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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혁명 주인공
스티브 잡스 - 2011.10.05사망(56세)
Steve Jobs가 남기고 간 명언들
아담과 이브의 사과는 인류를 바꾼 사과이고 뉴턴의 사과는 과학을 바꾼 사과이고
스티븐 잡스의 사과는 문화를 바꾼 사과라고 말한다.
어떤이는 다 빈치. 에디슨 그리고 잡스를 인류 3대 천재라고도 한다지요.
사생아로 태어나서 파란만장하고 격렬한 56년의 인생을 살다간 잡스가 남긴 말들을 모아 짚어본다. 비록삼성과 소송 등으로 시끄럽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잡스의 명복을 빌며 극락왕생하길 바라면서.....
1.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듯이 사랑하는 일을 찾아라.
2. 살아보니 돈은 중요하지 않더라.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오늘 정말 멋진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3.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내는 것.
이미 마음과 직관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있다.
4.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만이 진짜 예술가다.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
5.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럼 당신은 정말로 잃을 게 없다.
6. 창조성이란 단지 사물을 연결하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약간 죄책감을 느낄 것 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정 창조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무엇인가를 봤을 뿐이기 때문이다 - 1996년 와이어드
7.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렵다.
생각을 명확히 하고 단순하게 만들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면 신도 움직일 수 있다
- 1998년 비즈니스워크
8. 애플을 치료하는 것은 비용 절감이 아닙니다.
애플을 치료하는 것은 현재의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혁신하는 것 입니다.
-1999년 5월 애플 컨피덴셜 : 애플 컴퓨터의 진짜 이야기
9. 혁신은 연구개발비 규모와 무관하다.
혁신은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이끌어 낼수 있는지와
관계가 있다 - 1998년 포천지
10.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 2010년 아이폰4 출시 기자회견장 -
11.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연설
12.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다. -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하 연설
13. 다르게 생각하라 - 1997년 애플에 임시 CEO로 복귀하면서
14. 무덤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일 따윈 중요하지 않다.
매일 밤 자기 전 우리는 정말 놀랄 만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내게 중요하다.
- 1993년 월스트리트 저널 -
15. 남은 인생을 설탕물을 팔면서 보낼 건가.아니면 세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갖고 싶은가.
- 1983년 펩시콜라 부사장 존 스컬리를 만나 스카우트를 제의하는 자리에서 -
스티브 잡스가 남긴 10가지 제품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전 최고경영자(CEO)가 1975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10가지 핵심 제품을 선보이며 세상에 디지털 혁명을 일으켰다. 그 주인공은 아래와 같다.
◆세계 최초 개인용 컴퓨터 '애플1'(1976년)
애플1은 1976년 애플이 최초로 선보인 개인용 컴퓨터다. 스티브 위즈니악이 설계했고, 친구인 잡스가 판매를 담당하기로 했다. 애플1은 1976년 7월 666.66달러에 판매를 시작했다.
◆개인용 컴퓨터시대를 연 '애플2'(1977년)
애플2는 성공적으로 대량 생산한 컴퓨터 제품 중 하나로, 애플1에 이어 스티브위즈니악이 설계를 담당했다. 애플2 시리즈는 인기를 누리며 1993년 11월까지 생산됐다.
◆GUI 환경을 최초 도입한 '리사'(1983년)
제록스 연구소를 방문해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픽사용자환경(GUI)의 가능성을 깨닫은 스티브 잡스가 이 기술을 최초로 도입해 개발된 제품이 리사다. 하지만 높은 가격 때문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애플 간판 제품 '매킨토시'(1984년)
매킨토시는 높은 가격때문에 상업화에 실패한 리사의 사례를 거울삼아 가격을 내리고 보다 처리속도를 높인 제품이다. 매킨토시는 레이저 프린팅 기능을 지원하면서 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됐다
◆잡스의 재도전 '넥스트'(1989년)
잡스가 애플을 떠난 후에 강력한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 많은 수를 판매하진 못했지만 주목을 받은 제품이다. 세계 최초로 웹 브라우저를 지원했으며, 애플 맥의 핵심 운용체제인 맥 OS X의 토대된 플랫폼이다. 아이폰의 iOS도 이 플랫폼을 토대로 만들어 졌다.
◆디자인과 만났다 '아이맥'(1998년)
아이맥은 잡스가 복귀한 후 선보인 새로운 유형의 맥컴퓨터. 파란색의 투명 플라스틱 소재를 활용해 모니터와 컴퓨터 본체를 일체화 한 것이 특징이다. 잡스는 아이맥 출시 이후 컴퓨터를 경량화 하는 작업을 본격화 했다.
