 통일교육, 선진화 교육에 목표를 두고 산업지도자, 공무원, 군인, 일반 시민, 주부, 학생, 해외동포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https://triptokr.com/)" 정통 역사에서 비껴나 정치와 관련되어 있는 다물 운동은 결국 종언하였다. 이러한 것을 보면 남명 선생의 추상 같은 의식이 학문의 가장 기본 방향임을 알 수 있다. 명분과 실리, 이 둘 중에서 기본은 대의명분이며, 그 둘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대단히 어려울 것 같다.
운리마을회관을 지나 운리마을 주차장 맞은편 동쪽에 운리마을 표석과 '운곡재(雲谷齋)창건기념비'가 서 있다. 운곡재가 무엇일까? 마을 사람 46인이 합심하여 마을에 서당과 송나라 주희 선생을 기리는 운곡재(雲谷齋)를 짓고, 마을 이름을 운리(雲里)라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운리마을은 정확하게 운곡마을이라 함이 타당해 보인다. 운리마을 주차장의 지리산둘레길 7·8 구간 시종점에 상징조형물 벅수와 안내판이 서 있고, 쉼터정자 난간궁창에 지리산둘레길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길지 않은 12.6km 거리의 성심원-운리 구간이 긴 여운을 준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3.1km
전쳬 소요 시간 : 4시간 38분
운리 7.2km 지점, 운리 임도는 웅석선 남부능선 바로 아래서 남쪽으로 굽이돌아,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나간다.
운리 임도는 웅석봉 남부능선인 달뜨기능선 동쪽 아래를 따라 이어진다.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 지역의 운리임도는 히어리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히어리 꽃길이다.
종 모양을 한 히어리 연노랑 꽃들이 종 소리를 울리는 듯하다. 꽃말은 '봄의 노래'라고 한다.
운리(雲里) 6.6km 지점, 웅석봉의 달뜨기능선 동쪽의 운리 임도를 따라간다. 길가의 히어리 꽃들은 계속 이어진다.
왼쪽에 웅석봉이 솟아 있고, 오른쪽에 웅석봉 하부헬기장이 보인다. 하부헬기장에서 웅석봉 아래쪽으로 돌았다.
웅석봉의 달뜨기능선 동쪽 아래 운리 임도를 따라 서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내려왔다.
왼쪽 뒤 웅석봉 하부헬기장에서 어천고개 임도가 청계계곡 동쪽으로 이어간다.
청계계곡 동쪽 산비탈의 어천고개 임도는 지방도 제1001호선 '호암로'의 어천고개로 이어진다.
청계계곡 서쪽 웅석봉 남부능선 동쪽 산비탈의 운리 임도는 굽이돌아 이어진다.
청계계곡은 단성면 운리와 청계리를 가르는 골짜기이며, 골짜기 아래에 청계저수지가 자리한다. 지방도 제1001호선 호암로는 청계저수지 남쪽 언덕을 돌아 지나간다.
운리 6.1km 지점, 단성면 청계리에서 운리 지역으로 넘어왔다. 운리 임도는 다시 왼쪽으로 굽이돌아 이어간다.
운리 임도의 낙석 위험 지역을 지나간다. 산비탈의 히어리 나무에 연노랑 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중앙에 청계계곡을 두고 서쪽으로 꼬불꼬불 운리 임도를 따라왔다. 청계계곡 동쪽 비탈에 어천고개 임도가 보인다.
지리산둘레길은 운리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가며, 왼쪽 임도는 2020년에 신설된 도유림 작업임도라고 한다.
운리 5.3km 지점, 중앙 뒤 웅석봉의 달뜨기능선이 남쪽으로 내리벋는다. 오른쪽 임도는 0.5km 거리의 도유림 작업임도이며, 청계계곡 동쪽의 어천고개 임도로 이어지는 듯.
갈림길에서 웅석봉의 달뜨기능선 아래의 운리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雲里) 지역의 운리 임도는 더욱 꼬불꼬불하게 이어진다.
굽이도는 운리 임도에서 중앙 뒤의 진주시가지와 오른쪽 나무 뒤의 진양호를 가늠하였다.
운리 임도는 좁은 각도로 급격하게 굽이돌아 내려간다.
운리 4.6km 지점, 굽이도는 운리 임도를 따라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난다.
운리 임도를 따라 굽이돌면 달뜨기능선 골짜기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산비탈에 조림지가 조성되어 있다.
