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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서북단에 위치한 시.
동쪽은 양주시, 서쪽은 남부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와, 북부는 임진강을 경계로 개풍군과 접하고 있다. 그리고 남쪽은 고양시, 북쪽은 연천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41′∼127°01′, 북위 37°42′∼38°07′에 위치한다. 면적은 672.47㎢이고, 인구는 31만 1164명(2008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5개 읍, 9개 면, 2개 동, 294개 리가 있다. 시청은 경기도 파주시 아동동에 있다.
마식령산맥의 말단부에 속하고 북서쪽에는 임진강이 서남류하고 있어 동고서저의 지형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에는 감악산(紺嶽山, 675m)·노고산(老姑山, 401m)·금병산(錦秉山, 293m)·팔일봉(464m)·앵무봉(622m)이 양주시와, 남쪽에는 황룡산(135m)·명봉산(248m) 등이 고양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중앙에는 파평산(坡平山, 496m)·봉서산(鳳棲山, 216m)·월롱산(月籠山, 229m)·박달산(368m) 등이 남쪽으로 가면서 낮게 펼쳐져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북서쪽과 서쪽 경계를 흐르는 임진강과 서남쪽을 흐르는 한강이 있다. 임진강 지류로 서남류하는 남월천과 북서류하는 문산천, 서류하는 곡릉천 등이 있는데, 이들 하천이 지나는 시의 서쪽에는 해안 평야가 넓게 전개되어 곡창지대를 이룬다.
임진강 하류지역은 만조 때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탄현면과 장단면의 하안가에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고 있다. 해수의 피해가 자주 일어나고 홍수시에는 만조시기와 겹치면 문산읍까지 해일피해를 입히기도 하였으나 인공방조제의 건설로 피해가 많이 감소되었다.
지질은 시생대에 속하는 운모편마암·편마암 그리고 석회암이 분포하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10.5℃, 1월 평균기온 -4℃, 8월 평균기온 25℃이며, 연강수량은 1,300㎜ 내외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역에 속하여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과 술이홀현(述爾忽縣)이 설치되어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파해평사현은 파평현(坡平縣)으로 개칭되어 내소군(來蘇郡)의 영현으로 되고, 술이홀현은 봉성현(峰城縣)으로 개칭되어 교하군(交河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계속해서 파평현과 봉성현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1018년(현종 9)에 파평현은 장단현(長湍縣)의 속현이 되었고 봉성현은 양주(楊州)의 속현이 되었다. 그 뒤 1062년(문종 16)에 파평현이 개성부(開城府)에 내속(來屬)되었으며, 1106년(예종 1)과 1172년(명종 2)에 각각 파평현과 봉성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그리고 1387년(우왕 13)에는 봉성현이 서원현(瑞原縣)으로 개칭되면서 감무 대신 현령이 파견되었다.
조선 초인 1393년(태조 2) 서원현이 이민(吏民)들의 청원에 의해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398년에는 파평현과 서원군이 합해져 원평군(原平郡)으로 개편되었다. 1414년(태종 14)에 교하현이 내속해옴으로써 1,000호(戶) 이상이 되어 다음해에 원평도호부(原平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418년에는 교하현이 다시 독립함에 따라서 1,000호 미만이 되어 마땅히 군으로 강등되어야 할 것이나 이민들이 호소하여 그대로 도호부로 남게 되었다. 1460년(세조 6)에는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의 고향이라 하여 파주목(坡州牧)으로 승격되었으며, 1504년(연산군 10)에 이곳이 유행지소(遊幸之所)로 되어 파주목이 폐지되고 이웃 고을에 분속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다시 파주목으로 복구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13년(광해군 5) 이의신(李懿信)에 의해 교하천도론(交河遷都論 : 지세가 노쇠해진 한양에서 파주의 교하로 서울을 옮기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논의에 그치고 말았다.
1895년(고종 32) 부군제 실시에 따라 파주군으로 고쳐져 한성부 관할이 되었으며, 다음해 13도가 설치되면서 경기도 관할로 바뀌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교하군 전역과 양주군·고양군·적성군(積城郡) 일부가 각각 파주군에 폐합되어 주내·천현·월롱·광탄·조리·임진·파평·와석·청석·탄현·아동 등 11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으며 1934년에는 청석면(靑石面)과 와석면(瓦石面)이 합쳐져 교하면으로 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국토가 남북으로 분단되자, 종래 연천군 관할이었던 적성면과 남면이 이 군에 편입되었으며, 다음해남면은 다시 양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63년에는 전 장단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 임진면에 편입됨에 따라 이웃 연천군과의 행정구역 조정이 대폭 이루어졌고, 1972년에는 전 장단군의 장단면·진서면·진동면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아동면(衙洞面)이 금촌읍으로, 임진면이 문산읍으로 각각 승격되었으며, 1979년군내면 백련리 통일촌(統一村)에 군내출장소(郡內出張所)가 설치되었다. 1980년주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3년에는 파주읍으로 개칭되었고, 같은 해양주군 백석면 기산리·영장리가 광탄면에, 파평면 이천리가 문산읍에 편입되었으며, 광탄면 영장출장소(靈場出張所)가 설치되었다.
1987년광탄면 기산리 일부가 양주군 백석면으로 편입되었다. 1989년교하면 상지석리의 일부가 조리면에 편입되었고, 천현면이 법원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0년장단면 정동리가 설치되었다. 비옥한 평야와 관광 명소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인 지역으로서 1996년 3월 1일금촌읍 전체가 동으로 되고 군 자체가 시로 승격되었다. 2002년 4월 1일교하면과 조리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적성면 가월리에 가월리·주월리구석기유적(사적 제389호), 월롱면 덕은리의 파주덕은리 주거지 및 지석묘군(사적 제148호), 적성면의 파주 가월리 및 주월리 석기유적(사적 제389호), 다율동·당하동의 파주 다율리·당하리 지석묘군(경기도 기념물 제129호) 등이 있다.