◆휴대형 단말기 시장에 출사표 '아이팟'(2001년)
애플은 후발주자로 휴대형 뮤직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했으나 불과 2~3년만에 관련 시장을 재패했다. 애플은 아이팟의 성공을 계기로 아이튠스 음악 스토어와 아이폰을 잇따라 출시했다.
◆온라인음악시장을 평정한 '아이튠스 스토어'(2003년)
애플은 아이팟 성공을 계기로 디지털음원을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상점 '아이튠스 스토어'를 선보였다. 아이튠스 스토어는 거대 음반사 음원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이용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으며, 2008년 미국 최대 음반 판매점으로 등극했다.
◆통신시장을 뒤흔든 스마트폰 '아이폰'(2007년)
매킨토시의 장점을 휴대폰에 도입한 아이폰은 출시와 동시에 휴대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멀티터치기반의 사용자 환경은 휴대폰의 새로운 입력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 매년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태블릿PC 시대를 연 '아이패드'(2010년)
아이패드가 등장하기 전에는 애플을 포함해 수십개의 기업들이 태블릿PC 시장에서 도전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아이패드 등장 이후 불가능할 것 같았던 태블릿PC 시장이 본격화 되고 있다. 아이패드는 태블릿PC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으며, 노트북PC시장까지 위협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55)가 애플의 전설로 남게 됐다. - 사망 2011.10.5(56세)
2011년 8월24일(현지시각)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 폰과 아이패드 같은 혁신 제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기계를 가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새로 정의한 인물로 오래도록 회자될 것이다. 잡스는 입을 통해 놀라운 영업기질을 발휘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해 잡스의 유명한 일화를 소개했다.
- “기술은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뿐”
잡스는 “기술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고,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선천적 결함이 있는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기술을 통해 (같은 경험을 가진) 다른 부모들이나 의학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집단과 연락할 수 있다”며 “기술을 경시하는 게 아니라 이런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 IT 업계 종사자이면서도 ‘기술 만능주의’적인 접근법을 버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 “창의성은 기존에 있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
잡스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세상을 움직인 아이콘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기존에 나와 있는 것들을 잘 모아‘혁신’이란 이름으로 포장해내는 귀재였다. 창의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면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는 “창의성은 단지 현존하는 것들을 잘 연결한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대체 그런 것들을 어떻게 했느냐, 라고 묻는다면, 그들은 조금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들이 새로운 것을 뚝딱 만들어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온 것들을 잘 묶어 경험을 연결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집중과 단순함이 내 철학”
단순한 디자인으로 5살짜리 아이들도 직관적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는 잡스의 오랜 슬로건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그는 10년여 전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집중과 단순함은 내 오랜 슬로건 중 하나였다”며 “단순함은 복잡한 것보다 한 단계 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달성하기 어렵지만, 일단 경지에 오르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6년에도 “지금 나와 있는 소비자 제품들을 보면 디자인이 참 복잡하다”면서 “디자이너들이 좀 더 우아하고 단순한 기계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2인자에서 마침내 1인자로’
애플의 새로운 선장으로 내정된 팀 쿡은 회사의 안살림을 담당하는 최고운영책임자(COO) 출신이다. 사실 그가 애플의 CEO를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스티브 잡스가 간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회사를 비웠을 때도, 올 1월 잡스가 무기한 병가를 낸 뒤에도 줄곧 CEO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과거에는 임시 CEO직이었을 뿐, 정식 CEO는 아니었다.
팀 쿡은 잡스가 없을 때마다 그의 공백을 메우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왔다. 그리고 잡스에 가려진 2인자에서 마침내 전 세계 IT업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애플 CEO 자리에 올랐다.
올해 51세인 팀 쿡은 미국 남동부 앨라배마 출신으로 미국 오번 대(大)에서 산업공학 학사를 받았으며, 듀크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쳤다. 일요일에도 직원들을 불러 회의를 하는‘일 중독자’로 유명하다. IBM에서 근무했으며 컴퓨터회사 컴팩 부사장을 거쳐 지난 1998년 애플에 입사했다.
