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 좀 해줄래?
고양이와 함께 사는 낯선 여정의 순간순간, 나를 만나기 전 6개월 남짓, 땅꼬의 짧은 생애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처음 집에 데려왔을 때, 땅꼬는 내가 집에 자신을 들인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몸을 녹이는 내 가슴으로 올라와 오래오래 입을 맞추는 땅꼬의 행동은 이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고마워, 고마워... 날 들여줘서 고마워... 땅꼬는 집냥이었을까? 유기되었나? 땅꼬랑 아파트 중정으로 산책을 나가면 땅꼬는 유독 101동 5~6호 공동 현관 앞을 오래 기웃거리곤 했다. 놀이터 옆 정자에 앉아 있을 때면 목을 빼고 그쪽을 지켜보다 왠 청년들을 살피다 쫓아가기도 했다. 거기에 무슨 연고가 있는 걸까?
땅꼬는 절대로 변을 실수하는 법이 없고 아무데나 긁어대지도 않고 내 감정의 변화나 주변 상황의 흐름을 예민하게 포착해서 그에 따라 처신할 줄 안다. 그루밍도 야무지기 이를 데 없다. 외출냥이지만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언제나 반짝이고 안을 때면 허브향이 난다. 어떻게 저렇게 매너가 좋을까? 교욱받은 적이 있었나? 사람들이랑 함께 산 적이 있었나?
땅꼬는 단 한번도 꾹꾹이를 하지 않았다. 꾹꾹이는 어미의 젖을 빨때 젖이 잘 나오도록 누르는 행동이라 보통 일찍 어미와 떨어진 새끼고양이들은 담요에 대고 쭙쭙이와 꾹꾹이를 한다. 땅꼬는 어미와 오래 함께 했을까?
저렇게 예쁘고 에너지 넘치고 영리하고 자존감이 강하고 예의 바른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는 누구일까?
아파트 중정에 살 때 친구가 있었을까? 어디서 자고 어디서 먹었을까? 어린 냥이가 홀로 어두운 밤을 보내는 심정은 어땠을까? 외롭고 무섭진 않았을까?
하지만 물어본들 땅꼬가 답해줄리 만무하다.
땅꼬가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장면이 생각나서 놀이터 아이들한테 탐문을 시작하기로 했다.
한 겨울 추위가 물러난 2월 중순 쯤부터 중정에 다시 아이들이 놀러 나왔다. 땅꼬 산책 시간에 함께 놀이터에 나가면 놀던 아이들이 와~~ 몰려든다. 여자 아이들 몇몇은 이렇게 말한다.
"망고네. 안녕. 망고야~~~안보인다 했더니 집냥이가 됐어요? "
"망고?"
"네. 우리는 망고라고 불렀어요. 코도 귀도 아팠는데... 다 나았네요. 예뻐졌다. "
"난 땅꼬라고 불러. "
"아 ~~~ 망고랑 비슷하네요."
남자 형제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한다.
"와, 재선이다."
"재선이?"
"네, 우리 이름 한자씩 따서 재선이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재호, 선호 거든요."
"아, 나는 땅꼬라고 부르고 있어."
"너희들 혹시 망고, 재선이가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아는 거 있어? 언제부터 이 놀이터에 나타난거야? 어떻게 먹고 살았어? 혹시 주인이 있었던건 아니고?"
"101동에 사시던 할머니가 키웠는데... 잘 모르겠어요. 이사가셨다고도 하고..."
"101동에 사는 언니가 사료랑 간식을 줬어요. 그리고 우리가 학교 가는 시간에 우리 따라왔어요. 그래서 학교갈 때 먹을 거 가지고 나가서 망고 줬어요."
"저 나무요, 101동 앞에 있는... 저기 올라가서 우리보고 야옹거렸어요. 그리고 어떨 때는 주차장 고양이랑 싸웠어요."
"제가요. 날씨 추워져서 망고 데리고 집에 들어갔는데요, 엄마한테 엄청 혼나고 쫓겨났어요."
띵꼬랑 산책하다 보면 이런저런 정보들을 듣게 된다.
하루는 산책하는 별이라는 강아지와 마주쳤는데 땅꼬가 별이한테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했다. 별이 엄마인 동물을 좋아하는 아주머니가 땅꼬를 보더니 "얘 어릴 때는 별이랑 잘 놀더니 이젠 컸다고 하악질을 하네." 그런다.
101동 주민이었던 그 분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내용은 이랬다.
