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대로 제93회 총회가 제주 컨벤션센터에서 9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회는 장로교회 4개 교단이 제주도 내에서 총회를 가지며, 24일(수) 저녁에는 다함께 제주선교100주년기념예배로 봉헌하니 뜻 깊은 총회라 아니할 수 없다.
실로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은 총회적 규모를 형성하기 전에 벌써 당시로서는 해외와 다를 바 없는 제주도 선교를 감행하였다. 방금(1907) 신학수업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이기풍 목사를 파송하다니 피선교국 처지에서 곧장 선교국으로 발돋움 한 셈이다. 유아기교회가 이처럼 신속히 선교의 대열에 나섰던 것은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요, 신실한 종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므로 금번의 제주총회는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세계선교에 대한 안건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총회나 한국교회의 대의에도 부합하는 일이다. 불과 5000만 명 미만의 인구를 커버하는 한국교회가 그보다 몇 배 많은 인구의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선교국으로 부상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우리 총회가 제일 많은 선교사를 세계 곳곳에 파송하였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광영인가. 그래서 선교한국의 선두 교단답게 이번 총회는 세계선교에 대한 획기적인 결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의 온 역량을 세계선교에 기울이는 소위 총체선교를 염두에 두고 그에 걸맞는 방략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꼭 금년 총회에서 이에 대한 시종을 다하지 않는다 해도 좋다. 제93회 총회를 기점으로 삼아 수년간 빈틈없이 기획·실시한다면 한국교회사는 물론 세계선교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렇게 세계선교의 견인교단이 되는 것은 한국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일일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참다운 번영을 계속 구가케 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자고로 세계선교에 앞장 선 나라치고 뒤 처진 예가 없다. 물론 세계선교를 논할 대 북한선교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의 북한은 100년 전의 제주보다 결코 나을 게 없는 복음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총회가 비단 현안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 총회의 장래를 좌우할 비전이 논의되고 결의되는 총회로 우뚝 서야 한다. 쟁점들을 놓고 갈등과 다툼을 거듭하다가 감정이 격해지고 분위기가 어수선해져 미봉책의 나열로 종료하는 총회가 수다하였다. 이런 소극적이고 역기능적인 총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총회장 및 임원, 그리고 지도급 총대들의 각별한 유의와 정성이 필요하다. 특히 총회장의 인도 여하가 주요한 열쇠다.
총회장은 총회의 방향이 신앙고백과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공정한 사회를 보아야 한다. 총회장이 민감한 사안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안건에 선입견이나 구체적 소견을 가지고 관철을 시도하면 곤란하다. 총회장 대 전 총대는 1대1이라는 인식을 갖거나, 총회가 꼭 법대로 하나 하는 편견을 가지고 총회장의 총회로 만드는 것은 단연 금물이다. 총회장(moderator)은 영어 마더러트(moderate)의 명사형이다.
마더러트는 ‘(사람·행동 따위가) 극단에 흐르지 않는, 온건한’, ‘(양·정도 따위가) 적당한, 절제(혹은 절도) 있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그래서 총회장을 체어맨(chairman)이라고 하지 않고, 더욱이 프레지던트(president)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역대 많은 총회장들은 마더러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마치 사전 각본을 가슴에 품고 사회봉을 두드리는 것 같을 때가 적지 않았다. 기도생활을 강조하는 새총회장의 사회봉에서 진정한 마더러트의 경지를 보고 싶다.
총회에 다루기 좋고 기쁜 사안만 올라오지 않는다. 갈등과 다툼의 안건도 있고, 혁신과 시벌의 안건도 있다. 그런데 항상 문제는 후자의 경우에서 발생한다. 하회에서 올라온 갈등과 분쟁 혹은 시벌에 대한 안건은 기계적 책벌이나 치우친 결론으로 내달아선 안 되고, 난해한 사건일수록 노련하고 덕망 있는 중견 이상의 인사들로 간품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회의 권위가 실추되고 불순종으로 일이 더욱 꼬일 우려가 있다. 특히 수년 끌어온 고질병 같은 분쟁안들은 신뢰받는 원로급 총대들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주총회는 여러 모로 주목받는 총회일 것이 분명하다. 어느 교단이 원숙한 총회를 하는지 서로 비교될 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각 총회의 의제의 비중에서 먼저 우열이 가려질 것이고, 다음으로 그 의제를 토의하고 결론짓는 과정에서 상하가 판명될 것이다. 따라서 총대들은 그 어느 총회 때보다 각별히 조심하고 신경 써 발언하고 경청하며, 설득하고 타협하여 지고지선의 결론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준비해야 한다.
우리 모두 명심하자.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은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를 한국기독교의 중심으로 보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 총회에 변고가 생길 대 으레 국난이 발발하곤 했다. 6·25한국전쟁, 4·19학생혁명, 10·26과 12·12 및 5·18광주민주화항쟁을 보라. 특히 1979년의 국난은 통합측 총회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합동측 총회의 분열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것이 우리를 숙연케 하는 바요, 대한민국의 안전에 우리 총회의 책임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의 근거를 삼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