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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플라잉 시티가 꾸민 에르메스 쇼윈도 2-샤넬 모바일 아트전에서 선보인 이불 작가의 작품 3-김홍석 작가가 꾸민 루이비통 쇼윈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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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다르다면.
궁금하지 않은가? 나쁘게 보여지지는 않았는지, 매력적인 게 있다면 무엇인지. 다른 사람의 정서를 통과하면서 해체되고 다시 짜맞춰진 ‘나’의 존재는 흥미롭다. 기업이라면 흥미에 더해 브랜드 이미지 전략 수립에 꼭 필요한 부분이다.
패션 하우스가 아티스트와 손 잡는 그림의 저변에는 이 같은 욕망이 깔려 있다. 그들은 발견되고 싶어한다. 그것도 지극히 독창적이고 가끔은 엉뚱하기도 한 작가들의 눈을 통해서 라면 더욱 환영이다. 여기에는 그들의 부드러운 감성이 실체보다 아름다운 초상을 그려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패션 하우스들로 시작됐다. 샤넬은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당대의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필요하면 금전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루이비통, 이브생로랑도 마찬가지다. 21세기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패션과 아트의 만남에서도 이 브랜드들은 여전히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이 시도해온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함께 하고자 하는 아티스트가 한국인일 때다. 각 나라 고객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자국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을 하면 그 나라의 모든 매체가 취재하겠다고 줄을 서니까.
그래도 흥미롭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패션 하우스들은 한국의 어떤 아티스트에게 반했으며, 그들에게 무엇을 얻고 싶어했을까?
단서는 지금까지 패션 하우스와 작업한 작가들 대부분이 패션에 대해 거의 무지하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김홍석 작가는 루이비통을 “어머니 세대가 좋아하는 가방”으로 알았고 이불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샤넬에 대해 “너무 유명해서 평소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판에 박힌 이미지에 대한 경멸과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쳐달라는 브랜드의 갈증을 희미하게나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에르메스는 작가 그룹 플라잉 시티에게 3년여 간 쇼윈도를 맡겼다. 플라잉 시티로 말할 것 같으면 청계천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장기간 작품 주제로 거론하며 민중 미술가라는 별칭을 얻은 작가 그룹이다. 자칫 위험해 보이는 선택을 한 에르메스 코리아 정현상 사장은 “무조건 눈에 띄게”를 주문하며 덧붙였다. “쇼윈도 좀 잘못 된다고 뭐 천지가 개벽하겠나”
샤넬은 7개 도시를 순회하며 진행하는 모바일 아트 전시를 개최하며 한국인을 포함한 20명의 아티스트를 불러 놓고 샤넬에 대해 해석할 것을 주문하되 다른 어떤 당부도 추가하지 않았다. 작가들 중에는 샤넬을 아예 모르는 이도 있었고 샤넬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실제로 한 작가는 샤넬 백에 대한 여성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풍자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샤넬 측은 일언반구 없이 이를 그대로 전시했다.
이들의 태도는 패션과 아트의 만남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풀어나가는 정도(正道)를 시사한다. 예술가의 감성을 사랑하며 존중하는 것은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들의 공통적인 자세였다. 최근 국내 브랜드 중에도 작가들과의 협업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브랜드의 기존 색깔에서 벗어나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은 양반이고, 그냥 티셔츠에 넣을 프린트 하나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태반이다. 에비뉴엘 큐레이터였던 VNR 아트의 홍지윤 대표는 “기업의 아티스트에 대한 대우가 별로 좋지 않다”며 “특히 신진 작가들은 기업의 목소리에 이리저리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 했다. 몇 년 전 카이스트에서 진행했던 한 프로젝트의 참담함 실패는 ‘예술과 상업의 공존’에 대해 국내 기업들이 곱씹어봐야 할 시사점을 던져준다.
