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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요한복음 14:6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4장의 “영과 진리로”는 단순히 “진심으로 예배하자”라는 예배 태도에 대한 권면보다 훨씬 깊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성령에 의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24절 — 왜 영과 진리인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3절에서 선언한 것을 24절에서 신학적으로 설명합니다.
논리 구조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참된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려져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영적인 존재 중 하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질을 인간이 만들어 놓은 특정한 장소나 물질적 구조물에 가둘 수 없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심산이 하나님을 독점하지 못하고, 예루살렘도 하나님을 공간적으로 제한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20절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근본적인 답입니다.
D. 여인의 메시아 기대 — 25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여인은 이제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꺼냅니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여기서 대화가 다시 한 단계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어디서 예배합니까?”였지만,
이제는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다”가 됩니다.
중요한 점
여인은 아직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명확하게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미래형으로 말합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러나 독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메시아가 지금 자기 앞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25절은 일종의 극적인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여인은 미래를 바라보지만,
독자는 그 미래의 메시아가 이미 현재 그녀와 대화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E. 절정 — 예수님의 자기 계시, 26절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짧지만 본문의 절정입니다.
여기서 “그라”는 문맥상 메시아를 가리키는 선언입니다.
여인의 말: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
“그 메시아가 바로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나다.”
이렇게 대화의 초점이 완전히 바뀝니다.
이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와 “예수님”의 연결입니다
본문을 단순하게 보면 주제가 “올바른 예배 장소는 어디인가?”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구조를 따라가면 훨씬 깊은 흐름이 나타납니다.
어디서 예배하는가?
↓
누가 참되게 예배하는가?
↓
어떻게 예배하는가?
↓
누구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가?
↓
메시아는 누구인가?
↓
“내가 그라”
따라서 이 본문의 중심은 단순히 예배 장소의 변경이 아닙니다.
예배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의되는 것입니다.
설교 구조로 발전시키면
이 본문을 설교나 성경공부에서 사용한다면 다음과 같이 잡을 수 있습니다.
제목: “어디서가 아니라 누구를 통해 예배하는가”
Ⅰ. 사람은 예배의 장소를 묻는다 — 19–20절
Ⅱ. 예수님은 예배의 본질을 가르치신다 — 21–24절
Ⅲ. 참된 예배의 중심에는 메시아가 계신다 — 25–26절
요한복음 4:19–26의 구조적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예배의 문제는 결국 ‘어디에서 예배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참되게 알고 성령과 진리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19–26절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 이동은 “장소 → 본질 → 메시아”입니다.
여인의 질문은 “어디서?”로 시작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결국 “내가 그다”로 끝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본문: 요4:19–26
서론 —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립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옵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때로는 봉사도 합니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다시 우리의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조금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한 번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과 예배자가 되는 것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앉아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예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찬송을 부른다고 해서 반드시 예배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예배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배의 순서를 모두 지켰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렸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된 예배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우리가 예배를 생각할 때 흔히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예배하는가?”입니다. 어떤 장소에서 예배하는가? 어떤 교회에서 예배하는가? 어떤 예배당에서 예배하는가? 어떤 순서로 예배하는가? 어떤 찬양을 부르는가?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예배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평범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는 뜨거운 정오에 홀로 우물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먼저 물을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삶의 문제를 아셨습니다. 여인의 과거를 아셨고, 현재의 삶도 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인을 정죄하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여인을 예배의 자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참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삶을 들여다보신 후에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그 여인을 하나님께로 이끄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아시면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의 가장 깊은 곳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예배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20절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인은 묻습니다. “어디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주장했습니다. 두 집단은 오랫동안 이 문제를 가지고 갈등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의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역사적인 갈등이 있고, 종교적인 갈등이 있고, 정체성의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맞습니까? 당신들이 맞습니까?” “그리심산입니까? 예루살렘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여인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산이 맞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장소보다 예배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어디에서”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떤 예배자가 되어야 하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장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여인은 산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를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여인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어떤 예배가 좋은 예배입니까?”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어떤 찬양이 은혜로운 찬양입니까?” “어떤 설교가 좋은 설교입니까?” 물론 이런 질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십니다. “너는 참된 예배자인가?” 예배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배의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배의 분위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예배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23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예배의 자리로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단순한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찾으시고, 우리의 삶을 찾으시고, 우리의 예배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예배의 순서를 잘 지키는 사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예배당에서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저런 예배자가 필요하다.” “우리 가족이 이런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질문해야 합니다. “주님, 나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입니까?” 오늘 이 질문 앞에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기를 바랍니다. 습관적인 예배를 내려놓고 참된 예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형식만 남은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중심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한 사람, 참된 예배자로 세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장소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질문을 오늘 우리의 언어로 바꾸면 이런 질문입니다. “어디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어떤 장소가 더 거룩합니까?” “어느 곳에서 드리는 예배가 더 좋은 예배입니까?”