히어리 나무가 이렇게 높이 솟아 있다니? 이 나무는 히어리가 아닌가? 꽃은 히어리 꽃으로 보인다.
운리 임도의 차량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산벚꽃이 화사한 성불정사 출입구로 이어간다. 오른쪽 위 산봉 어림에서 웅석봉의 달뜨기능선은 서쪽으로 이어지고, 백운동계곡 능선이 남쪽 백운산으로 갈래치며, 앞쪽의 산줄기는 동쪽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웅석봉 5.7km 지점, 지리산 성불정사(成佛精舍) 출입구에서 뒤돌아보았다. 왼쪽은 웅석봉, 오른쪽은 성불정사 방향이다.
성불사 출입구에서부터 호암로701번길로 명명되는 운리 임도는 흐드러지게 핀 산벚꽃이 이어지는 산벚 꽃길이다.
운리 임도에서 단성면 운리에 자리한 중앙의 산벚꽃에 파묻힌 성불정사(成佛精舍)를 확인한다.
운리 임도의 호암로701번길에 공사 구간이 있으며, 길가에는 성불정사에서 설치한 불교 경전 글판이 군데군데 전시되어 있다.
새로이 포장된 운리 임도의 호암로701번길은 앞쪽의 풍경이 활짝 열리는 곳으로 나간다. 왼쪽 뒤에 석대산이 솟아 있다.
오른쪽 뒤에 석대산이 솟아 있고, 단성면 운리 지역 산비탈에 전원주택과 숙박시설들이 자리한다.
청계저수지 중앙은 단성면 운리와 청계리의 경계가 된다. 바로 아래 운리 지역에 전원주택과 여러 숙박시설, 야영장이 자리한다. 청계저수지 건너편 청계리 지역에 수리봉이 솟아 있고, 산자락에 마을이 자리하며 지방도 제1001호선 호암로가 지난다.
헬기장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길에 점촌마을을 만난다. 점촌은 쇠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던 점이 있었다 하여 점촌(店村)이라 불렸다. 청계저수지는 깊은 골에 맑은 물이 고인 산중호수다. 지리산 끝자락인 웅석봉 아래에 자리 잡은 청계계곡은 많은 이들이 찾는 휴양지다. 청계저수지가 생기면서 청계리 점촌마을이 수몰되고, 저수지 주변에 전원주택과 펜션들이 지어졌다. - 지리산둘레길
운리 임도 호암로701번길이 굽이돌아 청계저수지 서남쪽 산비탈로 이어진다.
운리 임도 호암로701번길을 따라 또 한 곳의 차량 차단기를 지나간다.
차량 차단기를 지나면 운리 2.4km 지점에 지리산둘레길 이정목과 도유림 임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지리산하늘정원 펜션의 산벚꽃이 예쁘다. 웅석봉 남동부능선과 어천고개 임도가 오른쪽 뒤에 있으며, 왼쪽 산봉이 특이하다.
중앙 뒤의 웅석봉과 그 왼쪽으로 달뜨기능선이 이어지며, 청계저수지 서쪽의 오른쪽 산봉이 기이하다.
단성면 운리 지역에서 청계저수지 건너편의 청계리 지역을 살핀다. 웅석봉 남동부능선의 어천고개 임도는 중앙 뒤 호암로의 어천고개로 이어지는 듯. 청계리(淸溪里)는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모이는 곳으로, 깊은 골의 맑은 물이 흐르므로 청계라 하였다고 한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 지역의 호암로701번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중앙에 우뚝한 산봉 왼쪽 뒤에 성불정사, 그 뒤에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맨 오른쪽에 웅석봉 남동부능선이 이어진다.
호암로701번길을 따라 지리산하늘정원 펜션을 거쳐왔다. 맨 오른쪽 뒤의 산봉에서 남쪽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백운계곡 능선과 서쪽 마근담봉으로 이어지는 달뜨기능선이 갈라지는 듯.
운리 2.2km 지점, 왼쪽 호암로701번길은 청계저수지로 이어지고, 지리산둘레길은 아래쪽 호암로701번길을 따라간다.
호암로701번길을 내려오다가 갈림길을 돌아본다. 중앙 뒤에 웅석봉이 솟아 있고, 달뜨기능선이 이어진다.
단성면 운리 지역의 호암로701번길을 따라 남쪽 탑동마을로 내려간다.