“미술가와 공학도, 사업가가 최고의 상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죠. 왜냐구요? 공학도는 미술가에게 자신이 만들 제품에 넣을 예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구했고, 미술가는 공학도에게 자신의 기발한 상상력을 제품으로 구현해달라고 고집했거든요. 물론 사업가는 그 둘을 향해 그런 상품은 돈벌이가 안 된다고 타박하고 있었죠.”
1. 플라잉 시티
플라잉 시티는 작가 그룹이다. 전용석, 장종관 두 명의 작가를 주축으로 매 프로젝트마다 다른 작가들을 영입해 함께 작업을 한다. 에르메스가 이들에게 손을 내밀기 전까지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언더 그라운드 작가 또는 민중 미술가였다. 이는 플라잉 시티가 오랫동안 매달려 온 청계천 프로젝트의 힘이 컸을 터다.
그들은 철거 위기에 놓인 청계천 상인들의 유기적인 생존 방식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그들이 쫓겨날 경우 살 수 있는 '만물 공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정치 색을 논하기에는 지나치게 장난기가 뚝뚝 흐르는 이 문제적 작가 그룹에게 쇼윈도를 맡기면서 에르메스는 무엇을 기대했을까?
"특이한 걸 원한 거죠. 우리를 찾을 때 기대하는 것은 절대 평범한 것은 아니에요." 장종관 실장의 말이다.
그렇다고 에르메스 쇼윈도에 청계천 다리를 복원할 수는 없었다. 소위 명품이라고 해서 고급스러워야 한다는 강박은 애초에 없었다. 그렇다고 일부러 키치함을 강조해 모두를 당황케 할만큼 어리지도 않았다. 플라잉 시티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에르메스의 '격'을 맞췄다.
"에르메스는 명품 브랜드잖아요. 명품 쇼윈도에는 비싼 재료를 쓴 비싼 작품이 어울린다고들 생각해요. 하지만 퀄리티가 재료에만 한정되지는 않죠. 상상력의 퀄리티를 높이는 방법도 있잖아요."
그들이 에르메스에게서 찾은 첫번째 매력은 '수공예'였다. 100% 손으로 만들어지는 브랜드의 장인 정신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됐다. 위엄 있어 보이는 제품 곳곳에 보이는 동화적인 프린트 – 에르메스 스카프의 패턴 – 도 작품의 모티브가 되곤 했다.
나이키와 작업할 때는 젊음, 예기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는 신출귀몰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은 만화에 나오는 공간선(사람이 달릴 때 뒤에 붙는 펜터치 등)을 입체로 만들어 역동성을 극대화 시켰다. 제목은 '덩크, 슁, 쾅, 통통, 키익'이었다.
현재는 스와치 그룹의 시계 브랜드 라도의 광고 비주얼을 만들고 있다. 시간의 흐름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해 돌연 변이의 진화 과정을 이용했다. 6개월 동안 매월 달라지는 광고 비주얼 속에서 돌연 변이는 점점 더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며 몸집을 키워 나갈 예정이다.
"이전에는 홍보 이벤트라고 하면 주로 연예인들과 함께 했죠. 최근에는 작가들과 하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기업 측에서는 연예인 홍보는 일회적이지만 작가들과의 협업은 남는 것이 있다고 해요. 저희가 그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그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나 봐요."
그럼 패션 하우스와의 협업을 통해 작가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소통이죠. 요즘엔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세상과 접촉점이 없는 작가들이 많거든요. 기업이든 대중이든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또 작가들에게는 생계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기도 해요." |
2. 김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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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래) 김홍석 작가의 루이비통 쇼윈도 | | |
'루이비통이 최초로 한국인 디자이너와 협업했다'는 사실에 국내 패션계와 미술계가 동시에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놀란 만큼 김홍석 작가도 놀랐다는 사실이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회적 문제나 소통의 부재에 대해 거론하면서 조각, 비디오, 드로잉, 퍼포먼스 등 거의 모든 미술의 형태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기발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루이비통의 제안을 받기 전까지는 "그렇게 가방 종류가 많은 줄도 몰랐"던 데다가 패션계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이는 마틴 마르지엘라 뿐이었던 터라 그에게는 의외의 제안이었다.
