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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강해(28) 2025. 1. 22
르호보암의 잘못된 선택
열왕기상 12:1~15
<솔로몬의 죽음과 그에 대한 평가>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똑같이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외형적으로만 보면 솔로몬은 아버지보다 훨씬 더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을 건축했고, 기타 많은 요새와 성읍을 건설했습니다. 병거와 말을 준비시켜 강성한 나라를 만들었고, 해상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도 쌓았습니다. 주변의 많은 왕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많은 선물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세속적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이스라엘 역사상 최전성기였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에 대한 열왕기 저자(신명기 사가) 평가는 아주 인색합니다.
비록 지혜 있는 왕으로 많은 명성을 얻었지만, 많은 이방 여인들을 처첩으로 둔 탓에,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위해 산당을 짓고 그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왕상11:7-8). 한 마디로 ‘아버지 다윗의 길을 따르지 아니한’(11:6)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11) 라는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다만 다윗과의 약속을 생각하셔서, 아들의 대에 가서 이 일이 일어나고, 한 지파(유다 지파)는 보존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아히야 선지자에게 여로보암을 만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아히야 선지자는 여러보암을 길에서 만나 ‘옷을 열둘로 찢어 열 조각을 주는 행위’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둘로 찢어서 열 지파를 여로보암의 손에 넘겨주기로 하셨음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는 솔로몬에게 반기를 들었고, 솔로몬이 자신을 죽이려 하자 애굽으로 망명하였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솔로몬 왕은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르호보암> 우선 르호보암이 어떤 사람인지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왕상14:2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사십일 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나아마요 암몬 사람이더라.”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는 41세였습니다. 아버지 솔로몬이 대략 60세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볼 때, 솔로몬의 나이 19세 때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때는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어머니가 암몬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이집트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고(왕상3:1), 그것이 솔로몬의 첫 번째 결혼인 줄로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습니다! 그 전에 이미 암몬 사람 나아마와 결혼했고, 그를 통해 장남 르호보암을 얻은 것입니다. 솔로몬이 말년에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몰렉)을 따라서’ 우상 숭배에 빠졌다(왕상11:7)고 했는데, 그것 역시 르호보암의 어머니 암몬 사람 나아마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주변 나라들과 통혼하면서 많은 공주를 데려왔지만, 그중에서도 나아마가 왕비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후계자로 세워지는 일에도 나아마의 입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유다의 왕 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17년 동안 다스렸습니다(58세에 죽음). |
<세겜으로 간 르호보암>
솔로몬이 죽은 후 장남인 ‘르호보암’이 자연스럽게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다 지파의 이야기입니다.
예전 사울 왕이 죽은 후, 다윗을 헤브론으로 가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지파들은 여전히 사울의 영향권 아래 있었습니다(오랜 지파 간의 갈등이 배경). 사울의 군대 사령관이었던 ‘아브넬’이 실권을 잡고 5년간 권력을 행사합니다. 그러다가 사울의 남아 있는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습니다(불과 2년). 그 후, 아브넬이 사울 왕의 첩 리스바와 관계를 맺은 일로 이스보셋이 책망하자, 분에 못이긴 아브넬을 다윗 왕을 찾아와 통합을 제안하였습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칠 년 육 개월’ 만에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후에도 지파 간의 갈등은 상존해 있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진압하고 환궁하는 과정에서 북부 지파들을 소외시키고 자신의 지파인 유다 지파로 환궁을 주도하게 하면서, 북부 지파의 반발을 불러왔고 마침내는 세바의 반란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삼하 20:1~2). 진압 이후, 억눌려 있던 반발이 솔로몬 죽음 이후 다시 분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과도한 세금과 노동이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북부의 10지파는 ‘르호보암’을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르호보암’을 만나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지를 담판 지으려 했습니다.1절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르호보암이 북부 지파와 협상을 벌이기 위해서 그들의 중심지였던 세겜으로 직접 갔다는 것입니다. 세겜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58Km 떨어진 곳으로, 그리심 산과 에발산 사이의 위치해 있습니다. 세겜은 에브라임에 속한 지역으로 예로부터 이스라엘 종교, 정치의 중심지였습니다(수 20:7).
세겜 언약(수24장) - 세겜은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곳입니다(약속의 땅). 여호수아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에 모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도하신 때부터 출애굽과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회고하면서, 특히 광야에서부터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오기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은 회고하면서,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24:15)하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도 이방 신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약속합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상수리나무 밑에 ‘증거의 돌’을 세웁니다. 이것이 바로 ‘세겜 언약’입니다. |
여기에서 ‘온 이스라엘’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북부 지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전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를 다스리던 다윗에게 북쪽 지파의 장로들이 찾아와서 그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던 장면(삼하5:1-3)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하긴 아쉬운 사람이 그렇게 먼저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르호보암’ 입장에서는 그만큼 위기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엄청 기분이 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대 왕정의 시기에 북부 지파의 행동은 반역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가기는 했지만 가는 내내 굴욕적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귀환>
르호보암이 세겜에 도착하여 보니, 그 자리에 애굽으로 망명 중이었던 여로보암이 돌아와 있었습니다.