호암로701번길을 따라가며 정면에 솟은 535.9m 석대산을 가늠한다.
호암로701번길에서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과 탑동저수지를 내려본다. 왼쪽 대나무숲 뒤에 단속사지와 당간지주, 그 뒤쪽에 운리마을과 그 오른쪽 뒤에 원정마을이 자리한다.
운리(雲里)는 탑동, 본동, 원정 등 3개 동네를 말한다. 탑동마을은 단속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하여 탑동이라 한다. 단속사(斷俗寺)는 말 그대로 속세와의 인연을 끊는다는 뜻으로, 신라 경덕왕 때의 신충이라는 대신이 지리산으로 출가해 지었다는 설이 있다. 경덕왕이 두 번이나 불렀으나 신충은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단속사를 짓고 속세를 떠났다고 한다. 신라 경덕왕 때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다고 하는 단속사터에 현재 절집은 없고, 보물로 지정된 동·서 삼층석탑 2기와 당간지주가 남아,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 지리산둘레길
운리 1.2km 지점, 지리산둘레길은 앞쪽의 호암로로 나가지 않고, 오른쪽 금계사 방향의 호암로673번길을 따라간다.
갈림길의 지리산둘레길 이정목 옆에 웅석봉군립공원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웅석봉-마근담봉의 달뜨기능선이 중앙 아래에 있다.
호암로673번길을 따라 성주 이씨 묘지를 지나 금계사로 이어간다.
단성면 운리 호암로673번길을 따라 금계사 출입구를 지나간다.
운리 0.9km 지점, 금계사를 지나서 왼쪽으로 꺾어 탑동마을로 내려간다.
벽화가 장식된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농가의 골목을 지나서 왼쪽으로 꺾어 정당매(政堂梅) 방향으로 이어간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 탑동마을 앞에 탑동저수지가 조성되어 있고, 오른쪽에 백운계곡 능선이 백운산으로 벋어내린다.
단성면(丹城面) 운리(雲里) 탑동마을 농가의 텃밭에 장다리꽃이 피어 있고 상추들이 싱싱하게 자란다.
새로 세워진 단속사 입구에 '한국불교태고종 단속사금륜대'와 '금강불교대학 단속사역사문화연구소' 표지판이 서 있다. 단속사 현관 위에 '佛紀 2566~2599년 海東故禪宗初入 神行禪師之碑建立 千日祈禱 智異山斷俗寺' 알림막이 걸려 있다. 신행선사비(神行禪師碑) 건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올린다는 내용으로, 佛紀 2566~2599년은 西紀 2022년~2055년이다. 그런데 신행선사(神行禪師)는 누구일까?
선사의 속성은 김씨, 법명은 신행(神行, 704~779, 이명은 信行)이다. 경북 경주에서 아버지 상근[常勤, 왕족으로서 급간(級干 : 17등급의 관리)]의 아들로 성덕왕 3년(704)에 태어났다. 또한 선대의 고승인 안홍대사(安弘大師)가 선사의 종증조부이기도 하다. 선사는 부친의 영향으로 유학을 수학, 벼슬의 길로 가려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30살(성덕왕 32년)에 선(善)을 쌓고 마음을 닦는 곳으로 마음이 정해졌다. 그 해 선사는 운정율사(運精律師)를 은사로 불문에 들었다. - 다음카페 '무명중생'
정당매(政堂梅) 앞에 보호수 표석과 그 오른쪽에 정당매비(政堂梅碑)가 서 있다. 1982년 11월 10일 보호수로 지정된 정당매(政堂梅)는 수령 659년, 수고 3.5m, 나무들레 2.5m라고 한다.
강회백과 강회중 형제가 심은 매화나무를, 강회백의 벼슬 '정당문학(政堂文學)'을 따서 정당매(政堂梅)라 부른다고 한다.
이곳 정당매는 통정공(通亭公) 회백(淮伯) 선생과 통계공(通溪公) 회중(淮仲) 형제분께서 沙月里 五龍골에서 출생하시어 유년시절 지리산 자락 신라고찰 단속사(断俗寺)에서 修學하실 때 手植한 梅花나무다. 그후 통정선생께서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겸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하여 후대인들과 승려들로부터 정당매라 불리면서 630여 년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던 중 1982년 11월 10일부로 경남도 보호수 12-41 제260호로 지정되었다. 원정공(元正公) 하즙(河楫) 선생께서 수식한 元正梅·통정공께서 수식한 政堂梅·남명 조식(曺植) 선생께서 수식한 南冥梅는 산청의 삼매(山淸三梅)로 불린다. 2003년 (음) 10월 9일 세움.