관방유적으로는 탄현면 성동리에 파주오두산성(坡州烏頭山城, 사적 제351호), 적성면 구읍리에 칠중성(사적 제437호), 월롱면 덕은리에 월롱산성지(경기도 기념물 제196호)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광탄면에 파주용미리석불입상(보물 제93호), 영장리에는 파주보광사숭정칠년명동종(坡州普光寺崇禎七年銘銅鐘,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8호), 보광사(普光寺)에 보광사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3호), 월롱면 덕은리에 용상사(龍床寺), 진동면 동파리에 파주마애사면석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6호) 등이 있다. 이외 광탄면 용미리에는 파주용미리혜음원지(사적 제464호)가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법원읍 동문리에 자운서원(紫雲書院, 경기도 기념물 제45호)·자운서원묘정비(紫雲書院廟庭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7호), 파평면 눌로리에 파산서원(坡山書院,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호), 금릉동에 교하향교(交河鄕校,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호), 파주읍 파주리에 파주향교·파주향교대성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3호), 적성면 구읍리에 적성향교, 월롱면 덕은리에 용주서원(龍洲書院) 등이 있다.
능과 묘로는 탄현면 갈현리에 조선 인조와 인조 비 인열왕후(仁烈王后) 한씨의 능인 장릉(長陵, 사적 제203호), 조리읍 봉일천리에 조선 예종 비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성종 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영조의 장자 효장세자(孝章世子 : 眞宗)와 그의 비 효순왕후(孝純王后)의 능인 공릉·순릉·영릉(恭陵·順陵·永陵, 사적 제205호), 광탄면 영장리에 소령원(昭寧園, 사적 제358호)·수길원(綬吉園, 사적 제359호)이 있다.
이 밖에 광탄면 분수리에 윤관장군묘(尹灌將軍墓, 사적 제323호), 탄현면 금승리에 황희선생묘(黃喜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34호), 법흥리에 정연묘(鄭淵墓, 경기도 기념물 제139호), 문산읍 사목리에 황희선생영당지(黃喜先生影堂址, 경기도 기념물 제29호), 파평면 율곡리에 이세화선생묘(李世華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60호)가 있다.
또한 조리읍 장곡리에 이회선생신도비(李懷先生神道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파주읍 향양리에 성혼선생묘(成渾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59호), 연풍리에 윤곤선생묘(尹坤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106호), 법원읍 동문리에 신사임당묘(申師任堂墓, 경기도 기념물 제14호)·이이선생묘(경기도 기념물 제15호), 진동면 하포리에 허준선생묘(許浚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128호)이 있다.
그리고 적석면 무건리에 김덕성(金德誠) 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제144호), 광탄면 분수리에 심지원(沈之源) 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 제137호), 탄현면 오금리에 공효공박중손묘역내장명등(보물 제1323호) 등이 있다. 이외 월롱면 덕은리에 춘곡정탁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73호), 당하동에 (경기도 기념물 제182호), 진동면 서곡리에 유항한수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87호), 진동면 하포리에 사재김정국묘역(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2호) 등이 있다.
고건물로는 문산읍 사목리의 반구정(伴鷗亭,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 파평면 율곡리의 화석정(花石亭,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 등 황희, 이이가 만년에 자연을 벗삼아 학문을 논했던 정자가 있다.
근대문화유적으로는 6·25사변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임진각(臨津閣)·통일공원(統一公園)·판문점(板門店)과 자유의 다리(경기도 기념물 제162호) 등이 있다. 자유의 다리는 임진강의 남과 북, 분단된 국토의 남북을 잇는 가교로서 길이는 약 83m이다. 이외에 장단면 동장리에 구장단면사무소(등록문화재 제76호)·구장단역지(등록문화재 제77호)·경의선증기기관차화통(등록문화재 제78호), 장단면 도라산리에 경의선죽음의다리(등록문화재 제79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산남동·송촌동 일대의 한강하류재두루미도래지(천연기념물 제250호)와 적성면 무건리의 파주적성면의 물푸레나무(천연기념물 제286호), 다율동에 교하물푸레나무(경기도 기념물 제183호)가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탄현면 법흥리에 궁시장(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와 탄현면 금산리에 금산리민요보존회(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3호)가 있다.
옛 교육기관으로는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가 파주·교하·적성 등 세 곳에 있는데, 이는 파주군이 조선시대에는 파주목·교하현·적성현의 셋으로 독립되어 각기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향교는 국가에 소속된 학교로서 지방에 있는 양반자제들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조선 중기 이후 용주서원(龍州書院)·파산서원(波山書院)·자운서원 등이 설립되면서부터 관학인 향교에만 의존하던 것을 탈피하여 서원에 들어가 공부하게 됨으로써 근대교육 이전에 있어서의 교육기능은 향교와 서원이 거의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현재의 교하초등학교가 1907년 사립 선성학교(宣城學校)로 가장 일찍 개교하였고, 1909년 파주보통학교와 적성보통학교가, 1914년 문산보통학교가 각각 개교하였다. 2008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1개 교, 중학교 19개 교, 고등학교 12개 교와 웅지세무대학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군립도서관이 있어 교육·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며, 문화원에서는 매년 10월 중에 율곡문화제(栗谷文化祭)를 개최하고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 사찰 51개, 천주교 성당 8개, 개신교 교회 187개가 있다.
이 지역의 중요한 민속놀이로는 원평민속농악놀이(原平은 파주의 옛 이름)를 들 수 있다. 농악놀이는 우리나라에 예로부터 전래되어오는 독특한 고유의 민속놀이로서, 옛날에는 어느 지방에서나 성행했으나 이 고장에서는 한동안 소멸되었던 것을 10여 년 전부터 일으켜 경기농악의 원형을 재연하게 된 것이다.
농악놀이는 음력정월과 팔월 한가위·사월 초파일·오월 단오·백중날 등 우리의 전통적인 명절이나 뜻있는 날에 노는 것으로 평소에는 농사에 종사하면서 두레패를 꾸며 공동작업으로 능률을 올리고 또한 대동단결을 목적으로 하여 계절적으로 놀기도 한다. 가을의 수확이 끝나면 동네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걸립농악(乞粒農樂)을 꾸며 골고루 갖추어 동네를 돌기도 한다.
