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 런웨이》
제26회 ― 사라진 스케치
월요일 아침.
의상디자인과 실습실.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한 미송은 커다란 작업대 앞으로 걸어갔다.
창밖으로 희미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재봉틀들은 조용했고, 마네킹 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옷들이 걸려 있었다.
미송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작업대 아래 서랍을 열었다.
그 순간.
미송의 손이 멈췄다.
"어?"
다시 서랍을 열었다.
첫 번째 서랍.
없었다.
두 번째 서랍.
없었다.
미송의 표정이 굳었다.
세 번째 서랍까지 열었다.
역시 없었다.
미송은 급히 작업대 위의 원단들을 들어 올렸다.
패턴지 아래도 확인했다.
재봉틀 옆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없어……."
바로 그때.
실습실 문이 열렸다.
강인이 들어왔다.
어깨에는 낡은 천가방을 메고 있었다.
"일찍 왔네."
미송이 급히 돌아봤다.
"강인아."
강인은 미송의 얼굴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스케치가 없어."
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스케치?"
미송이 그를 바라봤다.
"바람과 나무."
잠시 침묵.
강인은 급히 작업대로 다가왔다.
"어디에 뒀는데?"
"여기."
미송은 서랍을 가리켰다.
"금요일에 분명히 이 서랍 안에 넣었어."
강인이 서랍을 확인했다.
비어 있었다.
"다른 데 둔 거 아니야?"
"아니야."
미송의 목소리가 떨렸다.
"분명히 여기였어."
강인은 아무 말 없이 작업대 주변을 살폈다.
바닥.
서랍.
패턴지 사이.
원단 더미 아래.
하지만 스케치는 없었다.
그 스케치는 단순한 그림 한 장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며칠 동안 함께 고치고 또 고친 최종 디자인.
여성복의 흐르는 선.
남성복의 단단한 구조.
원단의 방향.
봉제 방법.
그리고 강인이 직접 계산한 패턴 수정까지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미송이 말했다.
"어떡하지?"
강인은 미송을 바라봤다.
"찾으면 돼."
"없으면?"
"다시 그리면 돼."
미송이 강인을 바라봤다.
강인은 담담했다.
"기억하고 있어."
"전부?"
"대부분."
미송은 조금 안심했다.
그때 실습실 문이 벌컥 열렸다.
"좋은 아침!"
도윤이었다.
그 뒤로 소희도 들어왔다.
도윤은 두 사람의 심각한 얼굴을 보고 멈췄다.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주변을 살폈다.
"둘이 싸웠어?"
소희가 그의 뒤통수를 툭 쳤다.
"아침부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왜 때려요?"
소희는 미송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어?"
미송이 말했다.
"스케치가 없어졌어."
소희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스케치?"
"바람과 나무 최종 스케치."
도윤의 눈이 커졌다.
"뭐?"
그는 갑자기 작업대 밑으로 몸을 숙였다.
강인이 물었다.
"뭐 해?"
"찾잖아."
"거긴 봤어."
도윤은 다시 일어났다.
"그럼 천장."
소희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스케치가 왜 천장에 있어?"
도윤이 진지하게 말했다.
"범인의 심리를 읽어야죠."
"범인?"
"네."
도윤은 팔짱을 끼고 실습실을 천천히 걸었다.
"이것은 단순한 분실 사건이 아닙니다."
소희가 물었다.
"그럼?"
도윤이 목소리를 낮췄다.
"사건입니다."
소희가 한숨을 쉬었다.
"둘이 뭐가 다른데?"
"분위기가 다릅니다."
강인이 말했다.
"도윤아."
"왜."
"조용히 해."
"응."
도윤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소희는 빈 서랍을 자세히 살폈다.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구야?"
미송이 말했다.
"나."
"언제?"
"금요일 저녁."
"그때 누가 남아 있었어?"
미송은 잠시 생각했다.
"강인."
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소희가 말했다.
"그리고?"
미송은 기억을 더듬었다.
"혜린이도 있었고."
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현우 선배와 세나 선배도 잠깐 들어왔어."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도윤이 말했다.
"용의자가 많군."
소희가 노려봤다.
"용의자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마."
"왜?"
"증거도 없잖아."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그때 실습실 문이 열렸다.
최현우와 오세나가 들어왔다.
세나는 작업대 주변에 모여 있는 네 사람을 보고 물었다.
"아침부터 뭐 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현우가 강인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어?"
강인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말했다.
"스케치가 없어졌습니다."
현우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스케치?"
"바람과 나무 최종 스케치입니다."
세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서?"
도윤이 입을 열려 했다.
소희가 급히 그의 팔을 잡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세나가 소희를 바라봤다.
"왜 나를 보고 말해?"
소희가 대답했다.
"너를 보고 말한 적 없어."
"지금 보고 있잖아."
"네가 내 앞에 있으니까."
세나의 표정이 굳었다.
"혹시 우리를 의심하는 거야?"
미송이 급히 말했다.
"아니야."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래?"
현우가 세나를 막았다.
"그만해."
세나가 현우를 바라봤다.
"왜?"
현우는 강인에게 물었다.
"언제 없어졌어?"
"모르겠습니다. 금요일 저녁까지는 있었습니다."
현우는 잠시 생각했다.
"금요일 밤에 실습실 문은 누가 잠갔지?"
모두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 도윤이 손을 들었다.
"접니다."
소희의 눈이 커졌다.
"네가?"
"네."
"확실해?"
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아마도."