정당매는 고사하였으며, 그 후계목을 정당매 옆에 식재하였다고 한다. "정당매가 노거수로 수세가 좋지 않아 2013년 가지의 일부를 접목으로 번식하여 2014년 완전 고사된 정당매 옆에 후계목을 식재하여 관리하고 있음. 2014.03.20. 산청군수"
고사한 정당매 중앙에 후계목을 식재하여 그 가지들이 벋어 있다.
통정공(通亭公) 강회백(姜淮伯,1357~1402)의 후손들이 헌종13년 정미년(1847년)에 매화나무 주위에 단을 쌓고 비를 세웠으며, 을묘년(乙卯, 1915년)에 다시 비를 세우고 주위를 보호하는 담장을 두른 뒤 비각(碑閣)을 짓고 정당매각(政堂梅閣)이라 하였다. 그 뒤 계사년(癸巳年, 1953년)에 보수하고, 을묘년(乙卯, 1975년)에 다시 보수하였다고 한다. 정당매각 안에 두 개의 정당매비가 있으며, 통정공(通亭公) 관련 여러 현판들이 붙어 있다.
一氣循環往復來(일기순환왕복래) 천기는 순환하여 갔다가 다시 오니/ 天心可見臘前梅(천심가견랍전매) 천심은 섣달에 핀 매화에서 가히 보겠구나./ 自將鼎鼐調羹實(자장정래조갱실) 스스로 큰 솥에서 국맛을 조화하는 열매가/ 謾向山中落又開(만향산중락우개) 부질없이 산중에서 떨어졌다 맺혔다 하네. - 통정공(通亭公)의 '斷俗寺見梅(단속사견매)'
두 개의 매비 중 이 비는 헌종13년 정미년(丁未, 1847년)에 후손 강세주(姜世周)와 택주(宅周)가 건립한 정당매비라고 한다.
두 개의 매비 중 이 비는 을묘년(乙卯, 1915년)에 문안공(文案公) 강문회(姜文會)가 세운 정당매비라고 한다.
고사한 정당매와 후계목, 정당매각이 돌담장에 둘려 있으며, 뒤에는 새로 세워진 한국불교 태고종 단속사가 자리한다.
운리 탑동마을 단속사터에는 수령 630여년의 ‘정당매(政堂梅)’라고 불리는 매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옆에 ‘정당매각’이 있다. 현존 한국 최고(最古)의 매화 중의 하나이다. 백매화를 피우는 이 나무는 고려 말 통정 강회백이 어릴 때 이 절에서 글을 읽으면서 심은 나무라 전해온다. 본래의 정당매는 고사하였고, 산천재의 ‘남명매’, 남사마을의 ‘원정매’와 더불어 산청의 3매중 하나이다. - 지리산둘레길
정당매 남쪽 단속사 터에 동삼층석탑어 서 있으며, 오른쪽 가건물 속에 현재 해체보수 공사 중인 서 삼층석탑이 있다.
단속사는『삼국유사』에 의하면 신충(信忠)이 763년 벼슬을 버리고 승려가 되어 왕을 위하여 창건하였다는 내용과 이준(李俊, 純)이 748 년에 조연소사(槽淵小寺)를 고쳐 큰 절을 만들고 단속사라 하였다는 두 가지 내용이 전한다.『삼국사기』에는 이순(李純)이 경덕왕을 위하여 763년에 단속사를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단속사가 경덕왕 대에 창건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단속사는 신행선사(神行禪師, 704~779)가 머물면서 크게 확장되며 왕을 비롯한 중앙정부와 긴밀한 관계가 된다. 또한 최치원이 머물기도 하였으며, 희강왕의 아버지로 시중을 역임하기도 한 김헌정(金憲貞)이 찬한 신행선사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 네이버블로그 푸른새벽
단속사(斷俗寺) 터의 西 삼층석탑을 해체보수하는 공사(2025년 5월 23일~2026년 11월 13일)가 진행 중이다.
쉼터정자 앞에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그 오른쪽에 동 삼층석탑이 있다.