당시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산을 중심으로 예배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했습니다. 서로 자신들의 장소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논쟁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21절입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수님은 그리심산을 선택하지도 않으셨고, 단순히 예루살렘만을 강조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예배의 중심이 장소에 있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예배하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 장소는 소중합니다. 예배당을 정성껏 준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당이라는 건물이 우리에게 예배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예배당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다면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의 삶이 어려워서 작은 공간에 앉아 기도할지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예배를 받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느냐보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참 쉽게 다른 곳을 향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사람을 의식합니다. “오늘 내가 어떻게 보일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봉사한 것을 알아줄까?” 때로는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또 어떤 때는 예배를 드리면서도 우리의 마음이 세상에 가 있습니다. 돈 걱정이 있습니다. 자녀 걱정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 직장의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문제는 몸은 예배의 자리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지 못하고 계속 문제를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자는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십니다.” “내 상황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합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의 시선을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환경에서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나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예배자는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오늘 이 예배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장소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 있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2.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여기서 예수님은 참된 예배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배를 쉽게 두 가지 방향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너무 형식적으로 생각합니다. 순서를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헌금을 드리고, 설교를 들으면 예배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예배를 감정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오늘 찬양할 때 눈물이 났으니까 은혜받았다.” “오늘 설교가 마음에 와닿았으니까 좋은 예배였다.” 물론 감정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감정만으로 참된 예배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과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몸만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도 가져와야 합니다. 생각도 가져와야 합니다. 감정도 가져와야 합니다. 삶도 가져와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제 마음을 받아 주십시오.” “제 생각을 받아 주십시오.” “제 상처도 받아 주십시오.” “제 염려도 받아 주십시오.” “제 삶 전체를 받아 주십시오.” 이것이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영으로 예배한다고 해서 감정적으로 뜨거워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눈물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반드시 더 좋은 예배자는 아닙니다. 큰 소리로 찬양하는 사람이 반드시 더 좋은 예배자는 아닙니다. 조용히 앉아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사람도 참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입니다.
둘째,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내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주셔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잘되게 해 주셔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힘들 때만 도와주시면 된다.” 이렇게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그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필요합니다. 말씀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도 말씀 앞에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됩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4장에서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자”는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참된 예배의 중심에는 반드시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찬양의 중심도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말씀의 중심도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기도의 중심도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중심도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3.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삶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23절의 말씀 가운데 특별히 우리의 마음에 새겨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하나님이 예배를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배자를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예배자를 찾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가 필요하시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받아야 존재하실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의 삶의 중심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가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예배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 돈을 위해 살아갑니다. 성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 성공을 위해 살아갑니다. 사람의 인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면 우리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예배는 단순히 한 시간의 종교행위가 아닙니다. 예배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주일 한 시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주일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주일에 시작해서 예배당을 나가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우리의 삶 전체로 이어져야 합니다. 가정에서 어떻게 말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배우자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내가 가진 시간과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상처를 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것도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제대로 드려졌다면 삶에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예배를 드렸는데도 여전히 미워하고, 예배를 드렸는데도 여전히 거짓말하고, 예배를 드렸는데도 여전히 교만하고, 예배를 드렸는데도 여전히 자기 욕심만 붙들고 있다면, 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한 번의 예배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이 즉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와 싸우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참된 예배자는 조금씩 변화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게 됩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용서하게 됩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낮아지게 됩니다. 순종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참되게 만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장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당에서 찬송하는 것만 예배가 아닙니다.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정직하게 감당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도 예배입니다. 내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도 예배입니다.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삶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린 예배가 우리의 가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배당에서 들은 말씀이 우리의 직장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하며 흘린 눈물이 우리의 관계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찬양으로 고백한 믿음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삶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4.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이제 본문의 마지막으로 가겠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여인은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여인은 아직 메시아를 미래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알지 못했던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자기 앞에 서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2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이 말씀은 짧지만 본문의 절정입니다. 여인은 “어디에서 예배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결국 여인을 예수님 자신에게로 인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된 예배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배의 문제는 결국 예수님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리의 예배가 완벽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자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은 삶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여인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이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만 찾아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실패한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사람들에게 외면받은 사람을 찾아가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찾아왔다.”
그러므로 참된 예배자는 자신의 완벽함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에 우리의 대답은 “내가 잘했기 때문에”가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아갑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가?” “예수님 때문에 사랑받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예수님 때문에 받아들여집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참된 예배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예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내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중심이 됩니다. 이전에는 내 뜻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중요해집니다. 이전에는 내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자의 변화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 여인의 삶은 달라집니다. 그녀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는 사람으로 남지 않습니다.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배의 자리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삶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주님을 증거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열매입니다.
참된 예배는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할 뿐 아니라, 다시 세상 속으로 보내어 하나님을 나타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도 아닙니다. 죄가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난 기쁨과 감격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오늘 우리도 그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기억합시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디에서 예배하느냐로 결정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예배당에서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예배를 하나의 종교적 의식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 예배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나는 맞는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습관적인 예배가 아니라 마음을 다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정만 있는 예배가 아니라 말씀과 진리 위에 세워진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만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자리에서 계속되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들은 영향력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참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예배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삶 전체로 하나님을 높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예배와 삶의 중심에 모시는 사람.
그런 예배자를 하나님께서 찾으십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찾던 예배자가 바로 여기 있구나.”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시고, 우리의 삶 전체를 예배로 받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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