애플에 입사한 이래 해외영업을 주도해왔다. 전 세계 애플의 공장을 폐쇄하는 대신 대만 폭스콘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전략을 주도했다. 이 전략이 애플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2월 열린 애플의 2011년 주주총회에서도 잡스 대신 회사를 대표해 주주들 앞에 섰다. 잡스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회사를 안정적으로 이끈 팀 쿡이 유력한 애플 CEO 후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 역시 지난 2008년 3월 팀 쿡을 자신의 후계자로 공식 거론했었다.
이미 3년 전부터 애플의 차기 CEO로 예견된 팀 쿡은 세계 최대 시가총액의 기술기업 애플의 미래전략 수립과 경영을 총괄하면서, 갑작스러운 잡스의 사퇴로 혼란을 겪고 있는 내부 조직 수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잡스 연봉은 1달러라는데…쿡은 얼마 받을까?
24일 사퇴를 선언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는 매해 연봉으로 단돈 1달러를 받았다.
잡스는 1997년 CEO로 선출된 이후 매년 연봉으로 1달러씩 받아왔다. 대신 개인 비행기를 애플의 업무 목적으로 쓰는 비용을 청구해 매년 수십만 달러씩 돈을 받고 있다. 올해 초 애플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잡스는 지난해 비행기 이용 대금으로 24만8000달러(2억7000만원)를 받았다. 또 잡스는 애플의 보통주 550만주를 소유하고 있다.
잡스의 공식적인 연봉은 1달러에 불과하지만, 잡스가 차기 CEO로 추천한 팀 쿡(Cook)의 연봉은 결코 적지 않다. SEC의 자료에 따르면 쿡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해 5900만 달러(약 640억 원)를 벌었다. 애플은 대부분의 연봉을 주식으로 주는데, 쿡은 이 가운데 500만 달러(약 54억 원) 정도를 현금 보너스로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누구?…
스티브 잡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CEO이자 미국 IT산업의 ‘상징’(symbol)과 같은 인물이다. 작년 1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잡스를‘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으로 지목하면서 “우리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56세인 잡스는 지난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인 조앤 캐롤 쉬블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리아 태생의 아랍인이다. 그는 지난 200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장에 등장, 자신의 출생 비밀을 직접 털어놓아 화제를 모았다.
그는 1976년 친구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공동 창업했다. 애플 II, 매킨토시 같은 컴퓨터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자신이 영입한 펩시 CEO 출신 존 스컬리와의 마찰로 1985년 회사에서 쫓겨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잡스는 이후 넥스트 컴퓨터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그래픽 사업부문(현재 픽사)을 사들이기도 했다. 1997년에는 적자와 파산 위기에 몰린 애플의 CEO로 귀환, 14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아이팟(MP3플레이어), 아이튠스(음악프로그램) 등을 내놓으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2007년에는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를 스마트폰 태풍 속으로 몰고 갔다. 이어 지난해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선보이면서 휴대폰에 이어 PC시장 정복에도 나섰다.
하지만 왕성한 활동에도 그의 발목을 붙잡는 것은 바로 ‘건강’이었다. 지난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고 2009년에는 간이식 수술대에 오르면서 회사를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올 1월에는 무기한 병가에 들어갔다. CEO 사퇴까지 7개월 동안 아이패드2 발표회와 애플의 신사옥 계획발표, 세계개발자대회 등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척해지는 그의 모습에서 분명 건강악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잡스는 사퇴발표 내용을 담은 편지에서 정확한 사퇴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사퇴한 이유는 건강문제라는 게 중론이다. 더 이상 CEO직을 유지하기에는 그의 건강이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또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애플의 2인자인 팀 쿡에게 CEO 자리를 물려줘 애플의 후계구도 체제를 다지고 ‘잡스 없는 애플’의 조기 안정화를 꾀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들
워즈니악이 만든 게임 SW, 1000달러에 팔아놓고는 "600달러 받았다" 거짓말 채식주의 자에 비틀스 광팬… 제일 좋아하는 노래 '이매진'
"해적(海賊)이 되자."
지난 24일 미국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가 늘 직원들에게 했던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고정관념·규칙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이 깜짝 놀랄 일을 하자는 뜻이다. 그는 실제로 해적처럼 살아왔고 직원들도 그렇게 행동하기를 원했다.
◆잡스 창의력의 원천은 '해적 정신'
잡스는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리아 유학생과 미국인 여학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모가 아랍계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난한 대학원생 부부는 잡스를 기를 여력이 없었다. 잡스는 1주일 만에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양부 폴 잡스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막노동을 하던 남자였다. 그는 "아이는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친부모에게 약속하고 입양을 허락받았다.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는 호기심이 강해 늘 말썽을 일으켰다. 집구석에 놓인 바퀴벌레 약을 먹고 거의 죽을 뻔 한 일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자부품을 조립해 만드는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학·마약·무단결석을 밥 먹듯이 했지만 새로운 기술과 제품에 대한 열정을 버리진 않았다.
