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끝에 담넘어 감나무가 있는 빈집은
지은지 200년은 되어 보인다
여차저차하여
보은에서도 더 들어가는 시골에 살게된 친구 시열이,
남편이 서울로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돌아오던날
우리는 수다떨며 하루를 묵은 안채에서 옆에 붙은 황토방으로
짐을 옮겼다.
친절빼면 쓰러지는 친구남편이
"불좀 때 드릴까요~?"
아니예요 저희들은 신경쓰지 마세요.
우린 친구남편에게 송구스러워 극구 사양을 하고
편안히 누워 못다한 수다를 이어갔다.
장작 타는 냄새가 솔솔 방틈으로 새 들어 오는걸 보니
남편이 불을 때나보다.
"그만 때요 더워서 안돼~!"
불을 때는 남편을 향해 큰소리 던지던 친구.
우린 전날밤을 거의 뜬눈으로 새웠다.
집주인 시열이를 남편에게 돌려 보내고
등이 따듯하니 약속이나 한듯 우린 잠에 빠져 들었다.
밤은 깊어지고 엎치락 뒤치락 온몸은 땀으로 젖고 ...
이 방은 왜 식지도 않니 ...
구둘이 좋은건가~?
이밤도 우린 뜨거운 방바닥을 원망하며 잠을 설쳤다.
시열이가 자다가 일어나
혹시나 먼데서 온 친구들이 추울까 싶어
장작 두어덩이 더 넣고 들어갈려고 나와보니
아궁이에 장작이 활활 타더란다.
그새벽 두번째 불을 지펴놓고 들어가 잠든 남편.
그리하야 우린 두 날 모두
잠을 못자고도 행복하고 흐믓한 날이었다.
이른아침 친구 남편은 무공해 쑥이라며 자루가득 베어왔다.
아침을 먹고 다듬어 놓으니 얼마나 많던지 ...
황토방 가마솥에 물을 붓고
지난 가을 마당가에 덮어놓은 참깻대를 가져다 불을때
두솥가득 쑥을 삶고 머위대를 삶고 ...
덕분에 황토방 방바닥은 어제밤부터 절절 끓는다.
밖에 기온도 높고 등을대고 누우니 찜질방이다.
몇해전의 내 친구 시열이는 원단(옷 만들때 쓰는 안감)짜는 공장을
2개나 운영하던 통큰 여사장
동대문 시장이 활동 무대였던 뚱보친구 시열이~
공장 두개에 만족 못하고 제3공장을 만들어 운영 하려다 무너졌다.
그후 부도가 나 숨어살던 아픈 세월이 있었다.
2년전 어렵사리 시골에 조그만 집하나 마련하고
보은 시내에 가계하나 얻어
양장점겸 수선집을 운영하며 사는 친구 시열이.
얼마전 갑상선암 수술받고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항암 치료중이다.
이렇게 세날이 가고
또 만나자~ 손흔들며 아쉬운 작별이 이어지고 ~
그때를 그리며 책상앞에 앉아 글을 쓴다.
보은댁이 된 시열아 ~
그리고 일산아짐 옥형아 분당아짐 복남아 ~
우리 넓은 가슴으로 하늘 바라보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아~ 하고
시방 안양아짐 인호가 외쳤는데
애들아~ 들리냐~?
우린 6 25때 피란길에 다니던 국민학교 친구들.
이제껏 함께뭉쳐 고락을 같이하는 죽마고우.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고 글을쓰니
웃는 얼굴들이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