"아마도?"
"잠갔던 것 같은데……."
소희가 이마를 짚었다.
"박도윤."
"왜요?"
"기억 좀 해 봐."
도윤은 눈을 감았다.
금요일 저녁.
학생들이 하나둘 실습실을 나갔다.
도윤은 마지막으로 창문을 닫았다.
전등을 껐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도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잠갔어."
소희가 물었다.
"확실해?"
"응."
"열쇠는?"
"교무실에 반납했어."
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금요일 저녁 이전에 가져갔거나, 열쇠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실습실에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그때 장혜린이 들어왔다.
"다들 왜 모여 있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혜린은 강인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어?"
강인이 말했다.
"스케치가 없어졌습니다."
혜린의 얼굴이 굳었다.
"바람과 나무?"
"네."
잠시 침묵.
세나가 혜린을 바라봤다.
"너 금요일 저녁에 여기 있었지?"
혜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냥 물어본 거야."
"왜 나한테만 물어?"
세나가 팔짱을 꼈다.
"네가 마지막까지 있었다니까."
혜린의 얼굴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내가 훔쳤다는 거야?"
미송이 말했다.
"아무도 그런 말 안 했어."
혜린은 미송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혜린아."
"내가 강인을 좋아하니까."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혜린은 웃었다.
하지만 눈빛은 웃지 않았다.
"강인이랑 미송이 작품을 망치려고 스케치를 훔쳤다?"
강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혜린이 강인을 바라봤다.
강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혜린 선배가 그럴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송도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혜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미송은 혜린을 똑바로 바라봤다.
"네가 강인을 좋아하는 건 싫어."
도윤이 작게 중얼거렸다.
"솔직하시네."
소희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미송은 계속 말했다.
"하지만 네가 남의 작품을 훔칠 사람이라고는 생각 안 해."
혜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고마워."
그 순간.
짝!
실습실에 손뼉 소리가 울렸다.
모두가 돌아봤다.
김태석 교수였다.
그 옆에는 이영숙 교수가 서 있었다.
김태석은 학생들을 둘러봤다.
"수업 시작 전에 무슨 소란이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강인이 앞으로 나섰다.
"교수님."
"말해."
"저희 최종 스케치가 없어졌습니다."
김태석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강인이 잠시 당황했다.
"찾고 있습니다."
"못 찾으면?"
"다시 그리겠습니다."
김태석이 강인을 바라봤다.
"좋아."
학생들이 놀랐다.
김태석은 말했다.
"디자이너가 스케치 한 장 없어졌다고 주저앉으면 그건 디자이너가 아니야."
그는 미송을 바라봤다.
"하미송."
"네."
"자네 머릿속에도 스케치가 있나?"
미송이 대답했다.
"네."
"그럼 다시 그려."
"네."
김태석은 학생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증거 없이 서로 의심하지 마."
세나가 시선을 피했다.
혜린도 입을 다물었다.
김태석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경쟁은 상대의 작품을 망치는 게 아니다."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자기 작품으로 상대를 이기는 거다."
실습실이 조용해졌다.
"그걸 모르는 학생은 내 수업에 있을 자격이 없어."
김태석은 돌아섰다.
그때 이영숙 교수가 미송에게 다가왔다.
"미송아."
"네, 교수님."
"기억은 종이보다 오래 남을 때도 있어."
미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그려 보겠습니다."
이영숙은 미소 지었다.
"그래."
두 교수가 나갔다.
강인은 새 종이를 작업대 위에 펼쳤다.
미송이 그 옆에 섰다.
"할 수 있을까?"
강인이 대답했다.
"응."
"정말?"
"처음보다 더 잘 그리면 돼."
미송은 웃었다.
"자신 있어?"
강인은 연필을 들었다.
"네가 기억하는 거."
그리고 미송에게 연필 한 자루를 건넸다.
"내가 기억하는 거."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합치면 됩니다."
미송이 웃었다.
"그래."
두 사람은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한 줄.
또 한 줄.
바람의 선.
나무의 선.
소희는 옆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다 문득 바닥에 떨어진 작은 것을 발견했다.
"잠깐."
모두가 소희를 바라봤다.
소희는 몸을 숙였다.
작업대 다리 아래.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끼어 있었다.
소희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거……."
강인이 다가왔다.
미송도 가까이 왔다.
종이 조각에는 희미한 연필선이 그어져 있었다.
강인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 스케치 종이입니다."
도윤의 눈이 커졌다.
"찢어진 거야?"
소희는 종이 조각을 뒤집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주 작은 얼룩.
짙은 붉은색.
도윤이 말했다.
"피?"
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손끝으로 살짝 문질렀다.
"립스틱 같아."
순간.
모두가 조용해졌다.
도윤이 천천히 실습실 안을 둘러봤다.
미송.
소희.
세나.
혜린.
그리고 다른 여학생들.
"붉은 립스틱……."
소희가 도윤을 노려봤다.
"쓸데없는 추리 하지 마."
하지만 도윤의 표정은 이번만큼은 진지했다.
"아니."
그는 종이 조각을 바라봤다.
"이거 누군가 일부러 찢은 거라면?"
강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미송의 얼굴도 굳었다.
그 순간.
실습실 밖 복도에서 누군가 급히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또각.
강인이 문을 열었다.
하지만 복도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창문으로 늦가을 바람만 들어왔다.
작업대 위.
소희의 손에는 찢어진 스케치 조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붉은 립스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제26회 끝 ―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