잡스는 오리건 주에 있는 리드 대 철학과에 입학하지만 한 학기 만에 때려치운다. 그렇지만 1년 넘게 학교에 남아서 청강생처럼 수업을 들었다. 잡스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연구하는 서체(書體·calligraphy) 과목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회고했다. 디자인에 눈을 뜬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잡스는 다섯 살 많은 동네 형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공동 창업한다. 잡스는 천부적인 마케터였고, 워즈니악은 천재적 엔지니어였다. 잡스는 그가 48시간 만에 만든 게임 프로그램을 1000달러에 팔고는 "600달러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워즈니악에게 300달러만 나눠준다. '해적'에게 죄의식은 없었다.
▲ 스티브 잡스가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이패드 출시 프레젠테이션도중 무대 배경화면으로 뜬 사진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이 사진은 잡스가 20대 때 고교 선배 스티브 워즈니악(배경사진 왼쪽)과 함께 창업했을 무렵 찍은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자동차와 계산기를 팔아 초기비용을 마련해 1976년 만우절(4월 1일)에 애플을 창립했다. /AP 연합뉴스 ◆가족조차 짐으로 여겼던 나쁜 남자
잡스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심지어 가족도 안중에 없었다. 사귀던 여자 친구 크리스 앤과 사이에 딸인 리사가 태어났지만 잡스는 자기 딸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양육비도 주지 않아 미혼모인 앤이 근근이 정부보조금을 받아 아이를 키웠다. 나중에 성장한 딸이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하자 그제야 자신의 딸로 받아들였다.
그는 1991년 로렌 파웰이란 여성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자녀는 리사를 포함해 4명. 잡스는 "암 투병을 거치면서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선불교에 심취해 머리 박박 밀기도
잡스는 과일과 채소위주의 식단을 고수하는 채식주의자다. 생선은 먹지만 스테이크 같은 고기는 절대 먹지 않는다.
'몽상가'인 잡스는 비틀스의 광적인 팬이다.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 '나를 보고 몽상가라 비웃을지 모르지만, 나만이 몽상가는 아니랍니다(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란 가사에 끌리는 것이다.
잡스는 1996년 애플에 복귀한 뒤 지금까지 연봉 1달러만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올 3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호 순위에서 재산 83억 달러(9조원)로 110위에 올랐다. 연봉 대신 보너스와 스톡옵션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자가용 제트기를 보너스로 받기도 했다.
◆건강 상태 심각한 듯
잡스는 췌장암의 일종인 신경내분비 암(癌)을 수년간 앓고 있다. 올해 초 스위스 바젤대 병원에서 첨단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젤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 노바티스의 암 치료제 신약(新藥) 임상시험에 참여했다는 말도 있다. 종양내과 전문의들은 "잡스가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으로 보아 치료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더 강도 높은 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추측했다.
스티브 잡스 무한 혁신의 비밀
카민 갤로 지음|박세연 옮김|비즈니스북스 374쪽 15,000원
1980년대에는 가정용PC 시대를 본격화한 8비트 PC '애플2' 시리즈, 1990년대엔 암호 같은 명령어 대신 마우스 클릭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킨토시', 2000년대에는 PC와 전화기, MP3 재생기를 합쳐놓은 아이폰….
10여년마다 IT 산업의 흐름을 뒤바꾼 위대한 혁신 뒤엔 공통점이 있다. 미국 애플사(社) CEO 스티브 잡스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혁신이 그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세상을 뒤흔든 그의 성공 비결은 뭘까? 저자는 일곱 가지를 거론한다.
첫째, 남이 하라는 것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둘째,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비전과 열정을 중시했다.
셋째,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디어를 이끌어냈다.
넷째, 소비자에게 제품이 아닌 꿈과 희망을 팔려고 했다.
다섯째, 완벽한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수백 번 '노(No)'를 외쳤다.
여섯째, 누구에게나 쉽고 편리한 제품을 제공하려 노력했다.
일곱째, 단순·간결하며 이해하기 쉬운 말로 소통하려 했다.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혁신 대가의 비법과 그 뒷얘기를 풀어쓴 책이다.