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성당 책가방
오늘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성당에 가기가 싫다. 아이들이 그러면 안 된다 빨리 성당에 안가고 뭐해 하면서 큰소리가 한번쯤은 있을 번 한데 어른이란 이유로 누가 말 한사람도 없다. 굳이 이유를 붙이면 몸이 피곤하고 재미가 없다는 느낌이다. 성당에 가기가 싫은 지난일과 재미있었던 일을 회상해고자 한다.
1964년 중2학년쯤 될 때다 무더운 여름 토요일 오후 레지오 활동을 하기 위하여 아일랜드 외방선교회 신부님과 주일 학교를 잘 나오지 않는 친구들 집을 가정방문하기 위하여 2명씩 한 팀을 이루는 레지오 활동 있다. 그때는 토요일 특전 미사가 없기 때문에 신부님과 토요일 오후면 약속을 하고 신부님과 함께 신방을 가곤했다.
우리 레지오는 남. 여 학생혼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단장님은 대학생 신부님은 주회 합이 끝 날 때까지 함께하시기 때문에 장난치다 신부님께 들키면 군밤 막고 뒷자리에 않곤 했다. 회합이 끝나면 신부님과 신방 길에 오르면 차도 별로 없었지만 차 다닌 쪽은 신부님 차안 다닌 쪽은 우리들을 차와 경리시키며 안전을 대비한 인자한 선생님으로 변한 신부님! 서트련 우리말로 너희들 덥지 하시며 아이스~케이크하고 큰소리로 부르면 어깨가 늘어지게 큰 아이스~케이크 통을 매고 달려오는 케이크 장사에게 말하여 우리들의 입에 물려주신 얼음과자 그러한 아름다움 모습, 또 일요일 미사 후에 교리를 하기 때문에 미사가 끝나면 신부님 수녀님 정문에서 집에 갈수 없도록 막고 서 계시면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들켜 교리 받고 집에 왔던 추억이 떠올라 그때 신부님을 생각하니 지금은 하느님 나라에 가고 안 계신다.
집에는 레지오 활동 때문에 성당에 갔다 하고. 지금도 2인 1조로 활동하지만 그때도 한명이 나오지 않으면 활동을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포기하고 만화집에서 10원에 두 권, 만화책 보는 재미에 빠져 돈이 부족하면 일요일 사용할 미사 봉헌금 100원 중 50원은 만화보고 50원만 봉헌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신간 만화가 많이 나온 경우는 일요일 봉헌금은 없고 공 미사 집에 가서는 성당에 갔느냐 하면 큰소리로 예! 헌금도 했지 하면 그래도 50원 이라도 헌금하면 예! 전혀 못하면 딴청 보면서 적은 소리로 예! 하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듯이 하고서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척 그때가 엊그제 인 것 같다.
봉헌금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1960년대 후반에는 잠자리채 모양으로 된 주머니를 한사람, 한사람 앞으로 통로에서 돌이면 주머니 속에 않아서 헌금을 한다. 초등학생은 많이 하면 보통 200원~100원씩 하는데 없어서 안하는 사람도 있지만 10~50원씩도 많이 했다. 돈을 만화책보기 위해 써버리고 없어 주머니만 처다 보고 있노라면 뒤에서 부모님이 볼까봐 빈손을 주머니에 쑥 넣고 마음이 별로다 다음에는 만화 안보고 헌금해야지 하면서 그때뿐. 성인들은 1,000원~2,000원씩 봉헌했다. 세월이 흘러 40년이 지난 2000년 봉헌은 어떠한가? 초등학생 봉헌금 500원~1,000원씩 약5배 증가된 금액을 봉헌하는데 어른들은 40년지난 동안 더 많이 봉헌하신 분도 있지만 약1.5배 증가된 2,000~3,000원 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해가 지나면 매년 봉급 인상을 두 자리에 가까울 정도로 인상을 요구하고 또 인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사업 복음 전파에 필요한 봉헌을 60년대 보다 약4배 정도를 증가해야 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어느새 중년이 되어 커가는 어린 꿈나무를 보면서 저들도 추억을 만들며 컴퓨터 게임보다 신앙을 알아야 할 터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