이때에는 우선 기를 앞세우고 풍물잡이·영좌 등 20∼30명으로 편성되며 12채가락을 치며 동민들과 함께 어울려 흥겹게 노는 것이 보통이다. 놀이가 끝나면 집집마다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고사반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는 멋진 덕담으로 축원을 해준다.
동제로서 유래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패동 심학산(尋鶴山) 산신제는 이 산이 영험한 곳이라 하여 3년마다 못자리가 끝나는 음력 3월에 날짜를 택해 밤 12시에 행해진다.
산 상봉에 있는 넓적한 바위를 제단으로 하여 이곳을 복바위라고 하며, 쇠머리를 바치고 제물을 올려 축문을 읽는 등 모든 절차를 거쳐서 엄숙히 진행된다. 제를 지내기 전에 동네 어른 중에서 제관을 뽑아 목욕재계하고 부정한 일이 없게 근신함은 물론, 관례에 따라 모든 것이 엄격히 규제된 가운데 진행된다.
이 산신제는 5개 리가 합동으로 지내는데 산신제가 끝나면 마을사람들은 동네별로 음식을 장만하여 먹으며 각각 포장을 치고 함께 어울려 논다. 이 때 무당들이 3일간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평안, 소원성취를 빌며 굿을 하는데 굿이 끝나는 대로 하산하게 되어 있다.
이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소개비냥의 전설」은 자신의 힘을 믿고 행패를 부리다가는 더욱 힘이 센 장사를 만나서 곤욕을 치르게 된다는 교훈이 담긴 이야기이다. 탄현면 대동리의 소개비냥은 과거에 절벽으로 되어 있었고, 아래는 수심이 깊었으며, 비냥 위로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정도의 소로가 나 있었다고 한다.
옛날 이 고을의 장사 김승경은 주먹으로 내려치면 바위가 갈라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근 마을을 드나들면서 행패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김승경이 하루는 소개비냥에서 말을 타고 가다가, 역시 말을 타고 오는 젊은 초립동이를 만나게 되었다.
서로 길을 비키라는 시비 끝에 김승경이 화를 내며 젊은 초립동이를 발로 걷어차니, 초립동이는 말과 함께 벼랑 밑 강물로 떨어졌다. 그러나 사람과 말이 수면에 닿는 순간, 이 초립동이는 말을 안고 그 높은 벼랑을 단숨에 뛰어올라 왔다.
초립동이는 놀라서 도망치는 김승경을 잡아, 몹쓸 짓을 많이 한 김승경의 한쪽 팔과 다리를 부숴 더 이상 행패를 못하게 하였다. 이에 크게 깨달은 김승경이 성격이 불량하고 행패가 심한 세 아들을 엄히 훈계하여 착한 사람이 되게 하였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설화는 적성면 두지리 앞강에 마치 말이 머리를 물에 대고 있는 듯한 형상의 용머리[龍頭山]에 얽힌 전설이다. 옛날 이 용머리 근처에 살았던 구두쇠노인에게 시주를 하러 왔다 거절당한 중이, 용의 목에 해당되는 부분을 가리켜 명당이니 묘를 쓰면 큰 부자가 되리라고 하였다. 이 말을 믿은 구두쇠노인이 그곳에 묘를 쓰자, 혈을 끊게 되어 핏물이 솟아오르고 노인은 망하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이 밖에 적성면 장좌리의 「장자못전설」, 파평윤씨의 시조 윤신달이 강을 건널 때 강물이 말라서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는 「여음탄전설(如飮灘傳說)」, 윤관이 죽자 그의 여진족 첩인 웅(熊)이 몸을 던져 순사하였다는 「곰소전설[熊潭傳說]」, 3,000명의 도둑이 웅거하여 그 이름이 되었다는 월롱산 뒤편에 있는 삼천도둑골의 지명유래담 등이 이 고장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고장에 구비전승되는 민요는 노동요와 타령요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경기도지방의 일반적 특징이다. 노동요 중에는 「모내기소리」가 대다수인데 이는 이 고장이 평야지대로 논농사가 주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을 들면 「허나허나」(모내기소리)인데 이는 선창중답식의 노래로 후렴이 ‘허나허나’로 되어 있다. 이것은 ‘하나하나’의 와음으로 모를 하나하나 심어간다는 뜻이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천하만민들 농민들 들어보소/ 허나허나 한알기로구나(후렴)/ 한톨종자 땅에 묻어 공력들여 길러서(후렴생략)/ 허나소리 나기를 연달아 들어보소(후렴생략)/ 여기저기 꽂아도 마늘모로만 심어라…….”와 같다.
가락이 단조롭고 느리나 일의 속도에 따라 변화된다. 선창자가 가사를 부르면 다른 여러 사람들은 후렴을 합창하면서 모를 낸다. 가사는 모를 가지런하게 잘 심어서 풍년을 맞자는 내용이 일반적이고 더러는 쉬 늙어가는 인생의 허무를 노래하기도 한다.
「범벅타령」은 4음2보의 운율이 정연한 가창민요로 가락은 단조롭고 느리며 가사는 샛서방을 둔 아내의 불륜장면을 목격하여 샛서방을 쫓아내는 극적인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설화적 민요이다. 민요와 소설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는 노래이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 이도령이 나려와서 여보여보 문을 여오/ 계집년의 거동보소 문열랜 소리에 깜짝 놀래 김도령 주체를 어찌할까/ 삼대사대 내려오던 뒤지 속에다 집어넣고/ 금거북 자물쇠로 어슥비슥 채워놓고/ 문열러 나가면서 계집년이 하는 말이/ 외방 장사 나간다드니 아닌 밤중에 웬일이오/ 이도령 하는 말이/ 고개고개 넘어가서 돌팔일 만났거늘/ 일년신수를 보니까는 삼대사대 내려오는 뒤지로 해서/ 안된다기에 뒤지를 캐러 들어왔소/…….”와 같다.