산청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山清 斷俗寺址東·西三層石塔), 보물.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돌이나 나무로 만든 조형물로, 실제 사리가 없더라도 부처를 모신 신성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과 서 삼층석탑은 단속사지의 금당 터 앞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 불탑이다. 기단, 몸돌과 지붕돌, 머리 장식이 남아 있는데, 기단은 2단이고 몸돌과 지붕돌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2개 있고 위층 가운데에는 1개만 있으며,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쳐 두는 네모난 장식인 노반(露盤)과 연꽃 모양의 장식인 앙화(仰花)가 남아 있다. 장식이 많지 않고 간략하다는 점에서 9세기 통일신라 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남쪽에서 삼층석탑을 바라보았다. "기단은 2단이고 몸돌과 지붕돌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머리 장식은 일부만 남아 있다." 삼층석탑 뒤쪽은 금당 터, 그 뒤에 정당매가 있으며, 그 뒤쪽에 새로 세워진 단속사가 있다.
"지붕돌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쳐 두는 네모난 장식인 노반(露盤)과 연꽃 모양의 장식인 앙화(仰花)가 남아 있다." 석탑 뒤는 금당터, 그 뒤에 정당매와 정당매각, 그 뒤쪽에 새로세워진 단속사가 있으며, 그 왼쪽에 탑동마을이 자리한다.
북쪽에서 삼층석탑을 바라보았다. 뒤쪽에 쉼터정자와 느티나무, 그 뒤쪽에 단속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서쪽에서 삼층석탑을 바라보았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아래층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2개, 위층 가운데에는 1개만 있으며,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출입구에 남명(南冥) 선생의 '贈山人惟政(증산인유정)' 시비(詩碑)가 서 있다.
'유정산인에게 주다(贈山人惟政)'* : 꽃은 조연(槽淵)**의 돌에 떨어지고/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政堂校) 푸른 열매 맺었을 때. 花落槽淵石 春深古寺臺 別時勤記取 青子政堂梅. *단속사에 들린 사명당에게 준 시이다. **조연(槽淵)은 단속사 앞에 있던 작은 연못이라고 한다.
'남명 선생 시비(南冥先生詩碑)' 앞쪽에서 느티나무와 쉼터정자 단속사지 삼층석탑을 돌아보았다.
단속사지(斷俗寺址) 표지판 아래쪽에 지방도 제1001호선 호암로가 지나고 그 아래로 남산천이 흐른다.
앞에 밀양 박씨와 재령 이씨 부부의 쌍분이 있고, 그 뒤쪽에 단속사지(斷俗寺址)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설명안내판이 있다.
단속사지(斷俗寺址) 당간지주(幢竿支柱) 앞에 설명안내판, 당간지주 뒤쪽에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 그 뒤에 옥녀봉이 솟아 있다.
이곳은 신라 중대 북종선을 전래시켰던 신행선사가 만년에 불법을 선양하다가 입적했고, 고려 중기의 고승으로 우리에게 명필로 알려진 대감국사 탄연도 불법을 전하다가 입적했던 신라·고려대의 명찰 단속사(斷俗寺)의 출입구였다. - 경남신문 2025.11.19. 황부호 작가.
이 당간지주는 1996년에 온전히 복원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3.73m, 두 기둥의 간격은 50cm라고 한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36호. 사찰에서는 사찰의 영역을 알리거나 법회 의식과 같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절의 문 앞에 깃발을 걸어 알렸다. 이때 사용한 깃발을 당이라 하며 당을 묶어놓는 기둥을 당간이라 하는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산청 단속사지 당간지주는 단속사지 동·서 삼층석탑에서 남쪽으로 106m 떨어진 위치에 있는데 과거 단속사의 입구로 추정되는 곳이다. 2개 기둥 모두 윗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84년 1개를 완전히 복원하였고 1개는 일부만 복원하였다. 이후 근처에 있는 정당매각(政堂梅閣) 보호벽의 문주석으로 사용되던 당간지주 일부를 찾아 붙여 1996년에 온전히 복원하였다. 당간지주의 전체 높이는 3.73m이고 두 기둥의 간격은 50cm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넓어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기둥에 3개의 사이구멍(간공)이 있는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위·아래에는 네모 모양, 중간에는 둥근 모양의 사이구멍이 뚫려 있다. *문주석(門柱石) : 문짝을 달기 위해 문의 양쪽에 세우는 기둥을 이른다. - 안내판
2개 기둥 모두 윗부분이 떨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고 한다. 두 기둥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넓어지는 형태를 취하며, 기둥에 3개의 사이구멍(間孔)이 뚫려 있는데, 위·아래는 네모 모양, 중간은 둥근 모양으로, 통일신라 시대 양식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단속사지 당간지주를 살핀 뒤 지방도 제1001호선 호암로를 따라 운리 마을로 내려간다.