땅꼬가 별이랑 아주머니를 따라서 그 집 현관까지 따라갔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자주 그 집 현관 앞에 와서 들여보내 달라고 졸랐다는데... 그래서 101동 공동현관 앞을 기웃거렸나 보다.
101동에 캣맘이 사신다. 101동과 바위로 쌓은 축대 사이에 옥외 주차장이 있고 축대로 쌓아 올린 넓은 바위 위에다 고양이 먹이를 주시는 분이다. 이 때만 해도 사료가 아니라 생선을 사다가 날 생선을 놓아 주면 주차장에 기거하는 냥이들이랑 그 냥이들과 잘 지내는 뒷산의 냥이들이 오가며 주린 배를 채웠다. 그 캣맘께서 산책중인 땅꼬를 보시며 "얘도 어릴 때 거기 와서 먹고는 했는데..." 하신다. 그래서 땅꼬가 생선을 좋아하는구나.
산책을 끝낸 땅꼬가 나를 기다리는 장소는 101동 1층 구립어린이집 앞 빨간 소화전이 묻혀있는 덤불 안이었다. 그 곳에서 땅꼬야~~ 부르면 잠이 들었는지 부시시한 눈으로 나오곤 했다. 이 곳은 남향인데다가 덤풀이 빽빽하고 그 뒤로 101동 건물과 땅 사이에 틈이 있어 그 속에 들어가 비를 피할 수도 있다. 땅꼬의 거주지는 그 곳이었을 것이다.
...
탐문의 정보와 땅꼬의 습성을 취합해서 6개월까지의 땅꼬의 생애를 정리해 보면 대략 이럴 것이다.
주변 어디선가 고양이가 초여름 경에 새끼를 낳았고 길냥이들이 그렇듯이 많은 아기들을 잃었을테지만 땅꼬는 살아남았다. 땅꼬가 건강한 이유는 길냥이 새끼로 생존한 개체이기 때문이다. 어미가 다시 임신해야 하는 시기, 대략 3개월 정도된 땅꼬를 이 중정의 어린이집 덤불에 데려다 독립을 시켰을 것이다. 향 좋은 안전한 공간, 급식소도 가까운 곳에 데려다 두는 걸 보면 땅꼬 어미는 영리하다. 땅꼬는 사람을 좋아하는 개냥이라 은신처 바로 앞 놀이터에서 노는,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에 의지해 살았을 것이다. 뒷편 주차장 급식소도 기웃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급식소에서는 다른 고양이들의 텃세 때문에 오래 버티지는 못했던 거 같다. 101동 단발머리 아가씨가 땅꼬를 유독 챙겼고...땅꼬는 아이들 손에 들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봤고, 그 기억으로 동물한테 친절했던 별이 엄마를 쫒아다니면서 집냥이가 되고 싶어했던 것 같다. 날이 추워지면서 사람들을 따라 공동현관 안으로 들어와 추위를 피하는 법도 배웠고... 그렇게 겨울 한파가 닥치던 어느날 놀이터를 지나던 나와 만나 내 집에 안착했던 것이다.
추측일뿐이다. 여전히 땅꼬의 6개월은 미지의 시간이고 신비의 영역이다. 완전히 알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온 너...
동네를 다닐 때 임신한 고양이들을 만나면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혹시 땅꼬랑 닯았나? 하지만 땅꼬 엄마를 알 길은 없다. 만날 수 없는 땅꼬 엄마에게 나는 늘 마음으로 감사의 옆서를 보낸다.
땅꼬를 저렇게 예쁘게 건강하게 똑 부러지게 상냥하게 키워서 내게 보내줘 고마워요.
덕분에 제가 따뜻합니다. 잘 돌볼께요, 땅꼬도 저를 잘 돌보고 있어요.
마음 푹 놓으세요.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길 바래요.
...
땅꼬는 나를 만나 내가 어떻게 살아온 사람인지 궁금했을까? 땅꼬도 나름 탐문을 했을 것이다. 냄새 맡고 핥고 관찰하고...지금도 탐문은 계속된다. 살아있는 CCTV로 내 일거수 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땅꼬는 어디까지 나를 알고 있는 것일까... 분명한 건 땅꼬가 궁금한 리스트 중에 내 나이, 직업, 학력, 나의 성취, 나의 소속... 이런 항목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공동 생활에 이런 정보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테니까... 어쩌면 나의 성취와 소속을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상대가 바로 땅꼬와 장군이가 아닐까... 그 목록을 제거하고 나면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걸 아는 유일한 상대가 땅꼬와 장군이일지도 모르겠다. 그 목록을 소거한 존재들의 만남과 관계가 주는 안도감. 우리가 동물친구들을 원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