문답형식과 해학성이 뛰어난 희곡적인 내용은 지난날 우리 조상들의 오락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전 토지의 41.3%가 임야이고 경지는 19.3%이며 하천 7%, 도로 2.6%, 공장용지는 0.9%이다. 임진강과 한강 하류의 유역평야에 입지한 파주시는 기름진 곡창지대의 하나인데 경지 중 논은 8,848㏊, 밭은 4,558㏊이다. 이들 농경지에 연풍·오산·곡릉저수지 등이 관개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감자·콩 이외에 채소류로 배추·무·파·마늘·호박·오이·참외·수박 등이 생산되고, 특용작물로는 인삼·참깨·들깨, 과실류로 사과·배 등이 생산된다. 농가 인구는 전체 인구의 8.7%인 2만 7132명인데 농업인구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제조업 인구는 전체인구의 10.6%인 3만 3056명이다. 수도권 개발유보지역에 속해 있고 군사분계선에 가까이 접해 있어 2·3차 산업의 발달이 부진했으나 통일로와 자유로의 개통으로 서울과의 접근이 쉬워지면서 소규모의 공장이 계속 집중하고 있다.
주요 광산물은 규석과 석회석이 생산되고 제조업은 조립금속공업·섬유공업·식료품공업·비금속공업·종이인쇄공업 등이 발달하고 있다. 최근 LG필립스LCD단지가 조성되면서 최첨단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수많은 제조업체들이 들어서고 있다.
상업시설로 정기시장·상설시장 등이 있다. 금촌장이 1·6일, 문산장이 4·9일, 법원장이 3·8일, 봉일천장이 2·7일, 신산장과 적성장이 5·10일에 열린다. 이곳에서는 나물류와 채소류, 그리고 토산품·생활필수품이 거래되고 있다. 상설시장으로는 금촌시장·문산시장·선유시장·파주시장·연풍시장·자유시장·봉일천시장·광탄시장이 있다.
도로는 국도 1호선이 남북으로 지나고 있는데 이 도로는 1972년 4차선으로 직선화되어 통일로로 명명되었다. 이 도로의 개설로 서울∼파주간의 지역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리고 문산읍에서 국도 37호선이 동북진하고 있다. 1993년 4차선 도로가 한강과 임진강변을 따라 서울에서 임진각까지 개통되었는데 이 도로는 자유로라고 불린다. 이 도로의 개통으로 일산∼문산읍의 발전이 촉진되고 있다.
이 지역에는 광주산맥의 영향을 받아 저산성 산지들이 기복을 이루면서 동쪽으로 치우쳐 있고 임진강이 한강으로 흘러들면서 주변에 많은 관광요소의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월롱면 덕은리에서 발견된 고인돌 무리는 이곳에 서기전 7∼8세기경부터 사람들이 살아왔음을 밝혀주고 있는데, 동양에서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교하리와 다율리를 비롯한 곳곳에는 청동기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남과 북을 잇는 서부 교통의 중심지이었으므로 역과 원이 많은데 대표적인 곳으로는 광탄원이다. 특히, 파주는 서울∼개성거리가 거의 같은 지점에 위치하여 나그네가 많이 머무르던 곳이며 안성장 다음가는 파주장은 쇠전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파주 사람들은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보다 사람과 문물이 거쳐 지나가는 길목으로써의 구실이 더 컸던 지역이다. 또한, 파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임진강 주변은 자연경관이 빼어나 관광지가 발달되어 있다. 하상은 물살이 빠르고 강변에는 층층이 톱날 모양으로 깎인 바위가 늘어서 있어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외의 주요 관광명소로는 용미리의 부처돌입상, 덕은리의 옛주거지와 고인돌군, 갈현리의 장릉, 조리면의 공·순·영릉, 교하동 한강 하류의 재두루미도래지, 파주읍 봉서리의 통일공원, 탄현면 오두산의 통일전망대 등이 있다.
또한 법원읍 동문리의 자운서원, 광탄면 부수리의 윤관장군묘와 영장리의 보광사, 문산 마정리 임진각 전면에 있는 반공전시관, 사목리의 반구정, 파평면 율곡리의 화석정, 파주향교 등이 있어 서울 시민의 안보의식을 높여줄 수 있는 좋은 관광코스이다.
1. 문산읍(汶山邑)
시의 중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47.34㎢, 인구 3만 2417명(2008년 현재). 읍 소재지는 문산리이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칠정면이라 하여 당동·창내·이천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마정면(馬井面)·칠정면(七井面)·신속면(新屬面)·운천면(雲泉面)·오리면(烏里面)의 각 일부 리가 병합되면서 임진강의 이름을 따서 8개 리로 개편되었다.
1963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장단군 군내면의 7개 리가 편입, 1972년에 백련·조산·읍내 등 7개 리가 군내면으로 이관되었다. 1973년에 월롱면 내포리 일원이 편입되었고, 임진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문산읍으로 개칭되었다.
1979년에 군내면에 군내출장소가 개설되어 이 구역에 관한 행정권을 이관하였다. 1983년에 파평면 이천리가 편입되었다.
동북 방향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낮은 평야지대에 가깝다. 임진강 물줄기가 동북쪽에서 남서 방향에 이르기까지 면 경계를 이루며, 그 지류인 운천천이 중앙을 가로지르며 흐른다. 이러한 자연조건을 갖춘 까닭에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이 크게 발달할 수 있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임진강 연안에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메기·뱀장어·잉어 등이 잡힌다. 축산업으로 한우·돼지·닭·오리 등이 사육된다. 건설업, 운수·창고 및 통신업, 금융·보험업 관련 업체가 분포한다.