호암로 서쪽에 금륜대 승마목장이 있다. 금륜대는 한국불교태고종 단속사 소속이다.
운리 0.3km 지점, '다물평생교육수련원 선무대와 한국노마드 리더십센터 700m 표지판'과 지리산둘레길 이정목을 지난다.
호암로 서쪽에는 웅석봉의 달뜨기능선에서 갈래친 백운계곡 능선이 백운산으로 내리벋는다.
호암로를 따라 다물민족학교 다물평생교육원 앞을 지나간다. 1965년 개교하여 1993년 폐교한 입석초등학교 운리 분교를 다물평생교육원이 인수하여 다물민족학교 다물평생교육원으로 개교하였다고 한다.
다물민족학교 다물평생교육원 정문 문주(門柱)에 '海東盛國大興之門'과 '天下四方最盛地也'가 적혀 있다. 다물 운동은 35년 만에 종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물민족학교도 현재 운영하지 않는 것 같다.
운곡관광농원 표석 앞에서 남사천 건너편 동쪽에 솟은 석대산을 바라본다. 석대산 자락 중앙 왼쪽에 산음해피데이 캠핑장, 그 오른쪽 숲에 운곡관광농원 캠핑장이 자리한다.
호암로를 따라 단속사지 출입구에서 다물민족학교 정문 앞까지 걸어왔다. 중앙 뒤에 옥녀봉이 솟아 있고, 오른쪽 앞에 '社團法人 다물평생교육원 1987년(檀紀 4320년) 9.20. 표석이 서 있다. 다물 운동은 종언을 고했으니 이 단체는 사라진 것 같다.
호암로에서 오른쪽 호암로619번길로 들어가면 운리마을회관이 있다. 운리(雲里) 지역에는 운리, 원정, 탑동 마을이 있다.
호암로619번길 골목에 운리마을회관이 자리한다. 운리마을회관 명판 옆에 '생명평화 무늬'가 그려진 '생명평화 지리산둘레길 운리마을. 2013년 9월 28일 마을순례단 일동' 표지판이 붙어 있다.
운리마을회관 위쪽의 골목에 운리경로당이 자리하고, 마당에 운리 지역 각종사업에 재산을 기부한 최복순 여사 공적비가 서 있다.
호암로 오른쪽에 운리마을 버스정류소, 그 오른쪽에 운리마을 주차장이 있다. 왼쪽에 운리마을 표석과 '운곡재(雲谷齋)창건기념비'가 서 있다. 마을 사람 46인이 합심해 서당과 송나라 주희 선생을 기리는 운곡재(雲谷齋)를 짓고, 마을 이름을 운리(雲里)라 했다고 한다.
산청군 단성면 운리마을 주차장 출입구 북단에 상징 조형물 벅수와 지리산둘레길 7·8 구간 시종점 안내판이 서 있다.
운리마을 주차장 남단의 운리마을 버스정류소 앞에서 지리산둘레길 7·8 구간 시종점을 돌아보았다.
성심원 12.6km, 덕산 12.6km 지점의 지리산둘레길 운리마을 이정목 앞에서 운리마을 주차장과 쉼터정자를 살폈다.
운리마을 주차장에 쉼터정자가 조성되어 있고, 정자 난간궁창 북쪽 바깥 면에 스탬프함이 설치되어 있다.
운리마을 주차장 쉼터정자 난간궁창 바깥 면에 지리산둘레길 성심원-운리 구간 스탬프함이 달려 있다.
맨 오른쪽에 운리마을회관, 중앙의 느티나무 오른쪽의 지붕에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는 운리경로당을 확인한다.
운리주차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중앙 맨 뒤에 웅석봉 남동부능선이 보이며, 그 아래에 청계저수지가 있다.
주차장 출입구 북단의 지리산둘레길 7·8 구간 시종점에 안내판과 상징조형물 벅수가 설치되어 있고, 쉼터정자 난간궁창에 스탬프함이 달려 있으며, 남사천 건너편 동쪽에 석대산이 솟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