2-3절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솔로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여로보암은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쪽 지파의 지도자들이 사람을 보내서 여로보암을 데려왔습니다(병행 구절인 대하10:2에는 '애굽에서 돌아오매'로 되어 있음. 문맥상으로 볼 때 대하의 번역이 더 타당한 듯 보임).
<북부 지파의 요구>
북쪽 지파의 요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4절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솔로몬이 부과한 고역과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멍에’의 원어의 뜻은 외국인을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 경우에만 사용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북부 지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왕조와 남 유다 지파에 의해 부당한 억압을 받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솔로몬은 전통적인 열두 지파의 조직을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열한 지파를 자기 마음대로 열두 개의 행정조직으로 편성하여 왕실에 필요한 식량을 한 달씩 책임지게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이런저런 국책사업에 그들을 강제로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유다 지파만을 편애하는 이와 같은 정책에 대해서 나머지 지파들이 불만을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의 요구는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기꺼이 르호보암을 왕으로 섬기겠다고 말합니다.
<르호보암의 선택>
북쪽 지파의 요구에 대해서 르호보암은 어떻게 대답하였을까요?
5절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르호보암은 그들에게 사흘의 말미를 구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돌아갔다가, 사흘 뒤에 나에게로 다시 오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시간 동안 르호보암은 두 그룹의 의견을 듣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아버지 솔로몬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이었습니다.
6~7절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그들은 아버지 솔로몬 시절부터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들입니다. 그들은 르호보암에게 ‘좋은 말’로 대답하면 그들이 왕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조언합니다. 그들이 듣기에 북쪽 지파의 요구는 그렇게 무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 르호보암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의견을 듣습니다.
8~11절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소년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마흔이 넘은 ‘청장년’입니다(르호보암 41세).
그들은 원로들과 정반대로 조언합니다(11절).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르호보암은 과연 누구의 조언을 따랐을까요?
12~14절 “삼 일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불행하게도 그와 함께 자라난 친구들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전갈 채찍’은 가죽으로 만든 채찍에 모래와 쇳조각을 붙여서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는 채찍입니다.
<말씀을 이루시게>
르호보암의 선택에 대하여 열왕기 저자는 이렇게 해석합니다.
15절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열왕기 저자는 르호보암의 선택이 이상한 일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아히야 선지자를 통해서 여로보암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을 해석하는 저자는 훗날 바벨론 포로기에 썼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르호보암의 책임은 덜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선택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그 책임은 온전히 그 자신이 져야 하는 것입니다(마치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의 죄가 그에게 있듯).
이렇게 해서 통일 이스라엘은 두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적인 교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신앙적인 교훈을 얻습니다.
첫째, 성도는 육적인 필요보다도 영적인 필요에 더 민감해야 합니다.
세겜에서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이 르호보암에게 요청한 것은 솔로몬 왕이 자신들에게 부과한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당한 요구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와 물질에 관련된 부분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더 절실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곳곳에 우상과 산당들이 세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백성들의 영혼은 육체보다도 더 피폐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북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르호보암에게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물질 만능시대).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문제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영적 성숙과 거룩한 생활을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전8: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둘째, 섬기는 리더십이 참된 리더십입니다.
르호보암이 의견을 물었던 두 그룹 사이에는 왕직(王職)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버지 솔로몬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은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7절) 라고 권면합니다. 즉 노인들은 ‘섬김의 리더십’을 가르쳤습니다.
반면에 젊은 친구들은 더욱 강력한 무력 정치만이 백성을 다스리는 왕의 권위를 세워줄 것이라고 조언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리더십이 더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뽑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는 하나님이시지만 겸손하셔서 우리를 도리어 섬겨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자신이 죽기까지 겸손하셨습니다. 실제로 연약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제자들을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섬김에는 놀라운 힘이 있어 그 사람을 내면까지 변화시켰습니다. 힘으로 통치할 때에는 잠깐 굴복할지 몰라도 후에는 다시 반역하거나 등을 돌리게 됩니다. 사랑과 섬김에는 그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10:35). 스스로 본을 보이시려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카리스마(다양한 은사)의 사유화를 조심하십시오. 그것이 권세이든 돈이든 지식이든 다른 어떤 것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군림하려 들지 말고, 사람들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셋째, 사람들의 조언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르호보암은 두 그룹의 조언을 듣는 것으로 끝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집권 초창기에 자기 욕심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기브온으로 가서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성전 건축에만 집중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백성의 신뢰를 얻지 않았습니까?
르호보암은 적어도 그때 아버지의 모습을 본받았어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르호보암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식의 신앙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는 그가 너무 어렸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암몬 출신의 어머니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못했습니다. 자기 생각과 고집대로 밀어붙이다가, 결국 나라가 두 쪽이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의 출발입니다(잠1:7, 9:10).
마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넷째,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해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롬8:28)이십니다. 다만 악한 일에 쓰임 받지 않도록,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이루어가시는 역사에 합당하도록 행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맺는 말씀>
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르호보암의 선택에는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섬김의 리더십’을 배웠더라면,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훈련’을 받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늘 우리는 르호보암의 선택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섬기는 일에 헌신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일과 태도, 그리고 순간순간 일어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님께서 세워가시는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선택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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