자유로의 종착지점이자 1번 국도인 통일로와 각종 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요충지이자 남북교류의 길목에 해당하며, 서울과 생활권을 같이 하는 전원도시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문산역을 통과하는 경의선 철도, 북서쪽에서 중앙 남단을 지나는 37번 국도, 이 외에도 315번 지방도가 읍 서부를 연결하고 6·23번 등의 시도가 사방으로 연결되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사목리에 반구정과 황희선생영당지, 마정리에 자유의 다리가 있다. 특히, 사목리에 국민관광지 임진각은 북한관·망배단·철도중단점과 미국군참전비·임진강지구 전적비 등 다양한 한국전쟁 관련 시설물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5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문산(汶山)·선유(仙遊)·이천(梨川)·당동(堂洞)·사목(沙목)·마정(馬井)·운천(雲泉)·장산(長山)·임진(臨津)·내포(內浦) 등 10개 리가 있다.
2. 법원읍(法院邑)
시의 중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71.05㎢, 인구 1만 4659명(2008년 현재). 읍 소재지는 법원리이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천현의 이름을 따서 천현면이라 하였는데, 1895년(고종 32)에 천현내패면(泉峴內牌面)·천현외패면(泉峴外牌面) 으로 나누었다. 천연내패면은 웅담·직천 등 5개 리를 관할하였고, 천현외패면은 동막1원기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두 개 면 전체, 파평면 지천리(智川里) 일부가 병합되어 10개 리로 재편되었고 다시 천현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89년에 천현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법원읍으로 개칭되었다.
북서쪽에 파평산(坡平山, 496m), 남동쪽 경계에 노고산(老姑山, 401m), 남쪽 면계에 금병산(錦屛山, 293m), 중앙 남부에 자웅산(雌雄山, 250m) 등이 읍 전체를 감싸고 있다. 서쪽에서 중앙쪽으로 관류하는 동문천과 읍 하단의 삼방천과 연풍지 주변에 가늘고 긴 하곡(河谷)평야가 발달해 있으나, 농업기반시설은 미흡한 반면 산지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밀·조 등과 참외·수박 등의 과일 및 채소재배가 이루어진다. 공업으로는 섬유와 식품가공 관련업체가 있다. 축산업 분야가 활발한 편으로 한우·젖소·돼지·닭·산양·사슴 등이 사육되며, 특히 한우·젖소·산양·사슴의 사육량은 시에서 제일 많다.
교통은 읍소재지인 법원리를 중심으로 307·316·350번 지방도가 사방으로 뻗어있고, 남부의 13번 시도 등 지방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동문리에 자운서원·자운서원묘정비와 신사임당묘·이이묘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1개 교와 특수학교 1개 교가 있다.
법원(法院)·갈곡(葛谷)·오현(梧峴)·직천(直川)·웅담(熊潭)·금곡(金谷)·동문(東文)·가야(加野)·대릉(大陵)·삼방(三防) 등 10개 리가 있다.
3. 파주읍(坡州邑)
시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32.12㎢, 인구 1만 4224명(2008년 현재). 읍 소재지는 파주리이다.
조선 후기까지 오랫동안 파주목에 속했던 곳으로, 1895년 부군제의 실시 이래 파주군의 몇 개 면으로 분할되어 있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주내면(州內面)·백석면(白石面) 대부분, 자곡면(紫谷面) 도내동(都內洞) 일부, 칠정면 향양리가 합쳐져 7개 리로 편성되었고 주내면이라 하였다. 1980년에 주내면이 주내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3년에 파주읍으로 개칭되었다. 1996년 3월 시로 승격될 때 편입되었다.
중앙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봉서산(鳳棲山, 216m)이 읍 전체를 굽어보고 있는 형세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은 평지이다. 북부에 향양천, 남쪽 경계에 문산천이 관류한다. 전체면적 중 경지면적이 넓은 편은 못 되고,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우세한 지역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이외에 무·배추 등의 채소류, 복숭아·사과 등의 과실류가 생산된다. 축산업으로 젖소·돼지·닭·사슴·오리 등의 사육이 활발한 편이다.
오랫동안 서비스업이 활발했던 곳인데, 그 이유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군사기지였던 관계로 연풍리 일대에 기지촌이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은 경의선 철도가 서부를 종단하면서 파주역을 지나고, 이와 평행선을 그으면서 1번 국도가 남에서 북으로 이어진다. 307번 지방도가 서부를 관통하고, 7·9·31번 시도가 읍의 사방에서 뻗어나와 중심부에서 모아진다.
문화유적은 향양리에 성혼(成渾)선생묘, 연풍리에 조선 세종대의 문신인 윤곤(尹坤)선생묘, 파주리에 파주향교, 백석리에 김석몽처(金石夢妻)열녀문, 봉서리에 충신열녀문 등의 향토유적이 있다.
통일로변에 위치한 봉서리의 통일공원에는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념비, 육탄십용사 충혼탑 등 한국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념물이 많아,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파주(坡州)·연풍(延豊)·부곡(釜谷)·백석(白石)·봉암(烽巖)·봉서(鳳棲)·향양(向陽)등 7개 리가 있다.
4. 교하동 및 운정1·2·3동[구 교하읍(交河邑)]
본래 시의 남서단에 위치한 읍이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교하동, 운정1·2·3동으로 바뀌었다. 면적은 57.90㎢, 인구는 7만 5517명(2008년 현재)이다.
본래 교하군 지역으로 고인돌이 있으므로 지석면이라 하여 읍내·상지석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와동면의 당하·와동 등 5개 리와 현내면의 일부, 아동면의 일부, 청암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와동과 지석의 이름을 따서 와석면이라 하여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34년와석면과 청석면이 병합된 후, 교하군의 이름을 따서 교하면이 되었다. 1989년에 상지석리의 일부가 조리면으로 이관되었다. 2002년 4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부 중앙에 장명산(長命山, 102m)을 비롯하여 남동부에 황룡산(黃龍山, 135m), 남서부에 심학산(尋鶴山, 194m)이 있다.
서쪽 면계를 따라 황해로 흘러드는 한강의 물줄기가 접하고, 북쪽에 곡릉천이 구불구불 흘러가 면계를 형성한다. 그 지류들인 청룡두천(靑龍頭川)·장진천(長津川)·소치천(巢雉川) 등이 면 곳곳을 관류하여 시 전체에서 제일 넓은 평야지대를 조성해 놓았다.