루이비통 회장은 쇼윈도 전시를 의뢰하며 백과 사전 두께의 브랜드 히스토리 자료와 함께 대만 작가 마이클 린의 작품을 내밀었다. 쇼핑백 등에 그려진 조악한 그림을 크게 확대해 건물 외벽을 덮는 식의 작업을 주로 해온 마이클 린은 대만 루이비통 부티크의 엘리베이터와 VIP 라운지를 장식한 적이 있다.
아마 김홍석에게도 이런 방식의 이미지 작업을 은근히 기대했던 걸까? 그러나 그의 작품은 완전히 예상을 뒤엎었다. 이 작고 예민한 작가는 자기에게 손을 내민 거대한 코끼리 같은 기업에게 예의를 갖춘 채 지극히 솔직한 답변을 한 것이다.
"Foreign"
그에게 루이비통은 명품, 전통의 패션 하우스, 글로벌 기업이기 전에 '이국의 낯설음'이었다. 둘로 쪼개져 원래의 형태를 잃은 글자는 예쁜 가방들 사이에서 꽃 같고 나비 같은 오브제로 형상화 되었지만 사실은 '이거 참, 저에게 말을 거실 줄이야'라는 작가의 쑥스러운 대답이다.
다른 쇼윈도에는 낯선 사람을 만날 때의 윤리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글로 써 내렸다.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날 때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좋은가에 대한 짤막한 견해다.
그는 국내 패션 업체들이 창의성을 드러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트에는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니에요. 독창적인 패션쇼 공간을 연출한다거나, 다양한 제품군을 3차원 조직도 위에 표현해서 고객들에게 전달하는 등 방법은 너무나 많죠.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패션 기업들이 생각하는 '아트'란 눈에 뜨일 만큼 획기적인 이미지 정도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
3. 권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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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오상 작가 5-권오상 작가와 하퍼스 바자의 협업-김다울 조각 6-펜디 팔라조 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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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명 '사진 조각'으로 알려졌다. 인물 또는 사물의 사진을 찍어 (그것도 수백 장씩) 그것을 이용해 조각상을 만든다. 2차원의 종이로 덕지덕지 구성된 3차원의 조형물은 당연히 현실의 모습과 한참 동떨어지게 마련이다.
현실의 정확한 반영인 사진을 이용해 현실을 왜곡시키는 실체를 만드는 그의 작업은 '사실의 은폐'에 대한 메시지도 매력적이지만,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눈길을 끄는 외관 덕에 패션계의 러브콜이 유난히 많이 쏟아진다.
그가 지난 해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 12주년을 기념하여 선보인 김다울 조각은 모델 김다울을 다섯 시간에 걸쳐 머리부터 발끝까지 촬영해서 얻은 사진으로 만들었다. 재구성된 모델은 여체의 아름다움과 살결의 부드러움, 자연스러움을 뺏기고 인화지의 번들거림, 인위적인 포즈로 인해 기괴한 매력을 뿜어냈다.
펜디는 권오상에게 브랜드 제품 중 팔라조 백을 주제로 던졌다. 그는 한창 작업 중인 어수선한 작가의 테이블을 지점토로 만들고 한 켠에 역시 지점토로 만든 팔라조 백을 얌전히 내려 놓았다. 마치 작업의 주체가 가방 주인과 동일 인물인 것처럼 전기 포트, 콜라, 헤드폰과 펜디의 가방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우러진다.
"믿기 힘들겠지만 작업 시 어떠한 요구도 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가를 믿고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기회를 틈 타 엉뚱한 신작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패션은 작가와의 협업을 통해 예술성을 획득할테고 작가는 작품 홍보를 통해 명성을 얻게 되니 모두에게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이 나온다면 대중에게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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