벼농사가 중심이 되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주요 농산물은 쌀 이외에 보리·옥수수·호밀·감자·인삼 및 배추·오이 등 채소의 산출량이 많다. 특히, 장명산(長命山)에서는 약용식물인 구절초(九節草)가 많이 난다. 이와 함께 인접한 일산 신도시를 겨냥한 각종 작목재배 및 농산물 유통확대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축산업 또한 많은 종류가 사육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한우·젖소·돼지·닭·사슴·토끼·오리 등이며, 닭·토끼의 사육량이 특히 많다.
대표적인 공업단지로 문발동 자유로변의 넓은 대지 위에 대규모 첨단산업이 진출해 있고, 파주LCD단지와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수도권 경제개발의 한축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교하지구의 대규모 택지개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파주시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지역이 되었다.
교통은 경의선 철도가 동부를 남북으로 달리는 가운데 운정역을 경유한다. 특히, 행주대교 북단과 일산 신도시를 거쳐 임진각까지 이어지는 자유로(自由路)가 서쪽 한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뚫려 있어, 서울과 30분대의 생활권을 형성하였다. 310번 지방도가 면 중앙을 종단하고, 이 밖에 1번 시도 등 각종 도로망이 교차하는 등 서울과 경기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요충지이다.
문화유적은 산남동·송촌동 등 4개 리에 걸쳐 한강하류재두루미도래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율동에 지석묘, 당하동에 지석묘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1개 교, 중학교 3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교하(交河)·상지석(上支石)·하지석(下支石)·연다산(煙多山)·당하(堂下)·와동(瓦洞)·목동(木洞)·야당(野塘)·동패(東牌)·서패(西牌)·문발(文發)·산남(山南)·신촌(新村)·송촌(松村)·오도(吾道)·다율(多栗) 등 16개 법정동이 있다.
5. 조리읍(條里邑)
시의 남부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27.43㎢, 인구 3만 2334명(2008년 현재). 읍 소재지는 봉일천리이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조리동면이라 하다가 조리면이 되어 죽원·장산·노조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교하군 아동면 등원리·아동리와 지석면(支石面)의 일부, 고양군 사리대면(沙里大面) 일부가 병합되어 6개 리로 되었다. 1989년에 교하면 상지석리의 일부가 편입되어 능안리가 신설되었다. 2002년 4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동쪽 경계에 솟아 있는 명봉산(鳴鳳山, 248m)을 제외하고는 높은 봉우리를 찾기 힘들다. 곡릉천(曲陵川)이 면 하단을 흐르고, 동쪽에 고산천(古山川)이 관류하여 주변 일대에 평야지대를 형성하였다.
밭농사보다 논농사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곳으로 주곡 이외에 원예농업이 성하다. 축산업으로 일부 농가에서 한우·젖소·돼지·닭 등을 사육한다. 식품가공업 및 전자공업 관련 업체가 다수 소재한다.
교통은 1번 국도가 중앙에서 서쪽을 통과하고 307번 지방도가 남서쪽에서 북동쪽 지역을 연결한다. 그 밖에 9번 시도가 북부를, 2번 시도가 서부를 잇는다. 서울 도심부와 통근권에 있는 지리적 잇점 때문에 대단위 고층아파트 건립 등 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유적은 봉일천리에 공릉·순릉·영릉, 장곡리에 이회신도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 중학교 3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봉일천(奉日川)·죽원(竹院)·뇌조(弩造)·오산(梧山)·장곡(獐谷)·등원(登院)·능안(陵案) 등 7개 리가 있다.
6. 광탄면(廣灘面)
시의 남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65.44㎢, 인구 1만 4814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산리이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광탄의 이름을 따서 광탄면이라 하여 분수원·호미·구룡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주군(楊州郡) 백석면(白石面) 마장리 일부, 조리면 화산리(花山里)가 병합되어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83년에 양주군 백석면의 기산리·영장리가 편입되었으며, 동시에 영장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7년에 기산리의 일부가 다시 양주군 백석면으로 이관되었다.
북쪽 경계에 금병산, 동쪽 끝에 앵무봉(鸚鵡峰, 622m), 남서쪽 경계에 명봉산(鳴鳳山, 248m), 중앙에 박달산(朴達山, 369m) 등 산지가 넓게 분포해 있다. 이러한 산지에 광범위한 묘역이 집중되어 있다. 하천으로 비암천(比巖川)·분수천(汾水川)·문산천·보광천 등이 면의 곳곳을 관류하며, 주변 일대에 약간의 평야지대가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하여 고추·마늘 등의 작물이 많이 재배된다. 축산업으로는 젖소·돼지·닭·산양·사슴·오리 등이 사육되며, 이 가운데 돼지·오리 등의 사육량이 압도적이다. 분수리에 금·은·아연을 채굴하는 광산이 있다. 제조업으로 식품·지류(紙類) 등의 가공업체가 있다.
교통은 307번 지방도가 면 서부를 종단하고 4·11·13·15·33번 시도 등이 산지 사이 사이에 그물망을 조성하여 인접한 양주군과 고양시를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용미리에 석불입상, 분수리에 윤관묘, 영장리에 소령원·수길원·보광사대웅보전·파주보광사숭정칠년명동종 등이 있다. 이 밖에 청룡사(靑龍寺)·용암사(龍巖寺) 등의 사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산(新山)·용미(龍尾)·분수(汾水)·창만(倉滿)·마장(馬場)·발랑(發郞)·방축(防築)·영장(靈場)·기산(基山) 등 9개 리가 있다.
7. 군내면(郡內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 인구 649명(2008년 현재). 백연리 통일촌에 군내 출장소가 있다.
면사무소는 없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오랫동안 장단군에 속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현내면(津縣內面)·진동면(津東面)·중서면(中西面)·진북면(津北面)의 각 일부와 개성군 동면(東面) 백동음리(白冬音里) 일부가 합쳐져 7개 리로 개편되면서 군의 중심지역에 위치한다 하여 군내면이라 하였다. 1963년에 전 지역이 파주군 임진면의 관할구역으로 편입되었다가, 1972년에 장단군의 장단·진서·진동면이 파주군에 편입될 때 함께 이관되었다.
이 지역에 민간이 거주하게 된 것은 제대장병들이 1972년 4월에 영농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979년백연리에 군내출장소가 설치되어 주민들이 거주하는 조산리·백연리의 대성동(臺城洞)·통일촌(統一村) 2개 마을을 포함하여 4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경제활동으로 임진강 북안의 낮고 평평한 평야지대에 기계화영농을 통한 논농사가 이루어진다. 축산업으로 사육량이 많지는 않지만 한우·젖소·돼지·닭 등이 사육된다. 지역 특산물로 통일촌의 천마주와 인삼주가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최북단 접적지역으로 많은 제약이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환경은 양호한 편이다.
도로사정은 1번 국도가 면 중앙을 지나 판문점을 향해 종단하고, 이 밖에 25번 시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장단향교, 정자리에 덕진산성(德津山城), 조산리에 대성동토성 흔적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백연(白蓮)·조산(造山)·정자(亭子)·읍내(邑內)·송산(松山)·점원(點元)·방목(芳木) 등 7개 리가 있다.
8. 월롱면(月籠面)
시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84㎢, 인구 1만 284명(2008년 현재). 면소재지는 위전리이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월롱산 및 골짜기가 되므로 자실면 또는 자곡면이라 하여 용은·덕옥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리면(烏里面)과 백석면(白石面) 현암리·오라리 일부, 광탄면(廣灘面) 두만리 일부, 교하군 아동면(衙洞面) 아동리 일부가 병합되면서 월롱산의 이름을 따서 월롱면이 되었다. 1973년내포리가 문산읍으로 이관되었다.
동쪽 경계에 월롱산(月籠山, 229m) 자락이 면내로 뻗어 있고, 남동부 지역에도 일부 산지가 분포한다. 문산천이 북쪽에서 동쪽에 걸쳐 면 경계를 이루며, 남부에 금촌천과 삽교천이 흘러든다. 논농사가 밭농사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전형적인 평야지대이다.
과일류 재배가 활발하며, 특산물로 왕골이 있으나 과거의 명성에 불과하다. 축산업으로 돼지·닭·사슴 등의 가축이 사육되나 활발한 편은 아니다. 제조업으로 화학·제과·식품가공업 관련 업체가 다수 소재한다.
교통은 경의선 철도가 면의 중앙을 종단하고 1번 국도가 이와 병행하여 남북으로 달리고 있다. 이 밖에 3번 시도가 면의 서부를, 9번 시도가 동부를 연결하는 등 사방으로 도로망이 뻗어 있다. 문화유적은 덕은리에 용주서원과 백휴암선생유허비·주거지 및 지석묘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위전(葦田)·덕은(德隱)·영태(英太)·도내(都內)·능산(陵山) 등 5개 리가 있다.
9. 장단면(長湍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 주민 미거주지역이다.
본래 장단군에 속해 있었으나 1972년에 장단군의 군내면·진서면·진동면이 파주군에 편입될 때 함께 이관되었다.
북동쪽에서 동쪽과 남쪽을 따라 흐르는 임진강이 면 경계를 이루며, 서쪽은 북한과 경계를 이루며 휴전선이 길게 이어진다. 남방군사한계선이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고 있고, 서부의 대부분 지역이 비무장지대에 속한다.
한국전쟁 전까지는 미곡과 두류의 주요 산지였으나 전쟁으로 황폐화되었다.
노상(盧上)·노하(盧下)·거곡(巨谷)·석곶(石串)·강정(江井) 등 5개 리가 있다.
10. 적성면(積城面)
시의 북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88.95㎢, 인구 8,058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지리이다.
본래 적성현 지역으로 적성읍내가 되므로 현내면이라 하여 읍내·관동·가원 등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면·서면의 대부분, 마전군(麻田郡) 군내면 삼화리와 장단군 고남면(古南面) 장좌리, 양주군 영근면(嶺斤面) 하원리와 파주군 파평면 천천리 일부가 병합되어 19개 리로 개편되면서 연천군(漣川郡) 적성면이되었다. 1945년 다시 파주군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늘목리·삼화리가 연천군으로 편입되었고, 1973년장파리가 파평면에 편입되었다.
산지로 동쪽에 연천군·양주시와의 경계 지점에 감악산(紺嶽山, 675m)이 있고, 북부 중앙에 중성산(重城山, 148m), 북서부에 국사봉(國事峰, 150m)이 있다.
임진강이 북쪽 경계를 길게 통과하고, 그 지류들인 간파천(干坡川)·장현천(墻峴川)·가월천(佳月川)·설마천(雪馬川)·답곡천(沓谷川) 등이 북쪽에서 중앙 전체를 관류하면서 하천 연안에 취락이 분포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구읍리가 중심지였으나 전쟁으로 황폐화되어 남서쪽인 마지리가 중심지로 되었다.
지형이 중산간지역으로 수도작에 의존했으나, 전작(田作)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군납을 목적으로 무·배추 등의 채소는 물론 특용작물 등 작목반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출하되는 농산물은 직거래와 계통출하로 농가의 주소득원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6년근 인삼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군사요충지인 이 지역은 파주시 최북단에 위치하여 수많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까닭에 군인가족이 상권을 형성하는 등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축산업으로 한우·젖소·돼지·닭·산양·토끼·칠면조 등의 사육이 활발하며, 특히 칠면조의 사육은 시 전체의 압도적인 지위를 점한다.
교통은 37번 국도가 동쪽에서 중앙을 거쳐 북서쪽으로 횡단하며, 349번 지방도가 북쪽에서 중앙을 관통하여 남쪽으로 종단한다. 이 밖에 10·29번 시도가 북부의 교통을 연결해 준다. 문화유적은 가월리와 주월리에 구석기유적, 무건리에 물푸레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구읍리에 적성향교·칠중성(七重城), 적암리에 아미성(阿未城), 주월리에 육계토성(六溪土城)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마지(馬智)·구읍(舊邑)·객현(客峴)·가월(佳月)·주월(舟月)·두지(斗只)·설마(雪馬)·무건(武建)·식현(食峴)·장현(墻峴)·적암(赤巖)·율포(栗浦)·어유지(魚遊池)·자장(紫長)·답곡(沓谷)·장좌(長佐) 등 16개 리가 있다.
11. 진동면(津東面)
시의 북부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43.35㎢, 인구 144명(2008년 현재).
본래 장단군에 속해 있었으나 1972년에 장단군의 장단면·진서면·군내면이 파주군에 편입될 때 함께 이관되었다.
임진강이 동쪽과 남쪽 경계를 거쳐 U자 형태를 그리며 흐른다. 북서쪽에 휴전선이 살짝 걸쳐 있고 남방군사한계선이 북부 중앙을 동서방향으로 관통하는 최북단 지역이다.
문화유적은 동파리에 파주마애사면석불, 하포리에 허준묘가 있다. 이 외에 서곡리에서 발굴된 벽화고분은 고려시대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동파(東坡)·용산(龍山)·하포(下浦)·서곡(瑞谷)·초(哨) 등 5개 리가 있다.
12. 진서면(津西面)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9㎢, 주민 미거주지역이다.
본래 장단군에 속해 있었으나 1972년에 장단군의 장단·진동·군내면이 파주군에 편입될 때 함께 이관되었다.
동쪽에 대덕산(大德山, 237m), 남동쪽에 백학산(白鶴山, 229m) 등 주로 동부에 산지가 집중되어 있다. 휴전선이 남부를 지나며, 북방군사한계선이 중앙부를 가로지르며, 남방군사한계선이 남동쪽 경계선을 통과한다.
한국전쟁 전까지는 쌀을 중심으로 콩 등의 산출이 적지 않았다. 휴전선에 걸쳐있는 판문점은 유엔측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으로 남과 북의 연락사무소가 각각 설치되어 있다.
이곳 판문점은 그동안 각종 남북대화의 장소로 이용되었고, 지금도 휴전선 155마일에서 유일하게 열려 있는 공간으로 남북을 오가는 사람들의 통로이다. 금릉(金陵)·마장(馬場)·어룡(魚龍) 등 3개 리가 있다.
13. 탄현면(炭縣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0.18㎢, 인구 1만 3682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축현리이다.
본래 교하군 지역으로 탄포의 이름을 따서 탄포면이라 하여 낙하·금승·문지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내면(縣內面)·신오리면(新五里面) 대부분, 교하군 청암면(靑巖面) 송촌리 일부, 파주군 오리면 능동리 일부, 자곡면(紫谷面) 덕옥리 일부가 병합되면서, 탄포와 현내의 이름을 따서 탄현면이 되었다. 1939년에 면 소재지가 오금리에서 축현리로 이전하였다.
높지는 않지만 동쪽 끝의 기간봉(旗竿峰, 246m)과 월롱산 자락이 길게 뻗어 있다. 서쪽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합류지점으로, 남부의 곡릉천과 대위지천(大韋只川)이 흐르면서 갈현평야라는 드넓은 곡창지대를 만들었다.
인구의 대부분이 벼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미곡 생산량이 많고, 그 밖에 감자를 비롯한 채소류가 산출된다. 축산업으로 한우·젖소·돼지·닭·산양·사슴의 사육량이 많은 편이다.
법흥리·낙하리·금승리 일대에 대규모 공장인 시그네틱스가 완공되고 미디어밸리 등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지역경제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교통은 자유로가 서쪽 한강과 임진강 경계를 따라 시원하게 달리고, 310·315번 지방도가 각각 중앙과 서부를 종단한다. 3·5번 시도가 서부를 연결하고 19번 시도가 남서쪽의 교통편의를 돕는다.
문화유적은 갈현리에 장릉, 성동리에 오두산성(烏頭山城), 금승리에 황희묘, 이밖에도 성동리의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실향민과 관광객이 찾는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축현(축縣)·금승(金蠅)·낙하(洛下)·문지(文智)·오금(吾今)·금산(錦山)·만우(萬隅)·대동(大洞)·성동(城洞)·법흥(法興)·갈현(葛峴) 등 11개 리가 있다.
14. 파평면(坡平面)
시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83㎢, 인구 5,251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파리이다.
본래 파주군 지역으로 옛 파평현이 있었으므로 파평면이라 하여 풍덕·천천·눌로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칠정면(七井面) 이천리 일부, 신속면(新屬面) 일부, 적성군 서면(西面) 식현리·도장리 일부가 병합되어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에 적성면 장파리가 편입되었고, 1979년에 율곡리에서 금파리로 면소재지가 바뀌었다. 1983년에 이천리가 문산읍으로 이관되었다.
동쪽에 파평산(坡平山, 496m)과 광평산(鑛平山, 262m) 자락이 면내로 향한다. 임진강이 서쪽 경계를 따라 굽이쳐 흐르고, 북부에 답곡천·눌로천과 북서에서 중앙으로 관류하는 두포천(斗浦川) 유역에 평야가 분포한다. 논과 밭의 경지면적이 좁은 편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채소류와 복숭아·밤 등의 과수재배가 이루어진다. 축산업으로는 젖소·돼지·닭·산양 등의 사육이 많은 편이다. 제조업을 비롯한 공업발달은 미진하다.
교통은 37번 국도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다. 323번 지방도가 북부를, 8번 시도가 남부를 연결한다. 문화유적은 율곡리에 화석정과 이세화묘, 눌로리에 파산서원·미타사(彌陀寺) 등이 있다.
이 밖에 두포리에 몽구정지(夢鷗亭址)가 있다. 특히, 덕천리 일대의 임진강폭포어장은 가족단위의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금파(金坡)·율곡(栗谷)·두포(斗浦)·마산(麻山)·눌로(訥老)·덕천(德泉)·장파(長坡) 등 7개 리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주시(경기도) [坡州市(京畿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